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본기, 표, 서, 세가, 열전으로 구성된 기전체 역사서.

본기는 황제에 관한 기록이다.

표는 연표, 서는 국가 제도와 문물에 관한 전문적 논문, 세가는 황제를 보필했던 제후에 관한 기록이다.

열전은 사기의 백미로 모든 사람에 관한 기록이다.

열전 70권 가운데 맨 마지막은 태사공자서로 사마천 자신의 가계와 사기의 나머지 129권에 대한 요약이 주된 내용이다.

 

사기는 재미있고, 진한 감동이 있다.

작은 이익에 흔들려 손바닥 뒤집듯 신의를 저버리는 오늘날의 세태를 비웃기라도 하듯 신의를 위해 죽음도 불사한 예양과 형가 같은 이들의 이야기는 진한 감동을 준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를 알려주는 진퇴의 지혜가 있다.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있다.

부당하게 핍박당하거나 희생당한 뒤 발분하여 통쾌하게 복수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다양한 사람들, 별별 인간 군상을 통해 언제든지 자신의 처지에 대입시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자기 스스로 노력해서 얻지 않은 것은 정당한 것이 아니라는 자세.

실용적이면서도 윤리적인 경제관(열심히 돈 벌어 부자 되세요, 직업에 귀천이 없다)

세태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새로이 틔울만한 풍자가 있다.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어떻게 빠져나가는지를 지켜보면 딱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다.

"보통 사람은 자기보다 열 배의 부자에 대해서는 욕을 하고, 백 배가 되면 무서워하고, 천 배가 되면 그 사람 일을 해 주고, 만배가 되면 그 사람의 노예가 된다"고 했다.

 

1. 사기의 탄생

*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

종군기자 로버트 카퍼. 자신이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다면, 그것은 현장에 충분히 접근하지 않았기 때문.

 

잉어가 용이 된다는 사마천의 고향. 용문.

과거에 급제하거나 출세했을 경우 등용문에 오르다는 표현의 유래가 바로 용문이다.

황하의 3/5지점으로 물살이 굉장히 세서 강물을 거슬러 오르기가 쉽지 않은데, 급류 오르기에 성공하면 잉어가 용이 된다고 해서 용문이라 한다.

 

사마천이 천하 여행.

19세까지 용문에서 농사 짓고 가축 키우며 주경야독했는데, 경독제(농사를 지으며 공부 하는 집)가 지금도 있다.

한무제는 사마천이 19세 되던 해 자신의 무덤인 무릉을 조성하게 한다. 고대 중국의 제왕은 즉위 순간부터 자신의 무덤을 조성했는데(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무제는 16세에 즉위해 70세까지 황제 자리에 있었으니 54년 동안 무덤을 만든 셈이다.

황제의 무덤 만?는 많은 인원이 동원되는 국책 사업이며 무덤 축조를 위한 신도시를 만들었다.

부자를 이주시키고 유협 곽해처럼 말썽 많은 요주의 인물을 이주시켰다. 명망 있는 사람도 이주시켰고.. 이렇게 여러 계층을 이주시켜 하나의 도시를 만들었다. 사마천은 19세에 장안에서 멀지 않은 무릉으로 이주한 덕에 새로운 문물을 접하면서 견문을 넓혔다.

사마담은 아들에게 역사가로서의 자질을 길러주기 위해 사마천이 20세 되던 해에 여행을 권유했다. 중국 전역을 돌아보는 대장정.

아버지가 말단 관리였기에 여비도 충분하지 않았고, 무뢰배에게 잡혀 목숨이 위험했던 적도 있었다.

이때의 경험은 태사공 자서를 비롯해 군데군데 언급되어 있다.

결국 젊어서 사서 한 고생이 사기 저술의 밑거름이 되었고, 사마천의 정신 세계를 형성하는 데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기는 현장에 가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기록할 수 없는 대목이 많이 나온다.

한산이 건달의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을 참으며 훗날을 기약한다는 과하지욕은 어떤 기록에도 나오지 않는다.

 

한고조 유방은 성격이 야멸차고 독한 사람이었다. 배짱도 두둑했다. 서초 패왕 유방에게 연전연패하면서도 좀 과장하면, 마지막에 딱 한 번 이기고 천하의 주인이 된 인물이다.

 

학자마다 유방의 성공 비결을 다양하게 드는데, 유방의 독함을 성공 비결로 보기도 한다.

권력자는 독해야 한다. 얼굴은 두껍고 심장은 시커매야 한다는 것이다.

 

사마천은 28세가 되어야 녹봉을 받는 낭중이 되어 벼슬살이를 시작한다. 30대 중반까지 별다른 기록이 없던 사마천의 생애는 35세(기원전 111년)부터 풍부해진다. 학자들은 사마천이 그 사이 공백기에 주로 학업을 연마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대에는 달력을 만드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역사는 시간과 공간의 학문이다.

 

황제를 거스른 사마천.

사건의 발단은 한나라의 라이벌인 흉노였다. 정치/경제적 안정을 바탕으로 야심차게 굴기하던 한무제는 그전까지 열세혔던 흉노와의 대외관계를 역전시키기 위해 대흉노 정책을 공세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대대적인 흉노 정벌이 단행되었다.

무인 집안 출신의 이릉 장군도 흉노 정벌에 나섰는데, 장수들 사이의 알력과 충돌 탓에 이릉 장군의 5000결사대는 흉노의 3만 기병에게 패한다.(중과부적이란 고사가 여기서 나온다) 400명만 살아남은 것. 흉노에 포로로 잡힌 이릉 장군도 항복하고 말았다.

한나라 조정은 매국노 이릉을 성토하는 장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사마천은 이릉은 중과부적으로 어쩔 수 없이 거짓 항복한 것이며 훌륭한 장수라고 변호했다. 이 발언이 무제를 분노케 했다. 이릉의 무능이 아닌 한나라 군의 작전 실패라는 말이..

군 최고 사령관인 이광리는 한무제의 처남이었다. 한무제의 애첩 이부인의 오빠인 이광리 장군에 대한 비판은 곧 한 무제에 대한 비판이었던 셈. 괘씸죄에 걸린 사마천은 한무제에 의해 황제를 무고한 죄로 옥에 갇힌다. 48세.

 

이후에도 상황은 사마천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이릉이 흉노에게 병법을 가르치고 있다는 헛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무제는 이릉의 가족을 몰살시키고, 사마천에게도 사형을 명했다. 당시 한나라 법에 사형을 면하는 방법은 2가지. 목숨 값으로 50만 전을 내는 속전이 있었고, 다른 방법은 궁형이었다. 사마천은 돈이 없었으며 황제의 심기를 건드리기 싫은 지인들도 못 본 체 했다.

궁형은 심리적/정신적 고통까지 동반하는 치욕의 형벌이었다.

과거 궁형은 전 세계 어느 나라든 존재했는데, 중국의 경우 생식기를 고환까지 단칼에 잘랐다. 그러면 요도만 남는데 소변이 나오는 구멍밖에 남지 않는다. 그런 다음 요도에 큰 거위 털을 박아 잠실(궁형을 받은 사람들을 수용하는 난방)로 내쳤다.

궁형을 당하면 몸이 차가워지기 때문에 체온을 유지시켜주기 위해서 였고, 거위 털을 박아 오줌이 나오도록 했다 그렇지 않으면 요독증에 걸려 죽는다.

 

치욕은 견딘 까닭

사마천 49세. 친구 임안에게 보낸 보임소경서를 읽으면 얼마나 치욕스러워했는지 짐작이 간다.

무슨 면목으로 부모님 묘소를 참배할 수 있을지. 하루에도 아홉 번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가만히 집에 앉아 있으면 멍하니 무엇인가를 잊은 듯 어처구니가 없고 자꾸만 부끄러워져 언제나 등골에 땀이 흘러 옷을 적신다네.

하지만 사마천은ㅇ 자신의 의지를 친구 임안에게 다음과 같은 명언으로 남겼다.

사람의 죽음 가운데는 아홉 마리 소에서 털 하나를 뽑는 것 같은 가벼운 죽음이 있는가 하면, 태산보다 훨씬 무거운 죽음도 있다네.

궁형의 치욕으로 이미 죽은 육신이지만, 정신만은 오롯이 살아 청사에 길이 빛날 사서를 쓰겠다는 결심이 대장부 사마천의 태산과 같은 선택이었다.

사마천 스스로 운명을 선택했을 뿐 아니라 운명이 사마천을 선택한 결과이기도 했다.

궁형 이후의 사기에는 한제국과 한무제를 비판하는 시각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특히 사회의 곪아 터진 부분과 권력층의 문제점을 실랄하게 지적하며 세태를 통찰하게 되었다.

 

대나무를 얇게 오린 죽간이나 나무를 얇게 오린 목간에 일일이 붓으로 써 그것을 끈으로 연결하면 책이 되고, 책을 둘둘 말면 권이 된다. 사기라는 책 하나는 도서관 규모로 방대한 분량이었다.(52만 6500자)

 

천하를 얻으려면 반드시 황하를 건너야 했는데, 꼭 지나야 할 곳이 용문의 나루터였다.

그래서 지명이 하진이며 지금도 나루터가 남아 있다.

당태종 이세민의 아버지 당고조 이연도 용문을 건너 장안으로 진격해 당나라를 세웠으며, 명나라 말기 농민 봉기군 수장이었던 틈왕 이자성도 이곳을 건넜다. 국공내전 때도 홍군(팔로군)은 용문을 건너 한성시를 해방시켰는데, 1949년 장개석 정권이 대만으로 쫓겨가고 그해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다.

 

웃음 보따리 명재상.

건륭제의 총애를 받은 왕걸은 농담도 잘하고 입담도 센 사람이다. 황제가 아이 머리통만한 장군 감을 선물받았다. 황제는 대단한 감이라 잘 보관해두고 먹어야겠다고 하자, 왕걸이 폐햐. 그 정도 장군 감은 저희 고향에 가면 돼지도 먹지 않습니다고 했다. 황제는 놀란 표정으로 흠차대신을 보내 진위를 조사하도록 했다.

농담 한 번 했다가 졸지에 황제를 능멸한 죄로 죽음을 면키 어려운 신세가 되고만 왕걸. 황제에게 거짓을 말했으니 사형이 기다렸다. 안절부절못하는 왕걸의 모습에 그의 막료가 아이디어를 냈다 떫고 단단한 감을 돼지에게 강제로 먹이는 연습을 시키자는 것이다. 그는 곧장 한성으로 달려가 자신의 복안을 실행했다. 돼지들은 감이 단단하고 떫은 줄도 모르고 마구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내 토해냈다. 강제로 감을 먹이려 할수록 돼지들은 고개를 돌리며 감을 쳐다보지도 않고 도망치기 바빴다.

며칠 뒤 흠차대신이 한성에 도착했다. 흠차대신은 한성의 돼지들이 감만 보면 고개를 외로 꼰 채 줄행랑치기 바쁜 모습을 두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왕걸은 황제에게 상을 받았다.

 

야작와라는 동굴 비슷한 구동이. 야작은 멧참새를 뜻하므로 맷참새가 재잘거리는 장소라는 뜻이다. 이광리 장군의 여동생 이부인이 한무제의 총애를 이용해 배갯머리 송사로 오빠를 대중군으로 앉힌 사실을 비꼰 지명이다.

 

2. 와신상담의 변주곡, 오월춘추

* 섶에 눕고 곰쓸개를 빨며

궁형. 남성 호르몬이 억제되면서 여성 호르몬의 분비가 많아진다. 수염이 없어지고, 목소리도 변한다.

 

와신상담. 장작더미에 누워 과거의 치욕을 생각하며 곰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다짐한다.

원수지간에 같은 배에 탄다는 오월동주의 주역인 오나라와 월나라 그리고 초나라가 엮인 이야기다.

 

무간도. 무간도는 지옥, 저승을 뜻하는 말이다. 줄거리는 경찰 조직에 범죄자 집단이 첩자를 침투시키고 경찰도 범죄자 집단에 첩자를 심어두는. 이들은 짐짓 서로가 서로에게 정보를 흘려가며 물고 물리는 승부를 벌인다. 영화가 끝나도 최후의 승자는 분명치 않다.

무간도의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가 하는 것이다.

경찰에 침투해 있는 범죄자는 자기가 진짜 경찰인 줄 착각하고 범죄자 조직에 침투해 있던 경찰은 자기가 진짜 범죄자인 줄 착각한다.

살다보면 자신의 역할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때가 많다는 말이다.

무간도의 모티브는 중국 후한의 조엽이 쓴 오월춘추다. 오나라와 월나라의 쟁패 과정에 등장하는 한 자객이 모티브를 제공했다. 물론 오리지날 원전은 사기다.

 

* 춘추 시대를 연 한 미인의 웃음.

기원전 770년부터 시작되는 춘추시대를 기점으로 주나라 왕조를 서주, 이후를 동주라 한다.

서주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표적인 미인이 한 사람 있는데, 포사다. 주나라 12대 유왕 때 옥에 갇힌 자신의 지도자를 구하기 위해 포나라가 바친 미인으로 알려져 있다. 유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아들 백복을 낳았다.

포사는 웃지 않는 미인이었다. 어쩌다 한 번 웃으면 유왕은 완전히 넋이 나갈 정도였다. 유왕은 그녀를 웃게 하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했다. 하지만 별무소용. 실수로 피어오른 봉화로 주변 제후와 군사들이 황급히 수도로 달려와 허둥대는 모습과 잘못 피운 봉화임을 알고 허탈해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그만 피식 한 번 웃었던 모양이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어색했던지 그녀는 다시 큰 소리로 웃었다고 한다. 이 모습을 본 유왕은 포사가 한 번 웃으니 눈썹이 다 살아 있는 것 같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그 후로 심심찮게 봉화를 올려 포사를 웃겼다.

포사에게 넋이 빠진 유왕은 조강지처인 왕비 신후와 태자 의구를 폐하고 포사와 그녀가 낳은 백복을 왕비와 태자로 삼았다. 그러자 폐비의 아버지인 신후가 격분하여 견융을 이끌고 주나라 수도인 호경으로 쳐들어 왔다. 유왕은 위급함을 알리기 우해 진짜로 봉화를 올렸으나 누구 하나 달려오지 않았다.

주 본기와 흉노 열전에도 전하는 포사 이야기는 이솝 우화에 나오는 늑대와 양치기 소년으 오리지널 버전이다. 이때가 기원전 771년. 기원전 770년부터 춘추 시대가 시작되는데, 유왕의 아들 평왕이 도읍을 동쪽 성주(하남성 낙양 인근)로 옮겼기에 동주 시대라고 부른다.

그리고 동주 시대는 다시 춘추와 전국 시대로 나뉜다.

 

춘추 시대는 주 왕조가 도읍을 옮긴 때로부터 진나라의 대부 한/위/조 세 성씨가 기원전 403년 진나라를 세 나라로 분할하여 각각 제후국으로 독립할 때까지 시대라.

전국 시대는 기원전 403년부터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다.

춘추 시대는 공자가 엮은 노나라의 역사서 춘추에서 유래했고, 전국 시대는 한나라 유향이 정리한 전국책에서 유래되었다.

 

춘추 시대에는 제후들 간의 회맹을 통해 맹주로 추대된 제후가 실질적으로 천하를 호령했는데, 다섯 명의 제후가 크게 활약했다. 때문에 이를 통칭하여 춘추오패라 한다.

춘추 오패는 주 왕실을 인정하되 실질적인 권력은 자신들이 휘둘렀다. 제 환공, 진 문공, 진 목공, 초 장왕, 오 합려(혹은 월 구천)

 

전국 시대에는 동쪽의 제나라, 남쪽의 초노라, 서쪽의 진나라, 북쪽의 연나라, 중원의 한/위/조 등 일곱 나라가 자웅을 겨루게 되는데 전국 칠웅이라 부른다.

 

* 춘추전국 시대의 과오기, 오월춘추.

오월춘추 시기는 춘추 시대에서 전국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라 할 수 있다.

춘추 시대에는 명분과 실리를 모주 중요시했다면 전국 시대에는 오직 실리만 쫓는 약육강식의 정글이었다.

 

초나라 출신의 오자서. 오월동주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모도원(날은 저물었는데, 갈 길은 바쁘다. 그러니 도리를 역행할 수밖에)

굴묘편시(무덤을 파헤쳐 시체에 채찍질을 가한다)

오자서의 복수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고사성어다.

 

자서는 아버지 오사를 시기한 비무의 음모로 초나라 평왕에게 아버지와 형이 살해당하자 죽음을 피해 오나라로 도망쳤다. 자신을 뒤쫓는 초나라 추격병을 따돌리고 어떻게 하면 오나라로 도망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밤새 머리가 하얗게 쇠어 절로 변장한 모습으로 무사히 초나라 관문인 소관을 넘었다는 이야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오자??복장검이다.

물고기 배에 숨긴 검이란 뜻이다.

 

와신상담.

오나라왕 부차와 월나라왕 구천과 관련 있다. 기원전 496년 오나라 왕 합려는 구천에게 패했다. 화살을 맞고 중상을 입은 합려는 아들 부차를 불러 아비의 원수를 갚아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부차는 가시가 많은 섶에 누워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했다. 부차가 와신하고 있다는 첩보를 받은 구천은 오나라를 먼저 쳐들어갔으나 오히려 대패하고 말았다. 월나라의 수도 회게마저 포위되고 결국 회계산에서 농성하다 항복하고 만다.

 

구천과 신하 범려는 3년 동안 부차의 종이 되고 구천의 아내는 부차의 첩이 되었다. 또한 구천은 중국의 4대 미녀 가운데 한 명인 서시마저 부차에게 바쳤다. 그리고 부차가 서시에게 빠져 있는 틈을 타 월나라가 영원이 오나라의 속국이 될 것을 맹세하고 목숨만 겨우 부지하고 월나라로 돌아왔다.

 

그 후 구천은 침상 곁에 쓸개를 매달아 놓고 항상 쓸개를 핥으면서 회계의 치욕을 잊지 않았다. 구천의 상담은 20년에 걸친 철저한 재기의 몸부림으로 승화되어 결국 또 하나의 역전 드라마를 연출한다.

