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읽는 공지영의 신작소설.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비롯하여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이었다.

출간과 동시에 상위권에 랭크되고 화제가 되어서 사실 기대를 좀 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개인적으로는 좀 아쉬웠다.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와 '부활 무렵' 두 작품을 빼고는 모두 자전적인 소설이었는데,

반복적으로 내비치는 이혼, 폭력, 소송 등의 내용이 조금 불편하게 다가왔다.

글은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서 넘치다가 엎질러져 나오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작가에게는 깊이 박힌 상처라서

글을 쓰다보면 어쩔 수 없이 흘러나오는 내용일지 모르겠지만,

글을 읽는 내 입장에서는 굳이 이 대목에서 갑자기 이런 내용이 나와야 하나

하는 의구심을 가지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공지영의 또 다른 자전적 소설인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를 감동적으로 읽었기 때문에

자전적 소설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없지만,

이번 단편들은 내가 느끼기에는

맥락없이 자신의 상처를 내보이고자 하는 부분이 많이 느껴져서 좀 아쉬웠다.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와 '부활 무렵'은

그런 내용이 없었기에 비교적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정말 기이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티비 프로그램에 나올법한 내용이었다.

기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소름끼치고,

자본주의가 낳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했다.

 

이미 저질러진 것을 우리는 인생이라고 부른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고 중요한 것은 미래도 아니며 현재는 더더욱 아닌 것이다.

나는 그저 통째로의 이 삶, 나의 어리석음과 돌이킬 수 없었던 결정들과

원하지 않았으나 내게 주어졌던 이 삶,

그러니 결국은 내 것일 수밖에 없는 온전히 내 책임인 이 삶.

통째로의 이 삶을 나는 받아들이고 싶었다.

 

우리 삶에서 가장 하기 힘든 일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일이며,

우리 삶의 비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시 끝없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며 사는 것이라고.

 

희망이 절망적인 유혹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희망을 버리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그때는 몰랐다.

풍랑을 만난 배가 물결을 헤치고 그저 앞으로 갈 수 밖에 없듯이 온몸으로,

온몸으로 물결을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아무 방법이 없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그리하여 그것을 받아들일 때까지, 그것이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까지,

쓰나미처럼 우리를 덮치는 불행이라는 것이 생의 한 속성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까지,

우리는 늪 같은 운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운명이 내 맘대로 내가 원래 계획했던 대로 돼야 한다는 집착을 버리니

북한에 납치되어서도 살 수 있었다는 일본인 H의 말이 개인적으로 깊이 와닿았다.

나 역시 한 때 하는 것마다 뜻대로 안되고 내 삶은 도대체 왜 이런가 하는

우울감에 빠져 살던 때가 있었다.

지나고 보니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 때 나에게는 넘을 수 없는 산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나서야,

마음을 비우고 나서야, 나도 괜찮아질 수 있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행 또한 삶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의연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 같다.

 

조금 아쉬웠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작가가 결코 평탄하지는 않았던 자신의 삶에 대해 오랫동안 성찰하고 ,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 온 흔적이 많은 곳에서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그녀의 고통은 소설이 된다'는 해설자의 말처럼

작가가 겪었던 삶의 상처들이

그녀가 계속 글을 써나갈 수 있는 원천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쨌든 한 인간이 성장해가는 것은 운명이다"

책 속에 나오는 구절처럼 작가 자신도 삶에 대한 성찰과 노력,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글쓰기를 통해 성장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