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 시(詩)의 정수가 담긴 정유각집.

 

박제가(朴齊家)는 <소전>에서 “스스로를 물소 이마에 칼날 눈썹, 검은 눈동자에 하얀 귀를 지녔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네 차례의 연경을 드나들며 당대의 명유(名儒)들과 교유를 맺기도 하였다. 그는 진정 조선시대 국제인(國際人)이었다. 돌베개의 <정유각집(貞蕤閣集)>은 영인본 문집 전체를 번역한 것이다. 중권에는 초정(初政)의 시집 3~5권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업은 한양대의 정민선생님이 한국 학술진흥재단의 고전국역사업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 낸 성과인데, 이 같은 결실을 맺기까지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음을 책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번역은 난관의 연속이었으며, 강독 모임을 통해 이 책이 완역이 되지 못한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다”고도 하였다. 가늠할 수 없는 전거가 구절마다 복병처럼 숨어 있어, 주석은 줄줄이 끝이 없이 달리고, 의미 또한 오리무중 속으로 빠져들기 일쑤였다고 했다. 이 책은 정민 선생 외에 여러 연구자들이 5여년 초정(楚亭)의 자취를 더듬으며 일구어 낸 결실이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이제까지 단편적으로만 알았던 초정의 새로운 정신세계와 넓은 사유 등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정민 선생의 말을 빌면, “초정의 정신 궤적이 이 책 안에 오롯이 담겨 있는 것이다.” 특히 상권과 중권의 시집 속에 시작품들을 통해 그의 시인으로써의 면모와 포부, 울분 등을 감지해 낼 수 있다. 즉 초정(楚亭)은 사상, 산문 뿐 아니라 시학(詩學) 방면에서도 구태(舊態)를 일신(一新)하여 혁신적인 시풍(詩風)을 선도했던 당대 일급의 시인이자 이론가였던 것이다.

 

반정균이 쓴 <정유각집(貞蕤閣集)> 서문에 “천하의 시를 잘 짓는 자는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가 보지 않고는 안 된다. 한 고을 한 마을 안의 우뚝한 선비로도 능히 만 권의 책을 본 자는 적지가 않다……박초정은 해동에서 태어나 책을 읽음에 홍범(洪範)이하로부터 무릇 나라 사람이 지은 것을 평소에 익혀 왔다.……지은 시가 풍부하여 환하게 책을 이룬 것이 또한 마땅하다.”고 하였다.

 

영인본 <정유각집> 시집 5책에는 1721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들 시 속에는 실험과 도전으로 가득 차 있다. 초정의 시문집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61년에 원문을 활자본으로 간행하였고, 이후 1986년 여강출판사에서 <정유각전집>을 상하 2책으로 펴낸 바 있다. 이 원서를 2010년 완역한 책이 바로 돌베개에서 출간된 <정유각집>이다. 이 책을 통해서 초정의 개성 넘치는 다양한 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