 

오나라 부차가 제나라를 공격하는 등 온통 중원의 대권에만 신경을 쏟고 있는 틈을 타 구천은 오나라를 항복시켰고, 부차는 오자서에게 면목이 없다며 자신의 얼굴을 천으로 덮게 한 다음 자살하다. 그와 함께 오나라도 멸망했다.

 

* 오월동주의 매력남 범려

사냥할 때 토끼를 잡고 나면 토끼를 쫓던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고사성어. 토사구팽.

월나라 재상이던 범려가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맹주가 된 구천과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가족을 데리고 월나라를 떠나면서 친구인 문종에게 남긴 말이다. 한신이 유방에게 죽음을 당하며 이 말을 인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기에서 범려의 경우를 비롯해 토사구팽이 세 군데나 나온다.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당시의 유행어였던 셈이다.

 

범려의 매력은 최고의 절정기에 스스로 물러난 즉, 박수칠 때 떠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데 있다.

오나라를 멸망시킨 구천은 범려에게 강산을 반반씩 나눠 가지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범려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짐을 챙겨 떠나버렸다.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범려가 남긴 말 가운데 어려울 때 생사를 걸고 같이할 수 있는 사람과 잘될 때 같이할 수 없는 사람을 구별해야 된다는 말.

 

범려에 대한 기록은 부자 30명을 기록한 화식열전에도 등장한다. 정치가, 군사가, 장사꾼으로 세 번 변신한 범려는 모든 것에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오월춘추 시대에 손자병법을 남긴 손무도 뛰어난 인물이다. 하지만 사마천의 기록에는 손무에 대한 분량이 야박할 정도로 짧다.

 

* 원수를 재상으로 기용한 제환공

사기의 두드러진 특장 가운데 하나는 복수 관념이다.

은혜와 원수는 대를 물려 갚는다는 중국 속담(몽골인도 그렇게 생각했다. -허영만의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참조)

 

대를 이어 복수하다.

오자서. 오자서를 이해하지 않고는 오월춘추 시대에 대한 이해가 불가능할 만큼 중요한 인물이다.

(사기는 치욕을 견디고 원수에게 복수하는 복수관이 매우 강하게 깔려 있다.)

오자서의 복수 대상은 초나라 평왕이다. 하지만 오자서가 복수할 무렵 그는 이미 죽은 뒤였다. 보통의 경우라면 대게 거기서 끝난다. 그러나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꺼낸 뒤 300번이나 채찍질을 가했다.(굴묘편시)

 

오자서는 평와응로부터 도망쳐 여러 나라를 떠돌다 오나라로 와 장차 오나라 왕이 되는 합려를 키운 장본인으로 초나라와 오나라의 싸움, 오나라와 월나라의 싸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만약 오자서가 없었다면 오월동주라는 대하드라마 자체가 무미건조해졌을 것이다.

 

오나라가 멸망한 기원전 470년. 이 해를 기점으로 춘추 시대는 막을 내리고 전국 시대의 막이 오른다.

춘추 시대는 유왕과 포사의 봉화 놀이로 인해 주나라가 동쪽으로 천도한 기원전 770년부터. 한 여자를 웃기기 위해 시작된 어처구니 없는 놀이의 산물인 셈인데, 이처럼 역사는 가끔 어이없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

오월춘추 시대에 등장하는 자객들의 암살 이야기도 그런 경우다. 특히 역사가 한순간에 극적으로 바뀌는 상황은 고대일수록 더 심하다.

 

초나라, 오나라, 월나라는 고도로 발달된 청동기 문화를 보유했던 문명국으로 결코 오랑캐 땅의 야만국이 아니었다.

 

* 둘째도 서자도 왕위를 넘보다.

사기 초 세가에 따르면 초나라 성황은 죽는 순간까지 잔머리를 굴린 인물이다. 아들 상신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시간을 벌기 위해 곰발바닥 요리를 먹고 싶다고 했다. 이를 간파한 아들에 의해 목을 매고 자결할 것을 강요받고 죽었다.

사방 1000리로 영토를 키운 성왕의 초나라에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절대 권력을 가진 제왕은 권좌에 오래 앉아 있을수록 판단력이 흐려지게 마련이다. 성왕도 47년간 제위했다.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다. 이때 아들이 정치에 개입하고 권력 갈등과 재산 상속 문제가 불거졌다.

 

보통 이런 문제는 젊은 첩이나 후궁을 총애하는 데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고대에는 처첩 제도가 매우 일반화되어 손쉽게 젊은 첩을 얻었다. 첩을 얻어 둘만 잘 살면 그만이겠지만, 그 사이에 생기는 자식이 탈이다.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어린 자식이 예뻐 보인다. 여기서 젊은 첩은 밤마다 배갯머리송사를 벌이고 늙은 아비의 판단력은 갈수록 흐려진다. 결국 왕은 나이든 태자를 폐위시키고 어린 아들을 후게자로 삼으려 한다.(탈적 문제) 반대로 태자가 왕을 폐위시키는 경우도 발생한다.

어느 쪽이든 그 끝은 태자와 첩의 자식인 서자 간의 권력 투쟁으로 치달아 나라가 벌집을 쑤셔놓은 꼴이 되고 만다.

 

중국 봉건제의 가장 큰 특징은 적장자 계승의 원칙이다. 하지만 적자라고 해서 모두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 받지도 못한다. 장자여야만 한다. 적장자. 그것이 오랜 관례였다. 그 적장자의 자리를 빼앗는 것, 그것이 탈적이다.

동양사에서 대부분의 궁중 암투는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바로 탈적의 문제다.

 

조선 시대에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다섯째 아들인 태종 이방원이 쿠데타를 일으킨 전례가 있다.

당나라를 실질적인 반석위에 올려 놓은 당태종 이세민도 둘째 아들이었다. 적자지만 대권 승계권이 없었던 그는 '현무문의 정변'을 통해 정장자인 형(태자)과 동생을 죽이고 아버지 당고조 이연마저 태상왕의 자리로 밀어낸 다음 황제에?가 벌어졌다. 성왕이 늙어가면서 태자도 당연히?? 태자의 측근 세력이 형성되었고, 태자는 자기만 바??다. 오직 바라는 것은 아버지가 얼른 죽어 하루빨리 왕위를 게을 들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폐위시키고 자식뻘 되는 젊다는 소문이었다. 탈적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상신??왕이 총애하는 상신의 고모 강미를 식사에 초대해 고?? 말대로 하자 화가 난 강미는 대왕이 태자를 다??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반숭의 전술은 격장술, 즉 상대편 소기의 목적을 이룬 상신과 반숭은 선수를 쳐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성왕에 이어 상신이 제위에 오르니, 그가 초나라 목왕이??발바닥 요리를 마지막으로 대접했다면 초나라의 정P>아버지의 주검을 밟고 제위에 오른 상신을 거쳐 장왕때가 되면 초나라는 일약 초강대국으로 부상한다.

기원전 7세기로 이 시기부터 오자서의 할아버지가 등장하고 오자서의 아버지 오사도 등장한다.

초나라 장왕은 춘추오패 가운데 네 번째 주자였다.

 

* 춘추오패의 첫 번째 패자.

제나라 환공. 관중과 포숙. 관포지교의 주인공.

진나라 문공.

진나라 목공.

초나라 장왕.

오나라 왕 합려.

 

앞의 네 주자는 기원전 7세기 사람인데 비해 오나라 왕 합려는 기원전 6세기 사람이다.

초장왕은 중요한 사라인데, 기원전 7세기와 기원전 6세기는 같은 춘추시대지만 전혀 다른 시대 상황을 연출했다. 전쟁 형태도 달라지고, 사람들의 의식이나 가치관도 달라졌다.

사마천은 이들의 리더십과 인재 경영론에 깊은 관심을 갖고, 그들의 행적을 서술하고 있다.

 

제나라 환공의 이름은 강소백. 그가 왕위에 오르기 전 형님인 강제아가 제나라 양공으로 재위하고 있었다.

양공은 정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춘추 시대를 시끄럽게 만든 엽기적 스캔들까지 일으켰다. 여동생과 간통한 것이다.

이복 여동생이기는 했지만.

여동생은 문강으로 노나라 환공에게 시집갔기 때문에 노부인으로 불렸다. 문강은 시집 가기 전 오빠인 양공과 사통하는 사이였다. 시집간 뒤 관계가 정리되는 듯했는데, 노환공과 함께 제나라를 국빈 방문한 차에 또다시 간통을 저질렀다. 결혼한 부인이었으니 그야말로 간통이었다.

노환공이 이 사실을 양공에게 따지자, 도리어 양공은 자신의 추문을 막기 위해 역사 팽생을 시켜 노환공을 부축하는 척하다 갈비뼈를 부러뜨려 죽였다.

국빈 방문 중이던 최고 지도자를 잃으 노나라로부터 외교적 항의가 빗발쳤다. 제양공은 팽생을 죽여 사태를 적당히 무마하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무마될 스캔들이 아니었다. 비난 여론은 갈수록 확산되었고 결국 제나라 대신 연칭과 무지 등이 공모헤 쿠데타를 일으켜 강제아를 죽이고 무지가 왕위에 오른다.

신하가 군주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춘추 시대 대사건이었다. 이를 시발점으로 기원전 7세기 100년 동안 신하가 군주를 내쫓거나 죽인 이른바 축군살군 사건이 40여 차례가 넘었다.

 

한편 강제아가 폭정을 일삼는 동안 그의 동생들은 재앙을 피해 타국을 전전하며 망명 생활을 하공 있었다. 제환공 강소백 역시 거 나라로 몸을 피했는데, 포숙이 보좌하고 있었다. 둘째 형님인 규는 노나라에서 관중과 소홀의 보필을 받으며 망명 생활을 하고 있었다.

 

소백과 규는 제나라 새 임금 무지가 제나라 임치성 근처 옹림에 놀러 갔다 옹림 사람들에게 시해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누가 더 빨리 제나라 수도인 임치로 입성하느냐가 보좌의 주인공을 가르는 기준이 되었다. 관중과 포숙은 자신들이 모시는 공자를 상대보다 더 빨리 귀국시키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소백이 한 발 앞서 나갔다. 규는 초조했다. 규는 관중에게 단기필마로 재빠르게 앞질러 가 소백의 길을 가로막고 그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관중은 규의 말대로 소백에게 화살을 날렸다. 소백이 죽은 줄만 알고 느긋하게 임치에 도착한 규와 관중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소백이 이미 제나라 국군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소백을 맞힌 줄 알았던 관중의 화살은 소백의 허리띠 쇠 부분에 맞았는데, 이때 소백이 기지를 발휘해 피를 토하는 것처럼 연기하며 규 일행을 방심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 낳아준 분은 부모지만 알아준 이는 포숙이었다.

제환공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인재 등용이었다. 춘추 4인방 모두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공자 규가 제위에 오르지 못하자 노나라는 제나라와 전쟁을 벌이지만 패하고 만다. 승리한 제환공은 두 가지 조건을 달았다. 공자 규를 죽이라는 것과 관중을 소환하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직접 죽이기 위해서였다. 결국 관중은 죄수용 수레에 실려 제나라로 돌아왔다. 그런데 관중이 제나라 국경으로 들어서자 포숙은 관중을 좋은 수레에 바꾸어 태우고 신속히 임치로 돌아왔다. 포숙이 환공을 설득해 사전에 안배해놓은 것이다. 당시 포숙이 환공을 설득한 말이 유명하다.

 

'제나라만 다스리시려면 저나 습붕정도로 충분하지만 패자가 되어 여러 제후를 통솔하는 우두머리가 되고 싶다면 관중 없이는 안 됩니다. 그러니 지난 원한은 잊어버리고 관중을 과감하게 발탁하십시오'

환공은 포숙의 말을 받아들여 지난날의 묵은 원한을 깨끗이 청산하고 관중을 발탁한다.

 

관중의 말 가운데 곳간에서 인심, 예절, 명예가 나온다는 것이 있다.

사마천이 관중의 말을 빌려 화식열전에 인용함으로 더욱 유명해진 말이다.

관중은 정치 전문가이자 경제 전문가였다. 상공업을 중시했으며 농업을 중시하던 당시 풍토와는 많이 달랐다.

 

제나라는 바닷가 쪽에 위치한 나라였기 때문에 제염업, 어업, 무역업 등이 특히나 중요했다. 관중은 나라의 모든 입지 조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국책을 결정해하고 그를 통해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재능과 덕을 칭찬했고, 사람을 알아본 포숙아도 칭찬했다.

'나를 낳아주신 분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이었다'

 

* 낙천과 유머로 고난을 이겨낸 진문공.

사람은 감성과 이성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때론 감정적이고 때론 이성적이고.

인간은 이성과 감정을 조화시키려 애쓸 때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이 부분을 정확하기 인식하며 쓴 책이 사기다. 인생의 약점을 극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가 사기에 가득차 있다.

 

*구구셈하는 노인을 발탁한 제환공

춘추오패의 첫 챔피언은 제 환공이다. 그를 보좌한 이가 관중이고 관중을 추천한 사람은 포숙이다.

관중과 포숙은 관포지교라는 유명한 고사성어를 남겼다. 두 사람은 젊었을 때 같이 사업을 했다. 이윤이 남으면 늘 관중이 많이 가져갔는데, 포숙은 관중의 집이 가난해서라며 한 번도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관중이 사업에 실패해 부도를 냈을 때도 포숙은 관중이 운이 없어서일 뿐 어리석어 그런 것은 아니라며 관중을 위로했다.

관중이?신 노모 때문이라며 관중을 위로했다.

 

포숙은 제환공에게?? 받아들여 관중을 과감하게 기용했다. 포숙의 우정도 대단하지만 자신을 죽이려던 인물을 재상으로 삼은 제환공의

제 환공의 열린 인사 정책은 정료지광. 정료는 뜰에 횃불을 매달아 밝혀놓는다는 뜻.

자신의 집무실, 궁전 뜰에 횃불을 밝혀놓고 24시간 개방했다. 인재라면 언제든 찾아와라. 그러면덕분에 1년 동안 상당히 많은 인재를 발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나자 인재들의 발길이 끊 되고 싶었던 제환공은 늘 인재에 목말라 했다. 그랬기에 인재의 발길이 끊어지니 마음이 초조해??구했다. 제 환공은 노인에게 어떤 재주가??답했다. 제환공은 어이없어 하며 어린아이도 능히 할 수 있는 재주가 무슨 재주냐며 따졌다. 그러자 노게 인재를 등용하시고 1년쯤 지났습니다. 그런데??니까. 내 재주를 가지고 주군께 봉사하지 못군의 눈높이가 너무 높은 까닭입니다. 이런 마당에 구구셈밖에 모르는 저를 발탁하시면 적어도 저보다 더??.

 

깊이 깨달은 제호나공은 그에게 자문역을 맡겼다.

 

* 박수 칠 때 떠날 줄 아는 지혜

노나라가 타국의 침입으로 고전하고 있을 때 제환공이 구원병을 보내준 적이 있었다. 노나라가 제환공을 국빈으로 초대해 노나라를 방문했다. 성대한 대접을 받고 귀국할 때, 노나라 국군은 계속 배웅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제나라 국경을 넘고 말았다. 당시엔 오직 천자만이 국경을 넘어 배웅할 수 있었다. 제환공은 노나라 국군의 체면을 생각해 그가 넘어온 만큼의 땅을 떼어 주었다. 아직 낭만적인 춘추 시대였다.

 

춘추시대의 정치와 외교를 아루르는 명분은 존왕양이였다. 주나라 천자를 받들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뜻이다. 당시 오랑캐는 남쪽의 초나라였다. 그런데 초나라가 점점 강대해져 중원의 나라들을 넘보기 시작했다. 때문에 초나라를 상대하기 위해 내세운 구호가 존왕양이였다. 이를 처음 내세운 이가 제환공이다.

 

인재를 잘 활용하며 상공업을 장려해 제나라를 최초의 패주국으로 우뚝 세운 그는 42년간 재위했다. 20대에 공자 규와 왕위 계승 전쟁을 벌일 때부터 70세 가까이 통치했다. 그러나....

아무리 현군이라고 해도 최고 권력자 자리에 너무 오래 있으면 말년에 문제를 일으키게 마련이다. 통계 수치를 봐도 그렇다.

중국의 제왕 600명 가운데 재위 년수, 수명, 즉위할 당시의 나이 등을 통계로 내 보았더니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명군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20대 전후에 즉위해 20년 안팎 정도를 재위하다 50대 중반 이전에 사망하는 것이 최고의 제왕 반열에 오를 수 있는 명군의 조건이었다. 인간의 자연적인 수명과 명군의 함수관계를 알려주는 재미있는 통계다.

세종대왕도 20세에 즉위해 50대에 세상을 떠났다.

40,50년씩 황제 자리에 있던 제왕들은 대부분 말년에 문제를 일으켰다. 부자지간의 권력 다툼, 탐관오리와 간신배의 득세, 부정부패, 사치 향락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니 자연이 준 수명이란 선물도 잘 누려야 명군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너무 일찍 요절해 버리는 것도 문제다.

 

결국 인간의 의지가 건전하게 작용할 때, 또 의지가 살아 있고 판단력도 살아 있을 때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자신이 물러날 때를 잘 아는 것이 현명한 사람의 조건'이라는 것.

 

42년간 최고 통치자였던 제환공도 말년에 정치를 망치고 말았다. 포숙과 관중은 먼저 세상을 떠났다.

말년의 제환공 주위에는 요주의 인물이 세 사람 있다. 역아, 개방, 수조. 3간신.

관중은 세상을 떠나면서 환공에게 신신당부했다. 이 세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하지만 제환공은 그들 모두 나를 기쁘게 해주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물리칠 수 있겠냐고 했다.

 

역아는 요리사다. 어느 날 제환공이 먹어보지 않는 것이 없는데, 사람 고기만 먹어보지 못했다고 하자 그는 다음날 새로운 요리를 들고 왔다. 환공이 너무 맛있어 무슨 고기냐고 묻자 그는 자신의 어린 아들이라고 했다.

개방은 어머니를 떠나 15년 동안이나 외지에 있으면서 한 번도 돌아가지 않을만큼 천륜의 정이 없는 매정한 사람이었다.

