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읽었던 '잡동사니' 이후 오랜만에 읽은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 소설.
그 때도 느꼈지만, 이 작가는 불륜이라는 소재를 조금은 특이하게 그려낸다.
통속적인 관념으로는 불편할 수도 있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담담하게,
별 것 아닌 것처럼 풀어내는 것 같다.
이번 소설은 등장인물이 많다.
그리고 각자의 시점으로 갑자기 변하는 부분이 많아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쓰면서 읽었다.
모모.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인물.
치과 의사로 일하고 있으며 6년간 사귄 애인이 있었지만
연하의 남자인 사바사키에게 빠져 애인과 헤어진다.
모모는 사바사키 앞에서는 방어막이 허물어진다고 느낀다.
그것이 기쁘고 쾌적하다고 생각하며 그와 자신은 닮은꼴 동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바사키와의 시간도 예전같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히비키.
모모의 오랜 친구. 네 아이와 남편과 함께 사는 전업주부.
하야토의 부인. 아이들의 엄마로서만 살고 있던 그녀의 삶 속에
사바사키가 나타나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조금은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
사바사키.
모모의 연하 남자친구.
하지만 우연히 만난 히비키를 짝사랑하게 되고 그녀와 깊은 관계가 된다.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캐릭터.
히비키와 모모 둘 다 만나면서
항상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한다.
카즈에.
히비키의 엄마.
남편을 일찍 잃고 딸도 결혼한 후 '로잘리'라는 닉네임으로
인터넷 채팅을 하다 만난 야마구치에게 먼저 직접 만나자고 말한 대담한 여자.
야마구치.
조기 퇴직 후 무직 상태이던 때 인터넷 채팅을 통해 카즈에를 만나고,
30년 결혼 생활을 저버리고 집을 나와 카즈에와 동거한 카즈에의 남자친구.
그러나 카즈에가 갑자기 죽은 후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가 농장일을 하며 제 2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
유키.
모모의 엄마. 남편인 에이스케를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는 여자.
자신의 취향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모든 것을 남편에게 맞춘다.
남편을 위해 정원을 가꾸고
음악도 자신은 샹송을 좋아하지만 남편이 좋아하는 클래식을 듣는다.
요우.
모모의 언니. 가난한 카피라이터.
마흔이 넘도록 연애나 결혼과는 담을 쌓고 사는듯하나
사실 유부남인 나라하시와 2년 동안 내연 관계이다.
대략 정리하면 이 정도지만 사실 더 많은 인물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마음이 가는 인물은 야마구치이다.
겉으로만 보면 인터넷 채팅에서 만난 여자에 빠져서 아내와 딸을 버리고 집을 나온
파렴치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어려운 결정이지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가는 용기를 가진 사람으로 느껴진다.
아내의 한숨과 무관심 속에 이제껏 살아왔던 대로
가정에서 자신의 자리만 채우며 살아가는 대신,
집을 나와 카즈에와 동거하며 새로운 삶을 찾고
카즈에가 죽은 뒤에도 농장 일을 하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아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인물을 통해 느낀 것은 타인의 삶은 자신의 잣대로
옳다 그르다 판단할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각자의 입장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테니까.
(갑자기 홍상수 감독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그러고 보면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부분일 뿐'이며
그래서 편리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것이 인간관계이지 싶다.
연애도 결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 '부분'이 전부인 양 기대어 사랑하다가도
어느 순간 또 다른 '부분'에 절망하여 등을 돌리기도 하는 것을 보면.
옮긴이의 말 중에 공감가는 부분이 있어서 옮겨본다.
편리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것이 인간관계라는 말. 무척 공감된다.
벌거숭이들.
얽히고 설힌 인간관계 속에서 각자의 입장과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책을 읽으면서 제목처럼 날 것 그대로의 인물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아마도 이런 제목을 붙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감없이 그저 담담하게
어쩌면 우리 주변에도 있을 듯한 이야기들을 써낸듯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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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숭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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