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든 기억이 사라지고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만 남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

어제 밤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부터 줄곧 드는 생각이다.

 

2012년의 시작, 사람들이 좀비가 되었다...

원인도 모른 채 좀비가 된 이들이 피를 흘리며 사람들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 좀비에 물려 거리에 널브러진 사람들,, 1년 전 원헌이 주선에게 하늘의 별을 주며 사랑을 고백하던 아파트 놀이터도 예외는 아니다.

 

정욱은 몇 달 째 형의 아파트에 갇힌 채 군인들이 배급해주는 식량에 의존해 살고 있다. 집 밖에는 죽음의 공포가 드리워있고 집 안에는 혼자 뿐, 세상과 단절되어 지독한 답답함과 외로움 속에 살고 있다. 우연히 앞 동에 사는 주선을 보게 되고 그 모습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며 그녀와 소통하고, 도와주려고 한다. 주선의 부모가 감염이 되어 딸을 보호하기 위해 떠나고 이웃들도 감염으로 하나 둘 쓰러지고 결국 아파트에는 정욱과 주선 둘만 남게 된다. 오래 전부터 주선을 짝사랑해 오던 정욱, 주선과 사랑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는다. 주선의 얼굴에 자꾸만 늘어가는 반점들을 보며 새드 엔딩을 예감하면서도 내가 정욱이라도 된 양 자꾸 희망을 갖고 싶은 건 왜일까..

 

정욱은 처음에 좀비를 이것들 이라 부르며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아무런 생각도 기억도 없는 좀비. 하지만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집으로 돌아온 형을 보며 좀비가 된 후에 가장 소중한 것 한 가지에 대한 기억만 남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딸 주선에게 병을 감염시키지 않으려는 마지막 기억을 품은 채 바다로 들어가는 주선의 부모, 동생 품에서 숨을 거둔 정욱의 형, 엄마 손을 잡기 위해 항상 오른 손을 올리고 있는 아이, 주선에게 채 못한 마지막 말을 하기 위해 주선을 찾아가려는 원헌... 장면 장면마다 마음을 찡하게 한다.

 

주선의 모든 순간은 정욱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욱에게 주선은 모든 순간이 되었다. 서로 다른 기억을 품고 떠났지만, 주선도 정욱도 다른 모든 이들도 가장 소중한 것을 기억하며 그 기억을 반복하며 어쩌면 가장 행복한 상태인 채 떠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