수조는 제 스스로 생식기를 잘라 환관이 된 다음 제환공 곁에서 아부를 일삼으며 군주의 총기를 흐린 인물이었다.

 

* 춘추의 첫 패자 굶어 죽다.

 관중의 유언에도 말년의 제환공은 귀를 닫고 말았다. 그리고 제환공이 병석에 눕자 간신 3인방은 마음껏 제환공을 농락했다. 그들은 병든 환공과 통하는 모든 통로와 언로를 차단했다.세 사람을 거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환공을 만날 수 ㅇ벗었다. 환공의 병이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도 세 사람은 환공이 굶어 죽도록 방치했다. 시체에 구더기가 들끓어 별궁 담장을 기어나올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 춘추 시대를 호령하던 패주의 죽음치곤 너무나 비참했다.

 

래임덕이란 말이 있듯이 권력은 늘 막판이 문제다. 채근담에도 말년을 보면 그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관중이 이룩해놓은 합리적인 국가 시스템 덕분에 제나라는 환공이죽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강대국이 되었다.

 

관자.

노동이 없고 노동과 토지의 결합이 없으면 재부를 창조할 수 없다. 천하의모든 생산물은 모두 노동력의 사용에서 나온다.

 

* 춘추 시대 두 번째 패자 진 문공.

중이로 기구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이다.

7세기 초반 헌공 때 국력이 신장되기 시작했는데 나라가 강대해질 무렵 헌공이 그만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 역시 탈적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헌공은 진나라 주변의 융적계 여융을 정벌해 여희와 여희의 동생을 얻고 둘을 매우 총애했다. 그리고 헌공 12년 여희는 늙은 헌공에게 아들 해제를 낳아주었다.

 

문제는 헌공에게 장성한 아들이 셋이나 있었다는 점이다. 태자 신생, 공자 이오, 그리고 중이였다. 모두 능력 있는 젊은이들었다.

적장자 원칙에 따르면 당연히 태자가 왕위에 올라야 했다. 그리고 이오와 중이 순이다.

하지만 헌공은 해제를 얻은 뒤 태자를 폐할 마음을 먹었다. 게다가 여희 또한 막후 공작을 폈다.

그녀는 영악하게도 늘 헌공 앞에서 신생을 칭찬했다. 이미 남편의 마음을 파악했던 것이다. 남편이 해제를 태자로 세우고 싶어 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역이용해 신생을 칭찬한 것이다. 그럴수록 헌공은 여희를 더욱 신임하?ㅇ애했다.

 

여희는 사전 공작을 마무리한 후 신생에게 거짓 편지를 보냈다. 당시 신생은 진나라 수도에서 떨어진 곡옥이라는 중요한 지역의 책임자로 가 있었다.

제사를 지낸 신생은 관례대로 제사에 사용한 고기를 아버지 헌공에게 보냈다. 마침 헌공이 사냥을 나가고 없어 고기를 궁중에 보관하게 됐다. 여희는 그 틈에 고기에 독약을 넣었다. 이틀 후 헌공이 사냥터에서 돌아왔다. 헌공이 제사 고기를 맛보려 하자 여희는 고기가 먼 곳에서 왔으니 한 번 살펴보고 먹으라 권했다. 그리고는 고양이와 환관에게 먹였다.

고기를 먹은 고양이와 환관은 즉사했다. 여희는 태자가 너무 잔인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헌공은 분을 참지 못하고 신생을 잡아들이게 했다. 신생은 독약을 넣은 사람이 여지가 자신의 말을 들을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자살해 버렸다.

 

태자 신생을 제거한 여희는 그래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공자 이오와 중이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이들마저 제거하지 않고서는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었다. 여희는 헌공에게 신생이 독약을 넣은 사실을 이오와 중이도 알고 있었다고 모함했다. 헌공은 아들들을 소환했다. 하지만 결과가 뻔히 보이는?들은 다른 나라로 망명했다.

 

이?부터 진문공 중이의 19년 망명 생활이 시작된다. 일단 어머니의 나라인 적나라로 도망을 간 중이는 다시 위나라, 제나라, 조나라, 송나라, 정나라, 초나라다. 진니라로 돌아와 왕위에 올랐을 때는 이미 61세였다. 노인이 되어 국군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문공은 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진나라 개혁에 박차를 가했고? 흐려지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말년의 실정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태자 신생의 비극적 삶은 고구려 왕자 호동과 매우 유사했다. 아버지 세웠던 호동 왕자도 자살했다. 계모가 아버지에게 호동이 자신을 희롱했다고 모함한 탓이다. 계모는 자신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호동 왕 호동 왕자는 저간의 사정을 알면서도 계모를 사랑하는 아버지를 위해 자살했다.

 

중히 붙은 통뼈 늑골이었따. 이 때문에 조나라 임금은 중이를 대접하기는커녕 갈비뼈를 구경하고 가버리는 무례를 범했다. 중이의 심경이 어떠했을까. 정말 치욕스러웠을 것이다. 

 

중이가 위나라 오록을 지나는데 배가 너무 고팠다. 어느 농부에게 밥을 구걸했다. 농부는 그릇에다 흙덩어리를 숨긴 채 갖다주었다. 중이가 버럭 화를 냈다. 그러자 참모인 조최가 이렇게 말했다.

'흙을 가진다는 것은 토지를 가진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장차 주군이 된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농부에게 절을 하고 받으셔야 합니다' 중이가 19년간의 망명 생활을 무사히 끝내고 임금의 자리에 올라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의 인간적인 매력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중이는 낙천적이었다. 모든 리더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유머도 있다. 인생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페이소스가 담긴. 그리고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머금게 하는 그런 유머였다.

중이는 신의가 있는 사람이었다. 초나라에 갔을 때 초나라 성왕이 크게 환대했다. 감격한 중이는 훗날 진나라가 초나라와 싸우게 되면 3사, 즉 사흘 거리를 양보하겠다고 맹세했다. 사는 옛날 군대가 보통 하루에 행군하는 거리인 30리를 말한다. 물러나 90리를 피하다는 고사성어 퇴피삼사의 유래다. 그런데 기원전 633년. 정말로 두 나라가 성복에서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진문공은 초성왕과 했던 약속대로 사흘 거리를 물러났다. 하지만 초나라의 장군은 문공의 뜻도 모르고 겁을 먹고 후퇴한 것이라 판단하여 만만하게 보다가 대패했다.

 

제환공과는 다른 진문공의 매력이다. 낙천적이고 로맨틱하고 유머러스하고 타고난 인복을 지녔다.

 

* 겨울이 와야 소나무의 푸르름을 아네

집안이 어려우면 현모양처가 생각나고 나라가 어지러워지면 충신이 생각난다고 했다.

이 속담의 원형이 사기 위세가에 나온다.

 

시대가 어렵고 세상이 어렵고 집안이 어려울수록 좋은 사람이 생각나는 것은 당연하다.

차가운 겨울이 온 뒤라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알 수 있다.

 

온 세상이 탁해졌을 때라야 청렴한 사람이 드러나고 깨끗하게 사는 사람이 더 돋보이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진문공은 사람을 따르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가 가진 장자 기질이다. 큰 그릇은 사소한 것에 매이지 않는다. 잔머리 굴리지 않고 사람을 대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를 따랐다. 유머가 있고 낙천적인 성격이라 여성도 많이 따랐을 것이다.

 

진문공의 망명 기간 동안 극적인 도움을 준 사람이 개자추다. 기원전 4세기 초나라 애국 시인 굴원이 단오절과 관계된 사람이라면 개자추는 24절기 가운데 한식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개자추는 중이가 굶어 아사 직전까지 갔을 때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삶아서 바친 사람이다. 할고봉군이란 유명한 고사성어가 여기서 나왔다. 할은 떼어낸다. 고는 허벅지.

 

* 허벅지 살을 베어 주군을 먹이다.

논공행상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기업을 예를 들면 큰 이익을 남겼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성과급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진문공은 바른 소리를 한 사람을 더 높이 평가했다. 추상적이지만 잘못된 길로 빠져낙는 것을 막아주는 브레이크 역할을 눈여겨 본 것이다. 열심히 힘을 다해 일을 한 것은 인정되지만 자신의 잘못을 고쳐주지 못한 사람은 4등급이다. 하지만 4등급도 자기가 1등급이라 빡빡 우기는 경우가 많다. 최선을 다했고 죽을힘을 다했는데 대접을 받지 못했다며 배신도 서슴지 않는다. 그렇다면 개자추는 어디에 속하는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자기 허벅지 살을 베어 굶어 죽을 처지에 놓인 주군을 구해준 개자추가 상을 받지 못했으니 당시로서는 심각한 문제였다. 그러니 이를 풍자하는 노래가 떠돌기 시작했다. 옛날 사람들은 권력자를 풍자하거나 비꼴 때 노래를 만들어 퍼뜨렸다. 선화공주를 꼬이려던 서동요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개자추가 억울하다 생각하여 노래를 만들어 아이들한테 부르게 한 것이다.

 

개자추의 행적은 창업에 따른 논공행상과 관련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개자추의 뜻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문공은 그의 일생에 옥의 티를 남겼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

문공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개자추를 불렀으나 나오지 않았다. 문공이 그를 나오게 하기 위해 산에다 불을 질렀다. 그러나 끝내 나오지 않았고 어머니와 함께 타 죽었다. 개자추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들의 지조를 끝까지 지켜주기 위한 어머니의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

 

한식은 개자추를 기리기 위한 명절이다. 개자추가 불에 타 죽은 날을 기념하기 위해 그날은 데운 음식이나 뜨거운 음식을 먹지 않는다.

 

6. 외부 인재 기용의 선구자 진 목공

백제, 신라,고구려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 오사카, 나라를 중심으로 일본의 고대 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운 게 아스카 문화다. 교토의 고류지란 고찰에 가면 우리나라 국보 78호와 83호인 금동으로 만든 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똑같은 일본 국보 1호가 모셔저 있다. 적송으로 만든 95센티미터 반가사유상이다. 고류지는 이 불상 하나로 1년 내내 재정을 걱정하지 않는다.

 

일본 사람들은 이 절과 불상을 소개하면서 한반도의 도래인이 창건했다고하면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인지 진승하의 족보를 바꿔버렸다. 돌로 된 안내석에 진하승을 진시황의 후손이라고 소개한 것이다. 하지만 진시황은 진씨가 아니라 영씨다. 진하승이 원래 영하승이었다면 어느 정도 개연성이라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전문가들로부터 호퇸 비판을 받고 난 뒤에야 안내판에서 그 내용이 지워졌다. 지금도 고류지에 가면 지운 흔적을 볼 수 있다.

 

* 미인의 봉화 놀이 덕을 본 진나라

진나라는 서쪽 변방에 있었던 탓에 야만국 취급을 당했다. 중원에 자리한 나라들은 진나라를 제후의 나라로 끼워주지도 않았다. 그런데 주나라 유왕이 포사와 봉화 놀이를 하다 견융의 침입을 받자 진나라 양공이 군대를 이끌고 와 힘껏 싸워 공을 세웠다. 이후 유왕의 아들 평왕이 도읍지를 동쪽의 낙읍으로 옮길 때도 진양공이 호위를 맡?? 기산의 서쪽 땅을 하사 받으면서 진양공이 제후로 봉해졌다.

다른 제후들과 사절을 교환하고 제후가 천자에게 토산품을 헌납하는 빙향의 예를 비로소 행할 수 있게 되었다.

기원전 770년 이후 춘추 시대가 되어서야 진나라가 비로소 중국 역사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당시 진나라는 중원의 나라들에 비해 문화가 상당히 뒤떨어져 중원의 선진 문물이 필요했다. 요즘 식으로 예기하면 아웃소싱 또는?? 다스릴 수가 없었다. 이런 인재 기용 방식을 최초로 그리고 공식적으로 제도화한 사람이 진 목공이다.

 

* 양 가죽 다섯 장으로 천하의 인재를 얻다.

진나라 헌공이 괵나라를 정벌하려 하니 우나라에 길을 내어달라고 했다. 고사성어 가도벌괵의 유래다. 당시 우나라 대부였던 백리해는 우나라 임금에게 길을 내어주면 안 된다고 한사코 말렸다.

'바퀴의 덮개나무와 수레는 서로 의지하고,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우는 길을 내어주었고 괵을 정ㅂ러한 진은 내친김에 우까지 정복했다.

진목공이 스카우트하게 되는 백리해는 우나라가 망할 때 진?나라 헌공이 우왕에게 백옥과 좋은 말을 뇌물로 주고 데려왔다는 기록도 있다. 나중에 진헌공은 진나라와 결현 동맹을 맺을 때 백리해를 시종으로 삼아 진나라로 딸려 보냈다?에 도망쳐 초나라 완으로 갔다.

 

진나라에서는 모두들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공손지만이 백리해가 뛰어난 인재임을 파악하고 꼭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말에 다급해진 목공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백리해를 꼭 데려오고 싶어 했다. 그러자 공손지가 만류했다. 그렇게 하면 초나라도 백리해가 인재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노인 하나가 도망갔는데, 좀 돌려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초나라는 공짜로는 안 된다며 검은 숫양의 가죽 다섯 장을 요구했다. 결국 검은 숫양의 가죽 다섯 장을 주고 백리해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그 일로 백리해의 별명은 오고대부가 되었다. 고는 검은 숫양, 당시 백리해의 나이 70이 넘은 때였다.

 

진목공은 백리해와 사흘 밤낮 이야기를 나눈 끝에 천하의 일대 기인을 만났다며 기뻐했다. 그는 백리해에게 원하는 자리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백리해 자신은 망국의 신하라며 벼슬을 마다하고 대신 친구 건숙을 추천했다.

 

사기를 읽으면서 인재가 인재를 알아본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추천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관중에게 재상 자리를 양보한 포숙이 만고에 칭송을 받는 것이다.

 

진나라는 외부 인재 초빙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누구든지 와서 자신을 소개할 수 있고, 능력이 있으면 자리를 줘 그가 원하는 개혁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마당을 깔아주었따. 이것이 진나라가 훗날 천하를 통일하게 되는 결정적인 원동력이 아닌가...

 

경제력도 있고 군사력도 강하다고 해도 그것을 요리할 인재가 없으면 말짱 헛 일이다.

사마천이 사기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역사는 인간의 작용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 진과 진의 천하 쟁패

그런데 진 목공은 이 과정에서 두 가지 실수를 한다. 하나는 무모하게 진나라를 공격한 것이다. 두 나라에 가뭄이 들어 굶어 죽는 사람이 많이 생겨나자 진이 진에게 식량을 요청한 것이 발단이었다. 두 나라는 패주 자리를 놓고 다투는 맞수였기 때문에 진의 대신들은 도와줘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참에 군대를 동원해 진을 공격하자고 했다. 공손지와 백리해만이 원조해야 한다고 충언했다. 목공은 공손지와 백리해의 의견을 받아들여 결국 진에게 식량을 원조해 주었다. 남이 힘들 때 등 뒤를 치는 것은 대의명분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춘추시대, 기원전 7세기만 하더라도 이런 예의가 살아 있었다.

 

이번엔 진에 기근이들었따. 진도 진에 식량을 요청했다. 하지만 진혜공은 진의 요구를 묵살해버린다. 그래서 전쟁이 터졌다

 

목공과 혜공은 한 땅에서 싸웠따. 진나라 군대에게 포위당한 목공은 부상을 당했다. 그런데 목공은 자신의 말을 훔쳐 먹고 체포된 300여 명의 시골 사람을 짐승 때문에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며 사면해준 적이 있었다. 그들이 진목공이 포위당한 것을 보고는 무기를 들고 필사적으로 싸워준 덕에 목공은 전세를 역전시켜 도리어 혜공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막판에 승리하긴 했지만 고전을 면치 못한 전투였다.

 

* 출신도 학벌도 따지지 않은 진목공

과감하게 외국의 인재를 스카우트하여 국력을 키워 주변을 병합함으로 국토를 무려 1000리나 넓힌 목공이지만, 그 역시 막판에 결정적인 실수를 남겼다. 진나라에 뿌리 깊이 남아 있던 순장의 습속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그 자신이 죽을 때 아까운 인재를 포함하여 177명을 산 채로 순장해버린다. 충신 엄식, 중항, 침호, 백리해? ㅏ들인 맹명시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로써 힘들게 일군 패권이 다른 나라로 넘어가버리고 만다. 인재의 중요성을 알고 관례를 깨는 파격적 발탁을 실행했지만, 또 다른 관슴을 깨지 못하는 자기모순을 보인 것이다.

 

태산은 한 줌의 흙도 버리지 않아 저렇게 높이 솟아올랐고, 바다는 한 줄기의 강도 가리지 않아 저렇게 깊은 것입니다.

 

지난 시절 우리가 냉대해 떠나보냈으면서 이제 다시 와서 차이나 타운을 만든다고 야단법석이다. 더 일찍 진목공의 아웃소싱을 배웠어야 했다. 시오노 나나미도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 제국 굴기의 원동력을 개방성에서 찾았다. 또한 고대 일본의 아스카 문화도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이 없었다면 그 화려한 꽃을 피우지 못했을 것이다.

 

7. 귀 열린 지도자 초장왕

운명을 내가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면 용기가 생긴다.

진정한 용기는 자신의 운명을 인정하고 그로써 얻은 용기로 세상에 이바지하며 인간으로서 고귀한 존업을 획득하는 데서 생기지 않을까..

 

초 장왕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바꾼 인물이다. 불비불명.

오자서 집안은 초나라 지역에서 대대로 고위 관료를 지내며 왕을 보필했는데, 그의 할아버지 오거가 초장왕에게 낸 수수께끼가 불비불명이다.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 새라는 뜻이다.

초장왕은 즉위 후 3년 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밤낮으로 술과 여자에게 젖어 살았다. 바른 소리를 간하는 신하들을 용서치 않고 죽음으로 다스리겠다는 엄포까지 놓았다. 참다못한 오거가 장왕을 찾아가 수수께끼를 냈다.

'새 한 마리가 언덕에 앉아 있는데 3년을 날지도 울지도 않습니다. 이 새는 어떤 새입니까?'

