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 박춘명

글을 쓰고 어딘가에 등록하여 남에게 보일 때마다 가장 두려운 것은 글재주의 여부나 문장의 호소력보다도 먼저 언어에 오자가 있지 않을까, 맞춤법이 그르지 않을까에 대한 것이다. 글이 별로요, 하면 내 개성이요, 하고 짐짓 뻗댈 수라도 있겠는데 글자가 틀렸소, 하면 허세가 다 들통 나 무안함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서둘러 고치기에 바쁘다. 그래서 요새는 한글 프로그램의 맞춤법 교정을 이용해서 슬쩍 고쳐놓고 올리곤 하지만, 어째 컨닝 해서 오답을 고친 다음 시험지 제출 하는 기분이 들어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일인데도 부끄럽다. 그래 가면서 조금 조금씩 더 배우자, 하고 마음을 다잡더라도 서른이 넘어서도 한글을 다 아느냐 하는 것에 자신이 없으니 차마 타인의 언어 오류를 나서서 지적할 수가 없다.

예전에는 학교 들어가기 전에 글자를 깨치면 용하다 했는데 최근엔 대여섯 살에도 글을 모르면 흉이라 한다. 그렇게 일치감치 글을 배워도 정작 학교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그들만의 새로운 언어를 자기네 공동체를 통해, 통신을 통해 새로이 습득한다. 처음엔 치기 어린 장난 같았던 것이 습관이 되면서 옳고 그름의 여부도 무분별 해지고 결국 그렇게 바뀐 언어가 서서히 일상이 된다. 이렇게 변질 되어 가는 증상이 갈수록 심각 하다고 우려를 표시하는 언어학자도 있고, 세대가 바뀌면 언어도 자연히 바뀌기 마련 이라고 어쩌면 안이 하게도 보일 만큼 낙관하는 이도 있다. 사용하는 당사자인 젊은 세대에서조차 서로의 언어를 배격하고 주장 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지기도 한다. 여기에 외래어와 번역 어투까지 난입해서 판세를 더 복잡하게 하니, 자기 말이 맞다 하는 사람조차 허점 없는 완벽한 보안을 유지 하기가 쉽지 않다.

개인적으론 신세대들의 언어 줄임, 파괴, 변형 쓰임에 대해 큰 거부감이나 우려를 갖진 않는 편이다. 딱히 관대하기 라서보다 언어의 유동성에 어느 정도 수긍하는 편이고, 무엇보다도 소통의 미학적인 관점에선 그 필요성에 공감하는 일면도 있다. 가령 ㅋㅋ나 ㅎㅎ 같은 말 줄임이나 이모티콘의 쓰임새를 생각할 때 그렇다. 소통이 부재한 현대 사회에서 감정이 차단된 텍스트로서만의 교류에 있어서는 뜻밖에 그러한 말 쓰임이 감정을 전달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모티콘의 있고 없고의 여부가 호감과 악감으로 양분 되는, 어감의 역할을 대신 하게 되는 것이다. 더 심하게 파괴된 언어를 남발한다 할지라도 그네들만의 소통 수단이 된다면 굳이 기준치의 잣대를 들이대며 고치려 하는 외압이 오히려 소통 단절을 야기 시키기도 하니, 존중으로 한발 물러서서 그들의 언어를 관찰 하는 것이 차라리 상호 발전적이 될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어떤 이는 절도 있는 표준어에 대한 고집으로, 어떤 이는 뜻도 알 수 없는 외래어의 나열로 자신의 지적 가치를 확인 받으려 하는 경향도 최근 언어 사용의 특기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자기표현 수단으로서, 소통의 수단으로서 쓰이는 언어에 대해선 그 누구도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가 없다. 타인의 언어를 지적하기에 앞서 자신의 언어도 이미 변형 되었거나 자기 가치적이 된 종류가 없다 할 수 없어 비판에 자유롭지가 못하다. 때문에 그릇된 언어를 고치고 순화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이는 오로지 자기 자신 밖에 없다. 스스로 늘 깨어 있고, 잘못된 언어를 반성하고, 배우고 고치고 습관을 다시 들이는 일은 온전히 자기 의지와 자기 몫이다. 개인 스스로의 언어 순화가 시작될 때 사회 전체의 언어 순화가 이루어짐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 않을까.

물론 잘못된 것을 보고 있기만 하라는 주장도 아니고 언어 선택은 자기 나름이라고 정당성을 부여 하고자 하는 의도도 아니다. 올바른 언어에 대한 개인의 관심이 무엇보다도 우선 되어야 하고, 그렇게 의지를 갖고 찾아낸 언어를 주변에 성실하게 알리고 권유하는 의무도 있어야 할 것이며, 타인이 알려주고 제시한 것에 대해 겸허하고 열린 마음으로 배우려 하는 상호 노력이 요구됨이 가장 바람직하고 이상적이라 할 것이다. 올바른 언어란 무엇인가. 사람마다 이해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가장 근본적으로는 한글에 대한, 근원에 대한 지식부터 요해야 되지 않을까. 왜, 어떻게 한글이 만들어졌고 우리가 세대를 거듭하며 어떻게 언어를 사용해 왔나를 바로 알면 자기 순화와 자기 절제가 자연히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소설 훈민정음은 그런 점에 있어 참으로 빛과 소금이 되는 책이다. 여태까지 훈민정음의 창제는 세종대왕 이라고만 아무 의구심 없이 믿고 있었던 그 짧은 지식에 일단 부끄러워지고, 올바른 소통과 나라 발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마음 쓴, 성삼문을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의 노고에 새삼 숙연 해진다. 그들이 없었으면 일본 못지않은 한자 종속국이 되어 더 어렵게 언어를 배웠을 텐데, 보다 쉬우면서도 흠잡을 데 없는 과학적인 언어로 만 세대를 편하고 이롭게 했으니 사실상 그들에게 빚을 진거나 다름이 없다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그 빚을 최소한이나마 갚기 위해 북한은 외세에 맞서 의지를 갖고 우리말을 지키려 하는 것에 반해 남쪽의 우리들은 죄책감은커녕 그네들의 말을 촌스럽다 매도 하거나 심지어 반공 의식이 강했던 시절엔 우리말을 쓰자는 제안이 사상을 의심 받아 문초의 빌미가 된 적도 있으니, 어느 쪽이 바르다 할지 남쪽에 적을 두고 있는 입장으로서 말하기가 매우 민망 해진다.

소통의 수단으로서 언어의 변형도 좋겠지만, 그 변형이 좀 더 원형의 우리말에 가까워지면 좋겠다. 새로 만들어지는 말보다, 버려졌던 말을 되찾아 사용 하는 것이 훨씬 세련되었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내 언어의 습관과 타인의 언어의 습관이 조금이라도 더 일체  될 수 있다면 보다 더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질 것이고, 그러한 소통으로 마음의 문이 열려 동서남북 화합의 길을 모색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고 싶다. 우리만의 언어가 그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