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적립 안내

이 시집은 부산공동어시장에 관한 연작시들을 묶어놓은 시집이다. 정확히 말하면 공동어시장에서 펼쳐지는 일과 사람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낸 풍경화다. 그곳에서 일에 종사하는 이들의 삶과 생활이 진솔성 있게 그려져 있다.
박희자 시인은 현재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생선 중도매업으로 생활전선에 활동하고 있는 현직이며 본인 스스로 말하는 생선 장수이다. 공동어시장 생선장수가 시를 쓴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게 정말일까? 의심하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박희자 시인은 이미 2021년 첫 번째 시집 『부산공동어시장』을 상재한 바 있다.
그 시집을 내고 어시장 사람들로부터 많은 격려와 박수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공동어시장 사람들의 어깨를 으쓱 올리도록 만들었다는 칭송도 함께 들었다. 비록 생선 비린내 속에서 장사를 하고 있어도 자신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시라는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런 모습은 어쩌면 공동어시장 사람들에게 삶의 가치와 자부심을 크게 느끼게 하는 한 식구의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될 수 있었던 것이다.

목차…4
자서…3

제 1 부

새벽 바다…11
고등어…12
가위 바위 보…13
파도 낮잠에 들다…14
별꽃무늬 장화…15
아버지 목소리…16
출항…17
자리 다툼…18
철이 아재 소금…20
봄바람…22
비닐 앞치마…24
비 내리는 남항…26
계선주…27
요구…28
길커피 물통…30
해안 시장 장승댁…32
금식 갈매기…34
넉보아지매…35
달맞이꽃…37
해녀촌 쌀…38

제 2 부

안개꽃 피는 날…43
새벽 눈물…44
바다를 보낸다…46
현대화사업…48
빛 한 줄…50
바다에 산다…51
손가락 총…52
아버지 리어카…54
갈치야, 네 이름…56
간고등어 한 손…58
꽃순네 문지방…60
해녀 전시관…62
간잽이…64
바다를 찍다…65
얼굴…66
바닷가 외식…68
황제 붕장어…70
어미 문어…71
구실잣밤나무…72
아버지 장화…74

제 3 부

생선비늘 빛 새벽…77
초매식 기원…78
반품…80
암남공원 봄…82
바람이 분다…83
경매 있는 날…84
남항에 핀 꽃…86
아침 노을…87
구멍난 그물…88
구월 전어…90
상록수 아지매…92
달빛 걸음…94
참복어…95
휴가…96
순비기꽃…98
연어 가슴…100
진우도…102
다대포 눈…104
낙동강 소리…105
두송 지질공원…106
절충장군…108
그네에 앉아…110
하늘 계단…111
새벽바다 우체통 앞에서…112

？ 해설 어시장 공동체 삶의 서사/강영환…114

새벽 바다-부산공동어시장 2


나는 포돗빛 바다
해를 밀어올려 하루를 연다
갈매기 날개 뻗어 등대 불빛 안고 오면
경매사 손끝에 떨어진
고등어에 덮인 얼음
리어카 바퀴를 시곗바늘로 굴리고 있다
바다 찍어 올리는 요구 끝에 바다가 있고
장화 발길에 도망간 파도
새벽이면
어시장 기둥에 떼로 몰려와 부딪치며
하얗게 오선지 만들어 간다


고등어-부산공동어시장 3


파도 드나들 때마다 물든 흔적
지워지지 않은 문신이 되어 철벽 갑옷이다

하늘 짊어진 등
하얀 뱃바닥 파도에 숨기고 바다 밀고 다닌다

이동 빠르기가 고속열차라고 하니
살아남은 그 숫자에 숫자가 더해져
식탁은 고등어 등으로 바다를 차렸다

만선의 깃발
갈아입은 새 옷 날개 펴고 춤추어야 하는데
싣고 오는 뱃고동소리 바람벽에 막혀
줄 잇던 파도 돌채기둥*에서 길을 잃는다

이러다가
식탁에는 하늘 짊어진 물고기가 없어
하늘 먹는 일도 없겠다

*본관에서 이어져 나온 남쪽 북쪽 두 건물을 어시장에서는 돌채라고 한다.


가위 바위 보-부산공동어시장 4


해당화 타오르는 물결에 주사위를 던진다
경매사가 부르는 창唱을 따라가며
내밀하게 던진 다섯 손가락에 떨어진 햇살에
제 몸보다 큰 고래등 끌고 간다

가위가 보를 찢고 보가 바위를 싸고
바위가 가위를 깨는 골목놀이가 경매장 돌며 일을 한다

어시장 개장 이래
그 많고 많던 생선더미에 서서
주사위처럼 던진 손가락
이기고 져도 나쁘지 않은 싸움
가위바위보
호주머니 속에 숨겨가며 던지던 화살촉
낯설지 않은 골목 놀이

어시장 와서
저렇게 일 많이 할 줄 누가 알았으며
생선 임자 정해 나눌 줄 누가 알았을까?


