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기억의 파괴                       
로버트 베번 지음│나현영 옮김│알마 刊

 

저자, 로버트 베번은 영국 건축 잡지 빌딩 디자인의 편집인 출신으로 이름난 건축 저
널리스트다. 독자에게는 무척 매혹적이고 부러운 직업이다.  저자는 전형적인 영국인
으로 당연히 서구쪽 건축물 파괴 현장을 부지런히 쏘다녔다,  어떤 민족의 집단 기억
을 파괴하기 위해서 그 민족의 심볼이 되는 오브제 말살 행위는 인종청소이며 문화청
소 현상이라고 정의한다.  적을 상징하는 기념물 자체가 적이라는 심플한 이야기지만
맞는 서술이다.

 

기원전 고대 지중해의 해상권 헤게머니 장악을 위해 벌어진 포에니 전쟁의 승자 로마
는 패자 카르타고를 무참하게 파괴해 버린 도시학살로 부터 나치 치하의 유태인의 성
전인 시너고그와 집과 사업장을 파괴했던 크리스탈 나흐트도 유태인의 기억과 정체성
을 망가트리려는 만행으로 적시한다.

 

그러면서 아프칸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에 의한 바미안 석불도 걸르지않는다. 90미터
암벽의 벽감에 조성된 1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석불을 다이너마이트로 순식간에 파괴
하던 생생한 TV 중계 장면을 상기시킨다.  탈레반에 저항하는 시아파 소수민족을 인종
청소하는 것에 다름 아니란다.

 

사코 디 로마 (Sacco di Roma)는 신성로마제국 카를5세의 의해 저질러진 로마 약탈이
다. 그 이전에 서로마제국의 접경을 넘보던 야만족 시절부터 나치독일까지 게르만족의
야만성은 DNA에 흘러 내리는 대물림인가. 중세시대부터 유태인 게토(gehetto)도 그렇
고 말이다. 오늘날의 유로존의 위기조차 어쩌면 EU 각국의 바버리즘(barbarism)에 연유
한다고 말하믄,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 

 

이 집단 기억의 파괴에서는 일제에 의해 원형이 훼손된 우리네 경복궁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물론, 문민정부 김영삼 대통령에 의한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에 관한 사실도 일절
부연되지 않는 걸로 보아 저자는 무식한 것은 아닐게고 극동의 죄그만 한반도 정세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게야. 아마도~!

 

아쉬운 것은 그때 힘쓸 때에, 서십자각에서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과 동십자각에 이르는
경복궁 파샤드 (facade)를 제대로 복원하지 못한 것이다.  독자도 하필 3.1절 날 아침에
이 책을 완독한 여운이 찌릿하다. 모처럼 잘 써진 식성에 맞는 책을 본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