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조선 지식인의 생각 창고

 

항해 홍길주의 <수여방필> 4부작을 번역한 책이 <19세기 조선 지식인의 생각 창고>다. 홍길주는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인 19세 초반에 활동하며 영롱한 감성으로 빛나는 방대한 양의 문집을 남긴 천재적 문인이었다. 그는 정조 11년에 태어나 순조조에 활동했다. 본관은 풍산, 항해(沆瀣)는 그의 호인데, 호(號) 속에 그의 일생이 잘 함축되어 있다. ‘항해(沆瀣)’는 ‘이슬’이라는 뜻인데, ‘신선들이 마시는 음료’이다. ‘이슬을 마시며 신선처럼 맑게 살다’ 가려는 항해의 마음이 잘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형이 연천 홍석주이다. 그는 벼슬길을 멀리 한 채 글쓰기에만 몰두했다. 그의 글 속에는 조선 후기 문화가 성취한 가장 높은 수준의 사유가 섬세하게 펼쳐진다. 이 책 속에는 그야말로 다양한 별별 종류, 장르의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어떤 글은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글의 내용을 통해서 조선후기 다양한 모습을 엿보고 발견해 낼 수 있다.

연암이 처음 참봉 이광려를 만났을 대 몇 글자나 아느냐고 물었다. 이광려는 한참 뜸을 들이고 나서 “삼십 자가량 될 뿐이오”라고 대답했다. 마침내 기뻐하며 벗 삼기를 청하고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308면)

 

진시황 영정은 책을 불태웠으니 천고의 어리석은 사람이다. 책을 진실로 불 태울 수 있겠는가? 이는 다만 간책(簡冊)에 실린 것만을 책이라고 생각한 까닭에 불태워 없앨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책이란 천지와 더불어 함께 나서 천지와 더불어 함께 없어지는 것이니, 어찌 불태워 없앨 수 있단 말인가(313면)

 

구름과 바다 사이의 수억만 권의 책은 대부분 아직 저술되지 않은 것이다. 이는 천하의 재주와 학식이 있고 지혜와 언변을 갖춘 인사들을 널리 모아 함께 노력할 바의 것이다.(314면)

 

<수여방필>은 <수여방필>, <수여연필>, <수여난필>, <수여난필속> 이렇게 4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홍길주의 내면뿐만 아니라, 조선후기, 19세기 지식인들의 내면까지도 아울러 살필 수 있다. 일상의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일에서부터, 그때그때 퍼뜩 떠오른 생각의 메모, 스쳐 지나간 생각의 궤적, 그리 당시 지식인의 구체적인 관심들을 그는 아주 경쾌한 필치로 스케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