현명한 판단과 선택을 하는 조직으로 이끄는 방법

『 와이저 』

 

   최근 학교 교육에서는 토의·토론 학습이 강조되는 추세이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에서 학생들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토의·토론 수업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다양하게 이뤄진다. 교사들은 토론의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개발 ·적용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토의·토론을 통해 더 훌륭하고 의미 있는 생각을 도출해내기는 쉽지 않다. 주제와 관련된 지식을 갖고 있거나 학급에서 어느 정도 지위를 갖고 있는 학생의 의견이 일방적으로 선택되는 경우가 흔하다. 다수의 학생들은 발언조차 하지 않는다. 막상 선택된 의견을 살펴보면 편향된 시각과 오류가 많이 보인다. 왜 그럴까? 학생 각자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꺼내놓고,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와이저』 는 이런 문제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사실 『와이저』는 토의·토론 개념을 전면에 내세우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조직의 의사결정이 개인의 그것보다 현명하게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다룬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토의·토론 수업의 실패 요인이 무엇인지, 성공하려면 어떤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지를 참고할 수 있다. 저자는 다양한 연구와 실제 사례를 살피며 '똑똑한 사람이 왜 조직에서는 침묵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우리 모두를 합친 것보다 똑똑한 천재는 없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리더가 적절한 시스템을 구축하면, 각 개인의 실수와 오류를 최소화하면서 조직이 똑똑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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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지는데, 1부에서는 '조직은 어떻게 함정에 빠지는가'라는 주제를 다룬다. 여기서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개인이 저지르는 실수와 오류를 살핀다. 휴리스틱(heuristic), 프레이밍(framing effect), 비현실적 낙관주의, 자기 과신, 사후 확신 편향, 매몰비용 오류 등을 실제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실제로 이러한 오류는 학교, 가정, 사회 등의 조직 안에서 자주 발견되는 것들이다. 왜 토의·토론 수업에서 다수의 학생이 침묵하는가에 대한 분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개인의 판단 실수와 오류가 조직에서 더욱 확대된다고 지적한다. 폭포효과, 집단 극대화 등에 대한 설명을 통해 조직이 편향된 의사결정에 이르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2부에서는 '똑똑한 조직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라는 주제를 다룬다. 개인의 실수와 오류를 적절히 관리하여 성공적인 의사결정을 해낸 조직의 사례를 조목조목 분석한다. 이 조직들은 다양성과 반대 의견이 존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현명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리더는 자신의 말을 아끼고,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한다. 최대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선택 과정에서 실제적인 기준을 가지고 정보를 취사선택한다. 저자는 현명한 조직을 만드는 실제적인 방법으로 악마의 변호인, 레드팀 구성, 델파이 기법, 토너먼트, 예측 시장 활용 등을 제시한다. 사회 경제 분야를 염두에 둔 방법들이긴 하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서도 충분히 활용 가능한 방법들이다. 토의·토론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기꺼이 꺼내놓고, 성공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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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인 캐스 R. 선스타인은 하버드 대학의 로버트 웜슬리 대학 교수로, 행동경제학을 현실에 접목시키는 데 힘써 온 사람이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실제 행동을 심리학, 사회학, 생리학적 견지에서 바라보고 그로 인한 결과를 규명하려는 경제학의 한 분야다. 경제학이란 말만 들어도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데 이 책은 술술 읽힌다. 인간의 실제 행동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공감이 간다. 저자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했던 경험이나 실제  존재하는 기업의 성공 사례 등을 풍부하게 다룬다. 덕분에 낯선 용어가 나오더라도 머뭇거리지 않고 쉽게 이해하고 지나갈 수 있다. 이 책은  학교의 리더, 기업의 리더, 정당의 리더, 국가의 리더를 위한 필독서라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정보를 골고루 파악하고, 최대한 현명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실제적 방안이 제시되어 있다. 또한 학생들이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가는 경험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교사에게도 이 책은 도움이 된다. 다만, 외국의 사례이므로 우리나라 개인과 조직의 특징을 살펴가며 적용해보는 것이 좋겠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하여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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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인은 늘 해야 할 일들로 꽉꽉 채워진 일정표에 따라 바쁘게 산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남보다 더 빨리 일어나서, 더 늦게까지 움직여서 일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늘 배우고 익힌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빠르게 걷고, 짧게 말하고, 후다닥 간단히 먹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시간은 늘 부족하다. 아이와 눈 마주치고 이야기 나눌 시간, 멀리 계신 부모님께 전화 한 통 드릴 시간,  화분에 물 주며 꽃봉오리를 살필 시간이 없다. 지금 시간을 아끼면 먼 훗날에는 성공할 것이고, 여유로운 시간을 누릴 수 있으리란 기대로 부지런히 앞만 보고 달린다. 하지만 먼 미래에 저당 잡힌 오늘이 행복하지 않다. 몸은 지치고 정신은 피폐해진다. 아등바등 시간을 아끼지만 휴식의 시간은 찾아오지 않는다. 그렇게 치열하게  아낀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인생에서 어떤 성과를 내고, 남보다 잘 살아보기 위한 일들에 집중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친 건 아닐까. 뭔가 불안하고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면, 잠깐 멈춰 서서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를 읽어보자. 긴 호흡으로 느릿느릿 걷는 한 노인을 만나 옛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시간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속도 경쟁하는 삶을 살아가느라 중요한 것을 잃어가는 우리의 삶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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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빅셀은 스위스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스위스 유력 주간지 <슈바이처 일루스트리어테>에 실린 38편의 칼럼을 모은 산문집이다. 역에 나와 그냥 서성이는 지적 장애인 에밀, 제화공 해프리거의 작업장, 텔레비전에 빠져든 세 살짜리 꼬마 쿠노, 동물원 식당에서 만난 엄마와 아이, 부엌에 걸린 링고 스타 그림 등. 피터 빅셀은  일상 속에 만난 사람과 풍경에 대해 들려준다. 누구나 한 번쯤 만났을 법하지만 눈여겨보지 않았을  순간들을 포착해서 특별한 이야기로 만든다. 소박하고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 평범한 풍경을 통해  따뜻하고 여유로웠던 과거의 시간을 지금 여기로 가져온다. 그가 꾸밈없이 툭하고 던지는 문장 속에 현대인의 삶을 꿰뚫어 보는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조용히 귀 기울여 듣다 보면 옛 시절의 기다림과 여유, 사색의 시간이 몹시 그리워진다.  효율과 효용을 따지느라 우리의 삶 밖으로 밀어냈던 것들이 얼마나 귀한 것들이었는지를 아프게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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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에 대하여

