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을 꽉 채운 합법생각과 사전에 똥침을 놓다!

   이것 저것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이지만, 스스로 특히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감성'이다. 영화를 보거나 누군가의 생각을 들을 때 이해는 하지만 쉽게 공감하지는 못한다. 이해를 하는데는 머리만 있으면 되지만, 공감하려면 따뜻한 가슴으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성이 물씬 베어있는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때면 감탄 반 부러움 반이 돼버린다.

   26년차 카피라이터 정철이 서점을 꽉 채운 합법생각과 엄숙주의에 똥침을 놓는 책(p.5)을 내놨다. 그는 그동안 우리가 흔히 사용해 왔던 일반적이고 합법적인 사전을 내려놓고, 모든 상식과 고정관념에게도 작별인사를 고하고 불법사전에 실린 120개 단어의 의미와 쓰임새에 대해 익히라고 한다. 이 불법사전에 실린 단어들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알게 된다면, 인생문법에도 어긋남이 없을거란다.

   여기서 말하는 불법이란, 영어로는 'illegal'이라 표현돼 있지만 이 불법을 일삼는다고 범죄자가 되거나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 건 아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합법적이고 상식적이라 생각하는 것에 반하는, 그러니까 다른 시각으로 보고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이 불법을 자주 저지르다보면 남들보다 튀어서 눈총을 받을 때도 있겠지만, 그것이 그를 돋보이게 할 수도 있다.

   26년차 카피라이터의 새로운 의미 부여는 역시 기발하다. 기발한 아이디어 때문에 우리가 열광했던 광고의 카피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처음에는 기발함만 있는 줄 알았다. 그 기발함 때문에 독자들이 책으로부터 튕겨져 나와서 도중에 책을 덮어버리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 기발함은 사람을 향한 따스함을 품고 있다. 마냥 튀기만 하는 의미부여였다면 그가 우려했던 것처럼 거부감이 들었을지도 모르는데, 따스함을 품고 있어서 그것에 공감하고 싶어졌고 그 따스함을 나도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법사전에 실린 120개 단어에는 새로운 정의만 부여된 것이 아니라 각각의 파생어, 반대어, 관련용어, 동의어, 사용Tip 등이 함께 소개돼 있다. 인덱스도 뒤에 따로 실려있어서 너무 합법적인 하루를 보냈다 싶으면 언제든지, 어느 페이지를 펼쳐봐도 좋다. 불번사전을 한번 손에 펼쳐든 사람은 저자와 공범이 되는데 적극 동참하리라!

커피 : 향기, 대화, 추억, 여유, 약간의 설렘, 나에게 보내는 응원, 조급했던 시간에 대한 용서, 머리를 맑게 해주는 고요, 그리고 고요 끝에 찾아오는 안정감… 이 모든 것들이 녹아있는 따뜻한 외로움치료제. (p.387)

(동의어) 담배 : 향기, 대화, 추억, 여유, 약간의 설렘, 나에게 보내는 응원, 조급했던 시간에 대한 용서, 머리를 맑게 해주는 고요, 그리고 고요 끝에 찾아오는 안정감… 이 모든 것들을 눌러 담은 조용한 외로움치료제.

   그러나 몸에 해롭다는 작은 이유 때문에 담배는 커피만큼 대접받지 못한다. 몸의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가 훨씬 더 아프고 오래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오늘도 금연운동을 하고, 나는 오늘도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담배를 입에 문다. (p.387)

(사용Tip) 식어버린 커피 마시는 법 (p.389)

1. 커피가 식을 때까지 커피 안마시고 내가 무얼 했나 생각해본다.

2. 특별히 한 일도 없이 커피를 외롭게 방치해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3. 미안한 마음에 이젠 내가 커피의 외로움치료제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4. 누군가의 외로움을 치료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내 가슴이 따뜻해진다.

5. 식어버린 커피를 따뜻해진 내 가슴으로 조금씩 데워가며 마신다.

10-049. 『불법사전』 2010/06/13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