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란 혹은 음악이란 무엇인가, 예술가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가장 단순하지만 근원적이면서 핵심적인 질문. 이 두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한 사람은 대체로 오랫동안 사람들의 머리와 마음속에 남는 것처럼 보인다.

 

    1992년은 레닌그라드 교향곡 혹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초연 50주년 기념의 해였다. 기괴한 그러나 듣게 되는 음악인 그의 선율과 곡 전개방식은 듣는 사람에게 여러 질문을 하게 한다. 익숙하지 않은데 왜 이 곡에 귀를 기울이면서 듣고 있는가, 이 곡을 쓴 사람은 어떤 의도 혹은 마음이었는가에 대한. 아주 나이가 많지 않다면 쇼스타코비치의 인상은 이 책의 484페이지의 모습인데 그의 얼굴표정과 안경 너머에 자리한 그의 머릿속에 어떤 삶의 자취들이 있는지 이 책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가늠하여 설명한다.

 

    이 책은 초반, 중반, 후반에 정치지도자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러시아 제정 말기에 다른 선택을 해서 사회가 전복되지 않았더라면, 레닌 이후 스탈린이 아니었더라면, 스탈린이 말도 안되는 숙청으로 히틀러를 견제할 힘이 있었다면,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국민들을 설득해서 소련에게 원조를 하지 않았더라면, 영국의 처칠이 미국과 소련의 손을 잡지 않았더라면...이들은 단순히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 국가의 국민들 혹은 대륙의 사람들 혹은 전 세계에 있는 전쟁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누군가의 주장과 설명이 음악가 자신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러 전제를 가정한 후에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어린 시절의 가족관계부터 청년시기와 장년기에 겪어야 하는 음악가의 정체성까지 사회변화와 음악가 개인의 삶을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구성한다. 글을 보다가 마주하는 몇 장의 사진은 평범한 현실과 이상이 존재해야 살 수 있던 현실을 역사의 한 장면이자 한 개인의 선택과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 얼음이 녹고 있는 레닌그라드의 볼코보 묘지(p.434)와 레닌그라드 땅에서 연주된 레닌그라드 교향곡 초연 사진(p.451)은 인간이 가혹한 환경속에서 굶주린 개인의 모습이거나 연대하면서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무리로 양분되던 시기에 최선을 다해 미래를 지향한 음악가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배고픔으로 교향곡 연습 도중 여러 명이 사망한 상황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만큼.

 

    포위된 레닌그라드의 목소리가 된 시인 올가 베르골츠(p.152), 종이에 적기에 너무 위험해서 소곤소곤 전하는 식으로 시를 퍼트리던 시기의 아흐마토바의 글(p.136) 등 스탈린 체제에서 예술가들이 한순간에 사라져 소식조차 몰라도 아무렇지 않은 시대, 스탈린의 잘못된 정책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의 모습들은 '예술가'의 가치가 물리적으로 환산될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마치 미스테리 소설처럼 시작한 이 책의 처음부분은 사회체제와 이념의 대척점에 선 미국과 소련이라는 집단이 전쟁시기에 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이 비밀작전을 수행할만큼 중요가 그렇게 중요했는지 설명한다. 저자는 설명했을 뿐인데 읽는 사람은 이미 설득되었다. 그랬을 수밖에 없겠다. "아무도 잊지 못하게 하라. 아무것도 잊히지 않게 하라"는 올가 베르골츠의 시가 새겨진, 한 도시에서만 50만명으로 추산되는 죽음이 묻힌 피스카렙스코예 묘지의 분위기는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바로크 음악과 닮았기에.

 

    줄리언 반스의 <소음의 시대> 속에서 조명된 모습처럼 이 책은 쇼스타코비치 음악이 성실함, 노력, 책임감, 이타적인 마음을 바탕으로 만든 결과물임을 보여준다. 그의 생활태도와 타인에 대한 혹은 타인이 그에 대해 거는 기대를 통해서. 프로코피예프의 전처가 당에 의해 납치되었는데, 그의 두 아들이 아버지가 아닌 쇼스타코비치를 찾아왔던 일, 그가 당에 감시를 받는데 그보다 더 관계가 좋지 않은 예술가들이 쇼스타코비치를 찾아와서 여러 부탁을 했던 일, 음악가들이 더 많은 배급을 받을 수 있도록 악기 수나 연습횟수를 늘렸던 일, 레닌그라드에 독일군의 공습이 한창인데 악보가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움직이는 모습, 아들과 딸에 대한 생각이 먼저였던 아버지의 모습 등.

 

    체제가 주는 긴장과 압박 속에서 그것을 견디며 자신의 생각을 숨기거나 드러내놓는 음악으로 그가 하고 싶은 또는 해야 하는 음악들을 남겼다. 비록 지금 그의 음악을 듣는 사람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여러 번 망설이면서 자문자답하며 다음 자문자답에 다른 답을 내놓는 상황이라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