오거는 충고 테크닉이 뛰어났다. 대놓고 직설적으로 충고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장왕은 화가 나서 오거를 처벌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명한 오거는 적절한 우화로 장왕을 깨쳤다. 장왕이 대답했다.

'3년을 날지도 울지도 않는 새라면 한 번 날았다 하면 천하를 뒤엎을 기세로 날고 한 번 울었다 하면 세상이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로 울 새다'

이심전심이었다. 장왕도 오거도 서로의 마음을 읽었다. 장왕은 오거를 책망하지 않았고 오거도 더 이상 아무 말 않고 물러났다. 하지만 장왕의 황음은 몇 달이 지나도록 계속되었다.

 

대부 소종이 입궐해 간했다. 그러자 장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대는 금지령을 알지 못하는가'

하지만 소종은 왕을 깨우칠? 양보도 보지이 않았다. 그제야 장왕은 비로소 기나긴 황음의 터널을 빠져나와 국사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거와 소종에게 중책을 맡겨 국정을 책임지게 했다. 그렇다면 장왕은 주색과 음주에 빠진 3년 동안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장왕은 3년 동안 조??먹는 척했지만 자기 나름대로 주변 상황에 대한 식견을 쌓아갔던 것이다.

 

리더는 사람을 알아보고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장왕. '진나라는 작은 나라인데 높고 단단? 백성을 가혹하게 부려먹고 세금을 많이 거둬들였다는 이약다. 진나라의 민심은 이미 진나라를 떠났을 것이다.'

결국 장왕은 진?? 능력이 남달랐던 것이다. 물질적 기반만 가지고 한 나라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수준높은 관찰력과 안목을 지닌 리더가 초장왕이었다.

 

* 나만 못한 신하가 걱정이라네.

리더가 빠지귀 쉬운 착각 가운데 하나가 자신이 가장 잘났다고 생각하는 자가 당착이다. 이런 리더는 과대망상증에 빠져 누구라도 이겨야 직성이 풀린다.

 

위나라 무후. 개혁전문가 오기의 도움으로 정치를 개혁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후는 조정에서 대신들과 회의만 하고 나면 기고만장 우쭐해서는 오기에게 자기 자랑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이번에도 회의석상에서 자신의 논리를 당할 사람이 없었고 자신의 뛰어난 식견으로 신하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고 자랑했다. 그러자 오기는 큰일 났습니다. 위나라가 망하게 생겼습니다.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깜짝 놀란 무후가 그 까닭을 물으니 오기가 이유를 들려주었다.

옛날에 초나라 장왕은 회의를 하고 나서 자기 논리를 꺽지 못하는 신하가 있으면 돌아와서 밥도 안 먹고 고민했다. 이 큰 초나라에 자신의 논리를 반박할 인재가 없어서야 큰일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장왕은 더더욱 인재를 갈망했다는 이야기다.

 

초장왕의 식견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장왕이 먹고 놀던 시절 대부인 두월초가 반란을 일으켰다. 장왕이 친히 진압에 나섰다. 그런데 두월초는 신궁이 무색할 정도록 활 솜씨가 뛰어났다. 아주 먼 거리에서 쏜 화살로 장왕의 수레를 정확하게 맞힐 정도였다. 간담이 서늘해진 장왕의 군사들은 사기가 떨어졌다. 그날 밤 장왕은 야간 불침번을 맡고 있는 장수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옛날 우리 초나라 문왕께서 가지고 계시던 신기한 화살 세 대 가운데 두 대를 얼마 전 잃어버렸다. 두월초가 훔쳐갔는데 오늘 그 두 대를 다 써버렸으니 더 이상 걱정할 것 없다고 병사들에게 전하라'

예상대로 병사들의 사기는 올라갔고, 다음 날 반란군을 어렵지 않게 진압할 수 있었다.

장왕은 확실치 않은 옛날 이야기를 꺼내 동요하던 군심을 재치있게 안정시켰다. 그러나 장왕은 상당한 위험 부담을 감수한 셈이다. 만의 하나 두월초의 화살이 다시 날아왔다면 병사들의 사기는 걷자을 수 없이 무너졌을 것이다. 장왕은 두월초가 화살을 쏘지 못하도록 원천봉쇄할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것이 지도자의 자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도자는 결코 백성을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나라를 끌고 나갈 수 있다는 믿음과 신뢰를 주어야 한다. 초장왕의 리더십에는 안정과 신뢰가 깃들어 있다.

 

* 소통할 줄 알았던 초장왕.

남의 말을 잘 듣는 것.

장왕은 하찮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의 충고도 잘 받아들였다.

 

초장왕은 말을 좋아했다. 말에게 사람도 먹기 힘든 대추와 마른 고기를 주고 비단옷을 입히고 침대에서 자게 했다. 그러니 말이 말도 안 되게 비만증으로 죽고 말았다. 장왕은 관을 잘 짜 대부의 예로서 장사를 지내주라고 명령했다. 신하들이 일어났다. 하지만 장왕은 막무가내로 감히 말을 가지고 말을 하는 자는 참하겠노라고 엄포를 놓았다.

키가 8척이며 변설에 능하고 언제나 담소로 풍자를 즐기던 악공 우맹이 그 이야기를 듣고 조정에 뛰어 들어와 하늘을 우러러 통곡했다. 장왕이 그 연유를 묻자 우맹이 말했다.

'말은 폐하께서 정말 좋아하신 영물인데 이 막강한 초나라에서 무엇을 얻지 못하?습니까. 대부의 예로 장사를 지내는 것은 너무 야박합니다. 임금의 예로 장사를 지내야만 합니다.'

장왕은 우맹에게 그 방도를 물었다. 그러자 우맹은 이렇게 청했다.

"폐하. 옥을 다듬어 속 널을 만들고 무늬가 있는 가래나무로 바깥 널을 만들며 단풍나무, 느릅나무, 녹나무 등으로 횡대를 만드십시오. 군사를 동원하여 큰 무덤을 파고 노약자로 하여금 흙을 지게 하여 무덤을 쌓고, 제나라와 조나라의 조문단을 앞에 오게 하고 한나라와 위나라의 조문단을 뒤에서 호위하게 하십시오. 사당을 세워 태뢰를 지내고 만호의 읍으로 받들게 하소서. 제후들이 이런 모습을 보고 듣게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대왕께서 사람보다 말을 더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통렬한 풍자에 장왕은 과인의 잘못이 이토록 크단 말인가. 후회하면서 죽은 말을 평범하게 묻어주고 천하 사람들이 이 일을 알지 못하도록 했다.

 

상하가 서로 소통되는 민주적 분위기가 결국은 초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언로가 막혀 있거나 최고 지도자가 귀를 닫고 있으면 그 나라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 춘추 시대를 뒤흔든 하희의 섹스 스캔들

초장왕 때 거의 모든 나라에 영향을 미치고 엄청난 파란을 몰고 온 세기의 섹스 스캔들이 터졌다. 초장왕이 즉위한 해 진나라에서도 영공이 즉위했는데, 영공 14년에 진나라에서 희대의 사건이 터진 것이다.

진의 대신 가운데 하어숙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의 처는 정나라 목공의 딸인 하희였따. 둘 사이엔 하징서라는 아들이 있었다. 남편 하어숙이 죽자 외롭던 하의는 진의 고위층 관료인 대부 공녕과 의행보와 눈이 맞았다. 공영과 의행보는 진영공까지 끌어들여 하희와 돌아가며 간통했다. 영공 15년, 세 사람이 하희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 '하징서가 누구와 닮았네'하는 저질스런 농담을 지껄였다. 그 말을 들은 징서가 분기탱천하여 영공을 활로 쏘아 죽였다. 공녕과 의행보는 초나라로 도망을 가고 태자 오는 진나라로 도망쳤다. 징서는 진후가 되어 권력을 쥐었다.

 

진에서 국군을 살해하는 살군 사건이 터지자 초나라는 이 사건에 개입하여 진을 정벌한 다음 진을 현으로 강등시키고 초나라로 귀속시켰다. 이때 하희의 나이 30대 초반이었다. 초나라로 잡혀온 하희를 본 장왕은 한눈에 그녀의 미모에 반하고 말았다. 장왕은 볼 것도 없이 그녀를 첩으로 삼고 싶었다. 이때 굴무라는 신하가 나서 장왕을 말렸다.

'조나라가 진나라를 정벌한 이유는 신하가 국군을 시해했다는 명분 때문인데, 만약 폐하께서 하희를 차지하면 여자가 탐이 나서 진나라를 공격했다는 비방이 일 것입니다.'

 

귀가 열려 있던 초장왕은 깨끗하게 하희를 포기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장왕의 아들인 자측이 하희를 탐냈다. 굴무가 다시 천하의 요물을 탐내면 상스럽지 못하다며 태자를 설득했다. 결국 초장왕은 얼마 전 아내를 잃은 신하 연윤양공에게 하희를 시집보냈다. 그런데 그만 연윤양공이 기원전 579년 필성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러자 기막히게도 하희는 연윤양공의 아들과 바람이 나고 말았다. 점점 소문이 좋지 않자 굴무는 장왕을 설득해 하희를 친정인 정나라로 돌려보냈다.

 

얼마 뒤 초나라와 제나라가 패주 자리를 놓고 싸웠고 결국 초나라가 승리했다. 초나라는 전후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제나라로 사신을 보내야 했는데 굴무가 자청하고 나섰다. 그런데 굴무는 가야 할 제나라로 가지 않고 정나라고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이유인 즉, 굴무란 자가 내내 하희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기원전 584년의 일이다. 그러니까 굴무는 장장 15년 동안이나 하희에게 눈독을 들이고 잇다가 마침내 정나라로 가 하희를 차지함으로써 그 꿈을 이룬 것이다. 이때 하희의 나이가 오십 주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하희보다 굴무란 작자가 더 대단한지 모르겠다. 그 무섭고 끈질긴 집념이라니.. 결국 초나라 장왕도 태자 자측도 굴무에게 농락당한 꼴이다. 화가 난 장왕은무는 이 일과 상관없는 가족을 몰살시킨 초나라에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이를 갈았다. 굴무는 당시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던 오나라로 가 초나라의 군사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군대를 훈련시키는 선진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오월쟁패에서 초나라가 빠질 수 없는 배경에 여기에 있다.

 

하희의 스캔들은 워낙 떠들썩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여러 곳에 기록이 남아 있다. 대의명분을 중시하던 초기 춘추 시대이었다. 남자들이 하희를 농락한 것이 아니라 하희가 남자들을 농락한 것이다. 대의명분보다 실리를 위해 앞뒤를 가리지 않는 오월동주 시대와 전국 시대를 알리는 전주곡과도 같은 섹스 스캔들이었다.

 

* 망하는 나라, 망치는 군주.

오자서의 할아버지는 오거이고 아버지는 오사다. 그리고 초나라 평왕은 오자서 집안과 원수 사이다. 또한 오거는 장왕 때 불비불명의 수수께끼를 낸 것으로 유명하다.

 

강왕이 총애하는 동생으로 자위, 자비, 자석, 기질이 있는데 겹오 3년 숙부인 자위를 영윤으로 삼아 군사권을 장악하게 했다. 그런데 겹오 4년 자위가 병든 겹오를 목 졸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그가 바로 영왕이다. 자비는 진나라로 도망쳤다.

 

골육상쟁의 왕위 쟁탈전에서 오거는 원로대신으로서 영왕의 정통성을 인정해주고 왕권을 안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영왕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난 다음 갈수록 세력을 키워나갔는데 점점 교만해졌다. 이때 오거는 영왕에게 서슴지 않고 직언했다. 오자서 집안은 충신의 피가 흐르는 집안이었다.

 

영왕은 점차 사치에 빠지고 호화로운 장화대에서 수많은 후궁을 거느리고 주색잡기에 여력이 없었다. 중국사에서는 이렇듯 제왕의 사치가 망국을 이끌었던 경우가 많다.

 

가령 서태후는 자신의 회갑 잔치를 망치지 않기 위해 청일전쟁(1894년) 중에 서양의 여러 나라에 청탁을 넣어 일본과의 화해를 주선토록 했다. 이는 항복하겟다는 의사 표시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해서 맺어진 불평등 조약이 시모노세키 조약이다. 엄청난 이권을 일본에 넘겨주고 전쟁을 잠시 멈춘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생일 파티를 위해서 말이다.

야사에 전해지기를 서태우는 한 번 목욕할 때 무려 200장의 타월을 허비했다고 한다.

 

명나라 제 11대 무종 주후조는 20만 냥을 들여 표방을 만들었다. 짐승을 우리 안에 가두고 싸우는 장소다. 그는 맹수의 발톱과 이빨을 다 뽑고 스스로 무기를 들고 들어가 싸우는 것을 즐겼다. 이기면 기뻐서 술을 잔뜩 마시고 놀았으며 환관을 시켜 일반인의 술집을 사서 직접 영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했다.

 

명나라 16대 희종 주유교는 황제라기보다 솜씨 좋은 목수에 가까웠다. 그가 만든 목제품은 당시 최고의 명품으로 인정받았다. 움직이는 인형도 만들고 궁궐 설계도 직접했다. 나랏일은 뒤로 물리고 모든 정사를 환관 위충현에게 보고 받았다. 위충현은 조정의 실권을 완전히 장악해 전횡을 일삼?다. 명나라는 그후 주유교의 동생인 주유검, 숭정제대에와서 망했다.

 

* 오자서 집안 삼대와 초나라의 운명

오자서의 할아버지 오거가 정통성을 인정해줌으로 즉위 초의 혼란을 모면했던 영왕은 갈수록 사치에 빠지고 교만해지더나 나중에는 희한한 취향까지 보였다. 기록에 삼위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가슴, 허리, 엉덩이 둘레가 똑같은 여자를 말한다.

영왕은 가슴 24, 허리 24, 엉덩이 24 정도인 마른 체형에 탐닉해 궁궐 여성들이 너도나도 다이어트 열풍에 휩싸였다. 심지어 굶어 죽는 사람까지 생겼다. 다이어트 열풍은 남자들한테도 퍼져 배가 나온 신하들은 영왕에게 곤욕을 치렀다.

 

이런 영왕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사람이 영왕의 동생 평왕이다. 평왕이 영왕의 뒤를 이어 임금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을 보면 신기할 정도다. 평왕의 이름은 미기질로 위로 자비, 자석 두 형이 있다.

 

미기질은 영왕이 행방불명되자 자신이 바로 왕위에 오르지 않고 자비를 왕으로 옹립했다. 실은 자신이 뒤에서 다 조종해놓고 꼭두각시 왕을 내세운 것이다. 이때 영왕은 건계라는 곳을 좋아하여 그곳을 떠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 사이 채나라 관종이 오나라, 월나라와 연합해 영도에 들어가 태자 녹을 죽이고 진나라에서 자비를 불러와 초왕으로 옹립하고 자석을 영윤에, 기즐을 사마로 삼는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그러고는 관종은 건계로 가서 영왕과 싸웠다. 전투에서 패한 영왕은 잠시 행방불명되었다가 백성들로부터 버림받았다. 그는 여기저기 떠돌다 기진맥진 쓰러져 신해라는 사람의 집에서 굶어 죽었다.

 

초왕에 옹립된 자비는 영왕의 죽음을 확실히 몰랐기 때문에 행여 영왕이 살아 돌아올까 노심초사 했다. 영악한 미기즐은 이를 이용해 세 가지 헛소문을 퍼뜨렸다. 첫째 영왕은 살아 있다. 둘째 미기질 자신은 영왕과 싸우다 패했다. 셋째, 승리한 영왕이 쿠데타 세력을 말살하기 위해 도성으로 쳐들어오는 중이다. 군대는 이미 미기질이 거느리고 나갔기 때문에 도성은 무방비상태였다. 초왕 자비와 영윤 자석은 지레 겁을 먹고 자살하고 말았다.

 

* 간신과 미인

속임수로 자비와 자석을 자살하게 하고 등극한 평왕은 일단 왕위에 오르지 백성과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선정을 베풀었다. 또 반대파를 기용하여 자신에게 불리한 여론을 차츰 잠재워나갔다. 하지만 그것은 제스처에 불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본색을 드러냈다.

 

못난 군주에게는 기생충처럼 간신이 달라붙게 마련이다. 평왕에게는 비무기가 달라붙었다. 오자서 집안의 비극도 이들로부터 비롯되었다.

 

평왕은 비무기를 진나라에 보내 태자 건을 위해 태자비를 맞아들이도록 했다 태자비로 책정된 처자는 절세 미인이었다. 순간 비무기의 간악한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평소 태자 건과 그의 사부인 오사로부터 무시당하던 비무기가 이 절세의 미은을 이용해 자신의 야심을 달성하는 것은 물론 태자 건과 오사까지 없애려는 기막힌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태자비를 영접해온 비무기는 도성의 평왕에게 먼저 들러 '진나라 처자가 절세 미인이니 대왕께서 직접 그녀를 취하시고 태자에게는 다른 여자를 구해주십시오'하며 평왕의 음탐함을 부추겼다. 시아버지 될 사람이 며느릿감을 차지하라는 간신배의 달콤한 요설이었다. 촌인공노할 일이지만,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평왕은 앞뒤 가리지 않고 진나라 처자를 차지해버렸다. 그리고 태자 건에게는 따로 신부를 구해 결혼시켰다.

 

이 무렵 오사는 태자의 태부, 비무기는 소부였다. 태부와 소부 무도 태자의 선생이지만, 오사의 지위가 한 단계 높았다. 평소 태자의 총애를 받지 못하고 오 태저 건을 모함했다. 태자에게 돌아갈 미인을 가로챈 아버지 평왕도 아들의 존재가 영 마음에 걸리던 차에 비무기가 태자를 변방으로 보내자고 하니 슬며시 태자를 변방으로 보내버렸다. 이로 인해 태자의 스승 오사가 비무기의 음모에 말려들었고, 결국 큰 아들 오상과 작은아들 오자서까지 말려들게 된다.

 

오월동주라는 새로운 역사

 

8. 오자서, 백발로 국경을 넘다.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데는 수천 수백만 명의 힘이 필요하지만 나라를 망치는 건 간신 하나면 족하다고 했다. 초나라를 망친 주인공은 간신 비무기였다. 비무기로 인해 오자서는 아버지와 형을 잃는다. 비무기는 초나라 평왕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확대해나갔다. 그 과정에서 오자서의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만다.

