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섭이 방송에서 졸혼에 대해 이야기한 이후로 '졸혼'이란 단어를 알게 됐지만 제 주위에는 졸혼한 부부들을 이미 있었습니다. 딸의 대학진학을 위해 미국에 가있는 아내와 아들과 함께 한국에 있는 남편, 시골에서 자리 잡기 위해 먼저 시골에 와있는 아내와 아이들의 학교 졸업을 위해 도시에서 돈을 버는 남편... 그들 부부의 속사정까지 알 수 없어 그들이 정말 졸혼했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한 졸혼처럼 보입니다.

결혼을 할 때에는 서로의 행복을 위해서 결혼하지만 결혼 후에 아이를 키우고 늙은 부모님을 돌봐드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를 구속하고 서로의 역할을 강요합니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빠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기 바라며 아내로서, 남편으로서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커서 엄마, 아빠의 손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서로의 역할에 대해서 책임지기를 바라는데, 그 모습은 결혼을 처음할 때의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제가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삶을 구체적으로 알았다면, 제 신랑이 아빠로서, 남편으로서의 삶을 구체적으로 알았다면 우린 과연 결혼했을까요?


저는 아이를 넷 키우는 결혼 12년차 주부입니다. 등산을 하면서 만난 신랑과 저는 결혼 후에도 함께 등산을 다녔습니다. 아이가 생겨서 등산을 갈 수 없게 되어 등산 대신 캠핑을 다니며 온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겼습니다. 시골로 이사올 때도 가족이 흩어지기보다는 함께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제 일을 그만 두었습니다. 우리는 제법 의기투합이 잘 되는 가족이었지만 함께 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일하는 걸 즐기는 신랑은 일을 줄였기에 더 탄탄한 경력을 갖지 못 했고 저는 경력이 단절되었습니다. 외벌이라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못 하여 서로가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습니다. 아이가 독립하고 나서의 우리 모습은 상상이 가지 않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홀가분한 상태일 겁니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하며 지내게 될까요? 신혼 때처럼 함께 등산을 가거나 여행을 다니게 될까요? 우리도 졸혼을 하게 될까요?

<졸혼 시대-낡은 결혼을 졸업할 시간>은 저자 스기야마 유미코가 성공적으로 졸혼한 6쌍의 중년부부를 만나 그들의 결혼생활을 인터뷰한 내용이 실린 책입니다. 성공적인 졸혼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책이라 이 책을 읽으면 졸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졸혼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 두 사람이 서로의 라이프 스타일을 존중해주는 것으로 시작해서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하며 서로에게 곤란한 일이 생기면 도와줄 줄도 알아야 합니다.

헤쳐모여식 가족 어떤가요? 가족이라 해도 관심사가 다르고 선호하는 직업이 다르니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다가 언제든 모여야 할 때는 모두가 모이는 가족 말입니다. 가족 구성원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떠나있다가 가족모임날이라서, 누군가의 생일이라서, 혹은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해서 함께 모일 수 있다면 참 행복할 듯합니다. 헤쳐모여식 부부는 어떤가요? 부부라 해도 관심사가 다르니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다가 언제든 모여야할 때 모이는 부부 말입니다. 황혼기에 들어 서로 배려하지 못해 앙금이 쌓여 위태로운 부부보다는 서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서로 응원해주는 부부가 더 행복하지 않을까요?

<졸혼 시대> 책을 탁자 위에 무심코 올려뒀다가 아이들이 볼까 싶어서 얼른 치웠습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 졸혼과 이혼란 단어를 구별하지 못할지도 모르니까요. 졸혼이란 단어에도 움츠려드는 게 부모의 마음인데 이혼이란 단어는 얼마나 무거울까요? 결혼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혼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졸혼 시대>를 먼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결혼을 유지할 것인가? 이혼할 것인가 하는 이분법적인 해법에서 벗어난 절충안을 제시해줄 겁니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커서 결혼을 할 나이가 되면, 그 때 저는 아이들에게 <졸혼 시대>를 읽어보라고 권할 생각입니다. 결혼도 하지 않는 결혼 적령기에 졸혼은 너무 이르지 않냐고요? <졸혼 시대>는 결혼이 꼭 필요한 것인지, 결혼 후에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줄 책이라 생각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