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 (三島由紀夫)
가와바타 야스나리 (川端康成)
다자이 오사무 (太宰治)

내가 좋아하는 일본 작가들이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자살. 
본인이 아니고서야 자살의 이유를 다 알 수 없겠지만, 일단 알려진 이유는 이렇다.
미시마 유키오는 탐미주의 문학을 하다 갑자기 문학의 세계에서 벗어나 극우주의자로 돌변해 활복자살을 했고,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허무주의를 서정적으로 그리던 작가로 미시마 유키오의 자살에 충격을 받고 역시 자살했다. 

<인간 실격>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의 패전 이후 인간존재의 이유에 회의적이던 일본을 잘 표현하던 작가였는데, 그도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특히 다자이 오사무는 다섯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는데, 
그의 자소설 <인간 실격>에서 그가 느꼈을 인생의 허무함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원죄의식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서로 속이면서, 게다가 이상하게도 전혀 상처를 입지도 않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정말이지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인간의 삶에는 충만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저한테는 서로 속이면서 살아가는, 혹은 살아갈 자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이야말로 난해한 것입니다. 인간은 끝내 저한테 그 요령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그것만 터득했더라면 제가 인간을 이렇게 두려워하면서 필사적인 서비스 같은 것은 안 해도 됐을 텐데 말입니다. 인간의 삶과 대립되어 밤이면 밤마다 지옥 같은 괴로움을 맛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p.27>

인간으로 사는데 자격이 필요할까? 
예절이 우리보다 더 바른 일본인에겐 인간으로 사는 자격이 더 엄격했을거다. 
스스로 끼니와 살 곳을 해결하는 것 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을 보살피고,
거기에 가면을 쓰고라도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태도를 가져야 했을테니. 

<인간실격>은 순수하고 외모도 귀여운데다 천재라 불릴만큼 똑똑하던 아이가
세상 사람들이 쓴 '가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면서 시작한다.  
이 아이가 어릴때는 '익살'이라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자라서는 그것도 맘대로 되지 않아 자살과 퇴폐적 삶을 반복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다 스스로 죄의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한없이 나약해져
인간다움을 포기해버리고, 인간실격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의 죄의식은 어디서 오는걸까? 
주인공은 인간 자격을 얻기 위한 기본적인 의무를 놓아버린 사람이다. 
가면을 쓰고 세상을 대하는 사람들을 대하려면 똑같이 가면을 쓰고 대해야 하는데,
'익살'로 얼마간 세상에 맞서다가 더 나은 방법을 끝내 찾지 못하고 자신의 가면을 쓰지 못한 사람. 
스스로 익살꾼이 되어버린 것도, 가면을 제대로 쓰지 못한 것도 
모두 그대로 또 죄의식으로 남아 자신을 더욱 괴롭혔다. 

음지의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는 비참한 패자, 또는 악덕한 자를 지칭하는 말 같습니다만, 저는 태어날 때부터 음지의 존재였던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이 세상에서 떳떳하지 못한 놈으로 손가락질당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언제나 다정한 마음이 되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그 '다정한 마음'은 저 자신도 황홀해질 정도로 정다운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p.51>

민음사본의 <인간실격>에는 오사무의 단편 <직소>가 함께 실려있는데, 
<직소>는 예수를 배신했던 가롯 유다의 고백글이다. 
예수에 대한 애증, 자신에 대한 애증으로 넘쳐 속사포처럼 풀어놓는 유다의 고백을 읽다보면. 
유다가 <인간 실격>의 주인공과 매우 닮아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세상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잘 모르는 체, 
다수가 걷고 있는 겉으로는 맑고 깨끗한 길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
즉, 가면을 쓰지 못한 사람이 주인공과 유다였다. 

<인간실격>의 주인공이 스스로를 음지의 사람이라고 부르며, 세상의 다른 패자들에게 동지감을 느끼듯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유다에게 연민을 가졌나보다.
유다가 쏟아내는 말들을 읽어보면 예수를 증오하면서도 사랑했음을 알 수 있는데,
다자이 오사무 역시 겉과 속이 다른 이 세상을 증오하면서도 사랑한 것이 아닐까?
<인간 실격> <직소> 두 작품 모두 어쩐지 다자이 오사무의 세상에 대한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