내가 무엇을 기다리는지 - 예를 들면 베를린 -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언제 도착하는지 - 17시 24분, 베를린 도착 - 상당히 정확하게 예고되는데도, 아니 사실은 그래서 더 끔찍하다. 예고는 기다림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예고는 기다림을 방해하니까.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42쪽)

피터 빅셀은 기술의 발달로 정확한 예고가 가능해진 현실이 끔찍하다고 말한다. 정확한 예측 덕분에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게 됐어도 사람들은 기다림을 견딜 수 없어 한다. 오히려 예측이 불가능할 때 사람들은 기다릴 수 있다. 여러 가지 변수와 우연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사람들은 오히려 더 느긋해진다. 예상한 것보다 버스가 빨리 오면 운이 좋은 듯해 기분 좋고, 늦게 오면 늦게 오는 대로 괜찮다. 무심히 길가 풍경을 살피기도 하고 곁에 있는 사람과 한 마디 나눌 수도 있다. 기다릴 수 있다는 건 느림을 수용한다는 것이며, 느림이 있는 삶에는 쉼과 여유가 있다.  피터 빅셀은 일기 예보가 정확하지 않던 시절,  기다림이 존재했던 삶의 풍경을 떠올린다. 그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전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과 즐거운 기다림이 사라진 오늘날을 안타까워한다.

