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을 즐겨쓰면서 모더니즘을 발전적으로 수용했고, 토속적이고 민속적인 특이한 경지를

개척하는데 성공한 시인으로 아주 잘 생겼음 정도가 백석에 대해 내가 기억하는 바이다.

사춘기 시절 윤동주와 백석의 흑백사진을 보며 옛날 시인들은 다들 참 바르게 잘 생겼다며

감탄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윤동주의 시는 지금도 제법 읊어대는데, 백석의 시는 낯설다.

교과서에 눈, 나타샤, 당나귀 뭐 이런 단어들이 들어간 시가 있었던 것 같은데 솔직히 기억도

잘 나지 않고 어려웠던 기억만 어렴풋이 난다. 아마도 시인이 해방 후 고향 평안도 정주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의 시가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낯설지도 모르겠다.

월북문인이기 때문에 그의 시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알려지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음을

안타깝게 여긴 미국인이 그의 시를 알리고자 영어로 번역했다는 점도 이 책의 놀라운 점이자

내가 읽는데 엄청난 시간이 걸린 이유이기도 하다. ^^;

그의 시를 한글로 읽어도 이해가 안 되는 구절이 많은데 영어로 읽으려니 정말 어려웠다.

저자는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1995년부터 한국에서 공부하면서

백석의 시를 영어, 한글로 번역하려고 심혈을 기울인 것 같긴 한데 역시 한글을 영어로

표현하는데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한국 사람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평안도 지방의 의성어와

사투리의 그 느낌과 딱 들어맞는 단어를 찾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사람이 읽기도 힘든데 그의 정서를 느낌을 알리고자 영어로 번역한 저자가 감사하면서도

아쉬운 면이 있었다. '여승'이라는 시에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는 구절이 있어 가지취가 뭔지

찾아보니 취나물의 평안도 사투리란다. '고사'라는 시에 조앙님이라는 말이 나와서

조상님의 오타인가 했는데 각주에 부엌 신의 이름이라고 되어 있어 검색해보니 조앙이 부엌의

방언인 것이다. 남쪽에서는 잘 쓰지 않는 지명과 사투리가 많아서 궁금한 단어들이 수두룩하였다.

그러던 중 나의 기억의 한 구석에 있던 단어들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였음을

발견하고 기쁘기면서 여전히 시인의 감성을 정말 범인과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그리고 '흰 바람벽이 있어' 중 이 구절이 맘에 와닿았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 하는 듯이 나를 울력 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 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