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스타일 중독자들> / 마크 턴게이트/ 노지양/ 애플트리태일즈/ 2.5/ 인터파크 1.29~12 

  마크 턴게이트라는 한 마케팅 전문 저널리스트가 이 책을 쓴 것은 2004년이고 책이 나온 것은 2005년이다. 번역되어 나온 것은 2009년 2월 5일로 되어 있다. 오리지널이 나온 지 4년이 지났단 말이다. 그 사이 패션계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특히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적인 공황 직면에 들어선 최근까지를 아우른다면 엄청난 갭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출판사가 뒤늦게 이 책을 냈을까 생각해 보면, 이 책을 최근 패션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패션 트렌드의 흥망사와 마케팅 활용서로 보거나 아니면 이 시절 예언했던 것들이 지금 얼마나 많이 맞는지 확인해 보기 위한 것(이것은 순전히 내 생각)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서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일명 ‘패스트 패션’이라 불리는 하이 스트리트 패션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라는 기사를 읽고 과연 패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고민한 것이 최근이다. 패션은 다른 여느 소비물에 비해 노골적으로 ‘욕망’을 재생산하는 통제불능의 힘이 있다. 더 새롭고 더 돋보이고 더 앞서나가고자 하는 욕망의 롤러코스터에 한번 올라타면 내려서기가 쉽지 않다. 그 욕망의 뒤에는 패션 디자이너, 기획자, 광고회사, 홍보회사, 미디어 등의 총체적인 마케팅 네트워크가 얽혀져 있다. 한국도 이러한 글로벌 트렌드에 편성, 2000년대부터 바야흐로 명품 전성시대, 명품의 대중화를 맛보고 있다. ‘머스트 해브’ 아이템, ‘잇 백’과 같은 용어들과 함께 한국의 모든 여자들이 옷과 핸드백과 선글라스 그리고 구두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것도 명품 디자이너의 것으로.

  이 책에 소개된 이야기들은 어쩌면 패션사업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에겐 무척 익숙한,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들일지도 모른다. 크게 보자면 19세기 말 워스, 푸아레 등에 의해 열린 기성복 시대가 샤넬에 이르러 본격적인 디자이너 시대로 접어들었고, 1990년대 중반 톰 포드에 의해 구찌가 기사회생되면서 패션은 더 이상 옷이 아닌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 책을 쓸 당시엔 칼 라거펠터의 샤넬, 존 갈리아노의 디올, 톰 포드의 구찌 등 패션 디자이너들의 역량이 최고조에 달했던 전성기였다(현재 톰 포드는 이브 생 로랑을 거쳐 <싱글맨>이라는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고 한다). 2000년대는 막강한 수퍼모델의 시기를 지나 셀러브리티라 불리는 연예인들의 패션 파워가 두드러지면서 이들을 추종하는 소비자들도 기꺼이 돈을 지불하여 브랜드의 역사에 스스로 참여, ‘매스 럭스(massluxe, mass+luxury)’라는 신조어를 만들면서 적극적인 구매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저 패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패션을 테마로 한 마케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기에 책의 많은 부분이 브랜드의 흥망사에 집중된다. 과도한 라이센스 남발로 이미 브랜드 파워를 잃은 지 오랜 ‘피에르 가르뎅’을 반면교사 삼아 많은 브랜드들이 고유한 색깔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역사에는 항상 부침이 있기 마련. 집안싸움으로 거의 망해가던 구찌를 톰 포드라는 탁월한 디자이너를 영입함으로써 구찌 그 자체뿐만 아니라 패션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게 된 것. 덕분에 ‘구찌식으로 하다(Doing Gucci)’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영국 트렌치코트의 대명사였던 버버리도 ‘구찌식으로’ 성공하여, 한때 차브족들의 교복으로 전락했던 버버리를 새로운 감각으로 무장, 전통의 현대화에 성공한 사례로 남는다. 전통기업의 회생뿐만이 아니다. 명품구두로 알려진 ‘토즈’는 신생기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존F.케네디, 오드리 햅번 등의 클래식 흑백사진을 활용한 광고 덕에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자리 잡게 되어 마케팅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또한 무모하리만큼 젊고 창의적인 디자이너들의 성공사례도 소개된다. 이탈리아 농촌에서 재봉틀로 청바지를 만들던 소년들의 성공담인 ‘디젤’, 일 년에 11,000벌의 다른 디자인을 만들어내며 패스트 패션 신화의 주인공인 된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 지방의 ‘자라’ 등의 이야기는 모든 성공담이 그러하듯 흥미롭다.

  이밖에 창의적인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탄생하는지 직접 인터뷰를 통해 밝히고, 유행색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막강해진 패션사진가들의 영향력과 셀러브리티라 불리는 연예인들의 영향력(이것도 요즘은 좀 시들하다고), 패션잡지의 생리, 프레타 포르테와 오트 쿠튀르의 세계, 패션쇼의 자리(프론트 로)서열 등 패션계의 실질적인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소개된다.

   마크 턴게이트가 예측했던 문제들 - 매장 자체가 하나의 스타일이 되거나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어 문화로서 자리 잡게 된 점, 소비자들의 직접 체험의 시대가 온 점, 레트로 브랜드의 회생, 빈티지 유행, 스포츠 브랜드의 패션화, 인터넷 명품 쇼핑, 윤리적 패션에 대한 요구, 스타일리스트가 된 똑똑해진 소비자들 등이 빠른 속도로 현실화 되었다. 세계적인 경제난 속에서 패션계가 어떻게 대응하게 될지 앞으로 두고 봐야 알겠지만, 요새 열리고 있는 뉴욕 패션위크의 소식들을 보면 아직은 괜찮아 보인다. 다만 소비자들은 이런 흐름보다 더 빨리 움직인다는 사실. 마크 턴게이트의 말대로 패션사업은 궁극적으로 패션의 희생자일지도 모른다.

 

PS 1. 아,, 자꾸만 눈에 띄어서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외래어 표기법과 띄어쓰기, 기타 소소하게 잘못된 부분을 제외하고 이 책에는 몇 가지 교정할 것들이 있다. 아마 급하게 책을 내느라 한 번 더 못 본 것 같다. 책을 읽다 보면 활자에 허점이 많은 책들은 대부분 신생 출판사나 작은 출판사의 책들이다.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것 같다. 기본부터 철저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 60면, 위에서 3번째 중 “고객들이 꿈꿀 있게 해주는…” -> “고객들이 꿈꿀 수 있게 해주는…”

◎ 125면, 위에서 5번째 줄 “그 중 853년에 개장한 봉 마르세가” ->“ 그 중 1853년에 개장한..”

◎ 157면, 위에서 12번째 줄 “그녀의 빨간카락이나…” -> “그녀의 빨간 머리카락이나…”

◎ 171면, 밑에서 5번째 줄 “…시간과 공을 들어야 합니다” ->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합니다.”

◎ 185면, 위에서 5번째 줄 “그녀가 한 인터뷰테서” -> “인터뷰에서”

◎ 260면, 위에서 두 번째 줄 “, 로비 윌리암스 조지 마이클, ” -> “로비 윌리암스, 조지 마이클”

◎ 314면, 위에서 4번째 줄, …끝이 없다. ->…끝이 없다.”

PS 2. 책을 읽다 보니 이제는 번역자들까지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은 작년에 재밌게 읽은 <보헤미안의 파리>(북 노마드)를 번역한 노지양 씨가 번역한 책이다. 그래서 더욱 반갑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