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근대이전, ‘민족’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19세기 말 20세기 초반 서구 제국주의와 서구화한 일본 제국주의와의 접촉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19세 말, 건국 이후 500백년을 지난 노쇠한 조선은 심각한 사회 모순을 노정하고 있었다. 왕조는 모순을 해결할 능력을 이미 상실하고 있었으니, 그 모순은 조선 체제의 붕괴와 새로운 체제의 성립으로 해소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붕괴하기 전에 1876년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강제로 편입되었다. 동아시의 한 귀퉁이에 고립되어 있던 조선은 억지로 ‘세계’에 끌려 나갔던 것이다. 조선이 대면한 것은 서구와 서구화한 일본이란 국민국가였다.

 

조선의 국가 구성원은 신분제에 의한 양반과 상민의 분열, 남성중심주의와 가부장제에 기초한 남성과 여성의 분열, 권력의 소유를 둘러싸고 양반 내부의 심각한 균열, 여기에 지역에 따른 차별과 빈부의 격차에 의한 차별 등 사회구성원은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었다. 국민을 만드는 것은 이런 차별과 분열을 극복하여 국가 구성원에게 스스로 모두 동질적 존재임과 국가 주권의 보유자임을 인식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대한제국 시기에 권력 수뇌부의 친일파 외에 일반 민중들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일제의 침략에 협조했던 부일패(일본에 붙은 패거리)들이 배출되었던 현상은 실로 의미심장하다. 채만식의 <태평천하>에서 윤직원을 통해 이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소설에서 윤직원 영감은 일제의 식민통치를 ‘태평천하’로 인식한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근대적 합리성을 갖는 것이라면, 윤직원의 눈에 조선체제는 국가, 관료에 의한 불법적인 수탈, 비합리적인 행정 등으로 지옥 같은 세월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윤직원 영감의 이러한 의식이 조선의 다수의 의식이었다는 점이다. 국민 만들기의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 것은 계몽운동세력이었다. 계몽운동의 절대목적은 근대적 의식을 갖는 국민을 제작하는 일! 언어와 역사 곧 조선말과 조선사가 가장 중요한 장치였다. 하지만 이 생성은 실패와 성공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이었다. 실패는 친일파와 부일패, 성공은 독립운동가로 각각 특화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한국 내셔널리즘의 시작이다.

 

이 책은 일찍이 구입해 두고서 읽는 것을 미루어 두었던 책이었다. 처음 구입 당시 앞서 몇 페이지를 읽는데, 무슨 말인지 사뭇 말의 의미들이 잘 와 닿지 않아서 꽂아두었었는데, 어느 날 문득 갑자기 생각이 나서 읽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곰곰이 곱씹어 읽을수록 참 울림이 있고, 깊이가 있는 내용들이었다. 한 단락을 읽고 나면, 그 읽은 글들이 머리 속에서 그 글의 의미를, 단어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책은 이 책의 글들은 정독(精讀)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냥 흘겨보아서는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듣지 못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