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디 사발과 르 콩세르 드 나시옹

12월 21일 일요일 저녁 8시 택시를 타고 예술의전당 음악당에 갔다. 
토,일 연일 집에서 뒹굴다 보니 내 몸은 그새 침대만을 향한 구심력이 생겼고 갑작스레 쌀쌀해진 날씨도 한몫해 나가기 상당히 귀찮아진 상태였다. 그러나 오페라극장 재개관과 함께 입구 공사 마무리가 끝나 환하게 바뀐 전당 앞에 다다르자 “와~” 소리와 함께 정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회장에서는 음악 감상의 시간도 좋지만 로비에서의 시간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샹들리에 불빛 때문인지 모두가 반짝거린다. 커피를 마시고 사람들을 만나고 인사하고 두리번대고 반가워하고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특히 다른 공연장에선 별로 볼 수 없는 남자관객들이 많은 것도 음악회장의 특징 중 하나이다. 

조르디 사발과 르 콩세르 드 나시옹은 내 기억으로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방한이다. 그 전에 조르디 사발과 에스페리옹21 공연이 2005년인가에 한번 있었다. 작년 공연을 못 봐 올해는 꼭 한번 보고 싶었다. 오늘의 프로그램은 퍼셸의 <요정의 여왕> 모음곡과 헨델의 <수상음악>, <합주 협주곡 사단조>, <왕궁의 불꽃놀이>였다. 사실 <요정의 여왕>은 잘 모르는 곡이었는데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 특히 ‘에코’ 부분은 상당히 귀여웠다. 3명의 관악기 주자들이 옆문으로 빠져나가길래 왜 그런가 했더니 ‘에코’ 부분을 연주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호른 연주가 계속해서 ‘삑사리’ 비슷하게 났다. 삑사리 날 때 첼로 연주가가 웃었다. ㅋㅋ 그런데 고악기 호른은 원래 소리가 잘 나지 않는다고 한다.

헨델의 <수상음악>과 <왕궁의 불꽃놀이>는 사실 그 동안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었다.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처럼 행사음악이란 느낌이 강했고, 왠지 런던의 거만한 왕족들이 떠올라 마음 깊이 좋아하지 못했었다.

오늘 공연은 조르디 사발이 편안한 검은 의상을 입고 자연스럽고 유연한 팔움직으로 지휘를 했고, 세 곡의 앙코르 곡이 있었다. 팬 서비스 차원에서 직접 한국말로 인사도 했고, 끝내는 기립박수를 받았다.(나시옹스 답게? 한국인 타악주자도 한 명 있었다)

30인조의 고음악 전문 악단을 담기엔 조금 큰 듯한 예술의전당 음악당이었지만 음악회는 무난하게 마무리 되었다.

오케스트라 공연을 볼 때마다 지휘자가 팔을 벌리는 만큼의 삼각형의 어떤 소리의 집이 만들어져 오케스트라의 머리 위에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고, 가끔씩은 그 소리의 집이 눈에 보이기도 한다. 음악이 만들어내는 실질적인 아우라라고 해야 할까? 이번 공연에서도 조르디 사발이 만드는 거대한 삼각형으로 된 소리의 집을 나는 보았다. 아마 표현이 그다지 현실적이진 못해서 그렇지만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 대부분 보았으리라고 믿는다. 유동적이면서도 형태를 지닌 어떤 소리의 덩어리, 음악의 집을….

오늘은 집에서 조르디 사발과 르 콩세르 드 나시옹(Le Concert des Nations)의 헨델을 듣는다. 오디오로 듣는 음악은 공연장에서 듣는 음악에 비해 한결 깔끔하다. 그러나 상상으로 오케스트라를 떠올려야 한다. 이번 음악회에서 소리의 분야(섹션)를 나름 머리로 정리해뒀기 때문에 시디로 듣는 음악에서도 왠지 생생함이 느껴지는 듯하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아는 만큼 더 사랑한다고 표현해야 하나, 어쨌든 음악회 다녀온 후 다시 듣는 수상음악과 왕궁의 불꽃놀이는 예전보다 더 마음깊이 다가오는 듯하다. 바로크 시대에 100명이 넘는 주자들이 템즈강변에서 고악기를 들고 연주한다고 상상하니 뭉클해지기도 한다.

아, 내년이 퍼셀의 탄생 350주년과 헨델의 서거 250주년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발은 이번 공연을 이들을 기념하는 2009년의 전야제로 한국에서 시작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