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두렁에 앉아서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며 읽으면 딱인 구수한 이야기들!

   그 유명한 니체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연상시키게 하는 성석제의 소설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그의 많은 작품 가운데 가장 먼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황만근은 어떤 위인일까?

   표제작인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의 주인공 황만근은 마을 사람들이 '반근'이라고 놀릴 정도로 바보 같은 사람이다. 전날 고장난 경운기를 끌고 '농가부채 해결을 위한 전국농민 궐기대회'에  참가한 황만근이 돌아오지 않자 다음날 아침 마을 사람들이 총집합한다. 지금껏 황만근이 외박한 적은 딱 한번 뿐이었기 때문이다. 일주일 후 황만근은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오고, 2년 전에 이 마을로 귀농한 민씨가 궐기대회 전날 밤에 황만근이 자신에게 해줬던 이야기를 전한다.

   그날밤 민씨에게 들려준 '농가부채'에 대한 황만근의 견해는 어느 누구보다 총기 빛나는 주장이었다. 비록 바보로 태어났을지언정 자라면서 점점 지혜로워진 황만근. 그를 수 십년 동안 곁에서 지켜본 가족들도 미처 몰랐던 사실을 민씨만이 깨닫게 된다. 그래서 민씨는 그를 '황선생'이라 부른다.

   황만근이 진짜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독자들은 민씨보다 더 먼저 눈치챌 수 있다. 그가 처음으로 외박했던 날 만났던 토끼를 상대했던 이야기, 그 정도 잔꾀면 여간내기가 아닌가.

   「천하제일 남가이」는 마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에 등장하는 그르누이를 연상시킨다. 사람을 끌어 당기는 방법을 알았던 남가이는 더럽고 냄새나는 행색으로도 사람들, 특히 여자들을 이끌어냈다. 작가는 "잘생긴 것의 기준은 잘생긴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많았다. 어쩌면 자신이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숫자만큼 많았을 수도 있다."(p.167)고 말한다. 지금의 우린 너무 천편일률적인 잣대로 사람들을 판단하곤 한다. 사람을 잡아끄는 아름다움의 기준이 무엇인지, 각자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천애윤락」과 「쾌활냇가의 명랑한 곗날」은 여러 친구들 사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든 사람들이 바보라고 부르는 황만근도 알고보면 어느 누구보다 지혜로웠던 것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늘 조용하고 힘없는 사람이라도 어떤 상황에서 어떤 힘을 발휘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고로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는 법이니까.

   이 책에 실린 총 7편의 단편들에는 저마다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버티고 있다. 때론 너무 바보 같고 힘 없어 보이는 이들이, 또 때론 모든 행운을 과감히 던져버린 이들이 등장한다. 얼핏 보면 잘나고 못난 사람이 구별되는 것 같지만, 결국엔 같은 인간이고 비슷비슷한 유형의 인간들인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성석제 작가를 '이야기꾼'이라 부른다. 플래시백을 적절히 사용해 이야기의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기술만 보면 분명 이야기꾼이 맞지만 세련된 맛은 없다. 논두렁에 앉아서 막걸리 한사발 들이키면서 읽으면 딱인 이야기들이다. 카페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한마디로, 도시적이고 현대적이기보다는 구수함이 철철 넘치다고나 할까. 우리 같은 젊은 세대들보다는 고향의 정취를 그리워하는 세대들에게 더 재밌게 읽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10-048.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2010/06/06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