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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 책 마수걸이

박범신의 40번째 장편소설. 이 작품은 가족의 이야기를 할 때 흔히 취할 수 있는 소설 문법에서 비켜나 있다. 화해가 아니라 가족을 버리고 끝내 '가출하는 아버지' 이야기이다.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자본의 폭력적인 구조가 그와 그의 가족 사이에서 근원적인 화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특정한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온 아버지1, 아버지2, 혹은 아버지10의 이야기다.(알라딘)

일종의 그림자, 유령 같은 존재가 바로 아버지였다. ---p.36

이 소설은 말 그대로 우리가 그동안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의식하여 그 사람의 인생을 땅 속에 묻고 살았던 '아버지'에 대하여, 그 아버지가 짊어진 삶의 무게에 대하여 경종을 울리는 소설이다.

P153 소금은 모든 맛을 다 갖고 있다네. 단맛 신맛 쓴맛 짠맛. 소금은 인생의 맛일세.

아버지라는 존재는 가정에 있어서 든든한 버팀목이자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사상이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한 우리 사회에서 유난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인생이라는 것이 단맛 신맛 쓴맛 짠맛 혹은 매운맛까지. 다양함이 존재하거늘 가정에서는 단맛의 모습과 웃음 '아버지는 괜찮다'라는 모습만을 보여야하고 그 뒤에서 홀로 내면적으로 그 외의 맛들을 혼자 곱씹으며 외로워지는 남자의 인생을 이 소설 안에서 보았다.

한 남자의 삶의 자립성은 점차 희미해지고 한 가정을 중심으로 재개편됨에 따른 내적 갈등.

나도 가끔은 가출을 하고싶다.....모든 것을 내던지고 떠나고 싶다...나의 진짜 인생을 찾아서..

p248 잉여 재산이 불어나면서 그는 차츰 그 모든 사랑의 관계를 잃었따.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그는 자식들을 소비의 괴물로 만들었을 뿐이었고 아내와의 사랑 역시 서로 빨대를 꽂아 빠는 기능적 관계로 변모됐다.

내가 짊어져야 하는 짐이 당연한것으로 바뀌어버린 세상.

그들의 힘듦에 대해서 한번도 당연하지않다!라고 나도 물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p34 시우에게, 아버지를 잃어버린 지난 10년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하고, 그래서 아버지와 조금씩 가까워진 시기었다. 그것은 함께 있을 때, 아버지가 따오는 과실만은 언제나 달게 받아먹었으면서 정작 아버지에 대해 아는 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나날이 환기시킨 시기와도 일치했다.

“아버지들 얘기야. 처자식이 딸리면 치사한 것도 견디고 필요에 따라 이념도 바꿔야지. 오늘의 아버지들, 예전에 비해 그 권세는 다 날아갔는데 그 의무는 하나도 덜어지지 않았거든. 어느 날 애비가 부당한 걸 견디지 못하고 직장을 박차고 나와 낚시질이나 하고 있어 봐. 이해하고 사랑할 자식들이 얼마나 있겠어? 강남권 초등학교에선 애들이 모여 앉아 제 애비가 죽으면 무엇 무엇을 물려받을지 셈하고 있다는 말도 들었어. 효도가 비즈니스가 된 세상이야. 그러니 어떤 애비가 배롱나무처럼 살 수 있겠느냐고.” ---p.218

박범신은 이런 사회가 자본주의아 잠식해버린 가치관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본주의에 잠식당한 너희들은 소비하는 괴물이 되었을 뿐.

가장 가까운 가족의 의미마저, 그 근본마저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고..

p223 흐른다는 점에서 그것은 유랑이겠지만, 제 자신을 버리고 욕망에 따라 떠도는 부랑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남자는 가족을 버리고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떠났다.

물론 자신이 6개월 남짓한 시간만 남아 있다는 췌장암 선고를 받지 않았다면 역시나 힘들었을 결정이었을것이다. 가족을 떠났지만 그것은 부랑은 아리었고 자신의 인생을 따라 흘러갔다.

이미 모든 걸 버려두고 떠나온 길이었다. 두렵지 않았고, 그래서 붙잡으려 발버둥치지도 않았다. 췌장암도 차츰 잊어버렸고 처자식도 잊었다. 가진 게 있으면 먹고, 쓸쓸할 때면 쓸쓸한 사람들 손을 잡았으며, 기분이 아늑해지면 구부리고 잠들었다. 진실로 유장한 시간의 강을 따라 자신이 가벼이 흐르고 있다고 그는 느꼈다. 그것은 자연으로서의 삶이었으며 자본주의적 체제의 정교하고 잔인한 프로그램에서 놓여난 삶이었다. 그런 삶을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으므로, 자신이 살아 있는지 죽은 다음의 새로운 세상을 살고 있는지도 때로는 애매모호했다. 자신이 하나의 ‘자연’이라는 사실을 길 위에서 하루가 다르게 알아차리는 과정이었다. ---p.224

