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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의 불편한 만남, 『논어』

작년 봄부터 약 6개월 동안 동네 엄마들과 『논어』를 함께 읽었다. 학습, 인격 수양, 정진하는 자세, 처세술 등 『논어』는 꼭 읽어봐야 할 고전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시작해보니 논어 읽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웠다. 공자의 어록을 모아둔 것이라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당시 어떤 시대, 어떤 상황에서 공자가 그런 말을 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전문 연구자가 아닌 일반인이 그런 맥락을 모두 파악해서 공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수준에서 나름 최선을 다 해서 『논어』를 읽었다. 읽어나가면서 학습서나 자기 계발서에서 자주 인용되는 문구들을 만났다.『논어』에는 학문에 정진하는 자세,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예의범절 등 우리 생활에 적용하기 좋은 문장이 많다. 함께 공부하던 엄마들은 『논어』를 읽으면서 자신의 생활을 많이 반성하게 된다 했다. 하지만 나는 좀 달랐다. 공자의 가르침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나는 공자나 그의 제자들처럼 성인도 군자도 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뭔가 내가 도달해야 할 수준 높은 경지가 있고, 그 경지에 도달하려면 굉장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나는 그럴 마음이 안 생기는 어정쩡한 상태였다. 나는 어른들 말 잘 듣고, 사회규범에 따라 착실히 살아온 이른바 '모범생'이다. 내 감정, 내 생각을 그대로 꺼내놓기보다는 '~해야 한다.'에 나를 맞추며 살았다. 내 안에는 불안, 불만,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 찼다. 행복하지 않았다.『논어』에 가득 찬 '~해야 한다.'를 대하는 내 마음은 몹시 불편했다. 성인, 군자를 지향하는 삶이란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나는 나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노자와의 가볍지만 강렬한 첫 만남, 『인간이 그리는 무늬』

『논어』를 반쯤 읽었을 때 동네 도서관에서 하는 독서토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매주 1권의 지정도서를 읽고 생각을 나누는 4회차 강의였다. 지정도서 중 1권이 최진석 교수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였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는 최진석 교수가 노자 사상에 바탕을 두고 인문적 통찰을 얻는 방법에 대해 논한 책이다. 덕분에 공자와 노자를 같은 시기에 함께 만나게 됐다.『인간이 그리는 무늬』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 명료하고, 매우 강력한 것이었다. '우리'가 아닌 '나'로 살라는 것이다. 공자는 인격 수양을 통해 욕망을 다스리라 하는데, 노자는 오히려 그런 욕망을 회복시키라 했다. '욕망'이란 말이 내 가슴을 뛰게 했다. 욕망이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나를 '나'로 살게 해주는 것이라니! 반갑고 고마웠다. 외부에서 주어진 이념, 가치, 신념 따위를 무작정 쫓아 살다 보니 자기를 잃어버리게 되고 불행해진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30여 년을 모범생으로 살아온 내 모습이다. "오직 자신의 욕망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는 내게 해방감과 행복감을 맛보게 해주었다.『논어』를 읽으면서 왜 그렇게 답답하고, 거부감이 들었는지도 알게 됐다. 나는 내 주위에 단단히 둘러쳐진 성벽을 넘어 넓고 푸른 숲 속을 마음껏 달리고 싶다. 자유롭고 행복하고 싶다. 그런데 내 욕망대로 살면 정말 괜찮은 걸까?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욕망만 내세운다면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팽배해지는 게 아닌가? 나의 욕망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려면 당장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인간이 그리는 무늬』에 담긴 저자의 통찰의 기반이 된 노자 사상을 공부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욕망하는 법,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혼자서 노자 사상을 공부해보려고 여러 책을 들었다 놨다 했지만 막상 읽어보려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반인이 철학하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노자와 반갑게 다시 만나다.『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

이번에 최진석 교수의 신간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이 나왔다. 서문을 읽어보니 최진석 교수가 책이나 강연에서 들려준 인문적 통찰의 바탕이 된 '노자의 사상을 쉽게 설명하고 일목요연하게 알려주는 책'에 대한 요청이 많았다 한다. 많은 사람이 최진석 교수의 책이나 강연에서 깨우침을 얻었으며 더 깊이 배우고 싶어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책은 저자가 밝힌 대로 중국 사유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통해 노자 사상이 발현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상을 충실히 밝히고, 노자 사상의 기반을 자세히 다룬다. 저자가 강연을 통해 대중과 소통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라 깊이가 있으되 어렵지 않다. 천천히 생각하며 따라가다 보면 앞서 읽은 문장과 나중에 읽은 문장이 하나로 모여 노자 사상의 큰 물줄기로 모여진다. 노자 사상의 큰 물줄기에 가닿을 무렵에는 『인간이 그리는 무늬』에서 막연히 생각하고 넘어갔거나 잘못 생각했던 개념들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서 "아, 이거구나!"하고 깨닫는 즐거움도 맛보았다. 머리가 말랑말랑해지고 가슴이 뛴다. 내가 원하는 걸 스스로 찾아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며 책을 읽었다.

