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대표 작가인 그의 ‘가가 형사 시리즈’로 처음 그의 팬이 되었다. 이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라면 장편이든 단편이든 덮어놓고 읽는 편인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꽤 부지런한 작가라서 신간 또는 재간이 한 해에도 몇 권씩 출간되곤 한다. 올해만 하더라도 나는 그의 저작 리스트를 보니 읽은 책보다 읽지 않은 책이 더 많고, 더러는 제목도 생소하니 작가보다 독자가 게으른 셈이다. 오랜만에 읽은 그의 <매스커레이드 나이트>는 지난 <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이브>에 이은 ‘호텔 코르테시아도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시리즈의 3편 격이었다. 앞서 두 권을 읽지 않았어도 이 책을 읽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가가 형사’로 시리즈 소설에 잔뼈가 굵은 작가답게 적당히 앞선 책에서 등장인물 간의 관계랄까 사건을 간단히 언급해 주는 친절도 잊지 않는다. 매년 호텔 코르테시아도쿄에서는 새해맞이 카운트다운 행사로, 숙박 고객 중 신청자를 대상으로 코스튬 파티 이벤트가 벌어진다. 일명 ‘매스커레이드 나이트’이다.

 

익명의 제보로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사인은 심장 감전사로 살해당한 것이었다. 게다가 죽은 여성은 임신한 상태였고, 평소 중성적인 옷차림이었다는 지인들의 증언과 달리 옷장에는 걸리쉬 의상이 가득하다. 경찰은 우선 피해자 주변을 탐문하고, 그러던 중 두 번째 제보가 도착한다. 바로 호텔 코르테시아도쿄의 매스커레이드 나이트에 범인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 대체 제보자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아는지 알 길이 없지만 수사를 맡은 경찰들은 호텔의 협조를 얻어 잠복 수사에 들어간다. 앞서 이 호텔에서 수사를 벌인 바 있는 닛타 고스케는 다시 프런트 클라크로 위장해 체크인 하는 손님들 중 매스커레이드 나이트 신청자는 누구인지, 혹시 의심스러운 정황이 포착된 손님은 없는지 지켜본다. 그리고 경험이 있다 해도 호텔 업무가 낯선 닛타에게 크고 작은 조언을 아끼지 않는 유능한 호텔리어 야마기시 나오미가 컨시어지로서 임무를 수행하며 이 사건의 해결에 일조한다.

 

호텔이란 공간이 갖는 매우 개인적이면서도 베일에 가린 특수성 때문에 아마도 이 시리즈는 ‘매스커레이드’라는 제목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투숙객들은 얼마든지 본인의 신분을 위장할 수 있고, 이런 조건 덕분에 호텔은 범인이 숨어들기에는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다. 경찰은 신분을 감추고 투숙객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선에서 범인 색출에 나서지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평범하지 않은 몇몇 손님들이 용의 선상에 오르고 공교롭게도 그들은 컨시어지 나오미에게 특별한 부탁을 청해온다. 그간 호텔에 투숙하며 직원에게 뭔가 부탁을 한 기억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호텔 직원에게 이런 요청까지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신선했다. 그리고 그 어려운 숙제와도 같은 일들에 한결같이 긍정적인 답변과 실제로도 고객이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척척 제공하는 나오미의 투철한 직업 정신이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살인 사건을 쫓는 추리 소설인데 나오미가 이번에는 또 어떻게 해결해 낼 것인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드디어 12월 31일 밤이 되고, 범인을 체포할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경찰들. 하지만 진범은 그런 경찰을 보기 좋게 속이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듯 했으나 닛타의 예리한 눈썰미 덕분에 의외로 쉽게 붙잡힌다. 그리고 이 사건에 연루된 진범과 제보자, 그리고 피해자와 그들 간의 관계 등 사건의 내막이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진술되면서 시원한 해결을 보여준다. 그리고 누구보다 멋진 활약을 보여준 나오미의 새로운 시작을 예고하며 이번 책은 마무리가 되었다. 매스커레이드의 다음 이야기가 또 준비되어 있다면, 그곳은 아마도 호텔 코르테시아로스앤젤레스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닛타와 나오미 콤비의 재회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