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동주』는 사촌 형 송몽규와 함께 경성에 도착하는 1938년 3월 23일부터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하는 1945년 2월 16일까지의 윤동주의 삶에 대해 들려준다. 그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식민지 시대를 재현한다. 1938년에서 1945년 사이에 일제가 조선인의 민족정신과 문화를 말살하려고 시행한 조치들이 조선인의 삶을 어떻게 통제하고 황폐화시키는지 생생하게 담아냈다. 시간과 공간을 감각적인 언어로 묘사하는 작가의 문체는 금세 나를 끌어당겼다.『시인 동주』를 읽는 동안 윤동주의 곁에서 시대를 함께 살아내는 기분이 들었다. 

   이름 꽤나 알렸다는 지식인들이 현실에서 도피하거나 순응할 때도 윤동주는 '문학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놓지 않았다. 조선의 말과 글을, 조선의 정신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성찰했다. 생각이란 걸 하면 목숨이 위험해지는 시대였다. 생각을 우리말이나 글로 표현하면 안 되는 시대였다. 그러나 윤동주는 끝내 시를 포기하지 않았다. 교과서에서 만났던 윤동주의 시는 딱딱한 해석과 산만한 밑줄로 덧칠되어 나와는 상관없는 텍스트였다. 『시인 동주』를 읽으면서 윤동주의 삶 속에서 시가 어떻게 건져 올려지는지 알게 됐다. 현실이 자신을 옥죄여 올수록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파고들어 점점 고결해지는 윤동주의 영혼이 시를 통해 드러났다. 맑고 투명한 시인의 영혼이 내 마음을 천천히 그러나 강렬하게 흔들었다. 세상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경험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만들어갈 수 없다는 게 특히나 젊은이에게는 얼마나 큰 불행인가. 때로는 몹시 부끄러워하고, 때로는 굳건히 마음을 다 잡는 윤동주의 모습에서 식민지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한 젊은이의 슬픈 운명을 마주한다. 가슴이 아리다.

  그러나 윤동주와 그의 벗들.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그들의 젊음은, 우정은 아름다웠다. 그들은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고 진심으로 서로를 걱정하고, 아꼈다. 윤동주와 늘 함께 지내다 같은 해 옥사한 몽규, 윤동주의 시집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자필 원고를 목숨을 걸고 지켜낸 처중과 병욱, 그의 시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삼불. 윤동주는 억울하게 죽었지만 그의 시는 죽지 않았다. 벗들이 지켜낸 그의 시는 오늘날까지 꿋꿋이 살아있다. 맑고 순수한 윤동주의 영혼은 살아남았다.

  책을 덮으며 책 속에서 만난 윤동주의 말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 어떤 것을 쓰건 혼신을 힘을 다해 진실하게 그리면, 그리고 그 진심이 읽는 이에게 전해지면 순정하다, 순수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의 내면에 치중하건, 그를 둘러싼 아픈 현실을 그려 내건……. 순수는 작가가 먼저 정해 놓은 작품의 성격이 아니라, 읽는 이의 가슴에서 비로소 느껴지는 것 아닐까?"(p.104)

  『시인 동주』 통해 윤동주의 삶과 시를 엮어 낸 작가의 진심을 나는 가슴으로 느꼈다. 작가는 우리 민족의 아픈 현실을 다루면서 그 현실을 살아낸 순수한 인간, 윤동주의 내면을 진실되게 담아냈다. 덕분에 나는 일제 시대 우리 민족의 슬픈 삶을 생생하게 경험했고, 맑은 영혼과 시를 지켜내고자 애썼던 시인 윤동주를 가슴으로 만났다.

윤동주의 시를 다시 소리 내어 읽어본다. 별이 내 가슴으로 들어온다. 문득 시가 그리워진다. 책장 앞으로 가 먼지 쌓인 시집들을 오랜만에 꺼내 읽었다. 『시인 동주』가 잊고 있던 내 안의 윤동주를, 내 안의 시들을 그렇게 되살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