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복 교수의 고고학 이야기
이선복| 뿌리와이파리| 2005.03.30 | 348p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의 유물이 지식인에게 호기심의 대상이 된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인류의 역사가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를 거쳐 철기 시대에 이르렀다는 주장이 서양에서 등장한 것은 근대 고고학이 탄생하기 2천년 전의 일이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유럽을 지배하던 기독교적 세계관 때문에 19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인류 역사와 도구의 진화 사이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근대 고고학의 탄생으로 종교적 도그마를 극복하고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설명이 가능하게 되었다. 따라서 어떤 학자는 고고학이야말로 인간 이성의 승리를 상징하는 마지막 근대 학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고대 중국의 지식인들 사이에도 당대 서양에서와 비슷한 생각이 퍼져 있었다. 춘추 전국 시대의 제자백가들은 서양보다 수 세기 전에 설파하고 있었다. 이천 수백여 년 전 중국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했다면, 우리 나라 삼국 시대나 고려 시대에도 이런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으리란 법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잘 알려졌듯 삼국 시대는 물론 고려 시대의 문헌으로 전해지는 것은 거의 없다. 고려 말까지 우리 선조들이 남긴 고대 유물에 대한 기록으로는, 이규보가 전라도 금마 현감으로 부임하며 그 지방의 고인돌에 대해 언급한 칠언 절구의 한 토막이 유일한 기록인 듯하다. 그렇지만 이 역시 그가 금마에 부임해 이 지방의 명승 고적을 탐방하며 쓴 시문 중에 남겨진 “내일은 큰 지석(支石)을 찾아가리라.”는 내용의 단 일곱 자에 불과할 뿐으로써, 도대체 조선 시대 이전에 지식인들이 고대의 유적과 유물을 어찌 생각했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고대 유물에 대한 우리 조상들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글은 세종 때 사람인 청파(靑破) 이육(李陸)의 문집 <청파극담>에 실려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돌도끼에 대한 설명과 하늘이 불효자를 다스린 사례로서 벼락맞아 죽은 아들 얘기가 실려 있다. 후자도 벼락이라는 자연 현상을 당시의 사회 지배 윤리와 연관시켜 설명한다는 점에서 당대의 자연관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얘기인데, 아무튼 돌도끼에 대한 그의 견해를 대충 요약하면 이렇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 돌이 되듯 벼락이 치면 칼이나 도끼와 같은 돌을 줍게 된다. 훌륭한 장인의 노숙한 솜씨가 아니면 만들기 어려운 모습으로서, 비록 천지의 조화가 오묘하다고는 하나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그 모양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나는 이러한 벼락도끼(雷斧)나 벼락칼(雷劍)이 만들어진 소이를 알지 못하는 바, 앞으로 여러 일에 두루 박식한 이[博物君子]가 이를 설명해 주기 바란다.”

이 글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15세기의 조선 지식인들 사이에 고대 유물에 대한 관심은 있었으나 도대체 그런 것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막막했던 듯하다. 그런데 그의 설명에서 흥미로운 점은 돌도끼나 돌칼을 벼락과 연관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럽에서도 19세기 초까지 고대 석기를 설명하며 흔히 벼락과 연관시키곤 했다. 예를 들어 영국 사람들은 석기를 가리켜 번개돌(lightening-stone)이나 천둥돌(thunder-stone)이라고 했다. 석기와 벼락을 연관시키는 것은 유럽에서도 근대 고고학 등장 이전에는 보편적인 설명이었다. 근대 이전에 고고학 자료에 대한 설명이 동서양에서 이렇게 서로 유사했던 것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해력이 어디서나 비슷했음을 말해 주는 듯하다.

벼락칼이나 벼락도끼가 세종 시대에만 발견된 것은 아니겠지만 조선 지식인들이 이들에 대해 논한 기록은 18세기가 되어야 나타난다. 이 중, 가장 이른 기록으로는 이익(李瀷)의 <성호사설>에 실린 벼락도끼에 대한 설명이다. 이익의 설명을 요약하면 대충 다음과 같다.

“벼락이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이 줍는 뇌부는 기가 굳어서 된 것이지 사람들이 만든 것은 아닌데, 그런 돌도끼를 보니 지금의 도끼와 비슷한 모양으로, 마치 유성이 떨어지면 돌이 되듯 본시 기로 이루어진 벼락이 다시 돌이 되어 도끼 모양으로 된 것으로서, 화기(火氣)인 벼락이 땅에 떨어지면 土氣(토기)가 응결한 돌이 발견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비록 실학자들의 설명이 당대의 자연관에 따른 완벽한 체계를 지닌 것이라 할지라도 사실은 아니다. 벼락도끼에 대한 그의 설명은 자연 현상 사이의 인과 관계에 대한 경험적 관찰과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증거의 제시를 요구하는 근대 고고학적 접근이 결여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설명은 우리 나라에서 예부터 인쇄술이나 측우기 등등의 높은 기술적 발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러한 발전이 궁극적으로 과학의 발달을 가져 오지 못했던가를 설명해 준다.

실학자들의 설명이 다분히 관념적 차원에 머무르고 있었다면, 조선 말의 추사 김정희는 근대적인 고고학에 가장 가까운 글을 남겼다. <신라 진흥왕릉고>는 그때까지 ‘조산(造山)’이라 불리던 경주의 신라왕릉들이 무덤임을 지적하며 구체적으로 진흥왕릉이 어디에 있는가를 역사 지리적 증거로 규명한 훌륭한 고고학 논문이다. 또 <석노시(石弩詩)>는 그가 북청에 귀양갔을 때, 부근의 청해토성에서 발견된 돌화살촉을 보고, 춘추 시대의 고사를 인용하며 이곳이 바로 고대 숙신(肅愼)의 땅일 것임을 시 형식으로 논구한 것이다. 이러한 추사의 활동을 생각할 때 만약 그의 학문이 꾸준히 맥을 이어 나갔다면, 19세기 말엽의 조선에서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고대 문화 유산을 연구하는 접근법과 관계되어 무언가 나름대로의 틀이 만들어질 여지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19세기의 조선이 처한 입장이 더욱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