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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화가 김명숙의 그림(Grace&GravityⅢ)을 보고 울었다는 한 중년의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울 정도로 사무친 그림을 만난 적 없었기에 도대체 어떤 느낌이면 울 수 있을까 궁금해서 마침 열리고 있던 김명숙 개인전을 보러 국제화랑인가, 사간동 초입의 어떤 갤러리를 찾아간 적 있다.
초대형 종이 위에 미친 바람의 흔적마냥 사정없이 휘갈긴 사선들에 의해 간신히 형태를 갖춘 형상들은 처참하도록 서글픈 느낌을 주었다. 춥고 아프고 슬프지만 어떤 굽히지 못할 의지를 가진 구도자의 정신세계를 그림으로 나타낸다면 딱 저런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 그러나 그 황량한 느낌을 백번 공감했음에도 나는 그 중년처럼 눈물짓지는 못했다.

처음으로 그림을 보고 감동이나 어떤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은, 대학1학년 때 교보문고에서 만난 에드워드 호퍼의 화집에서였다. 갑자기 멍해지는 듯한 충격, 뇌 속에 동굴이 있어 한순간 한없는 깊이로 빠지는 듯한 야릇한 감동이었다. 이런 그림도 있구나…, 그림이 아니라 드라마를 가진, 한없이 쓸쓸한 풍경으로 채워진 단편소설을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그림을 좋아하고 자주 미술관과 갤러리를 찾아다녔고, 해외에서도 미술관부터 챙겨보는 스타일이지만 지금 이 순간 내 인생의 그림 한 점을 말하라고 한다면 딱히 없다. 오히려 신디 셔먼이나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결정적인 사진 한 장에 더 마음이 오래 남는 듯하다.

어쨌든 지금까지 그림 앞에서 운 적은 없다. 물론 좋았고, 감탄했고, 눈물이 나기 직전까지 느꼈던 그림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림은 책이나 영화와 달리 눈물을 짓게 하는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 같다. 왜 일까? 그림 앞에서 울었다면 그것은 그림의 위대함도 한몫했겠지만 개인적인 추억이나 경험, 생각의 일부가 오버랩되어 만들어진 어떤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이 책은 네이버의 예술가의 서가인가? 거기에서 신경숙 작가가 적극 추천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막연하게나마 그림 앞에서 충격받는 스탕달 신드롬에 대한 책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며 구입했다.

뭔가 잡힐 듯하다 지루해지고 잡힐 듯하다 지루해지길 여러 번, 407쪽의 책을 거의 한 달 반 만에 어렵게 읽어냈다. 아마도 그림 앞에서 울어 본 적 없었기에, 백퍼센트 공감하는 마음이 없었기에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아, 이렇게 우는 사람들도 많구나, 하는 새삼스런 감탄과 확인도…)

요지는, 20세기 회화는 날것의 반응보다 분석을 요구하므로 어렵게 여겨지고, 그 결과 진정한 미술사는 사라지고, 흩어진 정보만 건조하게 모아놓은 수다스런 캐리커처만 남게 된다는 사실, 또 많은 전문가들이 그림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고 자신이 사랑에 빠져 있다는 생각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기에 그림 앞에 울 일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가슴에서 시키는 대로, 격렬하고 예측할 수 없이 진정 가슴으로 느끼자는 것이 저자인 제임스 엘킨스 교수의 논점이다.

이 책(연구)을 위해 저자는 그림 앞에서 운 적 있는지 그 경험을 알려달라는 신문광고를 내고 많은 전문가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써서 그 답장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무척 정성을 많이 들였고 이것저것 인용하거나 연구한 내용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시종일관 ‘왜 눈물을 흘리지 않는지’에 대해서 추궁하듯이 글이 연결되니 한순간 지루해지고도 한다. 감상과 이론이 혼용되면서 감상적인 마음이 되었다가 아닌가 싶어 다시 진지해지는 등 독자로서 마음의 중심을 잡기 힘들었다. 솔직히 뒤에 부록으로 실은 답장의 편지들이 더욱 호소력 있고 마음에 와 닿았다. 흔치 않은 소재로 된 괜찮은 책이지만 기대만큼 아주 재밌게 읽지는 못했다.

*스탕달 신드롬: 1871년 1월 피렌체를 방문한 소설가 스탕달이 산타 크루체를 만나고 겪은 황홀경. 스탕달은 매우 진지한 감식가였던 요한 빙켈만을 기려 그가 태어난 마을인 슈텐달을 자신의 필명으로 삼았다.

*마크 트웨인 질환: 안티 스탕달 신드롬, 마크 트웨인이 피렌체로 여행가서 ‘최후의 만찬’에 대해 감흥을 얻지 못함. 마크 트웨인은 미시시피 강 뱃사람들이 사용하는 2길 깊이를 필명으로 선택했다.

*니오베 신드롬: 미술사학자가 자신이 보고 있는 작품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는 일

예술 <그림과 눈물>/ 제임스 엘킨스/ 정지인/ 아트북스/ 2007.12.19. 1쇄/ 2009.1.16. 2쇄/ 2009.1.14. 인터파크~ 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