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과 함께 읽는 아시아 문예 계간지답게 언제나처럼 모든 글은 영문 번역이 되어 있다. 이번 호는 아시아 이야기 유산 특집이다. 고은 시인은 <아시아 서사 시대를 위하여>에세이에서 자연에는 자연언어가 있듯이 우리에게는 인간의 언어가 있으며 언어를 통해 하는 이야기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말한다. 기록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있어왔던 아시아의 옛 이야기가 서구적 근대서사 구조의 ‘권력’에 길들여져 방치되고 있다고 한다. 서구 문화로 인해 아시아 전역의 오랜 가치가 폐기되거나 망각될 위기가 우리의 일상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아시아에는 어떤 서사가 있다는 것인가? 내가 아는 건 역사소설 삼국지 정도인데...... 나는 언제나처럼 이 계간지를 통해 언어적 장벽으로 쉽게 접할 수 없는 나라의 글을 접할 수 있다는 설렘을 갖고 책을 펼쳤다. 그리고 이번 호에 실린 '아시아의 이야기 유산'에 관한 글들이 나에게 어떤 시각의 변화를 줄 것인지 기대된다.

 

에세이, 특별기고, 소설, 시, 여러 나라의 서사에 관한 글이 소개되었다.

 

키르기스스탄에 구전되어 오는 <마나스>이야기를 엘미라 쾨춤쿨로바 작가가 글로 옮긴 것의 일부가 소개되었다. 영웅으로 추대 받는 마나스 이야기는 키르기스 구전 전통을 보여주는 산물이다. <마나스>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에 대한 풀이와 의의를 덧붙여 독자가 한결 다가가기 쉽게 해준다. 또한 서사시 음송자에 관한 또 다른 작가가 쓴 글은 <마나스>가 키르기스에서 얼만큼 중요한 유산인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이어서 소개되는 타이의 <두꺼비 왕 프야 칸카악>과 베트남의 <한 왕조의 비애가 서린 꼬로아 성>가 전하는 이야기를 통해 국가의 문화, 정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4인의 작가의 시와 5인의 소설가가 소개하는 작품들은 개인적인 구미에 딱 맞는 것이었다. 소설 중에는 북한 작가의 작품<답>도 있고 시리아의 소설가 하나 미나의 <부대자루 위에서> 도 있다. 이처럼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글을 접할 수 있는 것은 아시아 문예 계간지를 읽어 나가는 또 하나의 즐거움일 것이다. 한국 작가들의 <가름의 메스티치아><소품><피팅모델>은 하나같이 모두 흥미롭다.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의 사고를 따라가면서 느끼는 반전의 묘미!

 

특별기고<민담적 복수와 신화적 화해>에서는 ‘민담은 왜 복수라는 사나운 감정을 숨기지 않을까?'하는 의문으로 시작한다. 책에서는 민담의 간접화된 복수는 자아가 심리적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아시아 이야기 유산을 정리하고 비교 연구함으로써 보편성과 특수성 모색하여 옛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새롭게 이어가자고 말한다.

 

오디세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익숙해서인지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등의 판타지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이렇게 서구적 서사 구조에 집중한 나머지 아시아의 서사에 대한 존재자체도 모르고 있지는 않는가. 김남일 작가가 쓴 글처럼 아시아 각국의 귀중한 스토리 유산을 이해하고 연구와 교류를 통해 아시아를 이해하는 통로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문예 계간지를 통해 들춰 내어지지 않은 아시아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에게 이번 호는 아시아의 서사에 대해, 구전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고은 시인의 '타율적 단일성을 타파하고 아시아 전역의 오랜 가치에 귀 기울이고 새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하자'는 글귀처럼 아시아의 것이 낡은 것이 아니라 오래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