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평론가 안치운은 언제나 고독해 보인다. 그에게는 주류 세계와는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되는 아웃사이더로서의 역할이 숙제로 주어져 있고, 그는 그 숙제를 신성한 종교처럼 성실히 받들며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평론이란 것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거나 한 작품의 사회와 역사적 위치, 또 진실과의 연관을 추적하는 일이라 볼 때, 자신만의 잣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독은 필수조건이고, 고독한 만큼 평론가로서의 신뢰는 쌓이기 마련이다.
안치운은 연극계에서도 "감히 말하건대 연극의 불황은 관객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작가의 역량이 부족하고 공연 수준이 낮기 때문"(<연극 반연극 비연극> 중)이라고 아무런 주저 없이 비판할 수 있을 만큼 아부하거나 눈치 보는 일이 없다. 때문에 혹자들에게는 부담스런 존재가 되기도 하겠지만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사람의 평이라면!"하는 믿음과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평론이라는 것 자체가 조금이라도 진실의 더 가까이로 가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자연만큼 확실한 텍스트도 없지 않을까? 인간이 만든 작품이 아닌 자연이 대상일 경우 색안경 끼지 않고 맨 눈으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바라보고 느끼는 힘이 역설적이게도 바로 평론가의 임무가 아닐는지….
그래서 안치운의 여행은 그의 글쓰기와 역할만큼이나 고독하다. 그는 누구나 가는 관광지나 볼거리를 찾아 여행하지 않는다. 이제는 거의 사라져 가는 오지가 그러하듯 사람의 발길이 간신히 흔적으로 남아 있는 옛길을 찾아 홀로 배낭을 메고 떠난다. 동강을 따라 정선에서 영월까지, 진동계곡과 방태산의 아침가리로, 또 경상도 응봉산 용소골과 봉화의 옛길, 주왕산의 산길을 찾아, 충청도의 의풍리 옛길과 쌍령과 차령의 고갯길로, 전라도 지리산과 해남 달마산 옛길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깊은 산을 찾아 그리고 그 속에 묻혀 있는 옛길과 사람들을 찾아 떠난다.
이러한 그의 산행은 자연을 정복하거나 구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땀흘리며 걷는 행위를 통해 자연의 숨결을 느끼고 그 안에서 삶과 자연의 진정한 소통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이 책이 단순히 옛길 길라잡이로서의 역할이 아닌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길 곳곳에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와 정찬의 소설 <깊은 강>, 이육사의 시 <절정>에서 밀란 쿤데라, 단테, 파스칼의 아포리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과 삶의 담론들을 쏟아놓으며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인간 실존에 대한 사유로까지 길의 폭을 확장시켜 놓으며 걷기 때문이다.
또한 전국 각처의 작은 마을과 골짜기마다 그것의 이름과 어원을 따져, 뜻을 알 수 없었던 한자식 조합어의 열쇠를 풀어 아름다운 우리말의 기원을 찾아주는 것도 이 책이 가지는 큰 미덕 중 하나이다.
안치운은 정치적으로 암울한, 불의와 폭력으로 난무하던 시절 대학을 다닌 젊은이로서 시대에 대한 분노와 저항으로 무작정 산으로 들어갔고 이 때부터 산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평이한 등산로는 피하고 인적이 끊긴 오지의 길을 택해 예정도 기약도 없이 산으로 걸어 들어가 그곳에서 원시의 숨결을 지닌 숲과 만나면서부터 인생의 방향과 인간이 가야할 길을 찾아낸 것이다. 이 때부터 시작된 산행은 20여 년 동안 지속되어 지금은 오지 여행가이자 프로급 수준의 암반 클라이머로 유명하다고. 산행에서 돌아온 후 옛길 위에서 가슴으로 써내려 갔던 사유와 감상을 틈틈이 기록한 것이 이 한 권의 책이라고 한다.

안치운은 1959년 서울생으로 중앙대 연극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정부 장학생으로 파리 국립 제3대학(소르본느 누벨) 연극연구원에서 연극교육학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연극평론가이자 호서대 디지털문화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 <추송웅 연구>, <연극교육제도론>, <연극감상법>, <한국 연극의 지형학>, <연극 반연극 비연극> 등이 있다.
*노동처럼 유익하고 예술처럼 고상하고 신앙처럼 아름다운 산행(19세기 이탈리아의 산(山) 사람 귀도레이의 말, 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