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학번인 우리 언니는 대학에 가서 '광주학살'의 사진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광주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전혀 듣지 못했기 때문이겠다.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 장군은 대통령이 되어 정보를 독점했고, 대통령직에서 퇴임하고 노태우 대통령에게 정권을 넘겼을 때까지도 '평화적'으로 권력을 이양한 첫 번째 사례로 칭송이 자자했다. 그리고 마침 88올림픽이 열리던 해였으니, 광주의 기억은 더구나 널리 알려질 수 없었다.

그러다가 1989년, 마침내 5 · 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관한 청문회가 열리긴 했으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만 기계적으로 반복된 끝에 진실한 해명이나 사과 없이 두루뭉술하게 끝났다. 그때에서야 많은 국민들이 광주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 수 있었고, 명예를 회복했다는 것 정도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에 딱 한 번 참석했을 뿐 이후 3년 연속으로 5 · 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 불참할 정도이니, 30년 만에 이미 광주 민주화 운동의 의의는 퇴색해버린 것이다.

 

이런 저간의 사정으로 우리는 이제 1980년 봄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날짜별로 알 수 있지만, 민주화와 경제 발전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대한민국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 그리 실감 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진실을 제대로 알고자 하고 그들의 억울함이 없게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한창훈 작가의 <꽃의 나라> (2011, 한창훈 지음, 문학동네 펴냄)를 선택했다. 그 슬픈 이야기와 '꽃'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나'와 영기, 인호는 항구에 있는 고향을 벗어나 광주에 있는 고등학교로 유학을 온다. 공부와 폭력과 여자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남자고등학생답게 생활하던 이들은, 고등학교 2학년 때 광주 민주화 운동에 정면으로 맞닥뜨린다.

연이은 시위 때문에 최루탄 냄새가 맵긴 했지만 별다르게 큰 일은 없었던 어느 날, 정글복을 입은 군인들이 주둔하고, 아무런 이유 없이 시민들을 때리기 시작한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니 참다 못한 시민들의 반격이 이어지고, 마침내 군인들은 총과 장갑차를 동원해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탄압이 펼쳐진다. 사관학교를 나와 장교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던 영기는 군인에게 총을 맞아 싸늘한 주검이 되었고, 군인들에게 잡혀서 고문과 같은 며칠을 보낸 후 겨우 탈출한 인호는 나라를 떠나기로 한다.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고 당하는 폭력만큼 후유증이 오래 가는 것도 없겠다. 작가는 생물 선생님의 선생님 말씀을 빌려 '에스키모의 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에스키모들이 썰매에 개를 묶을 때 젊고 튼튼한 개들 사이에 늙고 병든 개 한 마리를 끼워넣는다고 한다.

그리고 채찍질을 하는데 그 늙고 병든 개만 집중적으로 때린다는 거다.

그 개는 끊임없이 비명을 지르게 되지. 그 개의 처절한 비명이 다른 개들에게 공포심을 준다는 거야. 그래서 찍소리 못 하고 썰매를 끌게 되는 거야.

에스키모들은 어느 때 어떤 공포심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는 거지. (203~204쪽)

 

'공포와 그것을 만들어내는 혼란'이 필요했던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광주에서 수많은 목숨들을 희생시켜 정권을 잡았던 것이다. 그 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과 트라우마는 지금도 온전하게 치유되지 못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많은 아픔을 자아낼 것이다.

'야만과 폭력이 판치는 세앙, 참혹한 역사에 흰 꽃을 바쳐 위로하는 소설'을 통해 광주의 봄을 체험하니, '먹이나 환경과는 상관없이 같은 종족에게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주는' 사람에 속해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슬픈 날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