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읽어본 <이솝 우화> 이후 ‘우화(인격화한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와 교훈의 뜻을 나타내는 이야기)’는 실로 오랜만에 읽는 것 같다. 류시화의 <인생 우화>는 폴란드 헤움 마을을 배경으로 전해 내려오는 우화를 뼈대로 류시화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45편의 <인생 우화>로 재탄생되었다. 몇 페이지 되지 않은 짧은 이야기들이 엮인 책이라서 요 며칠 동안 출퇴근길에 하나하나 참 재밌게 읽어나갔다.

 

 

책을 읽으면서도 처음에는 ‘헤움’이라는 곳이 상상 속의 마을로 끝인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책에서 소개한 헤움 마을의 탄생 비화가 꽤 독특하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를 세상에 고루 흩어져 살도록 하기 위한 신의 계획으로 천사들에게 이 임무를 맡겼는데, 어리석은 자들의 영혼을 자루에 담아 옮기던 천사의 실수로 자루가 찢어져 어리석은 자의 영혼이 산 아래 한 마을에 모두 떨어지게 된 것이다. 그곳이 폴란드의 ‘헤움’이었다. 그런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헤움을 검색하자 폴란드 루벨스키에 주에 있는 도시로 우크라이나와의 국경 근처에 있는 곳이 아닌가. <인생우화> 속 마을의 이름과 같은 지명의 도시가 실제로도 있다니 지역의 전설을 읽는 것처럼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교훈을 주는 이야기를 담은 우화집인 만큼 짧은 이야기 속에도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 다양하게 깃들어 있다. ‘나’라는 사람을 증명하기 위해 손목에 묶은 붉은 끈이 결국 ‘나’를 잃게 만들고, 새로운 곳을 꿈꾸며 길을 떠났지만 방향을 잘못 잡아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고는 세상 어디든 모두 똑같다는 진리(?)를 깨닫기도 한다. 정의를 사와서 뚜껑을 열었더니 썩은 생선이 가득하자 정의는 원래 부패한 것이라는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명언도 나온다.

 

 

이야기의 소재는 폴란드 출신의 지인에게서 얻었을지 모르지만 이 책은 확실히 류시화 작가에 의해 다시 써진 게 맞다 싶었던 부분도 있었다. “내 입장이 돼 봐” 이야기 속 ‘루덕 헉’이라는 이름이 그것이다. 낡고 헤진 옷을 연상시키는 이름 ‘루덕’(해지고 짖어진 곳을 여기저기 깁고 덧붙인 모양을 뜻하는 ‘누덕누덕’에서 가져온 듯)과 누구나 깜짝 놀랄 성 ‘헉’(몹시 놀라는 소리의 ‘헉’). 이런 발상이 무척 재밌고 작가의 재치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 속에서 불행을 달고 다니던 루덕 헉이 어떻게 다시 행복하게 되었는지 그 결말도 퍽 마음에 들었다.

 

 

45편이나 되는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점점 공통적인 어떤 깨달음 같은 것들을 몇 가지 얻게 된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몰랐던 어떤 것이라기보다 헤움 마을 사람들처럼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을 어떤 계기로 깨닫게 될 뿐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 지금 이곳보다 더 나은 저곳은 딱히 없다는 것, 회피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 남의 눈의 티끌은 보면서 제 눈의 대들보는 못 본다는 것 등 책에 실린 다양한 이야기에 깃든 그 의미는 읽은 이 각자가 찾아나갈 것이다. 부록에 실린 토막글들도 하나같이 콩트처럼 재밌다. 오랜만에 혼자 읽기에는 너무 아까운 책을 만났다. 남녀노소 누구나 재밌게 읽으며 교훈까지 얻을 수 있는 일거양득의 책이니 <인생 우화>를 통해 어리석은 영혼들이 모여 만든 가장 지혜로운 마을 헤움에 꼭 방문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