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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 낯설고 작가도 생소하다. 우선 제목부터 찾아보았다. [겨리] - '소 두 마리가 끄는 쟁기'. 작품을 다 읽고 난 후의 독자라면 그제서야 제목 [겨리]의 의미가 되새겨졌을 것이다. 남과 여, 두 사람이 지독히 사랑했으나 끝내 사회적 관습이라는 제약때문에 맺어지지 못하고 서로를 그리워하며 지내다 마지막 딱 한 번의 사랑을 나눈다는 소설의 내용으로 보아 [겨리]라는 제목도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라는 데에 착안하지 않았을까 싶다.

유경한이라는 작가. 책의 앞표지 이면에서 그의 프로필을 보았다. 작품수가 적지마는 않다. 널리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 인터넷 상에서 작가의 부인이 올린 글이 오히려 화제인 모양이다. 이번 작품도 빛을 보지 못한다면 작가라는 직함을 내려놓겠다는 남편을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부인의 글이 화제가 되었는지 소설은 작가의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2쇄 인쇄에 들어갔다고 한다.

내게 있어서 소설만큼 쉽게 읽혀지는 글도 드물다. 물론 수필이나 신변잡기류의 글도 쉬이 읽혀지지만 내가 소설을 읽는 방법은 전체적인 플롯을 따라가면서 사건의 전개나 인물 간의 갈등과 해소를 중심으로 읽다보니 다른 사람보다는 빠르게 읽는 편이다.

[겨리]도 주말을 통해 읽었다. 유신체제라는 시대적 배경과 통행금지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1960~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듯하다. 내게 있어 부모세대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동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기에도 시간적 거리는 있어서 동질감을 느끼기에는 쉽지 않았다.

이제 갓 중학생인 남자 주인공 '연우'는 4살 연상의 고등학생 '지연'을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사춘기 소년의 한 순간 들뜬 마음이었을지도 모를 감정이 시간이 지나면서도 사그라들지 않고 오히려 두 사람은 성장하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키워나간다. 결국 대학에 입학한 연우는 연상의 지연과 감정 만이 아닌 육체적인 교감까지 가지며 평생을 맹세한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넘지 못할 난관이 있었으니 4살이라는 터울이었다. 더군다나 둘은 이미 통정을 하여 그 시대 남자에게는 괜찮을지 모르나 여자에게 있어 처녀성 상실은 주홍글씨로 새겨지는 것이었다. 그로인해 지연은 시집을 가서도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사회적 통념과 지연 어머니의 적극적 반대와 연우 집에서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분위기로 인해 연우는 연우대로 방황을 하게되고, 지연은 어머니의 강권에 못이겨 맞선을 본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

연우의 방황은 술과 대학에의 부적응, 이념이 정립되지 못한 데모꾼으로 방황하다 결국 강제징집을 당하게 되고, 군에서는 총기 자살미수에 그쳐 전역하게 되고 순간적인 결심으로 중매를 통한 결혼생활에 접어든다.

지연은 자신의 처녀성 상실에 화난 남편으로 인해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는 결혼생활을 이어가다 세무공무원이었던 남편이 뇌물수수로 인해 구속되자 신문보도를 접한 연우가 찾아와 만나게 된다. 둘은 잠시나마 예전의 사랑했던 감정을 느꼈으나 결국 지연이 수면제를 먹고 자살함으로서 이승에서의 인연을 마감하게 된다.

지금의 세대들에게는 연상의 여자와 연하의 남자라는 상황이 어째서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인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작가도 소설 속에 당시 기성세대들의 생각 특히, 여주인공 지연이 연우가 군복무를 마치는 시점인 서른 살까지 기다리면 사회적인 시선으로는 시집 못 간 노처녀 대열에 합류한다는 사실로 설명하려 했으나 조금은 미약하다 싶다.

남주인공 연우가 군에서 총기 자살을 시도할 만큼 애절한 사랑이었다면 현실적으로 먼저 지연이 이십대 일 때 결혼을 하고, 학업을 마치고, 군을 다녀오고 하는 것도 방법이 아니었나 싶다.

차라리 지연의 어머니가 야당 국회의원 후보로 두 번이나 지역구인 양평에서 낙마한 연우의 아버지와 그 배경을 탐탁치 않게 생각해서 모질게 반대했다라는 이유를 들었다면 조금 더 수긍할 수 있었을 듯하다.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 박정희 정권의 철권통치와 비민주적 사회 현상들로 인해 야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그 시대에 얼마나 앞 날을 기약할 수 없는 일인지, 어느 날 공산주의자의 하수인으로 몰려 남모를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소설 내에 장치로 두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연우의 고뇌와 갈등보다는 지연의 상황과 결심 그리고 운명을 부각시켰다면 당시의 남성주의적 사회상이 여성에게 얼마나 힘든 상황이었는지, 여성은 상대적 약자였을 뿐만아니라 그 시대를 거쳐온 지금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들이 얼마나 강인한 여성인지를 인식시키는 계기도 되었을 법하다.

물론 작가는 연우와 지연이라는 두 남녀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려보고자 했을 것인지도 모른다. 작품을 다 읽고 나서 나 역시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 하지만 어느 독자라도 글 속에서 내가 주인공이라면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하겠다, 위기 속에서는 또 다르게 헤쳐나가겠다는 감정이입이 된다. 그런 면에서 생각하다보니 어째 감동적인 소설 한 편이 아쉬운 점이 많은 이야기가 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작가의 3년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