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순식간에, 예고 없이 닥쳐오기 일쑤이다. 전에 유명한 사람들의 죽음의 순간과 유언을 모은 <유언> (2006, 한스 할터 지음, 말글빛냄 펴냄)을 읽으면서, 내게 이렇게 유언을 남길 만한 시간의 여유가 있기를 바란 기억이 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살 수 있을 것처럼, 죽음을 떠올리지 않고 살아간다. 
그런데 만약 자신이 죽는 날을 되풀이해서 살게 된다면? 몇 시 몇 분에 어떻게 죽게 되는지 아는데도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그런 당황스러운 일이 고등학교 4학년생이자 '알파 걸' 그룹의 한 명인 사만사 킹스턴에게 일어났고, <일곱번째 내가 죽던 날> (2011, 로렌 올리버 지음, 북폴리오 펴냄)의 배경이다.

고등학교 4학년이면 학생들 중에서는 최고참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세력을 누릴 수 있다. 특히 학교에서 가장 잘나가는 그룹에 속해 있다면 더욱 그렇다. 대장 격인 린지와 앨리, 엘로디, 샘(사만사의 애칭)은 학교 생활뿐 아니라 하교 후에도 함께 지내며 우정을 돈독히 한다.
문제의 '내가 죽던 날'은 켄트의 집에서 파티가 열리던 날이었다. 파티에 갔다가 귀가하던 중 도로에서 튀어나온 사람을 치면서 차도 도로 아래로 떨어져버린 것. 
그런데 새벽에 울리는 알람 소리에 잠이 깬다. 깨고 보니 다음 날이 아니라 파티가 열리는 바로 그 날이다. 어제로 돌아온 것이다. 분명 죽었는데 어떻게 된 일이지? 이야기의 화자인 샘에게만 반복해서 일어나는 이 불가사의한 일 때문에 이 하루는 샘에게 아주 중요한 날이 된다. 이 하루를 무려 여섯 번 더 반복하면서 샘은 자신의 삶을 정리할 시간, 그간 미뤄두었던 좋은 일을 할 시간, 추억과 화해와 용서의 시간으로 만든다. 

 <다시 한 번 리플레이> (2009, 켄 그림우드 지음, 노블마인 펴냄)라는 책이 죽음의 순간 다시 자신의 과거로 돌아가는 구성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하루가 아니라 몇십 년 전으로, 기억을 모두 유지한 채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돌아갈 때마다 남은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주인공은 돌아갈 때마다 주어지는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에 돈으로도, 영성으로도, 기술로도 성공하는 삶을 살아볼 수 있었다. 전의 삶들은 이번 삶을 나아지게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
그러나 <일곱번째 내가 죽던 날>의 샘에게는 고작 하루가 주어졌을 뿐이다. 파티, 술, 마약, 섹스, 담배, 유혹 등으로 얼룩진 미국 고등학생의 삶에 혀가 내둘러지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점점 깨달아가는 샘의 모습이 흥미롭다. 샘을 둘러싼 친구들도 저마다 전형적인 인물상을 반영하고 있어서 재미있다.

나는 이제 웰빙과 더불어 웰다잉을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되었으니, 더 배려하고 더 사랑하고 더 화해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샘은 다시 알람 소리를 들을 수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