그때는 일기예보에서 날씨가 좋지 않다고 해도 말만 잘하면 선생님을 설득해 소풍을 갈 수도 있었고, 그렇게 소풍을 갔는데 정말 날씨가 좋을 때도 있었다. 비와 눈, 햇살과 안개는 과학적인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연히'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당시의 미래는 이미 망친 것도, 금빛으로 빛나는 것도 아니었다. ……미래에는 늘 희망이 없다. 우리가 미래를 알 때는. (39~40쪽)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은 정확한 계획을 세우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수행하려 한다. 하지만 급하게 처리한 일이 작은 우연에 의해 망가지기 일쑤이고, 사람들은 점점 더 바빠지고 우울해진다. 피터 빅셀은 '나는 적어도 일기예보가 잘 맞지 않던 어린 시절을 보낸 게 기쁘다'라고 말한다. 그때는 오늘은 실패했지만 내일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과 기다림, 예측이 어긋나는 것에 대해 절망하지 않는 여유가 있었다. '온갖 위협과 전망에도 불구하고 내 미래를 나에게 남겨두므로' 사람들은 내일을 기다릴 수 있었다.

특별하지 않은 오늘에 대하여

의미 있는 일만 해야 한다면 인생은 삭막해진다. 일기장에 '오늘은 특별한 일이 없었음'이라고 적은 그 오늘도 상황에 따라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이었을 수도 있을 테니. (85쪽)

우리는 '내일' 뭔가를 이뤄내기 위해서 '오늘'을 희생한다. 굳은 의지와 도전 정신으로 부와 명성, 사회적 지위를 얻은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을 아까워한다. 시간을 더 아껴서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자신을 다그친다. 이런 우리에게 피터 빅셀은 그냥 흘려보내는, 특별하지 않은 오늘의 소중함에 대해 말한다. 어린 소녀가 고장 난 타자기 앞에 앉아 진지하게 허공에 써 내려가는 문장들, 그것이 종이에 쓰는 글보다 가치가 없느냐고 무겁게 물어온다. 무엇인가를 남기기 위해 이를 악물고 살아내는 것만이 의미 있는 삶인가 묻는 것이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지만 '문장들은 이미 쓰였다.' 소녀의 문장들은 '잠정적으로 바람에 써둔 글'이다. 언젠가 소녀의 삶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완성시켜줄 문장들이다. 그러니 '특별한 일 없었음'이라 적는 오늘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일 수 있다는 거다. 그렇다. 특별하지 않은 오늘이 언젠가 완성될 내 삶을 아름답게 장식해줄 한 문장이 될지 모른다.

시간의 비밀에 대하여

​미하엘 엔데의  『모모』에서는 회색 신사들이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아 간다.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남겨서 저축하기 위해 애를 쓴다. 타인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시간을 줄이고, 노동의 의미를 따지지 않고 적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하는 데만 몰두한다. 아이들은 탁아소에 맡겨지고, 사람들은 친구와 가족을 잃어버린다. 시간을 아끼고 있지만 사람들은 계속 더 바빠지고, 불행해진다. 작가는 직접 시간의 비밀을 알려준다.

시간을 재기 위해서 달력과 시계가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겁과 같을 수도 있고,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겪는가에 달려 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까.      <모모>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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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서둘러 걷던 발걸음을 조금 늦추어 고개를 들어보면, 파란 하늘이 보인다. 내 곁에서 걷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보인다. 길가의 풀꽃에 시선을 주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시간이 멈춘 듯 느껴진다. 다른 존재들에게 무심코 귀 기울이고, 온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그 순간의 가치는 결코 작지 않다.

