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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각자의 성(姓) 앞에 붙여 본관(本貫)으로 사용하는 지명은 먼 조상의 실제 거주지인가 아니면 상상 속의 허구인가? 종족집단들은 왜, 어떤 맥락에서 종족마을을 만들어 냈을까? 계곡에 자리한 정사와 서원은 과연 순수한 학문 탐구의 장소였을까? 절벽 끝자락 정자에서는 자연을 감상하는 대신 당대의 사회와 정치를 곱씹어 읽었던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종족집단을 둘러싸고 전개된 경관과 장소의 파노라마를 보여주며, 그 순진한 의미의 저편에 감추어진 권력과 지식의 관계, 이데올로기와 담론의 세계를 제시하고 있다.

“종족집단宗族集團은 성姓과 본관本貫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먼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그리고 모든 개인의 정체성에서 중요한 줄기를 차지하는 집단적 실체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종족집단의 경관과 장소는 바로 한반도에서 엮어온 우리 삶의 사회적 본질과 역사성을 함축한다.” 우리의 국토 공간에는 종족집단의 경관과 장소가 산재한다. 비록 빈궁할지라도 종족내 권력의 핵심이었던 종가, 죽어서까지 그 배후에 자리하며 종가의 권위를 지켜온 사당과 조상 묘소, 종족의 집단의식을 표상하는 종족마을들, 사회 관계망과 문화 정치의 장이었던 각 처의 정자와 서원 등이 그것이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우리의 기억은 종족집단이라는 용어조차 망실해 버렸지만 그들이 생산해 온 경관과 장소는 여전히 종족집단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장소정체성을 이야기한다. 우리 각자의 성姓 앞에 붙여 본관本貫으로 사용하는 지명은 먼 조상의 실제 거주지인가 아니면 상상 속의 허구인가? 종족집단들은 왜, 어떤 맥락에서 종족마을을 만들어 냈을까? 계곡에 자리한 정사와 서원은 과연 순수한 학문 탐구의 장소였을까? 절벽 끝자락 정자에서는 자연을 감상하는 대신 당대의 사회와 정치를 곱씹어 읽었던 것은 아닐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종족집단을 둘러싸고 전개된 경관과 장소의 파노라마를 볼 것이고, 그 순진한 의미의 저편에 감추어진 권력과 지식의 관계, 이데올로기와 담론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제1장] 서설: 한국 종족집단의 자화상 - 그들의 경관과 장소
1. 종족집단이 국토에 그려놓은 경관과 장소들
2. 이 글의 이야기 전개에 관해
3. 문헌 자료 및 지리적 함의

[제2장] 경관과 장소를 읽는 새로운 관점
1. 포스트모던 인문지리학의 시선
2. 문화경관 연구와 그 반성
3. 새로운 노정: 사회적 전환
4. 맺는 말

[제3장] 한국 종족집단의 본관, 그리고 장소 정체성
1. 성은 중국산, 본관은 한국산
2. 본관 개념의 출현 배경
3. 본관의 실재성와 허구성: 그 의미의 세 차원
4. 맺는 말

[제4장] 종족집단의 공간 이동과 종족촌락의 탄생
1. 미시적으로 들여다보기
2. 공간 이동의 무수한 상황들: 보성오씨 사례
3. 이주 패턴의 특성과 종족촌락의 기원 탐구

[제5장] 종족집단간 사회관계망과 촌락권의 형성
1. 개별 촌락이 아닌 '촌락들'을 보자
2. 이중환이 추천한 오서산의 복지 '청라동'
3. 사회관계망과 촌락권의 습합관계
4. 경관과 장소를 통해 촌락권의 정체성 읽기

[제6장] 종족집단의 지역화과정(Ⅰ: 생태적 정착 단계)
1. 거주민의 시선으로 지역을 보기
2. 충청도 양반의 공간적 실체를 찾아서
3. 거주 공간의 확보와 물적 토대 구축
4. 첫 번째 단계를 접으며

[제7장] 종족집단의 지역화과정(Ⅱ: 경관 생산 단계)
1. 영역 장악을 위한 공간 전략: 경관 생산
2. 상징경관의 생산을 통한 지역적 뿌리 내림
3. 사회관계망의 공간적 확장
4. 두 번째 단계를 맺으며