책의 첫 부분은 더디게 읽힌다. 중국인이 어떻게 '생각'이란 것을 하게 되었는지, 중국 역사에서 인간이 자신의 존재와 행위의 정당성을 어떻게 사유해나가는지를 역사적·사회적으로 분석하기 때문이다. 노자의 사상이 어떻게 등장하게 된 것인지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알야야 할 내용이다. 신이 내린 질서와 권력인 천명(天命)의 자리를 인간의 질서인 도(道)로 대체하고자 한 철학자가 공자와 노자이다. 공자는 인간의 내면적 본성을 근거로 인간의 질서를 세우고자 했고, 노자는 자연의 운행 원칙을 근거로 인간의 질서를 세우고자 했다. 이 책은 노자 사상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고 노자 사상이 현대에 가지는 의의와 시사점을 밝히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유교, 불교, <<주역>>의 세계관과 노자의 세계관을 비교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혀나가면서 노자 사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덕분에 공자사상의 기반에 대해서도 알게 되어서 나는 멋모르고 거부감만 갖고 읽었던 『논어』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됐다. 철학은 당대의 시대가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나가려 노력한 인간 '생각'의 결정체이다. 이때의 '생각'은 탁석산이 『자기만의 철학』에서 밝힌 세계를 대상으로 한 전문 철학자의 수준 높은 생각이다. 공자와 노자는 세계를 대상으로 인간 존재와 행위의 정당성을 찾고자 노력했고, 두 사람이 세계를 보는 관점은 매우 달랐다. 때문에 공자와 노자가 설계한 세계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 인간이 자신의 삶을 구현해내는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세계를 본질로 본 공자와 다르게 노자는 세계를 관계로 본다. 노자가 자연을 통해 통찰한 세계의 모습은 유무상생(有無相生)으로 설명된다. 항상 상호 대립되는 면이 서로 의존적으로, 협력하며 공존한다. 정해진 본질이나 가치, 이념은 없다. '인간은 ~해야 한다.', '덕은 ~이다.'와 같이 어떤 정해진 본질을 노자는 긍정하지 않는다. 노자는 본질을 긍정하게 되면 그 본질을 가질 때만이 선한 것이 되므로 가치판단이 생기고, 선이 아닌 것에 대해 차별하고 무시하는 폭력이 생긴다 했다. 나의 모범생 기질은 '~ 해야 한다.'라는 본질을 긍정하고 충실히 따르고 학습하면서 형성됐다. 외부에서 들어와 내 안에서 굳어진 가치, 규범을 기준으로 나의 욕망을 누루고, 타인의 생각이나 행동을 평가했다. 내면은 늘 욕구불만으로 가득했고, 겉으로는 타인에 대한 편견과 독선을 키웠다. 최진석 교수는 책에서 세계가 존재하는 방식, 즉 대립 면의 공존과 긴장을 받아들일 때 외부에서 들어온 이념이나 신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했다. 하나의 의미에 갇히지 않고 대립 면을 살피며 경계에 있는 사람들은 신중하며, 어떤 '다름'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 했다. 상호 대립되는 면을 인정하고 경계에서 서는 것이 노자가 말한 무위(無爲)이다. 유무상생(有無相生)을 내 안에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것이 무위(無爲)이고, 무위(無爲)하는 삶을 살면 세계를 '봐야하는 대로' 왜곡하여 보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대로' 진실하게 볼 수 있다.

세계는 변합니다. 움직입니다. 누구도 이를 부정할 수 없지요. 우리의 판단, 우리의 행동'은 항상 변화하는 세계와 함께해야 합니다. 세계가 움직이는 방향과 함께하라는 것이 '무위'가 강조하는 핵심입니다.(p.259)

이제껏 나는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봤다. '봐야하는대로' 본 것이다. 단 한 번도 안경을 벗고 오로지 내 눈에 의지해서 세상을 순수하게 만나보려는 노력을 안 했다. 당연히 이 안경을 쓰고 세상을 명확히 보고, 사물을 사람을 구분 짓고 분별해야 하는 줄 알았다. 스스로 자신을 평가할 때조차도 안경을 통해 바라봤고, 안경 속의 나는 언제나 초라하고 부족한 사람이었다. 책을 읽고 나니 안경을 벗어도 되는구나, 이 안경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구나, 이 안경은 이미 예전 시대의 안경이라 지금 세상에는 맞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안경을 벗고 맨눈으로 세상을 보려는 노력이 내게는 노자가 말한 무위(無爲)로 향하는 첫걸음이 아닐까.