나는 에밀을 존경했다. 그는 내 눈에 진정한 어른이었다. 알아야 할 것을 모두 아는 사람. 그리고 시간이 많은, 그것도 아주 많은 사람. 나는 예밀과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예를 들어 역에 있을 이유 없이, 그러니까 특별히 하는 일 없이, 감탄하며 무언가 구경하거나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서도 그저 거기서 서성이는 법을 배웠다. 그냥 여기 있기, 그냥 존재하기, 그냥 살아 있기. (24쪽)

피터 빅셀이 기차역에서 만난 지적 장애인 에밀은 특별할 것도 없고, 무엇을 예측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 , '오늘'을 온전히 살았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는 무엇인가를 조바심 내며 기다리지 않았고, 시간을 쪼개며 뭔가를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람들을 기다리고, 어딘가로 가는 기차를 기다렸다. 아마도 그의 시간은 하루 24시간, 1시간은 60분처럼 측정할  필요가 없는, 측정할 수도 없는 무한의 것이리라.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이 책은 피터 빅셀이 일생 동안 추구해왔던 삶이 무엇이었는가를 보여준다. 그가 원하는 삶은  과거의 추억에 있는 듯하다. 죽은 친구를 기다리던 선술집, 어디론가 도주하고 싶을 때마다 찾았던 기차역, 그가 황소를 길들였던 바흐 오프너 부부의 집. 그곳의 삶은 지금보다 불편하고 덜 위생적이고, 더 느리고 무질서했다. 하지만 기다림과 여유가 있었고, 삶을 유쾌하게 만들어 주는 우연과 발견이 존재했다. 예측 가능한 삶을 지향하며, 단 1초도 낭비하지 않으려는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삶의 풍경이다.  피터 빅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충만했던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을 만난다. 무심코 그들의 삶을 바라보다 어느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고, 따뜻해진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라는 시간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참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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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난 사람들은 이제 지치고 힘들 때마다 무심히 노트에 적어 보거나 작은 소리로 말해보게 될 거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다.'라고. 그리고 이 문장에 담긴 쓸쓸한 그리움과 시간의 비밀을 떠올리며 잠시 생각에 잠길거다. '후우~~' 하고 긴 숨을 내뱉으며.

나만의 관점으로 보고 느끼게 해주는 글쓰기

『서평 글쓰기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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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서 읽은 내용과 감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얼마 동안 글을 쓰다 보니 블로그에 들어와 읽어주는 사람이 생겼다.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내 글을  읽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매우 흥분되고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과연 내 글이 귀한 시간을 내어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가?'라는 생각에  큰 부담이 느껴진다. 오랜 기간 서평을 써왔고, 실력을 인정받은 유명한 블로거의 글을 보면 의기소침해진다. 나의 글을 서평이라 할 수 있을까? 그간 쓴 글들을 다시 살펴보니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이 주를 이룬다.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가 오로지 나의 즐거움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려는 하지 못 했다. 그동안 혼자 보는 독후감상문을 성실히 써온 셈이다. 이제는 좀  다른 사람이 읽을 만한 글을 쓰고 싶다.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읽은 책에 대해 믿을만한 정보를 줄 수 있는 괜찮은 글을 써보고 싶다. 막상 생각을 했지만 어떻게 시작해봐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중에  『서평 글쓰기 특강』 을 만났다.

   『서평 글쓰기 특강』은 학습공동체 숭례문 학당에서 여러 해 강의를 해온 김민영과 황선애가 함께 집필한 책이다. 운 좋게도 나는 두 저자와 인연이 있다. 물론 이건 순전히 나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다. 글쓰기에 대한 읽을거리를 찾아 여기저기 블로그를 방문하다 '글 쓰는 도넛'이라는 김민영의 블로그를 알게 됐다. 지금도 자주 방문하며 글을 챙겨 읽고 있다. 황선애는 작년 여름 집 근처 도서관에서 진행한 독서토론 프로그램의 강사였다. 당시 수박 겉핥기 식으로 다독에 매달리던 나는 독서토론 프로그램 참여하면서 깊이 읽고, 넓게 통찰하는 책 읽기를 경험했다. 블로그에 책을 읽고 감상을 올리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그녀와도 블로그 이웃이 되어  글을 찾아 읽고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직접 현장에서 읽기와 쓰기를 지도하는 강사이며, 그들 자신도 성실하게 읽고 쓰는 서평가이다. 이 책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서평을 쓰고 싶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이다.