 

비무기의 간게로 태자 건의 부인이 되었어야 할 진나라 미은을 가로챈 평왕은 태자 건을 성보로 보내 변방을 지키게 했다. 태자 건의 어머니는 채나라 사람이었는데 평왕이 미인을 첩으로 얻자 더욱 냉대를 받았다. 게다가 젊은 진나라 여??다. 비무기는 평왕 면전에서 태자 건을 모함하기 바빴다.

'제가 진나라 여자를 대왕의 후궁으로 모셔온 그날부터 태자 건이 저를 미워하니 대왕에 대한 원망도 없을 수가 없습니다. 태자는 성보의 병원을 쥐고 있기 때문에 언제 정변을 일으킬지 모릅니다.'

 

평왕은 오사를 불러 사건을 규명하라 일렀다. 하지만 태자 건의 스승인 오사는 비무기가 태자를 모함한 것임을 눈치챘다. 오사는 평왕에게 '어찌하여 간신배의 말을 듣고 혈육을 멀리하십니까'라??려 했다. 평왕도 이미 진나라 여자를 바친 비무기에게 마음이 기운 데다 아들과의 관계도 불편하고 새 아들까지 생겨 판단력이 흐려질 대로 흐려져 있었다. 결국 평왕은 오사를 옥에 가두고 태자 건을 불러들여 죽일 작정을 했다. 태자 건은 이 소식을 듣고 송나라로 줄행랑을 놓았다.

 

한편 오사에게 뛰어난 두 아들 오상과 오자서가 있었다. 비무기는 평왕에게 그들을 죽이지 않으면 초나라의 화근이 될 것이라고 무고했다. 평왕은 부친의 죄를 사면해준다는 명분을 내세워 그들을 수도인 영도로 불러들였다. 비무기는 오사에게 가짜 편지를 쓰게 했다. 오사가 말했다.

'큰아들은 올지 모르지만 자서는 오지 않을 것이다'

평왕의 제안을 전해들은 두 아들은 망연자실했다. 오자서는 형에게 가봐야 둘 다 죽을 것이 뻔하니 함께 도망치자고 했다. 그러나 형 오상은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의 죄를 사면해준다는 말을 듣고도 가지 않는 것은 불효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할 사람이 없다면 이 또한 지혜롭지 못하다. 너는 도망쳐라. 나는 가서 죽겠다'

 

결국 오사와 오상은 처형당하고 오자서는 오나라로 망명했다.

 

한편 평왕이 아들 건을 성보로 딸려 보낼 때 보낸 수행원 가운데 성보 사마인 분양이란 자가 있었다. 당시 평왕은 며느릿감을 ?앗은 일도 마음에 걸리고 아들을 외지로 보내는 것도 안쓰러웠던지 분양에게 '나를 대하듯' 건을 보필하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분양에게 태자 건을 죽이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하지만 분양은 건을 죽이기는커녕 도망가는 것을 도왔다. 평왕은 자신의 명령을 어긴 분양을 처형하려 했다. 그러자 분양은 '건을 나를 대하듯 하라'는 애초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평왕도 이 말에는 마땅히 반박할 여지가 없어 분양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후 기록은 없지만 분양은 태자 건을 살리는 인물로 짤막하게 기록을 남겼다.

사기에는 큰 줄거리만 나오고 전국책, 춘추, 한비자 등의 제자백가서에 이런 이야기가 군데군데 단편적으로 실려 있다.

 

* 백발로 탈출한 오자서

송나라로 도망간 태자 건은 푸대접을 받았다. 다시 정나라로, 진나라로.. 다시 정나라로 가서 떠돌다 그곳에서 하인이 그의 비밀을 밀고하는 바람에 정나라 정공과 자산에 의해 살해당하고 만다.

한편 오자서는 무사히 초나라 국경을 넘어 오나라로 도망쳤다. 이를 오자서의 출관이라 한다. 출관이란 국경을 벗어났다는 뜻이다. 이 출관에 관해 이런저런 전설이 전해온다. 그만큼 오자서의 출관이 극적이었다.

 

오자서가 탈출할 당시 전국 방방곡곡에 수배령이 내려졌다. 오자서는 운신조차 힘들게 되었다. 어떻게 국경을 빠져나갈까. 오자서는 밤새 고민했다. 얼마나 고민을 했던지 밤사이에 머리카락이 하얗게 새버렸다. 덕분에 달리 변장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초나라의 국경 관문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오자서의 출관에 관한 전설이 많다는 것은 그의 탈출이 얼마나 위험하고 흥미진진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다.

 

* 원한을 용기르 승화한 오자서

아버지와 형을 잃은 오자서의 원한은 골수에 사무쳤다. 보통 사람은 원한 때문에 자신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힘이 한계에 부딪하면 술이나 약물 따위로 풀다가 도리어 자신을 망가뜨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오자서는 절박한 원한을 용기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한두 번은 심한 고난을 겪거나 큰 아픔을 겪는다. 역경을 딛고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용기가 중요하다.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는 원동력은 용기에서 비롯된다. 슬픔보다더 훨씬 더 깊은 원한이 ?론 용기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사마천도 49세에 죽음보다 치욕스러운 궁형의 아픔을 극복하고 불굴의 용기로 사기를 완성했다. 만약 그대로 주저앉아 좌절했다면 인류는 큰 손실을 입었을 것이다. 오자서도 원한을 용기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그래서 사마천도 오자서의 삶을 비중있게 그리고 드라마틱하게 형상화했다.

 

오자서가 관문을 앞에 두고 밤새 어떻게 빠져나갈까 고민했던 문제의 이면에는 절박함이 만들어낸 용기가 깔려 있다. 후세 사람들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잘 짜인 드라마 각본 같은 전설을 덧붙인 것이다.

 

* 피리 부는 망명객

기원전 522년. 오자서가 오나라로 왔다. 이는 오월동주라는 대하드라마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파란만장한 오월춘추 시대의 전구곡이었다. 오나라에 도착한 오자서는 문전걸식하는 거지였다. 마땅한 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시장 바닥에서 미치광이처럼 피리를 불고 노래를 부르며 연명했다. 하지만 낭중지추는 머지않아 주머니를 비집고 나올 수밖에 없다. 기골도 장대하고 식견도 보통 사람이 아니어서 피리 부는 미치광이에 대한 소문은 발 달린 천리마처럼 오나라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당시 오나라의 정국을 알면 오자서가 오나라에서 어떻게 활동했는지 이해가 쉽다.

계찰은 현명하고 재능이 있어 수몽은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으나 계찰은 옳지 않다고 사양했다. 그래서 수몽이 죽고 난 다음에 큰아들 제번이 왕위에 올랐다. 제번은 죽으면서 선왕의 유언을 받드는 의미에서 동생 여제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여제도 계찰이 종국에는 왕위를 물려받도록 하기 위해 동생 여말에게 왕위에 오르도록 했다. 여말도 세상을 떠나면서 동생 계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으나 계찰은 사용하고 멀리 도망가버렸다. 하는 수 없이 여말의 앙들 요가 왕에 올랐다. 이러한 결정이 제번의 맏아들인 공자 광에게는 내심 불만이었다. 순리대로라면 적장자인 자신이 왕위를 물려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물고기 배 속의 칼로 역사를 바꾸다.

당시 공자 광은 군사를 책임지는 자리에 있으면서 암암리에 현사와 인재를 널리 구하며 쿠데타의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춘추전국 시대에는 양사라는 풍조가 있다. 당시 사는 중소 지주 계층으로 상당한 교양과 교육으로 사회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던 때였다. 공자 같은 인물이 대표적인 경우다. 공자는 중국 역사상 최로초 사립학교를 세웠다. 제자가 많을 때는 3,000명이나 되었다. 뛰어난 석학에 해당하는 제자만 70명이었다. 학생 수가 3000명이면 오늘날의 종합대학 총장 격이다.

사립학교 교육을 통해 배출된 새로운 인재들은 경제적으로 기반을 갖춘 귀족의 집으로 들어가 참모 역할을 했다.그런 사를 식객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런 식객들을 기르는 풍조를 양사 풍조라 했다.

 

사마천이 전국 시대 4공자라 불렀던 맹상군, 평원군, 위공자, 춘신군이 양사/P>

진시황을 황제에 앉힌 여불위도 식객을 3,000명이나 거느렸다. 3천 명을 먹여살리고 공부시켰으니 대단한 거부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식객은 쉽게 말해 인재 풀로서 싱크탱크 같은 역할을 하면서 주군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켜주었다.

 

공자 광도 그런 식객을 찾고 있던 차였다.이때 오자서가 저잣거리에서 피리를 부는 미치광이 노릇을 하면서 나타났다. 오자서는 공자 광에게 오나라 왕 요를 만날 수 있게 다리를 놓아달라고 했다. 오자서는 요에게 초나라를 공격하는 것이 얼마나 이익인지 설명했다. 광은 2미터 거??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공자 광은 오자서는 단지 복수를 하려는 것일 뿐 오나라에 득이 될 일이 아니라며 오자서를 두둔하지 않았다. 이때 오자서는 광이 딴마음을 품고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오자서는 공자 광 편에 붙어 전제라는 자객을 그에게 추천했다. 오자서는 태자 건의 아들인 승과 함께 교외에 은거하며 전제의 거사를 기다렸다.

 

전제는 원래 오자서가 피리 부는 미치광이일 때 우연히 만난 인물이다. 덩치가 산만한 전제가 동네 무뢰배들하고 싸우는데 어디선가 '전제 제 이놈'하는 여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제가 휙 돌아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냅다 도망을 쳤다. 전제의 어머니였다. 오자서는 그런 전제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고 그때부터 정성을 기울여 그와 교류했다.

 

전제는 결국 오나라 왕 요를 암살했으며 공자 광은 바라던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가 바로 오월동주 시대를 열어가는 오나라 왕 합려다. 오자서는 합려를 도와 그를 춘추오패의 마지막 주자로 만든다. 이런 과정이 오자서 열전에 드라마처렴 펼쳐진다. 이 열전에 등장하는 인물만 50명이 넘는다. 오자서 열전에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다.

 

9. 어복장검과 무간도

사마천은 사기 오자서 열전 끝에 다음과 같은 논평을 남겼다.

 

왕이라 하더라도 신하에게 원한을 사서는 안 되거늘 하물며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야. 일찍이 오자서가 아버지 오사를 따라 함께 세상을 떠났다면 하찮은 땅강아지나 개미와 무슨 구별이 있으랴. 그는 작은 의를 버리고 큰 치욕을 씻어 후세에까지 이름을 길이 전했으니, 그 의지가 실로 비장하다. 강인한 대장부가 아니고서야 누가 이런 일을 이룰 수 있겠는가..

 

사마천은 자신의 일생을 오자서의 삶에 투영했다. 오자서 열전은 중국 사람들의 강렬한 은원관을 대변한다. 지금도 은혜와 원수는 대를 물려 갚는다는 이야기를 곧잘한다.

중국인을 떼놈이니, 음흉하니, 말이 없다느니 하지만 이들은 싸움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이유는 한 번 싸우면 크게 싸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 속담에 군자의 복수는 10년이라도 늦지 않다고 했다.

 

* 약육강식 전국 시대의 예고편, 오월동주.

춘추 시대에서 전국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오월춘추 시대는 50년에 걸쳐 있다. 춘추 시대의 춘추오패 가운데 4인방은 적어도 장자의 기풍을 갖추고 있었으며 여유가 있었다.

 

제나라 환공은 원수인 관중을 재상으로 발탁했다. 진나라 문공은 19년 동안 망명 생활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고 늘 여유롭고 낙관적으로 살았다. 진나라 목공은 외국인 인재를 우대하는 아웃소싱의 원조였다. 개방성의 대명사. 초나라 장왕은 식견이 대단한 인물이었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의 충고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경청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하지만 오월동주 시대에 들어서면 그런 낭만이 사라져가기 시작한다. 오직 실리만 있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비열한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잔인하고 살벌한 시대로 전환하는 시대였다. 오나라 왕 합려의 아들 부차는 오자서의 잔소리가 귀찮아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자 가차 없이 칼을 내려 그를 자살하게 만든다. 월나라 구천은 오나라를 멸망시킨 일등 공신은 문종을 토사구팽시켰다.

 

오월동주의 양대 주역인 합려와 구천은 분명 춘추 4인방과는 그 면모에서 질적인 차이를 보인다. 원수도 포용할 줄 아는 아량과 장자의 기풍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오월동주 시대 제왕들의 성격은 전국 시대 군주들의 마키아벨리스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예고편이다. 잔인하고 살벌한, 그리고 수단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스트들은 전국 시대 군주의 자화상이었다.

 

* 항우로 유방을 말하고 유방으로 항우를 말하다.

사기으 어느 부분을 보더라도 독자의 상황에 따라 상황을 타개해나갈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사기의 최고 매력이다.

사기를 읽으면 용기를 얻고 눈물을 흘리며 분노할 수 있다. 인간의 오욕칠정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인간이 살면서 만나게 되는 거의 모든 경우가 사기속에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호견법. 예를 들면 오자서에 관한 이야기는 오자서 열전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초세가에도 나오고 다른 곳에서 확인 가능하다. 자객 전제는 오자서 열전에도 나오고 자객 열전에도 나온다. 오자서란 한 인물의 개성이나 특징 등을 여기저기 나누어 서술함으로써 보다 심도 있게 비교할 수 있도록 안배한 것이다.

 

또 다른 대표적인 경우가 한 고조 유방이다. 사마천은 유방의 성격 묘사를 보다 극적으로 하기 위해 관련 기록을 여기저거 분산시켰다. 유방은 황제이기 때문에 당연히 고조 본기에 배치해야 한다. 사마천이 살았던 서한 왕조의 개국 황?이다 보니 함부로 다를 수 없었다. 사마천은 고심 끝에 유방과 관련된 사실을 여러 곳에 분산시켜 독자로 하여금 마치 퍼즐 조각 맞추듯 입체적으로 유방의 인격을 부각시키는 방법을 고안했다. 특히 유방의 단점과 유방에 대한 사마천 자신의 평가가 걸릴 수밖에 없다. 사마천은 유방에 관한 정식 기록인 고조 본이게서 상대적으로 덜 비판적인 기록과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실을 우선 배치했다. 그리고 유방의 단점이나 사마천의 개인적 관점은 다른 곳으로 분산시켰다. 이것이 호견법이다. 그 결과 사마천은 유방의 라이벌로서 5년 가까이 유방과 접촉했던 항우의 기록인 항우 본기에 유방의 약점이나 문제점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 견해를 분산시켰다.

 

이런 점 때문에 초창기 사기 연구자들은 내용이 어지럽다며 사기를 난서로 평가절하했다. 그러나 면밀히 연구해보니 어지러운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안배된 것임을 알게 되었고, 어려운 책이란 뜻의 난서로 부르게 되었다.

고조 본기에 대놓고 고조의 나쁜 성격을 기록했다가는 나중에 권력자로부터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내용을 살짝 비틀러가 비유적인 표현을 동원해 다른 곳에 끼워넣은 것이다. 하지만 아무 상관도 없는 곳에 끼워넣은 것은 결코 아니다. 매우 치밀하게 계산하고 문장도 다듬은 다음 가장 적당한 곳에 전체 문맥과 내용을 고려해 배치했다.

 

가령 항우와 싸우다 유방이 쫓기는 장면이 있다. 유방은 아들 효해와 딸 노원 공주를 수레에 싣고 정신없이 도망쳤다. 항우의 기병이 번개처럼 추격했다. 수레에 탄 인원이 많아 수레가 무겁다고 생각한 유방은 아들과 딸을 차례로 수레 아래로 던져 떨어뜨렸다. 등공이 매번 내려가서 이들을 들어올레 수레에 태웠는데 이렇게 하기 무려 세 차례였다. 이렇듯 유우에게 포로로 잡혔을 때, 항우가 항복하지 않으면 아버지를 팽형에 처하겠다고 협박하자 유방은 태연하게 '삶거든 나한테도 한 그릇 보내라'는 반응을 보였다 사마천은 이런 내용을 고조 본기에 배치하지 않고 항우본기에 슬쩍 끼워넣었다. 그렇게 해서 읽는이들에로써 유방의 매정하고 잔인한 일면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게 한 것이다.

 

* 사내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

자객 열전은 누군가를 암살하는 자객의 이야기를 모은 열전이다. 그런데 사람을 죽였다고 해서 다 자객이??격이 없다. 자기가 생각해서 옳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이 일을 할 만하다고 생각해 그 일을 맡아 자신의 목숨을 걸고 끝장을 본 사람들이 자객이다.

 

사마천은 분명한 뜻을 세워 그 뜻을 포기하거나 저버리지 않은 사람에 대한 기록을 남기??이다. 다시 말해 무조건 나쁜 사람을 죽인 이들의 열전이 안라 자신의 사고방식과 주관에 따라 자객의 업을 맡고, 자객 예양의 말처럼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상대를 죽이거나 죽이려 한 사람들이 바로 사기의 자객이다. 사마천은 2,600년 전의 조말? 자객을 골라 자객 열전을 편성했다.

 

자객 열전은 중국 무협소설의 원조다. 자객 열전 외에도 자기 소신을 가지고 약자를 보호하고 강자를 혼내주는 사람들? 이야기가 있다. 유엽 열전.

 

사마천이 유협열전과 자객열전을 사기에 배치한 가장 큰 이유는 전국 시대에 활동했던 유협과 자객에 대한 개인적 향수 때문이다.

 

형가. 영화 영웅의 모티브.

 

물고기 배 속에 칼을 감추고 오나라 왕 요를 암살한 어복장검의 주인공 전제.

