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동그라미에 점이 하나 찍혀 있다. 밝게 타오르는 촛불의 심지일까, 마음에 찍은 방점일까. 요즘 책들에 비해 아주 심심하고 고졸한 이 책의 표지는, 그래서 오히려 눈에 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의 제목인 '여행, 혹은 여행처럼'의 맨 마지막 미음(ㅁ)은 네모나게 닫히지 않고 표지 중앙의 점과 같은 모양으로 찍혀서 열려 있다. 무엇이든 들어오라는 식으로 말이다.

 

'인생이 여행에게 배워야 할 것들'이라는 부제를 단 <여행, 혹은 여행처럼> (2011, 정혜윤 지음, 난다 펴냄)은 그동안 여러 권의 책으로 만났던 정혜윤 PD이다. 라디오 PD로 일하면서 만났던 이들의 인터뷰 모음집, 자신의 독서와 여행을 담은 에세이, 고전을 삶에 녹여낸 고전 에세이까지 4권이 나왔고, 이번에 낸 것이 여행과 인생을 조합한 에세이이다.

인생을 여행으로 비유하는 것은 참 오래된, 진부한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여행을 가기 전에 많은 준비를 해서 계획을 짠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것들은 죄다 빛나고,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활짝 열어 교류를 한다. 그러나 여행이 끝나면 다시 일상은 빛을 잃는다. 여행을 많이 한 사람들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일도 벌어지기 때문에, '오래된 여행자'로 불리는 이지상 작가는 '지금 이 곳에서 오늘을 충만하게 사는 법'이라는 부제를 단 <언제나 여행처럼>이라는 책과 <낯선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다면>이라는 책을 낸 것이리라.

 

정혜윤 PD가 <여행, 혹은 여행처럼>에는 저자가 실제로 한 외국 여행 이야기도 있고, 다른 사람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한 인생 여행 이야기도 있고, 책의 내용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는 내용도 있어서, 여행 인생 독서 에세이의 종합편이라고 해도 되겠다. 친구를 찾아 떠나며 가난한 손님으로 살기, 상상력으로 두 번째 달 만나기, 쓸데없는 것은 없음을 깨닫기, 무엇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기, 기다리는 노력을 기울이기, 두 번 다시 없을 단 한 번의 기회임을 알아차리기, 나만의 지도를 그리기, 현재에 충실하기 등의 항목들은 저마다의 생명력을 가지고 사물과 인생에서 피어난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가끔 이런 절박함을 갖는다. 내가 언제 또 이 도시를 찾을 것인가? 그 여행은 단 한 번 주어진 기회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내가 언제 또 이 모습으로 이 삶을 살아볼 것인가? 그 질문 속에서 우리 인생은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다. (192쪽)

 

'가장 득이 되는 자들'이 아니라 '가장 용기 있는 자들과 가장 말이 잘 통하는 자들과 가장 정이 많은 자들과 가장 고통받는 자들'과 친구 되는 인생, '기쁨에도 슬픔에도 고통에도 무감각'한 것이 아니라 '설레고 탄성을 지르는' 인생, '수많은 것들을 오로지 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목표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더 알고 더 느끼는 데서 단순한 기쁨을 느끼는' 인생으로 저자는 우리를 인도한다. 인생에서 특별한 이벤트로만 괴리되는 여행이 아니라, 인생 자체를 여행으로 만들으라고 말한다. 자신의 인생을 활기찬 여행, 참 독특한 여행으로 만들어간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기분이다. 이제부터는 '관광'이 아니라 '여행'으로 만들어가야겠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