   책은 모두 6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데, 1장에서는 서평 쓰기의 필요성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책을 읽어도 남는 게 없고, 표현이 안 되고, 정리가 안 되는 까닭은 독서 습관 때문이다. 무조건 많이 읽는 것만으로는 삶을 변화시킬 수 없다. 읽고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진지하게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저자는 읽은 것을 체화시키는 방법으로  '출력 독서법'을 제안한다. '출력 독서법'은 곧 서평 쓰기이다. 2장에서는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서평의 특징을 독후감과 비교하여 다룬다. 깔끔한 도표와 그래프를 통해 중요한 내용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3장과 4장은 서평 쓰기의 실제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관점을 갖고 객관적 평가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다룬다. 서평 쓰기 로드맵은 실제로 서평 쓰기가 어떤 절차로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준다. 5장은 퇴고의 중요성과 퇴고의 방법이다. 글쓰기에서 퇴고가 가장 중요한 과정임은 다들 잘 알고 있지만, 시간을 두고 글을 다듬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하지만 저자는 저명한 작가들도 퇴고에 퇴고를 거듭함을 예로 들면서 퇴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마지막 6장에는 '서평을 바라보는 여섯 가지 시선'이라는 제목 아래 실제로 서평 쓰기를 실천하고 있는 여섯 사람의 인터뷰 글이 실렸다. 인문학자 김경집 교수를 비롯해 작가이자 북칼럼니스트인 최보기,  인터넷 서평가  현호섭, 김태영 등이다. '개츠비의 독서일기2.0', '책과 함께 하는 개똥철학' 블로그나 닉네임 '준솔파파' 는 꽤나 낯익다. 블로그를 통해 자주 접했던 이름이다. 책이 좋아 읽었고, 읽은 것을 나누고 싶어 서평을 썼다는 사람들.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서평 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실천해볼 가치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서평은 독자와의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글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독후감 보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글이어야 한다.독후감 쓰기가 책을 수동적으로 읽고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서평 쓰기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책을 비판적으로 읽는 능동적인 과정이다. 저자는 책에서 단지 서평 쓰기의 기술을 알려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좋은 서평을 써나가려고 노력하는 과정(발췌- 메모- 개요 - 초고- 퇴고)을 통해 자신만의 관점을 세워나가게 된다는 걸 강조한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발췌하고 메모하고, 글로 쓰다보면 비평하는 삶의 자세를 갖게 된다. 자신의 생각을 갖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독서가 지적 허영이나 과시욕을 채우는데 그치지 않고, 한 사람의 삶을 바꿔낼 수 있게 된다. 『서평 글쓰기 특강』 은 독후감 쓰기에서 서평 쓰기로 나아가는 길을 여러 단계로 나누어 친절하게 안내한다. 서평 쓰기의 전중후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게 구성했으며, 실제 서평 쓰기의 사례를 적절히 담아내어 이해를 돕는다. 주관적인 감상을 넘어 독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 책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 쓰는 글이 아닌 나의 관점이 살아 있는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매우 유용한 책이다. 저자는 어떤 일을 많이 하면 어느 순간 질적으로 도약한다는  '양질전환의 법칙'을  말하면서, 일단 꾸준히 많이 써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이 시간내어 읽을만한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서평 글쓰기 특강』을 길잡이 삼아 부지런히 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