 

섭정. 우연한 시비에 말려 사람을 죽이는 통에 어머니와 누이를 데리고 제나라로 도망을 와 백정일을 하며 숨어 살았다. 엄중자는 한나라 애후를 섬겼는데 재상인 협루와 사이가 매우 나빴다. 목숨의 위협을 느낀 엄중자는 이곳저곳 도망을 다니며 자기 대신 협루를 죽여줄 사람을 수소문하다 섭정에 관한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가 사귀기를 청하고 자주 오간 다음 섭정의 어머니를 위해 황금을 내 주었다. 하지만 섭정은 자신이 어머니를 봉양할 수 있다며 황금을 사양했다. 엄중자는 섭정의 의기가 높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원수를 갚아달라는 청을 하러 왔으며 황금은 어머니를 봉양하는 데 쓰라는 의메에서 드리는 것이라 했다. 섭정은 어머니가살아 계신 동안에는 자신의 몸을 다른 사람에게 감히 바칠 수 없다고 고백했다. 시간이 흘러 섭정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마친 섭정은 '엄중자는 재상의 몸으로 백정인 나와 사귀었다. 전에 그가 나를 필요로 하였으나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거절했지만 이제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으니 앞으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일하겠다'며 엄중자를 찾아갔다.

섭정은 엄중자가 수레와 말과 병졸을 주었지만 마다하고 혼자 한나라로 떠났다. 협루를 호위하는 군사가 많았지만 섭정은 단칼에 협루를 죽이고 자기 손으로 자신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눈을 도려내고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낸 다음 죽었다. 한나라에서는 섭정의 시체를 거두어 시장 바닥에 드러내놓고 그의 신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이에게 천금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섭정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소문을 들은 섭정의 누나 섭영은 울면서 자기 동생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녀는 한나라로 가 시체를 확인하고는 엎드려 통곡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 동생 섭정이 맞구나, 엄중자가 내 동생을 알아주었구나. 장부는 본래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고 하지 않던가. 내 동생이 자신의 모습을 훼손시켜 내가 이 일에 연루되지 않도록 했구나. 하지만 어찌 죽음이 두려워 동생의 장한 이름을 없앨 수 있?는가'

섭정의 누이도 자결했다. 섭정의 누이도 '장부처럼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 말은 전국 시대의 유행어 가운데 하나였다.

 

* 십 보 안에서는 누구든 죽일 수 있다.

조말. 노나라 장수로 장공을 섬겼다. 조말은 제나라와 싸워 세 번이나 패했다. 제나라 환공은 노나라 장공과 가에서 화친의 맹약을 맺었다. 그때 조말은 손에 비수를 쥐고 제환공을 위헙하며 강국인 제나라가 약소국인 노나라를 침범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성토했다.

제환공은 노나라로부터 빼앗은 땅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조말은 비수를 내던지고 단상에서 내려와 신하들의 자리에 앉았다. 환공이 화를 내며 약속을 번복하려 하자 관중이 작은 이익을 탐해 약속을 어기면 제후들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고 설득했다. 환공은 약속대로 노나라로부터 빼앗은 땅을 돌려주었다.

'십 보 안의 거리에 있으면 누구든 죽일 수 있다'

조말이 남긴 말이다. 조말의 이 대사는 영웅에 그대로 인용되었다.

 

진시황은 솜씨 좋은 자객들이 겁이 나 십 보 안으로는 자신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한편 자객이라는 본분을 저버린 자객도 있었다. 즉 누군가를 죽이러 갔다가 죽이지 않거나 못한 자객을 말한다. 사마천의 자객 열전에는 나오지 않지만 서여라는 자객이 그랬다.

 

춘추 시대 진의 대신 조순을 간신배 도안고가 자객 서여를 시켜 암살하려 했다. 서여는 조순의 집으로 찾아갔다. 조순은 의관을 단정하게 하고 앉아서 새벽 일찍 조정에 출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조순의 기품 어린 단정한 자태를 본 서여는 그가 죽여서는 안 될, 나라를 떠받드는 충신이라는 걸 알았다. 서여는 대문 밖에서 조순을 향해 당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큰소리로 경고 한 다음 회나무에 머리를 들이받고 목숨을 끊었다. 자객의 본분인 암살은 포기했지만 서여는 자기 주관이 강하고 지조 있는 자객이었다.

 

이렇듯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이며, 어떻게 죽는 것이 뜻있는 죽임인가에 대한 확고한 자기 신념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객 열전이다.

 

* 암살로 나라의 운명이 바뀌다.

중국 사람들은 전제를 가장 독창적인 자객으로 본다.

오자서는 공자 광이 왕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야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전제를 추천했다 광은 전제를 빈객으로 정성껏 대해주었다. 하지만 경비가 삼엄했기 때문에 요를 죽일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다. 하지만 전제는 프로 킬러였다. 요의 취미를 분석해 철두철미하게 준비했다. 요가 물고기 요리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전제는 태호 주변에 사는 물고기 요리사에게 최고라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요리법을 배웠다. 그리고 때를 기다리던 차에 요의 아우들이 초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철정하여 수도에 군대가 비게 되었다. 그 틈을 타 공자 광에게 요를 청하게 했다.

 

공자 광의 야심을 눈치채고 있던 요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조심하라고 일렀다. 요는 사병들을 보내 궁궐에서 광의 집까지 진을 치도록 했으며, 측근들에게 모두 긴 칼을 차고 호위토록 했다. 그리고 자신은 갑옷을 세 겹이나 껴입고 삼엄한 호위를 대동했다. 또한 누구든 자신에게 접근하는 자는 무조건 몸수색을 하고 무릎을 꿇고 기어서 오게 했다.

 

한편 공자 광과 전제는 광의 집에 대대로 내려오는 보검인 어장검을 물고기 배 속에 숨기고 구운 생선을 요에게 올리는 절묘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금속 탐지기가 없던 시절이므로 그 사실을 눈치챌 방법이 없던 요 앞에서, 전제는 생선의 배를 찢고 비수를 잡아 그를 찔러 죽였다. 당연히 전제도 주위에 있던 호위 무사들에게 난도질당했다. 공자 광은 숨겨두었던 병사들을 내보녀 요의 군사들을 죽이고 마침내 왕위에 올랐다.

 

로마의 카이사르, 미국의 케네디, 우리나라 백범 김구, 몽양 여운형, 박정희 등 역사상 암살로 죽은 인물이 적지 않다. 이런 암살은 역사의 흐름을 일순간 다른 방향으로 바꾸어?살에 깊은 유혹을 느끼는 것이다. 오자서 열전에 보여주는 암살이 바로 그랬다. 순식간에 권력 핵심에 접근하거나 역사의 흐름을 한순간에 바꿀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수단이었다. 때문에 오자서는 서슴지 않고 암살이라는 방법으로 요를 살해한 것이다. 전제라는 자객을 희생양으로 삼아 권력으 주류로 떠오른 것이다. 전제의 가족들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 너무나도 가냘픈 자객.

암살당한 오나라 왕 요에게는 경기라는 아들이 있었다. 경기는 중국 역사에서 힘이 세기로 이름난 인물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경기는 위나라로 도망가 세력을 규합해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사촌 요를 암살하고, 왕이 된 합려에 대한 오나라의 여론도 좋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이가 바로 계찰이다. 계찰은 존경받는 국가 원로였다.

 

공자 광이 정변을 일으켰을 때 계찰은 마침 외국에 나가 있었다. 국가 원로인 계찰이 귀국하면 과연 이 쿠데타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그런데 계찰의 대응은 의외?어도 나는 간섭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고는 죽은 요의 무덤에 가 한바탕 통곡을 하면서 진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일을 보고한 다음 집으로 돌아와 새 왕의 명령을 기다렸다. 오나라 왕이 된 합려의 입장에서는 계찰의 이런 태도야말로 민심을 수습하는 데 둘도 없는 힘이 되었다. 국가 최고 원로로 한때 임금 후보 1순위였던 사람이 공자 광의 쿠데타를 승인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계찰은 정치에 발을 담그지 않으면서도 교묘하게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던 인물이다. 세종대왕에게 왕위를 양보한 효령대군과 양녕대군도 죽는 순간까지 정치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끊임없이 조선 왕실에 개입하고 사사건건 영향력을 발휘햇다. 왕위를 양보한 일에 대해 아름답게 미화된 것은 후대의 일일 뿐이다.

 

한편 요의 두 아우 촉용과 개여는 병사를 이끌고 초에 투항했다. 따라서 합려의 마지막 골칫거리는 경기였다. 이 대목에서 오자서가 또 한 명의 인물을 발탁하는데 그가 바로 자객 요리다.

 

요리는 키도 작고 삐적 마르고 가냘픈 체형에 몰골도 형편없었다. 합려는 요리가 칼이나 제대로 들 수 있는지 의문스러워하며 실망했다. 그런데 요리가 합려에게 다가가 귀엣말로 속삭였다. 일을 해 나가는 데 뜻도 중요하고 용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치밀한 계획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합려는 요리와 함께 경기를 암살하기 위한 치밀한 작전 수립에 들어갔다.

 

먼저 두 사람은 궁중에서 검술 연습을 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러고는 요리의 칼이 합려의 손을 살짝 베었다. 합려는 군주를 상해한 죄로 요리의 팔을 잘라 버렸다. 요리는 원한을 품고 도망쳤다. 그러자 화가 치민 합려는 요리의 식솔을 죽이고 그 시체를 태워버렸다. 타고 난 시체의 재도 사방 천지에 뿌렸다. 이 모든 것이 세간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연출되었다. 그리고 이 기가 막힌 이야기는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영화 무간도처럼 어떤 것이 진짜 모습이고 어떤 것이 가짜 모습인지 헷갈리는 상황이다. 연출된 칼싸움을 했지만 실제로 파을 잘랐고, 일부러 유리가 도망을 갔지만 실제로 식솔들을 죽여버렸다.

요리의 사건은 워낙 큰 스캔들로 오나라 사람들이 전부 알게 되었다. 결국 경기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경기는 요리가 자신을 찾아오자 크게 기뻐하며 반겼다. 둘은 잠자리와 식사를 같이할 만큼 가까워졌다 끝내는 힘을 합쳐 합려를 제거하기로 의기투합했다.

두 사람은 일행과 함께 배를 타고 오나라로 향했다. 한 순간 갑자기 등 뒤에서 강한 바람이 불었다. 바로 그때 뱃머리에서 풍광을 구경하던 경기의 등에 요리의 칼이 박혔다. 강한 바람의 힘을 빌린 요리의 칼은 경기의 몸속 깊숙이 박혔다. 경기는 천하장사였다. 요리를 덥석 들어 강물 속에 처넣었다. 그러고는 요리를 물에 빠뜨렸다 건졌다를 반복했다. 부하들이 달려들어 요리를 죽이려 하자 경기는 '요리가 저런 몰골로 나를 단칼에 죽일 정도면 보통 사람이 아니고 용기 있는 사람이니 살려주라'고 했다. 등에 박힌 칼을 빼니 피가 솟구쳤고 경기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구사일생으로 요리가 돌아오자 합려는 큰 상을 내렸다 하지만 요리는 도저히 낯을 들고 살아갈 수 없었다 세 가지 죄목을 자진해서 꼽으며 죽음을 자청했다. 첫째, 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처자식을 죽게 한 어질지 못한 죄, 둘째, 새 왕을 위해 선왕의 아들을 살해한 의롭지 못한 죄, 셋째, 왕의 소망은 이루었지만 자신은 패가망신한 지혜롭지 못한 죄였다. 결국 요리는 자살했다. 요리는 경기가 죽으면서 자신을 살려준 것에 큰 충격과 자극을 받았던 것이다.

 

* 죽어서도 오나라 망하는 꼴을 보리라

오자서는 합려가 정권을 장악하고 정권의 기반을 튼튼히 다지는 과정에서 눈부신 공을 세웠다. 자신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자신이 후원하는 합려가 권력기반을 확실하게 다져 힘을 기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야만 오나라를 이용해 초나라에 복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원전 512년 오나라로 망명하여 단 하루도 원한을 잊지 않고 복수의 칼을 갈던 오자서는 마침내 소원을 성취한다. 기원전 506년이니 16년 만이다. 오자서는 직접 오나라 군대를 이끌고 초나라의 수도 영을 공격해 점령했다. 오자서는 아버지와 형을 죽인 원수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에 300번의 채찍질을 가했다. 이것이 유명한 굴묘편시다.

한편 오자서에게는 초나라 시절부터 가까이 지내던 오랜 친구 신포서가 있었다. 그는 오자서의 도망을 왕에게 보고하지 않음으로써 친구를 지켰지만 그 행위 자체는 불충한 것이라 하여 스스로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물러나 있었다.그런 그가 오자서의 복수이야기를 듣고는 사람을 보내 일찍이 평왕을 섬겼던 사람이 시신에 모욕을 주는 것은 천리에 어긋난 일이라 전했다 그러자 오자서는 이렇게 말했다. '날은 저물었는데 갈 길은 바쁘다. 그러니 도리를 역행할 수밖에' 이것이 일모도원.

(가장 무서운 적은 항상 가장 가까이 있다.)

 

합려가 오자서, 백비 등과 함께 초나라를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인 이후 역사의 주무대는 오월쟁패로 넘어간다. 오나라와 월나라가 처음 맞붙은 때는 기원전 510년이다. 오나라 왕 합려가 월의 윤상을 공격했다. 기원전 506년 오자서의 굴묘편시가 있었고, 기원전 505년 월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했다. 기원전 510년 처음 충돌했고, 기원전 473년 오나라가 멸망한다. 기원전 522년 오자서가 오나라로 망명한 후 오나라가 망할 때까지 50년. 오월춘추의 격동기다.

 

이 사이 오자서는 합려의 아들인 부차가 내린 보검 촉루로 자살한다. 오자서와 사이가 나빴단 백비가 부차에게 오자서가 자기 아들을 제나라 포씨에게 맡기는 등 이적 행위를 했다며 음해한 것이다. 평소 끊임없이 바른 소리를 하는 오자서가 그렇지 않아도 못마땅하던 부차는 자신도 오자서를 의심하고 있었다며 칼을 내렸다.

 

한편 오나라의 라이벌 월나라는 범려와 문종이라는 당대 최고의 인재를 등용했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윤상의 아들 구천은 기원전 473년 마침내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월나라는 한때 오나라의 공격을 받아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렸으나 와신상담으로 재기하여 전세를 역전시켰다. 부차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며, 울나라의 뇌물로 호의호식해온 백비는 자신의 공을 인정받아 더 큰 부귀를 누릴 생각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뜻밖에 구천은 자기 군주에게 충성하지 않고 월나라의 뇌물을 받았다는 죄로 백비를 단칼에 죽여버린다.

 

오자서는 자결하라 동문에 매달아 월나라 군사들에게 오나라가 망하는 것을 직접 보?다고 했다. 오나라는 오자서가 죽은 뒤 바로 멸망하고 말았다. 부차는 죽기 전 자신의 얼굴을 천으로 가려달라고 유언했다. 죽어서 오자서를 볼 면목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전국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고리로서 50년에 걸친 오월춘추의 역사는 이렇듯 흥미??욕과 분발이 얽힌 이 드라마의 오리지널 각본은 사기다.

 

*와신상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태와 그것을 견디고 극복하는 또 달느 차원의 능력이라는 요소가 있다.

 

10. 진시황의 지하 세계

진시황은 중국 역사에서 명실상부한 최초의 황제. 따라서 시작할 始를 써 시황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한 이후 신하들에게 자신의 호칭에 대해 논의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신하들은 태황으로 부르자고 제안했지만, 진시황은 태황에서 태자는 버리고 황으 따오고, 삼황오제에서 제를 따와 황제라 칭하자 한다. 나머지는 신하에게 맡긴다. 황제가 스스로 부를 때는 짐이라 했다.

 

* 진시황을 제대로 보려면.

1974년 한 농민이 우물을 파다 우연히 발견한 병마용갱이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면서 그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었다.

 

사마천이 진시황을 평가한 대목을 보자.

-배운 자들은 자기가 보고 들은 것에 얽매여 진 왕조가 오래 존속하지 못한 현상만 본다. 그 처음과 끝을 살파지 못한 채 모두들 비웃으며 감히 칭찬 같은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귀로 음식을 먹으려 드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서글프다-

 

진나라가 어떻게 해서 일어났고 어떻게 망했는가. 그 처음과 끝을 세밀하게 치밀하게 살펴보지 않고 분서갱유와 같은 진시황의 나쁜 정치들만 유독 부각시켰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정통 유가에서는 진시황을 폭군으로 몰았으며 진 왕조 자체를 정통에서 배제시켰다. 하지만 사마천읜 사태의 본질, 역사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잘못된 사고방식이라 꼬집으며 '귀로 음식을 먹으려 든다'는 이식이라는 절묘한 표현으로 이를 비꼬고 있다.

 

사마천 당대에도 진시황과 진나라에 대한 정통성이 부인되었으며 독재자나 포악한 군주로 몰아가는 것이 대세였던 모양이다. 진나라와 진시황에 대한 역사 왜곡 현상이 심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사마천이 이런 이야기를 남겼을 것이다.

 

* 세계를 놀라게 한 병마용갱.

1980년 일본 NHK는 실크로드라는 대형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세간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첫 회에 등장한 것이 병마용갱이다. 병마용갱은 진시황이 무덤으로 1.5킬러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구멍이다.

현재 큰 구덩이가 세 개 발견되었으며 약 8,000구의 병사가 출토되었다. 병사들 손에 들려 있는 무기 등 각종 유물은 10만 점에 달하며 지금도 발굴 중이다. 놀라운 것은 병사들이 전부 실물 모형이라는 점이다. 키는 170~190센티미터, 얼굴이 똑같은 병사는 단하나도 없다. 실제 군인을 모델로 삼아 적어도 세 장 이상의 스케치를 한 다음 그것을 바탕으로 흙으로 빚어 구웠다.

 

* 병마용갱이 불러온 변화의 바람.

관람객 수는 2000년까지 통계로 중국 인민만 3000만 명. 외국인은 430만으로 추정. 미국 유럽인의 수가 가장 많은데 미국이나 유럽에서 서안까지 몇 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오는 것일까. 한 번 오면 적어도 며칠은 묵고 갈 것이다. 그러면 관광으로 벌어들인 돈은 어느 정도일까.. 문화의 부가가치는 대단하다.