파도 낮잠에 들다-부산공동어시장 5


등대 불빛 따라오던 고깃배도
수평선 너머 보이지 않고
파도 밀려와
하얗게 부서지는 경매장 돌채 기둥도
낮잠에 빠지는 오후

나는 껍질 깨고 나온 나비처럼
비린내 배인 앞치마를 벗고
집으로 날아간다
폭풍 초록 자랑하는 은행나무 그늘을 걸어
아파트 골목 들어서면
눈치 빠른 골바람 어깨 두드리며 반긴다

파도 없는 바다에 누워
물빛 깊은 낮잠에 빠지면
던져두고 간 새벽잠이 멸치떼로 몰려온다


별꽃무늬 장화-부산공동어시장 6


갯바람에 펼친
구김살 없는 앞치마자락
펄럭이며 끌고 가는 파도
바닷물에 흠뻑 빨아들인 나무상자 속에 든 꽃돔
아침 햇살에 흔들흔들 피는 동백꽃이다

맑은 날
리어카 밀고 가는 아지매 장화 별꽃무늬 사이로 별이 지고
쏟아지는 햇살에 무지개가 뜨는 날도 있다

그러다 비 오는 날
머리에 눌러쓴 검정비닐에 빗줄기가 수직으로 난타를 쳐도
남항 포구에는
몸 뉠 줄 모르는 별꽃무늬장화 발을 신고 빛나는 꽃무늬
재즐재즐 붙인 생선 비늘 걸음마다 어시장 전설이다


아버지 목소리-부산공동어시장 7


당신은
바다와 살았습니다
어머니 앞서가며
자갈 깔린 이십 리 길 신작로를 걸어
거창읍 내 장터에서 바닷물 옷섶에 적시며
갈치, 고등어, 조기, 오징어, 명태를
짚으로 묶어 팔았습니다
양반집에 태어나
생선장사를 해도 양반은 양반이라고 큰소리치던
아버지 용기와 심지 곧은 정신과
생선비늘 묻은 옷자락
나는 바다를 먹고살았습니다
경사진 언덕에
기와집 한 채가 전부인
가난한 집에 살면서 가난을 모르게 했습니다
바다 먼 땅에서
바다 밀고 다니는 그 새벽
사라지지 않은 아버지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는 햇살에 빛나는 파도를 마십니다


출항-부산공동어시장 8


빈 배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이
갈매기호 떠나던 날
당당히 빈손이어야
깃발도 세워 올 수 있다고
물길에 들뜬 뱃고동 들릴 리 없지만
유혹 많은 바람길에서
파도를 만나더라도 넘어지지 말고
부디 만선으로 귀항하라고 귀항하라고
수평선 넘어갈 때까지
어시장 지붕 위로 고개 밀고
깃발 흔들어 일러 준다
바람에 던지고 간 고박줄에
따개비 홍합 집 짓고 마을 이룰 때까지
밀물 썰물에 귀 기울이며
지칠 줄 모르는 기다림
씻은 모래로 누워 바닷물 당기고 있다


자리 다툼-부산공동어시장 9


울산 대공원 동물원 염소는
싸울 일이라고 없어 보이는 한가로운 마당에서 머리 치켜세우고
날카로운 뿔과 뿔이 부딪치며 자리싸움을 하는데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걸 봤을리 없는데
구경하던 염소들 눈 지그시 감고 달려들어
뿔 가운데 몸을 대고 싸움 말리는 것이
어시장 난전에서 자주 보던 구경 같다

한 뼘 자리 가지고 가래침 뱉어가며
옷 찢는 소리 내며 판을 들었다 놨다 하기도 하고
소리 큰사람이 이기는 시장옆집
찌그러진 물바가지 공중에 던지며
씨벌씨벌 욕노래 박자 맞춰가며 판장을 뒤 흔든다
구경하던 이웃 눈
밥 먹던 숟가락 내려놓고 구경하다
윗옷 벗어 던지고 시퍼런 바람 일으키며
요구 손에 쥐면
너 나 할 것 없이 몸 아끼지 않고 싸움을 말린다

싸울 일 많은 어판장에서
늘 가족같이 말리는 손들 있어 다행이지
크게 다치는 일도 없고 원수진 일도 없는 싸움
함께 살아가는 작은 배려를
염소들이 어시장 와서 몰래 훔쳐보고 갔을까
따라오는 초록 풀냄새 향기에
어판장 아지매 고개 꺄웃하며 언덕을 내려온다