'무위'란 세계와 관계할 때 기존의 견고한 틀이나 방식에 갇힌 상태가 아님을 뜻해요. 이미 있던 신념, 이념, 가치관을 무시하고 자신이 주인이 돼서 자신이 고유하게 생산한 자신만의 문제의식으로 세계와 직접 관계하는 겁니다. 세계를 볼 때 기준을 갖고 보지 말라는 겁니다. 이론을 가지고 문제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안으로 직접 침투해 들어가는 태도가 '무위' 입니다.(p.253)

노자가 무위(無爲)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경지는 무불위(無不爲)이다.'모든 것이 이루어진 지경', '되지 않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지경'이란다. 이 수준에 도달하면 자신을 내세우지 않지만 오히려 앞서게 되고, 그 자신을 도외시하지만 오히려 앞서게 된다 한다. 이념, 신념, 가치 따위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몸으로 세계와 접촉하고,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며 자기만의 삶을 살아내는 경지이다. 마음으로 무불위(無不爲)의 상태를 그려보니 '자유', '행복', '충만함'이란 단어들이 떠오른다.

왜 이리도 나는 노자 사상에 마음이 흔들리고 설레는 걸까? 저자는 우리가 맞이한 현대의 특성이 노자 사상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이미 사유 보다 경험, 이성 보다 감성, 정신 보다 육체(욕망)이 중시되거나 주목받는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 집단에서 개별로, 보편에서 특수로, 본체에서 현상으로 건너가는 이 시대의 모습에서 노자의 '현대성'을 찾아볼 수 있다는 거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과거의 가치, 이념, 신념으로 지금의 삶을 규정짓고 판단할 수 없다. 현대 사회는 점점 다양성과 개별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변화해나가고 있다. 나도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보편적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고 내 삶을 평가하는 일이 이제는 너무나도 불편해졌다. 내가 배워온 것,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맞춰서 살아보려 할수록 내가 원하는 삶과 멀어졌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보려고 해도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해도 되는 건지 자신할 수 없었다.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을 읽으면서 노자가 바라본 세계와 그 세계 속에서 유일한 존재인 '자기'로 살아가는 한 사람을 만났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 같기도 하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초인 같기도 하다. 그는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행복하다. 나도 이제 슬쩍 안경을 벗고 세상을 보려고 한다. 처음에는 흐릿하고 불분명한 시야에 당황하고, 두렵겠지만 차차 나아질 거다. 지식, 이념, 신념, 가치 따위를 벗어나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느끼려고 노력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삶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고 노자가 말한다. 노자는 어서 그 무식한 안경을 벗어던지라고 내 등을 떠민다. 나는 "맞아, 맞아."하며 노자의 뜻을 따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노자가 강조했던 '무위(無爲)'를 떠올려보면 맹목적으로 긍정하고 수용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노자 사상을 대할 때도 내가 주인이 되어 받아들이고, 그와 대립되는 면까지 살펴야 한다. 노자의 다른 손에 또 다른 안경이 들려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최진석 교수는 나처럼 마냥 "좋아, 좋아" 하는 사람들을 향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앞으로 노자를 또는 다른 철학자를 만날 때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무언가를 배울 때는 항상 머릿속에 '내가 배우는 목적은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다.'라는 생각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남의 말만 듣고, 남의 말만 쫓아다니며, 남의 글만 들이파는 일로 평생을 바친다면 이는 복종적으로 혹은 굴종적으로 사는 것밖에 안 됩니다. 자기표현이 부족한 것은 많이 배우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기를 표현하려는 욕망이나 베짱이 작아서일 가능성이 큽니다.(p.217)

철학 초보인 내가 현대 철학자 노자를 만났다. 뜻밖에도 말이 잘 통한다. 노자와 이야기 나누다 보니 멋모르고 싫어했던 공자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 공부가 얕았다. 조만간『논어』도 다시 읽어봐야겠다. 지금 당장은 최진석 교수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 노자를 좀 더 만나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