 

당연히 병마용갱이 발굴된 임동 사람들의 삶의 양식도 완전히 바뀌었다. 그 지역은 옥수수밭이 대부분이다. 농민들은 이제 병마용갱에서 선물 가게의 관광 수입으로 먹고 산다. 소득 패턴이 관광 위주의 문화 수입으로 바뀐 것이다. 진시황릉 전체가 석류나무로 덮여 있다. 중국 사람들은 예로부터 자식 많은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열매 안에 씨가 엄청나게 많은 석류를 많이 심었다. 자연스레 진시황 병마용갱의 특산물은 석류가 되었다.

 

* 무궁무진한 중국의 소프트파워

병마용갱의 발굴이 중국에 가져다준 엄청난 충격은 생활의 변화뿐 아니라 정신적인 변화도 가져왔다. 배금주의가 생긴 것이다. 문화재 하나 발굴했더니 엄청난 돈이 생겼따. 개혁 개방 이후 중국 사람들은 경제와 자본에 더욱 집착하게 되었다. 사실 중국은 껍데기만 사회주의라 할 수 있다. 육신은 사회주의, 영혼은 자본주의.

원래 장사 잘하고 돈 밝히는 사람들이다.

 

1980년 영화를 통해 소림사가 처음 소개 되었다. 그 후로도 영화 소림사가 몇 편인가 더 제작 되었고 소림사란 존재도 점점 더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1990년대 초 소림사 하루 관람료가 당시 우리 돈으로 1억원이 넘었다. 당연히 신문에 대서특필 되었고, 문화재가 돈이 된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때부터 대대적으로 문화재를 보수하고 수리하고 발굴하는 문화재 개발과 발굴 광풍이 몰아쳤다.

병마용갱이 보여준 어마어마한 문화의 부가가치가 중국 사람들의 눈과 생각을 바꾼 것이다.

 

* 진나라 군대의 힘. 머리카락과 수염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가 불과 15년 만에 멸망한 원인이 무엇일까. 진시황은 어떤 사람이기에 병마용갱을 축조했을까.

원래 진나라는 서쪽의 변방 국가였다. 야만국이라 해서 중원에 있는 다른 나라들이 주목하지도 않던 나라였다. 그런 진나라가 동쪽에 있는 여섯 나라를 차례로 정복하고 최초의 통일 국가를 이룰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그 저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병마용갱이 실물로 보여주는 진나라 군대, 바로 이것이 가장 큰 힘이다. 경제적/정치적 이유도 있겠지만 일단은 군대에서 천하 통일의 원동력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진나라 군대는 다른 나라와 달리 특징적인 몇 가지 모습이 있다. 병마용갱에서 출토된 진용의 뒷모습. 위엄이 서려 있다. 또한 상대를 압도하는 눈을 가지고 있다. 이 분위기를 좀 더 효과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것이 수염이다. 군대라고 해서 전투에 나가는 군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행정직을 담당하는 문관도 있다. 그들을 제외한 모든 무관이 예외 없이 자기 얼굴에 맞게 수염을 길렀다. 한결같이 잘 다듬은 수염이다. 뒷모습도 정성을 들인 상투 머리다. 한 올도 삐져나오지 않게 정갈하게 빗은 다음 꼬거나 틀어서 뒤로 넘겨 상투를 틀고 올려서 묶었다. 머리핀까지 사용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 진나라 군대는 왜 갑옷이나 투구에 비해 두발이나 수염에 집착했을까.

 

진나라 군대의 큰 힘은 머리카락과 수염이다. 군대는 사기를 먹고 산다. 사기가 충만해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사기가 떨어지면 필패다. 사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군기에서 온다. 군기가 잡혀야 사기가 올라간다. 군기는 무엇으로 잡는가. 복장으로 잡는다. 전쟁에 나가는 군인이 구겨진 옷을 입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모자도 삐딱하게 쓰면 그건 당나라 군대다.

 

진나라 군대 복장의 특징은 수염과 헤어스타일에 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 중심 사회로 넘어갈 때 나타나는 가장 큰 지표는 남성이 수염을 밀고 다디는 것이다. 하지만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는 남성이 예외 없이 수염을 길렀다. 남녀평등이 실현될수록 남성은 거의 수염을 기르지 않는다.

 

진나라 군대의 두발과 수염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두발 존중 사상이다. 진나라 법률은 칼싸움을 연습하다가도 상대방 머리카락을 다치게 만?굴에 뜸을 뜨는 묵형을 받았다. 수염은 사람의 기품과 자세를 말해주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래서 두발과 수염을 중시했다. 대신 복장은 간편했다. 투구도 쓰지 않았다. 기동성을 살린 것이다. 기동성 있는 진나라 병사는 일당백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진시황릉 발굴에 가장 중요한 인물은 저우언라이다. 평생을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갖지 않고 살다 간 사람이다. 죽거든 화장해 뼛가루를 조국 산천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유언대로 뼛가루가 비행기에서 중국 산천에 뿌려진 사람이다. 자식도 남기지 않았다. 부인도 소박하게 살다가 아무런 재산도 남기지 않고 떠났다.

중국 사람에게 가장 존경하는 두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거의 제갈량과 저우언라이를 꼽는다.

두 사람 모두 청렴결백의 상징이다.

 

저우언라이와 일본의 다?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 일본은 트랜지스터를 팔아 돈을 엄청나게 벌었다. 일본은 그 힘으로 저우언라이 수상에게 진시황릉을 같이 발굴하자고 젱나했다. 나중에 유물을 반반씩 나눠 갖자는 이야기였다. 그러자 저우언라이 수상이 피식 웃으며 정신 나간 소리라고 일침을 놓았다. 일본을 사고도 남을 만한 유물이 나올지 모르는데 뭐가 급해서 발굴을 하느냐국인의 강한 반일 감정이 만들어낸 에피소드다.

 

11. 진시황릉의 비밀

봉건적 제왕 체제에서는 최고 권력자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죽고 난 다음 장례 등의 일을 처리하려면 번거로울 뿐 아니라 각종 돌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연유로 역대 제왕들을 즉위하기 무섭게 무덤을 조성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제 막 제왕 자리에 올랐는데 무덤이라니, 상당히 기분 나쁜 일이겠지만 당시에는 자연스레 그렇게 했다.

진시황릉도 마찬가지다. 진시황(당시에는 진왕)이 즉위하자 축조를 시작했다. 진시황은 13세에 즉위하여 49세에 사망했다. 햇수로 37년 정도 재위했으니 즉위하자마자 무덤 축조에 들어가 37년 동안 공사를 한 셈이다. 그러고도 다 끝내지 못해 그의 아들인 2세 황제 호해때 가서야 겨우 완공했다.

한무제는 더 했다. 16세에 즉위해서 70세까지 재위했으니 55년 동안 무덤을 만들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매우 화려하게 축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나중에 농민 봉기가 일어나 도굴당했는데 한 달 동안 유물을 운반해도 다 가져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무덤 축조는 무덤 주위로 신도시를 조성하는 것이 첫 번째 순서다. 재력을 가진 부자들을 비롯해 관련된 사람들을 이주시켜 일단 경제를 활성화시켰다. 이와 함께 도시 건설과 무덤 축조에 필요한 각종 자재를 공급했다. 또한 이를 다루는 장인과 이들에게 먹을 것과 잘 곳을 제공하는 시설 등이 생겨났다. 사마천은 한무제의 무덤 조성으로 아버지를 따라 장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무릉이란 신도시로 이주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사마천은 진시황의 무덤 조성과 관련해 비교적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이 기록의 일부가 진시황릉의 수수계끼를 푸는데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했다.

 

진시황 본기에 나오는 진시황릉의 축조 기록을 보자. 먼저 전국에서 이송되어 온 인부와 죄수 70만 명을 동원에 여산 자락에 무덤 조성을 위한 정지작업을 시작했다. 주택에 비유하자면 택지 조성이 먼저 시작된 것이다. 대지를 만들기 우해 부술 것은 부수고 뽑을 것은 뽑았다. 여산은 주나라 유왕이 포사와 봉화 놀이를 했던 곳으로 산자락 아래에는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가 목욕하던 화청지가 있다.

 

대개 제왕이 죽으면 제왕을 모시던 비빈이나 궁녀 가운데 자식이 없는 사람은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진시황의 작은 아들 호해는 이들을 모조리 생매장, 즉 순장시켰다. 또 무덤을 만드는 데 동원된 장인과 기술자를 모두 무덤안에 둔 채 밖에서 봉쇄하여 나오지 못하도록 했다.

 

진시황릉은 중국 역대 제왕들의 무덤 조성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장소이다. 무덤뿐 아니라 진시황도 여러모로 획기적인 인물이었다. 진시황릉은 평지에다 흙을 날라 봉분을 쌓았다. 진시황릉 이전의 제후나 주나라 왕은 평지에 묻었다. 봉분을 만들지 않았다. 진시황때부터 봉분을 만들었는데, 평지에 흙을 쌓아 산처럼 만들었다. 이를 이릉위산이라 한다. 무덤을 산처럼 만들었다는 뜻이다.

당나라 이전까지 이런 방식으로 제왕의 무덤을 조성했다. 그러다 당나라 때부터는 아예 산을 무덤으로 바꾸었다. 산 하나 전체가 황제의 무덤이 되었다. 무덤 입구는 철저하게 극비 사항이었다. 도굴 방지를 위한 조치였다. 이산위릉이라 한다.

 

진시황은 동쪽 지방으로 순시를 나갔다가 사구에서 갑자기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그때가 7월이다. 시체를 수도 함양으로 운반하는데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래서 소금에 절여 말린 물고기를 마차에 함꼐 실어 시신의 악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진시황의 미라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진시황의 아버지는 자초인가, 여불위인가.

진시황은 진나라 수도인 함양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아버지 자초가 조나라에서 볼모 생활을 할 때 조나라 수도인 한단에서 태어났다. 당시 진시황의 아버지 자초의 장래를 보고 과감하게 투자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여불위.

전국책에 장사꾼 여불위가 어떤 사람인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 나온다.

여불위가 그의 아버지와 나눈 대화다.

 

농사를 지으면 얼마의 이익이 납니까.

열 배는 나겠지.

보석 같은 귀중품을 사고팔면 몇 배나 이윤이 납니까.

백 배쯤은 되지 않겠니.

한 나라의 왕을 만들면 그 이익은 몇 배나 날까요.

그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지.

 

여불위는 한 나라를 통?로 사겠다는 야심으로 자초에게 눈독을 들였다. 여불위가 당시 진 왕실의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니 자초가 왕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비록 볼모 신세였지만 자초가 고위층 인사와 폭넓은 교류를 가질 수 있도록 품위 유지비를 아낌없이 투자했다. 훗날을 대비하라는 의미였다. 물론 실제로는 자신의 훗날을 위해서였지만.

여불위는 자초의 이름으로 호화로운 만찬을 여는 등 자초의 신분 상승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자초가 자신의 첩 조희에게 침을 흘리자 조희까지 바쳤다. 바로 그녀가 진시황을 낳았다.

일설에는 첩이란 이야기도 있고 조나라 명문 집안의 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느 쪽이든 현재로선 확실치가 있다.

앞서 말했듯 진시황의 성은 진이 아니라 '영'씨다. 진의 선조에서 갈라진 성으로 조씨도 있다. 그래서 조나라도 진의 후손이다. 진시황의 이름은 정으로 아버지 자초가 즉위한 지 3년 만에 세상을 뜨자 13세에 진왕이 되었다. 6국을 통일하기 전으로 아직은 황제가 아닌 왕이었다. 결국 사람을 건 여불위의 도박이 멋지게 성공했다. 자초가 왕이 된 것만으로도 대단한 권력을 쥐게 되었는데, 자초가 어린 진시황을 남기고 일찍 죽는 바람에 섭정이 되어 실질적인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여불위는 상국이 되어 어린 진시황을 대신해 실제 권력을 휘두른다. 어마어마한 땅, 1만명의 노비. 식객만 3,000명.

전 나라를 손에 넣은 것이다. 그런데 진시황이 막 성년으로 접어들 무렵 궁중에 불미스러운 스캔들이 터졌다. 진시황의 어머니 조태후(조희)가 여불위와 간통을 하고 만 것이다. 조희는 남편을 일찍 여의었고, 아직 한창 나이였따. 외로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쉬쉬하는 가운데 얼마간 지속되었다. 추문의 주인공들이 진나라에서 가장 막강한 권세를 자랑하는 여불위와 왕의 어머니인지라 함부로 입을 놀리지도 못했다. 그러나 여불위는 냉정한 사업가였다. 조희와 관계를 계쏙하다가는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 위험이 다분했다. 생각 끝에 여불위는 조희에게 절륜한 정력의 노애라는 사내를 붙여주었다. 그것도 환관이라고 속여 조희 곁에 머물게 했다.

조희는 이내 노애에게 빠져들었고 아이를 둘이나 낳았다. 두 사람의 관계도 문제였지만 과부가 아이를 둘씩이나 낳았으니 말들이 많았다. 진시황도 귀가 있는데 이런 추문을 모를 리?세를 믿고 반란을 일으켰다. 진시황은 노애의 반란을 신속하게 제압했다. 진시황은 노애 일당을 멸하고 어머니 조희가 낳은 두 아들까지 죽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옹이란 곳으로 추방했다. 사건의 진상을 조사해보니 여불위도 연루되어 있었다. 진시황은 고심 끝에 이듬해 여불위를 추방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여불위는 촉 땅으로 옮겨가 살다가 진시황의 압력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제 진시황은 명실상부한 왕으로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 타격을 입었다. 아버지처럼 따르던 여불위와 생모의 간통, 끝을 알 수 없는 생모의 음욕과 하잘것없는 노애라는 자의 발호와 반란, 여불위와 노애가 거느리던 가신들의 강력한 저항과 반발 등이 여러보로 진시황을 단련시키기는 했지만 동시에 그의 영혼에 큰 상처를 남겼다.

특히 생모의 추문으로 여성을 혐오하는 콤플렉스를 갖게 되지 않았을까, 진시황은 죽을 때까지 정식 황후를 세우지 않았다.

 

* 최초의 황제.

32세 때 일어난 사건도 진시황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자객 형가가 진시황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다.

경가는 진시황이 빤히 보는 앞에서 지도에 숨긴 비수를 꺼내 진시황을 찌르려고 했다. 형가가 진시황을 암살하려던 장면을 보면 손에 땀을 쥐게 하다.

 

형가가 지도를 진왕(진시황)에게 바치니 진왕이 지도를 펼쳤다. 지도를 다 펼칠 즈음 비수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형가는 진왕의 옷소매를 왼손을 붙잡고 오른손으로는 비수를 빼서 진왕을 찔렀다. 그러나 비수는 미처 진왕의 몸에 닿지 못했고 진왕이 놀라 몸을 빼려 하자 소매가 잘려 나갔다. 진왕이 검을 뽑으려 했으나 너무 길어 검집만 잡은 채 뽑지 못했다. 너무 다급한 데다 단단히 꽂혀 있어 바로 ? 수 없었던 것이다. 형가가 진왕을 잡으려 뒤?자 진왕은 기둥 사이를 돌며 달아났다. 신하들은 너나할 것 없이 놀랐지만 졸지에 당한 일이라 어찌 할 줄 몰랐다. 게다가 진나라 법이 대전에서 왕을 모시는 신하들은 아무리 작은 무기라도 몸에 지닐 수 없었다. 또 무기를 가지고 대전아래 늘어선 낭종들은 왕이 부르지 않으면 대전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하지만 진왕은 너무 다급했던 나머지 대전 아래에 있던 병사들을 부를 겨를이 없었다. 때문에 형가가 진왕을 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무기가 없는 대신들은 급한 나머지 맨손으로 형가를 내려쳤다. 이때 시의 하무저가 받쳐 들고 있던 약주머니를 형가에게 던졌다. 진왕이 다급한 나머지 어쩔 줄 모르고 기둥 사이를 뱅뱅 돌고만 있자 좌우 신하들은 '검을 등 뒤로 돌리십시오. 대왕' 하고 소리쳤다. 진왕이 가까스로 검을 등 뒤로 돌리고는 마침내 검을 뽑아 형가를 내리쳐 그의 왼쪽 다리를 잘랐다. 형가는 쓰러진 채 비수를 진왕에게 던졌으니 빗나가 구리 기둥을 맞혔다. 진왕은 다시 형가를 쳐서 여덟 군데나 상처를 입혔다. 실패했음을 직감한 형가는 기둥에 기대어 미소를 흘리며 두 다리를 벌리고 않더니 '진왕을 사로잡아 협박하여 반드시 약속을 받아내 태자에게 보답하려는 바람에 일을 그르쳤구나'하고 자책했다. 이때 좌우 신하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형가를 죽였다. 진왕은 오래도록 마음이 편치 못했다.

 

기둥 사이를 쫓고 쫓기는 자객과 진시황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만의 하나 이때 진시황이 형가에게 암살당했다면 역사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을까

 

진시황은 이 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으며 궁궐 경비를 더더욱 철통같이 했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해가는 과정에서 시스템이 경색되고 폐쇄적으로 바뀐 이유가 형가의 암살 시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추정하는 연구자도 있다.

 

진시황은 38세의 한창 나이인 기원전 212년. 마침내 천하를 통일했다. 왕성하게 일할 나이에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전국 시대 7국이 모두 다르게 써왔던 문자를 통일하고 제각각이던 도량형도 통일했다. 수레바퀴의 지름과 바퀴 사이의 축도 규격화 했다. 수도 함양으로 통하는 고속도로, 즉 치도를 닦았으며, 치도 양 옆으로 가로수까지 심었다. 300만 제곱킬로미터 이상으로 확대된 방대한 통일 제국이 된 것이다. 진시황은 봉건제를 버리고 중앙집권적인 군현제로 전환시켜 통치했다. 이 획기적인 조치로 그 후 2000년 동안 중국의 정치, 행정 체제의 근간이 되었다.

 

39세에는 여산까지 길을 뚫어 감천궁을 지었다.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길 양쪽으로 벽을 쌓아올린 도로인 용도를 수축, 함양까지 통하게 했다. 40세에는 처음으로 산동성 태산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는 봉선을 치렀다. 이후 중국 황제들은 즉위 후 태산으로 행차하여 봉선제를 지내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은 봉선제에 참석하지 못해 울화병으로 죽었따.

