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서류철로 머리를 치며 딱부리처럼 눈을 부라리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스스로 내 별명을 '딱부리'라고 정했다. 마음에 쏙 든다. 가물가물한 이름 최정호보다는 딱부리가 훨 낫다.

난 14살이다. 또래들보다 키가 큰 덕에 16살이라고 두 살 보태어 소개를 해도 다들 믿는 눈치다. 그래서 어느 순간 16살이 되어버렸다. 감옥에 들어가 있다는 아버지에 대해서는 잘은 모르겠고 지금은 엄마와 함께 산다. 판자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 동네에서 우리 같은 아이들이 할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학교를 다닌다면 모를까.

시장에서 나물행상하던 엄마가 갑자기 이사를 간단다. 아빠 친구라는 남자가 와서 꽃섬이라는 동네로 이사오란다. 얼굴 반쪽이 푸른 점으로 뒤덮인 '아수라' 같은 이 남자의 권유로 엄마와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온갖 쓰레기가 모이는 꽃섬으로 이사온다.

숨도 쉬지 못할 악취와 새까만 파리떼와 친숙해지니 이곳도 그럭저럭 살 만하고 엄마는 쏠쏠히 돈 버는 재미에 아수라와 살림도 합쳐 어느새 부부처럼 지내고 있다. 아수라의 아들 땜통과 나는 형제처럼 지내게 되었다.

동네 아이들의 우두머리인 두더지와도 너나들이를 하게 되었고, 아이들이 본부라고 지어놓은 오두막이 내 방처럼 편해지기도 했다. 땜통이 자주 들락거리는 빼빼네 집 아줌마와 할아버지와도 편한 사이가 되자 이곳 꽃섬은 앞으로도 내가 살아가야 할 동네가 되어버렸다. 아수라가 옆 구역 반장을 찌르는 일로 감옥에 가지 않았거나, 동네 화재로 땜통이 불에 타 죽는 일만 일어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작가 황석영을 대하자면 '장산곶 매'가 먼저 떠오른다. 장산곶 매에 대한 이야기는 백기완선생을 통해 알았지만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을 통해 황해도에 대한 상상력이 장산곶 매와 작가 황석영을 결부시키게 되지 않았나 싶다.

작가 황석영 하면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노동자 이미지가 떠오른다. [삼포 가는 길], [객지]에서의 등장인물들이 공사장 노동자이기도 하고, 자유롭게 떠돌 수 있는 여건을 가진 사람들이라 이런 이미지가 고착되지 않았나 싶다.

작가 황석영은 월남전을 떠올리게 한다. [무기의 그늘]은 작가 자신이 직접 체험한 월남전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한국전쟁과 더불어 전쟁문학의 양대산맥을 차지하는 월남전은 아직도 소설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작가 자신이 직접 체득한 경험이니만큼 생생한 묘사와 정서적 표출이 남달랐다고 기억에 남는다.

[낯익은 세상]을 통해 작가 황석영은 도시 하층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이름 꽃섬으로 바꿔놓은 지금의 난지도에서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의 쓰레기를 주워 살아가야 했던 쓰레기장의 사람들 이야기를 14살 소년 '딱부리'를 통해 전해주고 있다.

단돈 몇 푼을 위해 생명을 담보로 일해야 하는 꽃섬 사람들과 그런 하층민들의 삶에 자리잡은 탐욕과 애증들, 쓰레기 매립을 위해 고향을 내줘야 했던 김서방네 유령들과 주변에서 떠나지 못하는 빼빼네, 도시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그늘을 애써 부정하는 가진자들의 과시욕과 위선, 그럼에도 삶은 이어진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

[낯익은 세상]은 과거 30년 전 이야기를 통해 지금은 갈대축제가 열리고, 골프장이 들어선 거대한 쓰레기산 밑에 감춰진 역사를 기록해내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