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산문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정유각집>

 

초정(楚亭)은 18세기 후반 조선 지식 사회의 변화를 추동했던 북학파(北學派)의 핵심인물이다. 초정을 포함해 박지원(朴趾源), 이덕무(李德懋), 유득공(柳得恭), 서이수 등은 이른바 백탑(白塔) 주위에 모여 살며 동지적 연대 속에 학술(學術) · 문예(文藝) · 사상(思想) 전반에 걸쳐 새로운 사조(思潮)를 받아들여 답보에 놓인 조선 지성 계에 신선한 호흡을 불어넣었다.

초정은 비로 서얼(庶孼) 출신이었지만, 규장각(奎章閣) 검서관(檢書官) 생활과 네 차례의 연행(燕行) 체험을 통해 툭 터진 식견과 국제적 안목을 갖춘 인물이었다. 특히 연행에서 중국 문사들과 폭넓은 교유를 나누고 그들의 발달한 문물(文物)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 당시 조선이 북벌의 원수로 지목했던, 청나라가 결코 오랑캐 민족이 아닌, 새로운 학문 사조와 서양 과학으로 무장한 문명국임을 똑똑히 자각(自覺)하였다. 조선시대 북벌(北伐)의 강고한 이데올로기가 북학의 과감한 주장으로 돌아서는 데 그의 저서 <북학의(北學議>는 영향은 가히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박제가의 학문은 개혁적이면서 실용적이었는데,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박제가는 <북학의>의 저자로서만 주목을 받고 알려졌을 뿐, 정작 그의 문학, 작품 세계 전모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정유각집 하권>은 그의 산문 작품들을 모아 놓았다. 이 산문 속에는 부(賦), 논(論), 책(策), 조문(條文), 서(序), 설(說), 기(記), 발(跋), 묘지명(墓誌銘), 행장(行狀) 등등 다양한 문체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우선, 눈에 뛰는 작품들을 보면, <북학의 자서>, <발해고 서문>, <아정집 서문>, <백화보 서문>, <묘향산소기>, <양허당기>, <소전>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묘향산 소기>는 특히 초정 산문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통해 그의 문학적 재능이 이때 이미 높은 수준에 올라 있었음을 알 수도 있다. 이 밖에 <정유각집> 하권 실려 있는 초정(楚亭)의 여러 다양한 산문들을 꼼꼼히 정독을 하다보면, 박제가의 사상과 정신세계가 조금씩 서서히 와 닿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내용도 물론 훌륭하지만, 외형, 표지 또한 상당히 우아하고 고급스럽다. 초정 박제가의 문집인 <정유각집>은 양서(良書)로 소장가치가 매우 높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