철이 아재 소금-부산공동어시장 10


이래도 저래도 시끄러운 어시장
이제는 흔한 소금이 난리네
신안이 고향인 철이 아재 앉는 자리마다 금언을 날린다

“사람이 말이여
소금 없이 살수 있간디
우리 몸에 소금 없으면 끝인디
소금 한 포대 값이 쌀 한 포대 값이여
다음에는 탈 없이 구할 수 있을란가 모르것어
어디 할 게 없어 소금 갖고 장난질이여 씨부럴넘들”

철이 아재 몸을 만든 것은 바다에서 퍼 올린 소금이고
두꺼운 등에는 아직도 염전이 살아있다

인도가 사는 길이라고
소금 행진에 흘린 눈물 떠올리며 진흙밭에 내놓은
간디 발바닥어시장 장화 속에 퉁퉁 불어 터진
철이 아재 아린 발바닥
경매장 요령소리 쫓아 달리는 소금꽃 행진
철이아재 걸음에 바다가 산다

09. 추천사

새벽을 걸어서 당도한 어판장에는 생선 (살아있는 물고기)이 펄떡이고 사람들의 입김이 뿜어져 나오는 풍경이 기다린다. 말 섞고 어깨 스치는 이웃이 있고, 눈빛 나누는 동반자들이 경매 를 알리는 요령 소리를 기다리는 걸러지지 않는 삶의 현장이다. 여기에서 의미를 찾는 일은 독자의 몫이다.

갯바람에 펼친
구김살 없는 앞치마자락
펄럭이며 끌고 가는 파도
바닷물에 흠뻑 빨아들인 나무상자 속에 든
꽃돔
아침 햇살에 흔들흔들 피는 동백꽃이다

맑은 날
리어카 밀고 가는 아지매 장화 별꽃무늬 사이로 별이 지고
쏟아지는 햇살에 무지개가 뜨는 날도 있다

그러다 비 오는 날
머리에 눌러쓴 검정비닐에 빗줄기가 수직으로 난타를 쳐도
남항 포구에는
몸 뉠 줄 모르는
별꽃무늬장화 발을 신고 빛나는
꽃무늬
재즐재즐 붙인 생선 비늘 걸음마다 어시장 전설이다

-「별꽃무늬장화-부산공동어시장 6」 전문

꽃돔을 가득 담은 상자를 실은 리어카를 끌고 가는 별꽃무늬 장화를 신은 아지매가 구김살 없는 치맛자락을 바닷바람에 펄럭이며 가고 있다. 꽃돔이 아침햇살에 피어나는 동백꽃이라는 표현이 마음을 사로 잡는다. 아지매의 별꽃무늬 장화에는 맑은 날에는 그 무늬 사이로 별이 지기도하고 무지개가 뜨기도 한다. 비 오는 날에는 아지매가 머리에 쓴 검정비닐에 빗줄기가 난타를 친다. 그런데도 남항 포구에는 몸 누일 줄 모르는 별꽃무늬장화가 발을 빛나게 하고 생선비늘이 붙어있는 그 꽃무늬는 걸음마다 어시장의 전설이 된다고 한다.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서사다.
박희자 시인의 작품에 등장하는 어시장 식구들은 각자 개성과 자신의 세계를 확고히 지닌 이들이다 거기에 덧붙이면 욕심 부리지 않고 안분지족의 삶을 가꾸는 이들이다.
공동어시장 공동체 삶을 보여주는 서사시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잡은 거대한 청새치를 항구로 끌고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내면적인 생각과 에피소드를 보여 해양문학의 백미로 꼽힌다. 박희자 시인의 시집은 공동어시장의 구성원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표할 수 있는 몇 사람의 삶을 형상화 함으로서 어시장 모습에 공감을 느끼게 만드는 현실감있는 서사를 간직한다. 청새치를 배에 묶어 끌고가는 노인의 바다를 헤밍웨이가 발견한 것처럼 박희자 시인이 발견한 별꽃무늬 장화는 공동어시장에서 발견한 경이로운 이미지다. 여타 해양 시가 갖지 못한 탁월한 이미지다. 이런 의미에서 박희자 시인의 시는 해양문학의 거대한 바다에서 한 구역을 차지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생각이다. 바다와는 떼어서 생각해볼 수 없는 사람들의 진정성 있는 삶들을 노래한다. 구김살 가지 않는 앞치마를 펄럭임과 리어카에 실린 상자 속의 꽃돔이 동백꽃이 되고, 장화에 새겨진 별꽃무늬 사이로 별이 지고 무지개가 뜨고, 생선비늘이 묻은 별꽃무늬 장화가 걸을 때마다 전설이 되는 이런 서사가 아름답지 않다면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가?. 박희자 시인의 작품은 온기를 담고 있다.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작품마다 담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