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몇 해 전 텔레비전 개그프로에 등장해서 유행했던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수한 경쟁을 한다. 이기기 위한 과정이 고되지만 이긴 후 얻는 물질적, 심리적 보상은 꽤 크다. 남들에게 기억되는 1등이 되기 위해 입시, 취직, 승진 등 끊임없이 경쟁한다. 하다못해 취미로 하는 운동경기에서까지 이기기 위해 애를 쓴다. 무한경쟁체제 속에서 남을 이기고 살아남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을 나아지게 할까?

 

 

  경쟁이란 무엇인가.

  경쟁은 상황에 의해 승리와 패배로 나뉘는 구조적 경쟁과 1등이 되고 싶다는 개인의 내적 욕망과 관련된 의도적 경쟁 두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구조적 경쟁은 상대의 실패가 곧 나의 성공이라는 상호 배타적인 목표달성을 특징으로 한다. 경쟁을 옹호하는 이들은 경쟁은 인간본성의 발현이고, 최선을 다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며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고 자신감을 가지게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를 정면에서 반박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경쟁의 폐단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경쟁은 불안감을 조장하며 이는 작업수행력을 떨어뜨린다. 사람들은 생각만큼 경쟁상황을 즐기지 않을 뿐더러 피하고 싶어 한다. 둘째, 경쟁은 외적 동기와 마찬가지로 과제 수행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게 만들고 상을 받는 방식으로 안주하게 해 창의성과 탐구정신을 저해한다. 셋째, 사람들은 경쟁의 결과를 운이나 각자의 이미 정해진 능력 탓으로 돌리게 되고 그 결과 책임감과 자신감이 감소한다. 넷째, 학습상황에서 1등이 누구일지 예상된다면 승리가 예상되는 아이는 더 노력할 필요성을, 패배가 예상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미리 포기한 채 수업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된다. 다섯째, 경쟁은 인간관계를 손상시킨다. 경쟁심이 강한 운동선수들은 동정심, 이타심 등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고, 학교에서 경쟁에 직면한 아이들은 친구들을 질투하거나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경쟁은 없어져야 하는가.

  경쟁이라는 상황이 우리 생활 속에 뿌리 깊게 자리한 때문인지 책을 읽으며 내가 겪은 상황들-너무 당연해서 경쟁이라 인지조차 못했던-이 무수히 떠올랐고 많은 부분이 공감되었다. 동료들과 가끔 하는 친목배구, 작은 상품이 걸린다. 화기애애하게 시작한 배구는 한쪽의 실점이 늘면서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서로 격려하고 다독이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실점을 막기 위해 시시때때로 못하는 이들의 포지션을 바꾸고 질책하기도 한다. 실점을 하는 이들은 위축되고 경기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상실한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즐겁지 않다. 이것은 친목을 깨뜨리는 친목배구라는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 지독한 경쟁사회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는 없을까.

  저자는 의도적 경쟁은 스스로 자신의 경쟁심을 깨닫고 충동을 억제해 나가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구조적 경쟁. 경쟁 체제 속에서 나 홀로 경쟁을 거부할 수는 없다. 저자는 사회 구조의 변화를 위해 함께 경쟁에의 참여를 거부하자고 한다. 사회구조의 변화를 막기 위해 권력자들이 사용하는 방법들-사회제도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도록 모든 문제 해결은 개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도록 한다. 각종 매체를 이용해 성공을 강조하며 개인의 행복에만 관심을 갖도록 유도한다. 개인의 이익을 지키려면 새로운 도전은 물론이고 문제 상황에 대한 비판적으로 사고도 자제하게 된다. 설사 사회 구조적 모순을 깨달았더라도 개인의 무력함을 내세워 스스로 체념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사회 구조에 순응한 대가로 권력과 이익을 얻는 이들을 보여준다-을 기억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것을 당부한다.

  지독한 경쟁의 원인으로 사회 구조적 모순을 지적한 저자의 생각은 많은 부분 공감이 되면서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후련하기까지 했다. 물론 실현가능성에 대한 의문은 들지만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모이고 모이면 모순으로 가득 찬 우리 사회도 조금씩 변화해 갈 수 있지 않을까!

 

 

  몇 달 전 신문에서 20년 가까이 핀란드 교육개혁을 추진한 국가교육청장 에르키 아호와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핀란드 교육의 핵심 철학인 배움과 돌봄을 실천하기 위해 한 여러 가지 일 중 하나가 바로 ‘시험 없는 학교’였다. 그는 말했다. ‘교사들은 스스로 교육적인 일에 충실할 수 있는 역량과 열정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일제고사는 필요가 없다. 시험결과에 따라 임금을 차등 지급하는 성과급제도 우리에게는 없다. 우리는 교사를 믿는다.’ 교육주체를 무한경쟁 체제로 내몰려 애쓰는 우리의 교육현실과 비교되며 핀란드 교육이 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지 공감이 되었다. 꼴찌도 행복한 교실이라는 책을 통해 접한 독일의 교실도 비경쟁교육, 뛰어난 아이보다 부족한 아이를 지원하는 교육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경쟁을 버리고 아이들이 학업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굳이 경쟁에 뛰어들지 않아도 되도록 사회복지체제가 갖추어져 있다는 것. 사회구조의 개선과 비경쟁은 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침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경쟁의 대안으로 협력을 제안한다. 학습, 직장생활 등 사회 여러 측면에서 구조적 협력은 경쟁할 때보다 더 나은 성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연구 결과 협력학습에 참여한 아이들은 학습에 대한 흥미도 높아졌다고 한다. 공동의 목표를 향해 동료와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나아가는 것을 얼마나 이상적인가! 경쟁하지 않고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고, 서로 협력한다면 개인은 물론 사회의 발전도 이끌어낼 수 있다. 스트레스와 불안 없이. 모든 경쟁적 요소를 배제하는 것은 어렵지만, 경쟁을 줄이고 소통의 기회를 확대하며 협력학습을 적절히 적용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생활 속에서 모든 경쟁적 요소를 배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 개인의 생각이기에 경쟁의 모든 긍정적인 면을 부정하는 극단적인 면도 분명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지나치게 작은 부분까지도 경쟁 위주로 치닫고 있고 이것이 사람들의 정서적 측면에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에. 협력하는 게임도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고, 협력으로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