성년을 맞는 시우의 생일, 그 눈바람 속에서 키 작은 남자 김승민의 트럭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니 트럭에 실린 소금 자루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는 어쩌면 지금도 열심히 회사나 다니면서 가족들의 소비 온도를 따라가느라 허겁지겁 살고 있을지 몰랐다. 그가 일상의 옆구리 생살을 찢고 전혀 다른 생으로 튕겨 나온 것은 전적으로 김승민의 트럭 짐칸에 실린 소금 자루들이 불러온 기억 때문이었다. 트럭 위에 실린 생경한 흰빛의 소금 자루들을 보았을 때, 봉인된 기억의 회로에서 그 찰나에 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떤 소금 자루들은 붕 떠오르고 어떤 소금 자루들은 마구 터지고 있다고 느꼈다. …… 그것은 아, 분명히 아버지의 비명 소리였다. ---p.319

선명우(시우아버지)는 시우의 생일 날 집으로 가던 도중 생일선물로 준비했던 카메라를 가져 오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언덕 아래로 왔던 길을 돌아간다.

그 도중 우연치 않게 김승우라는 사람의 사고에 얽히게 되었고 그 속에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겹치면서 그는 그 만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김승우의 가족들과 함께 정처없이 돌아다니면서 김승우라는 사람으로 대체되어 살게 된다.

그의 대학 졸업식이 있던 날이었다. 아버지는 졸업식엔 참석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소금밭 결정지에서 소금 더미에 코를 박고 쓰러져 죽은 것이었다. 그것은 아버지 인생의 마지막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와 아버지 관계의 마지막이기도 했다. 죽음으로 관계가 끝나는 건 아니었다. 관계의 끝은 죽음이 아니라 망각일 터였다. 아버지의 시신을 땅에 묻고 나서 망각은 가속도를 탔다. 열흘쯤 지나서 아버지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았고, 스무날쯤 지나고 나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생각나지 않았으며, 반년쯤 지나자 아예 염전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염부였다는 사실조차 지워지고 없었다. 아버지 얼굴을 본 적이 없어요, 라고 말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정도였다. 아버지에 대한 모든 기억은 그렇게 철저히 봉인되었다. ---pp.154∼155

선명우의 아버지는 염전에서 일하는 염부였다.

선명우만은 꼭 성공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일평생을 소금과 사투를 벌였던 그 남자.

그 남자는 아들의 졸업식 날에 가기 위해 한땡볕에서 일을 하다가 쓰러져 죽어버렸다.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일을 억척스럽게 하지만

결국 자신의 건강을 보지 못한 채 죽어버린 그 남자가 안타까운 아버지상을 보여준다.

p112 자존심이 맑은 미덕의 원천이라면 자기모멸은 악마의 시궁창에 피는 더러운 꽃이었다.

모든 아버지가 다 그래. 늙으면 무조건 버림받게 돼 있어. 과실을 따올 때 겨우 아버지, 아버지 하는 거라고. 둘러봐. 아버지가 번 돈으로 술 마시는 쟤네들, 쟤들 머릿속에 지금 늙어가는 아버지들이 들어 있겠어?” 그녀의 눈에서 그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p.83

예전의 삶이 부랑이었다면 그즈음의 삶은 유랑이었고, 자유였고, 자연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역시 참된 단맛이었다. 누가 인생에 대해 묻는다면 그는 말할 참이었다. “인생엔 두 개의 단맛이 있어. 하나의 단맛은 자본주의적 세계가 퍼뜨린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에서 빨대로 빠는 소비의 단맛이고, 다른 하나는 참된 자유를 얻어 몸과 영혼으로 느끼는 해방감의 단맛이야.” 그가 얻은 결론은 그랬다. 이가 썩어가기 마련인 단맛에서 새로운 생성을 얻어가는 단맛으로 그 자신의 인생을 극적으로 뒤바꾼 것이었다. ---pp.253∼254

우리가 곁에 두고 있는 아버지도

젊었을 적에는 첫사랑의 추억을 가졌던 사람이고

어렸을 적엔 자신만의 꿈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다.

지금 우리처럼 철없고 내 인생은 내마음대로 살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여행가고 싶으면 여행가고 놀고 싶기도 한 그런 평범한 사람. 한명의 개체.

하지만 지금 내가 그 자유를 누리는 대신에 내 아버지는 그 자유를 가정을 위해 희생한다는 명목하에 잃어버렸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아버지의 존재와 그가 잃어버린 그의 정체성.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가 겨우 돈을 벌어오는 통장이 되어버리고 그 통장에 빨대를 꽂고 그 돈을 빨아먹는 이가 된 우리들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