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오란 산수유 꽃 길을 걸어가는 스님의 뒷모습을 한 참을 바라보았다.
그 무엇에도 묶여 있지 않은 듯한 스님의 가벼운 발걸음. 맑은 뒷 자태...

잠시...가진 것이 너무 많아 늘 무엇을 잃어버릴까봐 전전긍긍하는 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매 순간 바쁘고 정신없는 삶을 살다보니 무엇이든 급히 끝내버리려고 한다.
찬찬히 곱씹고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보는 느린 시간을 못 견뎌하는 것이다.

<꽃그늘 환한물>의 첫 장을 넘겼을 때,  한 장 한 장 빨리 넘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림 속에 들어차 있는 여백을 느끼고, 스님의 느린 발걸음을  쫓아가기엔 내가 너무 바빴다.

하지만 <꽃그늘 환한물>과의 두 번째 만남에서 해야햘 일들을 모두 제쳐두고, 
여유를 가지고 스님의 길을 쫓아가기 시작하니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책장을 느긋하게 넘길 수 있었다. 그제서야 스님이 살고 계신 암자의 풍경들이 그려지기 시작했고, 산새와 함께 스님을 쫓아 개울가를 거닐 수 있었다.

아, 여유롭다. 내 맘이 여유로워졌다.
해야 할 것이 많고, 지켜야 할 것이 많아서 늘 전전긍긍.
다른 사람 돌아볼 시간 없이 나 자신만 돌보기도 힘들었다.

<꽃그늘 환한물> 속 스님은 욕심없이 청빈한 삶을 살아 세속의 우리가 보기에는 가난해보인다. 하지만 그 마음 속은 말할 수 없이 풍요롭고 여유로와서 한낱 미물들도 품에 보듬을 수 있다. 누가 진정 부자인가.

늘 곁에 두고, 
맘이 분주할 때  
불행해질 때
한 번씩 스님을 만나봐야겠다.

바쁜 삶의 쉼표가 되어줄 따뜻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