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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자연과 대지를 소유하는 것이 정당한가?
인간이 다른 인간을 소유하고, 평가하고, 벌하는 것이 정당한가?
톨스토이가 평생 품고있던 질문이다.

몇십만의 인간이 한 곳에 모여 자그마한 땅을 불모지로 만들려고 갖은 애를 썼어도, 그 땅에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게 온통 돌을 깔아버렸어도, 그곳에 싹트는 풀을 모두 뽑아 없앴어도, 검은 석탄과 석유로 그슬려놓았어도, 나무를 베어 쓰러뜨리고 동물과 새들을 모두 쫓아냈어도, 봄은 역시 이곳 도시에도 찾아들었다. <1권 p.9>

<부활>의 첫 구절.
대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봄에 이렇게 싹을 틔워내는 신성한 존재인데,
신이 마련한 이 신성한 아름다움을 인간이 무슨 권리로 소유하고 있는걸까?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이 사실 정당하지 않다는 걸 안다.
인간이 자연과 대지를 지배하고 소유하는 것,
소유를 기준으로 계층이 나뉘는 것,
계급을 유지하기 위해 타계급을 억압하는 것.

그리고 <부활>에는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부조리한 세상이 당연하다 여기는 사람들,
세상은 부조리하지만 구태여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
사실을 직면하는 사람들.

처음 얼마 동안 네흘류도프는 이에 맞서보았지만, 이 투쟁은 그에겐 너무 무리였다. 네흘류도프가 선이라고 믿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겐 악으로 보였고 이와는 반대로 악이라고 믿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선으로 취급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투쟁에서 네흘류도프는 졌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를 믿는 대신 남을 믿게 되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자신의 진실을 부정하기가 몹시 불쾌하였다. 그러나 이 감정도 곧 잊을 수 있었다. <1권 p.87>

<부활>의 주인공 네흘류도프는 러시아 귀족으로 사실을 직면할 줄 모르는 사람,
즉, 자신보다 남을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어릴적엔 정신적 자아가 진실된 자아라고 믿은 적도 있었으나,
자신을 믿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란 쉽지 않았고,
그래서 정신 어딘가를 간지럽히는 부조리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않으려는 사람이었다.
쉽게 순응하는 천성에 따른 것이기도 했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살기 때문에 큰 불쾌감 없이 살고 있었다.

그러다 카튜샤를 보게 된다.
배심원으로 재판정에 나갔는데 마침 사건의 피고인이 카튜샤였다.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카튜샤가 윤락녀가 되어 있는데다 살인까지 저질렀다니.
네흘류도프는 카튜샤와의 과거가 들어날까 두려워 카투샤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지 못하고,
다른 배심원이나 판사, 검사는 모두들 사건을 빨리 처리하려 하는 바람에
카튜샤는 정삭참작이 되지 않고 어이없이 유배형에 처해진다.
이 사건으로 네흘류도프는 자신이 그동안 무슨일을 저질렀는지 깨닳게 되었다.
한때 솔직한 것을 자랑으로 삼고 언제고 진실을 말하는 것을 신조로 삼았던 자신이
무서운 허위, 빈틈없는 허위에 갇혀 살고 있었으며,
그런 생활에 몸이 배어 만족하고 살고 있었음을 깨닳게 된거다.

부끄럽고 추한 일이다. 추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1권 p.175>

카튜샤를 다시 만나기 전의 네흘류도프처럼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은 많다.
카튜샤만해도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저열한 인간이 아니라고 위안하곤 했다.
그 인생관이 변하는 순간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잃게 될테니.
자신은 가장 타락한 인간도 아니고 오히려 매력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는데 편했을거다.
그래서 카튜샤는 자신과 똑같은 인생관을 가지고 있는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

네흘류도프가 카튜샤의 구제를 위해 만난 노장군도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었다.
자신이 군인으로 저지른 수많은 살인, 횡포는 다 나라와 황제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거기에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노장군이 자신의 인생관에 회의를 가질 수 없는 것 또한 자기보호본능일 것이다.
자신이 만년에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존경받는 장군이기는커녕
사실은 늙어서까지 아주 쉽게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는 불한당임을 스스로 인정해야만 할테니까.

네흘류도프는 웅장한 법정이며 초상화, 촛대, 안락의자, 법복, 두꺼운 벽, 창문 등 여기저기를 둘러보고는 이 건물이 거대하다는 것을, 그리고 이를 둘러싸고 있는 갖가지 제도는 훨씬 더 거대하다는 것을 문득 생각해 냈다. <1권 p.217>

네흘류도프는 자신의 과거 과오로 카튜샤가 타락했음을 알고, 카튜샤를 돕고 결혼을 하기로 한다.
말 그대로 새로운 네흘류도프의 탄생, '부활'이다.
자신의 신념을 되찾기위해 토지 소유를 포기하고 농부들에게 나누어주고,
카튜샤 뿐 아니라 카튜샤를 통해 알게된 여러 무고한 죄수들도 구제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또 만만치가 않다.
모르는 체로 살 때에 육체는 편했는데,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에는 제도와 현실이 너무 견고하고 거대했다.
또 학대받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학대하는 사람에게 찾아가 부탁을 하는 처지가 되어 괴로웠다.

교묘하게 위장된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 위에 소수 특정인들의 만족과 편의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소수의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의 고통스러움은 물론 그들이 저지르는 과오와 비인간적인 일에 대해서 하나도 깨닫지 못했고, 또 깨달을 수도 없었다. <2권 p.45>

네흘류도프는 그동안 외면했던 현실을 직접 눈으로 보게된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 핍박해온 지배계층이
공교롭게 어쩌다 걸려든 젊은이를 체포해 감옥에 넣고는
자신들의 편의에 맞게 아무렇지 않게 젊은이의 인생을 결정해버리는것.
법을 만들어 사회를 다스리겠다는 관리들이
대상에 따라 다른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
사회를 안정하겠다면서 운이 나쁜 피지배계층을 양심에 아무런 꺼리낌도 없이 지독하게 벌하는 것을 본 것이다.
법에 사람이 사라져버렸다.

즉 처음에는 이상하고 모순적이며 우수꽝스럽다고 여겨지던 것들이, 점차 실생활 속에서 명확한 깨달음을 얻게 되자 갑자기 그의 앞에 유일한 진리로 우뚝 선 것이다. 그래서 네흘류도프는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악에서 구원받기 위한 유일한 길은, 하느님 앞에서 언제나 자신을 죄인으로 알고 자기가 남을 벌주고 선도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 있음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2권 p.374>

카튜샤도 정치범들과 감옥생활을 하며 새롭게 '부활'했다.
예전의 카튜샤로 돌아가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기대에 부흥하려고 노력했고,
네흘류도프가 자신으로 인해 희생하는 것이 안타까워 시몬손의 청혼을 허락한다.

이렇게 카튜샤가 떠나자 갑자기 네흘류도프는 방향을 잃는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어쩔줄 모르는 채로 성경을 읽다 한가지 깨달음을 얻는다.
인간의 죄는 다른 인간이 판단하고 벌 할 수 없다고.
내흘류도프의 두번째 '부활'인 셈이었다.

<부활>은 혁명가 톨스토이의 이상이 가득한 책이다.
대지를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인간이 다른 인간을 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하지만 그의 이상이 현실에서 너무 쉽지 않다는 것 또한 다루고 있었다.

톨스토이가 그린 이상향은 아이같이 순수해서 어쩐지 현실적으로 이루기 어려운 듯 보인다.
하지만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에서 레흘류도프가 더이상 부조리에 동조하지 않고 그릇된 것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부활'의 과정이 감동적인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