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읽어본 위인전 도서 세트에 빠지지 않던 인물, 바로 토마스 에디슨이 실제로는 어떤 인물인지 알게 된 것은 인터넷이 한창 발달된 후의 일이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에디슨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놀라운 발명가로 인류를 어둠의 공포에서 해방시켜 준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에디슨이 가진 수많은 특허권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의 발명이 완성되기까지 무수한 아이디어가 실험되고 실패를 거듭하면서 점차 개선되어 나간 마지막 집합체가 바로 발명이다. 이러한 생각을 에디슨 위인전을 읽을 때만하더라도 미처 하지 못했다. 그레이엄 무어가 쓴 팩션(faction) <밤의 마지막 날들>은 우리를 어둠에서 해방시켜준 전구의 특허권에 얽힌 에디슨과 조지 웨스팅하우스의 법정 다툼, 그리고 전기시스템에서 에디슨의 직류와 테슬라의 교류 사이에 과연 무엇이 더 편리하고 유용한 방식인지 양측의 대립이 등장한다. 이 싸움의 중심에 신참내기 변호사 폴 크라배스가 있다.

팩션 소설답게 이 책에서 소개되는 이야기 중 몇 가지 극적인 재미를 위해 가미된 인물이나 사건을 제외하면 굵직한 에피소드의 대부분은 실제 있었던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치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저자의 작가적 상상력이 더해져 완성된 <밤의 마지막 날들>은 놀라운 발명 뒤에 감춰져 있던, 혹은 우리가 미처 관심 갖지 못했던 발명의 과정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또한 전기자동차업체의 이름으로만 친숙했던 테슬라를 기이한 과학자이자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로 만나보았다. 평소 과학에는 관심도 없고, 학창시절에도 과학이 마치 암기과목과 같았던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전류 전쟁의 교류(AC), 직류(DC)가 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이 다툼이 왜 중요한지 쉽게 이해되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책에서는 이 소송에 뛰어든 변호사 폴 크라배스에게 차근차근 전류 시스템을 설명하는 것으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에디슨의 직류 방식이 가진 송전 손실에 따른 거리 문제를 극복한 테슬라의 교류 방식은 변압기를 통해 전압을 마음대로 조정하여 원거리 송전이 가능하다. 하지만 에디슨은 자신의 직류 방식을 뒤집는 교류 전력의 성공을 막기 위해 교류 전력의 위험성을 주장하며 급기야 사형 집행용 전기의자에 교류 방식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그 공포를 극대화시키기에 이른다. 에디슨의 이 같은 치졸한 방해공작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성공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의 인간성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책의 후반에 등장하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전화 발명 이후의 행보가 에디슨과는 큰 대조를 보이며, 결국 이 전쟁에서 패배를 자초한 인물은 그 누구도 아닌 에디슨 자신이었음을 알려준다.

폴 크라배스가 에디슨에 맞서 싸움을 하는 동안 그의 곁에는 애그니스 헌팅턴이 있다. 뉴욕에서 가장 촉망받는 젊은 오페라 가수인 그녀가 크라배스의 앞에 나타난 것은 그녀 자신이 과거 몸담았던 오페라단의 소유주와 겪고 있는 갈등 때문이었다. 폴은 현재 맡고 있는 소송에 집중하기 위해 그녀의 사건 의뢰는 거절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애그니스와 교류하며 소송에도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시대적 배경 상 두 사람의 무척 고전적인 연애 스타일이 지금의 시대와 다른 순수함이 느껴져 꽤 두껍고 심각한 이 책에서 폴과 애그니스의 에피소드들은 재미를 더해 주었다.

이런 소설이 아니었다면 과연 내가 매일 공기처럼 당연한 듯 사용하는 전기 시스템에 대해 이 정도로 많은 지식을 알 수 있었을까. 지식과 함께 소설적 재미까지 느낄 수 있었던 <밤의 마지막 날들>이었다. 끝으로 세 개의 커다란 챕터 속에 총 72개장이 등장하는데, 각 장의 시작에는 유명인의 명언이 등장한다. 각 장이 품고 있는 이야기와도 무관하지 않는 이 명언들 중에 퍽 마음에 드는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 참고자료와 책의 고유 명사들에 대한 개념 정리 리스트가 있어 팩션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