 

41세에 동쪽 지방을 순시하던 진시황은 또 한 차례 암살 사건을 겪는다. 박랑사에서 창해역사라는 이름의 장사가 진시황의 마차를 철퇴로 내리쳤다. 그러나 창해역사는 진시황이 탄 마차를 잘못 알아보아 암살에 실패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대통령 1호 차를 공격해야 하는데 2호차를 공격한 것이다. 진시황은 자신에 대한 암살시도에 대비하기 우해 같은 마차를 여러 대 준비했고, 자신이 어떤 마차에 타는지 철저히 보안에 부쳤다.

 

이 암살 미수 사건의 배후자는 장량이다. 장량은 유방을 도와 천하를 재통일하는데 한신, 소하와 함께 가장 큰 공을 세운 '서한삼걸'의 한 사람이다. 그는 사기 전체를 통해 정상에 오른 순간 명예로운 은퇴를 결행한 월나라 범려와 함께 가장 현명한 처신의 대명사로 이름을 길이 남겼다. 최고 자리에 오르고도 완벽하게 보장된 부귀영화를 뒤로한 채 산간으로 은퇴한 인물이 장량이었다.

 

그런데.. 왜 장량은 진시황을 암살하려 했을까.. 그의 조국인 한나라를 멸망시켰기 때문이다. 명문 귀족 출신인 장량은 조국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재산을 모두 털어 진시황 암살을 모의하고 실행에 옮겼은 실패했다. 이 일로 그는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져 이곳저곳을 떠돌게 된다.

 

진시황은 44세 때 불로장생약을 구하기 위해 방사 서복을 동쪽으로 보냈다. 흔히들 진시황의 사인을 스트레스 과로사로 본다. 그는 300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광대한 대제국을 어떻게 통치하고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 늘 고민했다. 또 자신에 대한 여러 차례의 암살 기도 때문에 극도의 신경과민에 시달렸다. 따라서 자신의 건강 상태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으며, 오래도록 건강과 수명을 지켜줄 수 있는 불사약과 특별한 처방을 갈구했을 것이다. 게다가 진시황은 모든 일을 혼자 판단하고 결정하는 스타일이었다. 자신이 죽고 난 다음의 상황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을 것이다. 능력 있고 신망이 두터운 장성한 큰 아들 부소가 있었지만 후계 구도를 일찌감치 정해놓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진시황에게는 과대망상증이 있었고, 그것이 오히려 그의 죽음을 재촉하는 독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진시황은 하루에 해야 할 일의 양을 정해놓고 그 일을 마치지 못하면 잠도 자지 않았다고 한다. 말 그대로 일 중독자였다. 하지만 우리나리 50에 사구에서 갑자기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 후계자를 세우지 못한 절대 권력자.

진시황은 장생불사의 약을 구하기 우해 다섯 번째 순행에 나섰다가 귀환하는 길에 갑자기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죽기에 앞서 진시황은 뒤늦은 유서를 남겼다. 산서성에서 흉노와 대치하고 있는 몽염 장군과 큰아들 부소에게 서둘러 함양으로 돌아와 자신의 장례를 치르고 부소는 황제 자리를 계승하라는 내용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후계 문제는 진작에 안배했어야 했다. 진시황의 죽음과 함께 진행된 엄청난 음모가 이를 역설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유서 전달을 명령받은 환관 조고, 사리사욕과 탐욕으로 가득찬 비열하고 열악한 성품인 그는 제국의 운명이 걸린 이 중대한 순간을 엉뚱한 방향으로 뒤틀렀다. 진시황의 유서를 조작한 것이다. 그는 진시황의 작은 아들 호해를 설득하고 권력과 부귀영화에 흔들리는 승상 이사를 음모에 가담시켰다. 조고는 부소와 몽염을 자결케하고 자신의 꼭두각시인 호해를 2세 황제로 앉히는 데 성공했다. 그와 함께 제국은 한없는 멸망의 늪으로 빠져든다.

 

사마천은 진시황이 매부리코에 길게 찢어진 눈 그리고 새가슴에 승냥이 같은 목소리를 가진 모습이라 표현했다. 목소리만 보자면 허스키 보이스였다. 이 기록을 근거로 궈머뤄라는 중국의 학자는 진시황이 기관지염이나 천식으로 고생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어떤 학자는 진시황은 키가 190센티미터가 넘는 위풍당당한 장부였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시체가 썩고 미라가 존재하지 않기 ?문에 확인할 길은 없다.

 

* 세기의 발굴을 둘러싼 논쟁

중국의 문화재 발굴법은 1970년대 이후로 바뀌지 않고 있다. 1970년대 저우언라이 수상에게 진시황릉을 발굴하자는 건의서와 탄원서가 끊임없이 올라왔다. 국가 부주석까지 지낸 역사학장자 소설가, 시인인 궈머뤄까지 발굴하자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저우언라이는 이를 물리쳤다. 그는 과학 기술이 좀 더 완벽해질 때를 기다려 후손에게 맡기자고 했다. 그러고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발굴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때가 1970년대 후반이고, 저우언라이의 확고한 입장이었다. 지금도 금과옥조처럼 지켜지고 있다. 지금 발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는 우리, 나아가 세계인이 공유하는 유산이다. 발굴 하나, 보존 하나라도 제대로 해야만 공유를 위한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는 것이다. 눈앞의 성과와 개인의 명성을 위해 마구파헤치면 어찌 되겠는가.

무령왕릉 발굴은 세계 발굴 역사상 최악의 발굴로 기록되고 있다.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진 정치가 한 사람이 중국과 세계인의 소중한 문화재를 지켜내는 방패가 되었고 지금도 든든한 방패 역할을 하고 있다.

 

12. 고사성어에 닮긴 삶의 지혜.

고사성어나 명언, 명구는 누군가를 설득해야 할 때 간명하게 상대를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 일상생활의 대화 속에서도 화제의 핵심이나 상황을 한마디로 압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제때 제자리에 쓰인 고사성어, 명언, 명구는 말이 지나간 뒤에도 깊은 여운을 전하는데, 거기에 깃든 세상과 사람을 향한 지혜와 훌륭한 통찰력 덕분이다. 사기에는 3000년의 시간과 그 시간 속 주인공들이 빚어낸 지혜와 통찰력의 성어, 명언, 명구가 해변의 모래처럼 많다.

 

* 완벽한 것에 하자...

완벽. 옥벽자를 보면 밑에 구슬 옥자가 있다. 옥과 관련된 글자임을 알 수 있다.

강대국 진나라가 점차 동쪽으로 세력을 넓혀가던 전국 시대 후반, 조나라에 화씨벽이라는 귀중한 옥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초나라 사람 변화가 형산에서 얻은 박옥을 옥으로 다듬어 여왕에게 마쳤다. 초나라 여왕이 옥 감정사를 시켜 감정한 결과 옥이 아니라 돌이라는 감정이 나왔다. 화가 난 여왕은 변화의 다리를 잘랐다 변화는 초나라 무왕이 즉위하자 또 옥을 갖다 바쳤다. 그런데 이번에도 돌이는 감정이 나와 변화는 팔이 잘렸다.

 

초나라 문왕이 즉위하자 변화는 박을 안고 산에 가서 대성통곡했다. 삼일 밤낮을 울었더니 눈물이 마르고 피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문왕이 이 소식을 듣고 기이하게 여겨 사람을 보내 물었다.

 

천하에 다리 둘 잘린 사람도 많은데 너는 왜 그리 슬피 우느냐/

변화가 대답했다.

다리 잘린 것이 슬퍼 우는 것아 아닙니다. 옥을 돌이라고 해 슬픈 것이고 제 충정을 모르고 사기꾼으로 몰아 슬픈 것입니다.

 

문왕이 다시 감정사를 시켜 변화가 가진 돌을 쪼개보도록 했다. 그러자 과연 그 돌 안에 천하에 둘도 없는 보옥이 있었다. 이 옥을 변화의 이름을 따서 화씨벽이라 불렀다.

 

초나라 위왕 때 나라의 공이 많은 재상 소양에게 화씨벽을 상으로 주었다. 어느 날 소양이 연회를 열어 자신의 옥을 여러 사람에게 자랑 삼아 보여주었는데 그날 밤 화씨벽이 사라졌다. 50년이 지난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조나라 환관의 집에 와서 옥을 팔았다. 환관은 장인에게 옥을 감정케 했고 옥을 감정한 장인은 화들짝 놀라며 '화씨벽'이라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조나라 혜문왕이 화씨벽을 빼앗았다. 그 후 진나라 소양왕이 이 옥을 탐내어 조나라에 성 15개와 화씨벽을 맞바꾸자 했다.

 

강대국 진의 속셈을 알면서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조나라는 인상여를 시켜 옥을 진나라에 가져가게 했다. 인상여가 진나라에 가니 성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없고 옥만 요구했다. 인상여는 성은 얻지 못한 채 옥만 뺏길 것 같지 진나라 왕에게 '사실 화씨 벽에는 보통 사람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하자가 있습니다'하며 일단 화씨벽을 돌려 받았다. 그러고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진왕을 나무라며 옥을 자신의 머리와 함께 기둥에 부딪쳐 산산조각 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상품에 하자가 있다고 할 때 하자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인상여는 이 옥을 함부로 받아서는 안 되니 지금부터 닷새 동안 목욕재개하고 나면 다시 주겠다고 했다. 객관에 돌아온 인상여는 그 사이 다른 사람을 시켜 화씨벽을 조나라로 돌려보냈다. 여기서 완벽귀조라는 고사성어도 나왔다. 진나라 소양왕과 인상여가 화씨벽을 놓고 승강이를 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화씨벽을 온전하게 조나라로 돌려보냈다고 해서 완벽귀조라고 한다.

 

고사성어는 재미있다. 그 안에 사연이 있고 인생의 철리나 세상사 이치도 들어 있다. 또한 삶의 지혜도 압축되어 있다. 고사성어를 많이 알아두면 상황에 맞는 이야기를 자기 삶에 적용할 수 있다.

 

산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는 없다. 조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자그마한 돌부리에 걸릴 때마다 지혜로운 이야기를 머릿속에, 가슴속에 새겨둔다면 돌부리를 파내거나 무사히 건너는 지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고사성어로 읽는 지혜의 사전 사기.

말을 잘하면 세 치 혀를 잘 놀린다고 표현한다. 한 치는 3센티미터. 세 치는 9센티미터 정도. 혓바닥의 길이와 거의 비슷하다.

세 치 혀를 놀린다는 고사성어 도삼촌설은 사기 회음후 열전에 나온다. 회음후 열전은 한신에 관한 열전이다.

한신의 책사인 괴통이 세 치 혀를 잘 놀렸다고 한다. 괴통은 한신에게 독립하여 천하를 삼분하라고 강격하게 권했다. 하지만 한신은 망설이다 시기를 놓쳤고, 결국 토사구팽 당했다.

 

선거철마다 후보는 유세를 한다. 유세라는 단어도 사기에 나온다 말 잘하는 자들이 자국의 군주들에게 자신들의 세 치 혀를 놀려 자리와 부귀영화를 구하는 이야기가 많다. 이들을 유세가 또는 세객이라 불렀는데 요즘 식으로 말하면 로비스트다. 넓은 의미에서 외교가라 할 수 있다.

 

소진은 강국 진을 제외한 동방 6국이 공동으로 임명한 6국 공동 재상이다. 6국의 공동 재상이 되기까지 소진이 제안한 합종책은 유명한 외교 전술이다. 기원전 4세기 말 천하는 전국칠웅(제, 최, 진, 연, 위, 한, 조)으로 압축되었다. 그 중에서도 진이 단연 막강했다. 소진도 처음에는 강대국 진을 찾아가 유세했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실의와 좌절을 맛보아야만 했다. 그러다 연나라에 1년 가까이 머문 끝에 기회를 잡아 연나라 문후를 설득하는데 성공한 뒤, 나머지 다섯 나라를 돌며 진나라에 굴복하여 쇠꼬리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닭의 대가리가 되라는 식으로 설득했고 동방 6국을 종으로 연합시켜 서쪽의 진나라에 맞섰다. 이것이 합종책이다.

 

소진의 동창이자 라이벌이었던 위나라 출신의 장의도 풍운의 꿈을 품고 각국에 유세했다. 그러나 계속 푸대접만 받았고 심지어 두들겨 맞기도 했다. 이와 관련한 일화. 장의가 밖에 나가 심하게 구박을 당하고는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다. 남편의 몰골을 본 장의의 부인은 가장으로서 생계도 꾸리지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어디 가서 그렇게 맞고 다니나며 바가지를 심하게 긁었다. 급기야 그런 쓸데없는 공부는 왜 하냐며 장의의 자존심을 긁었다. 그런데 심하게 화를 낼 줄 알았던 장의가 갑자기 자신의 혓바닥을 쑥 내밀며 혓바닥 아직 그대로 있는가 하고 물었다 유세가는 혀만 남아 있으면 된다는 의미였다. 변설로 공을 세울 여력이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의 설상재라는 말의 유래다?? 대응한 연횡으로 출세하게 된다. 진나라를 설득한 장의는 6국을 돌며 6국이 각각 진나라와 횡으로 연합할 것을 제안하여 진과 6국의 횡적 동맹을 성사 시켰다. 이것이 바로 연횡책. 진은 이 외교정책을 바탕으로 6국을 하나하나 병합하고 중국을 통일했다.

 

* 유혈이 낭자하다.

피를 많이 흘리면 유혈이 낭자하다고 표현한다. 이리 랑자와 깔개 자를 합쳐진 낭자란 단어도 사기에서 나왔다.

낭자는 여우나 이리 긑은 동물이 잠을 자고 난 다음 흔적을 없애기 위해 풀을 마구 흩는다는 뜻이다.그래서 어지러운 상태다.

 

순우곤. 왕께서 술을 내리시면 관원들이 옆에 있어 두렵고, 더군다나 엎드려서 마시니 한 말도 못 마시고 취합니다. 어버이에게 꿇어앉아 받아도 두 말을 못 마시고 취하게 됩니다. 오랜만에 벗과 마시면 홀가분하고 즐거워 대여섯 말을 마실 수 있습니다. 마을 잔치에서 남녀가 섞여 앉아 주거니 받거니 하면 이런 것을 좋아하여 여덞 말 정도 마실 수 있지만 완전히 취하지 않습니다. 또 깊은 밤에 자리를 좁혀 남녀가 동석하고 신발이 서로 뒤섞이며 술잔과 그릇이 어지럽게 흩어지고 마루 위의 촛불이 꺼지고 얇은 비단 속옷의 옷깃이 열리면 은은한 향기에 한 섬을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술이 극도에 이르면 어지럽고 즐거움이 극도에 이르면 슬퍼집니다.

 

사물이란 극도에 이르면 반드시 쇠한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제위왕은 곧 밤새워 술 마시는 것을 그만두고 순우곤을 주객으로 삼았다. 그 후 왕실의 주연이 있을 때마다 순우곤은 항상 왕을 모셨다.

 

* 야전 사령관이 연출한 드라마 배수진

배수진을 치다. 명장 한신이 실전에 활용해 유명해진 고사성어다. 조나라 군사와 싸울 때 한신은 도망칠 곳이 없는 강을 뒤로 두고 진을 쳐 승리했다

 

한신과 관계된 고사성어로 다다익선이 있다. 유방이 한나라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군사적으로 가장 많은 공을 세운 이가 한신이다. 한신과 소하, 장량을 합쳐 서한 삼걸이라 부르는데, 한나라를 건국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세 사람의 인걸이라는 뜻이다.

한신은 군사. 소하는 후방 물자 담당, 장량은 전략 전술을 담당했다.

 

한고조 유방은 술자리에서 항우를 이긴 원인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유방은 한신에게 이렇게 물었다. 황제인 내가 장수라면 어느 정도 병사를 거느릴 수 있겠는가. 한신은 10만 정도면 충분하다고 대답했다. 기분이 언짢았지만 유방은 한신에게 너는 어떠한가 물었다. 한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대답했다(다다익선). 유방이 웃으며 그런 네가 왜 내 밑에 들어왔느냐고 다시 물었다. 한신은 폐하께서는 많은 병사를 거느릴 순 없지만 장수를 잘 거느리십니다. 그게 바로 신이 폐하 밑에 있는 까닭입니다. 폐하는 하늘이 정한 분이지 사람의 힘으로 된 분이 아닙니다. 라고 했다. 장수 위의 장수라는 상장지장도 이 말에서 나왔다.

 

* 패장의 비극과 사면초가

비운의 영웅 항우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고사성어는 패왕별희나 사면초가를 떠올린다.

진나라를 무너뜨린 서초패왕 항우와 한왕 유방은 기원전 203년 흥구를 경계로 천하를 양분하고 5년간에 걸친 패권 전쟁을 일단 멈추었다. 자신을 보좌하던 최고의 참모 범증을 잃는 등 전세를 역전당한 항우의 휴전 제의를 유방이 받아들인 것이다.

항우는 자신이 정한 도읍인 팽성을 향해 철수 길에 올랐다. 유방도 서쪽의 한중으로 철수하려던 차였다. 하지만 장량과 진평 등은 유방에게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적극 충고했다. 이에 유방은 휴전 협정을 깨고 말머리를 돌려 항우를 추격했다. 해하에서 한신이 지휘하는 한나라 대군에게 포위당한 항우의 초나라 진영은 중과부적에 군량미마저 바닥나 사기가 완전히 땅에 떨어졌다. 한밤중에는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초나라 군사들은 그리운 고향 노래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앞을 다투어 도망쳤다. 장량의 심리전이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

 

힘은 산을 뽑고 의기는 세상을 덮지만

때는 불리하고 추는 달리려 하지 않는구나.

추가 달리려 않으니 어찌하면 좋을고

우여, 우여 그대는 어찌할거나.

 

항우의 연인 우희는 항우의 보검을 뽑아 자결햇고, 항우는 800여 기병을 이글고 준마 추를 몰아 포위망을 뚫었다. 그러나 강동으로 건너갈 수 잇는 오강에서 권토중래를 권유하는 부로들의 요청을 뒤로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강동의 젊은이들을 다 잃고 혼자 무슨 면목으로 돌아가겠느냐는 것이다. 기원전 202년. 항우 3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