[제8장] 종족집단의 지역화과정(Ⅲ: 영역성 재생산 단계)
1. 영역의 충전과 재생산을 향하여
2. 집단 기억의 복원, 사회관계망의 시ㆍ공간 확장
3. 지역 내 분화와 영역성의 확대 재생산
4. 영역의 내부 충전과 경계지대의 정치ㆍ생태학
5. 맺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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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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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英美) 인문지리학계에서는 1980년대 이후 지리학의 하위 분야 간에 다양한 조합을 유도하면서 사회역사지리학, 사회문화지리학 및 신문화지리학, 촌락사회지리학과 같은 영역을 부각해왔다. 이들 영역의 공통된 접근 방향은 ‘지표상의 형태적 요소를 매개로 공간을 설명’하기보다는 ‘사회적 과정을 통해서 공간을 해석’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 속에 감추어진 공간적 차원’과 ‘공간에 함축된 사회적 의미’를 읽어내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이 최근의 동향으로부터 지리적 현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시사 받을 수는 있지만, 나름대로의 지리적 사회집단을 설정하고 그것의 연구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타진하는 작업은 결국 그러한 문제의식에 동참하는 각국 인문지리학자의 몫일 수밖에 없다. 지리적 사회집단은 역사적 경험이나 공간적 특수성에 따라 나라와 민족마다 다양하게 설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종족집단의 경관과 장소에 접근함에 있어서 가시적 현상들보다는 지리적 사회집단으로서의 종족집단 자체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는 것이며, 이 같은 시론의 실험을 위해 종족집단의 공간 행위가 잘 드러나는 주제들, 즉 본관. 거주지 이동. 지역화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려는 것이다. 각 장(章)에서 어떤 내용을 다룰 것인지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제2장은 이 글에서 취하는 관점을 ‘사회적 전환’이라 명명하면서 그 학사적(學史的) 의의를 보여주기 위해 국내외 인문지리학계의 최근 동향을 좀 더 상세히 검토한다. 인문 ? 사회과학계에서 일고 있는 공간 담론의 부흥과 경계 허물기 현상, 그리고 지성 세계의 최신 지형도를 제시하는 내용이다. 제3장은 한국 종족집단의 정체성에서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본관의 문제를 다룬다. 성은 중국산, 본관은 한국산이라는 시각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여 본관 개념의 출현 배경, 본관이 갖는 실재성과 허구성을 짚어보게 된다. 제4장은 전남 보성으로부터 충북 청원군 현도면으로 그 근거지를 완전히 바꾼 보성오씨(寶城吳氏)를 사례로 종족집단의 공간 이동 과정을 추적한 것이다. 사례 분석을 통해 종족집단의 거주지 이동에 관여한 다양한 요인 및 상황들을 일일이 재현한 후, 이를 토대로 종족집단의 이주 특성을 몇 가지 측면에서 정리하였고 이주 과정에서 종족촌락이 어떤 상황, 어떤 장소에 발생하는가를 탐색해 보았다. 제5장은 조선시대에 충청도 최고의 계거지로 알려졌던 청라동을 연구 지역으로 하여 일단(一團)의 종족촌락이 순차적으로 형성되는 과정과 그 내부를 충전하고 있었던 주요 경관과 장소들을 살펴본 것이다. 특히, 종족촌락을 흔히 독립된 개체로서 간주해왔던 기존 시각에서 탈피하여 몇 개의 종족촌락이 사회적, 공간적 연맹을 결성한다는 관점에서 촌락권 개념을 적용하고 나아가 종족촌락에서 전개된 사회와 공간의 습합관계를 해명해 보았다. 제6장에서 제8장까지는 한국의 종족집단이 일정한 공간 범위를 어떻게 자기 영역화해 왔으며 그것을 확대 재생산하기 위해서 어떠한 공간 전략들을 구사했는지알아본다. 제6장은 종족집단의 초기 정착 과정을 ‘생태적 정착 단계’라 명명하면서 제1단계로서 살펴본 것이고, 제7장은 다양한 상징경관이 생산되고 이를 매개로 사회관계망의 확장을 기도하던 제2단계로서 ‘경관 생산 단계’에 관한 것이다. 끝으로, ‘영역성 재생산 단계’라 지칭한 제8장에서는 기존의 영역 내부가 다양한 경관과 장소들로 충전되는 한편 밖으로는 영역성의 재생산이 이루어지던 제3단계를 고찰하였다. 종족집단의 지역화과정을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누어보는 시각은 사례 지역에 국한되어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전국 곳곳의 종족집단 및 그들의 경관과 장소를 읽어내는데 매우 의미 있는 관점을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