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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역사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헤로도토스가 지은 『역사』를 읽고 글쓰기를 시도했다. 『역사』 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원전을 읽는 이유를 절감한다. 그 이야기를 글로 나타낼 때 독자는 새로운 저자로 변한다. 작자의 집에 머물다가 자기 집을 지어 떠나는 모습이다. 그래서 9명의 독자가 9명의 저자가 됐다.
2021년 부산교육대학교 교육대학원 인문교육학과에서 이뤄진 〈인문학과 글쓰기〉 수업이 그 터전이었다. 대학원생들이 1년간 잠을 줄이면서 쓴 글들이 여기에 담겼다. 한 주제를 잡아 『역사』 와 함께 뒹굴면서 고뇌한 결과이다. 누구는 그 과정에서 인간의 욕망을 봤고, 누구는 자기를 만났다. 행복의 실마리를 잡은 이도 있었다. 상상력이 발동해 소설을 엮어내기도 했다.
『헤로도토의 역사 따라 자박자박』의 제목은 이 책과 함께 할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지었다. 『역사』 라는 두꺼운 책을 마주하고, 감히 책장을 펼치기에 부담이 가는 이들에게 일종의 안내서가 되고자 한다. 1000쪽에 육박하는 독서 마라톤을 마친 후 자기가 도대체 어떤 길을 달려왔는지 되돌아보고 싶은 독자도 연상된다. 그들 가운데 수천 년 전에 헤로도토스가 보고 듣고 확인한 얘기를 지금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더욱더 반갑겠다. 『역사』 는 커다란 산맥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그때 거대한 사건이 지구 반대쪽에 있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벌어졌다. 페르시아 제국과 헬라스 폴리스 간의 격돌이었다. 페르시아는 정복왕의 등장으로 세워진 대제국이었다. 반면 헬라스의 폴리스는 전제 군주의 등장을 극도로 꺼리는 도시국가들이었다.
이 두 세력 사이에 벌어진 전쟁 양상은 무척이나 생생히 전해진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그 장본(張本)이 바로 헤로도토스의 『역사』이다. 기원전 4~5세기의 일들을 그렇게 만날 수 있는 건 바로 자세한 기록 덕택이다. ‘아득한 옛날’이란 표현이 어색할 지경이다. 그만큼 현재성이 가득하다.
최초의 서양 역사서로 평가받는 이 책은 시작부터 감동을 안긴다. “인간들이 이룬 일들이 시간의 힘에 잊히지 않고, 헬라스인과 페르시아인이 보인 놀라운 행적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는 저술 목적을 헤로도토스는 명확히 밝히고 있다.
헤로도토스는 시간에 따라 사건들이 흐르게 놔두지 않는다. 장면들이 순서대로 스크린에 단순히 펼쳐지는 방식이 아닌 것이다. 그의 기록은 선과 면 이외에 깊이를 가지는 입체감으로 눈앞에 다가선다. 사건의 원천(源泉)을 찾아가는 빛나는 탐구 정신을 발휘한다. 당시 인물들의 조상이 누구였으며, 그들을 둘러싼 인간 관계망과 사회제도가 어떠했는지 소상히 밝혀낸다. 고대에서 현대로 내려오는 줄기를 훑고 있는 셈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따라 자박자박』은 9명의 저자가 『역사』라는 산맥을 산행한 결과이다. 그들은 하산한 후 행복, 기억 등 9가지 주제를 각자 느꼈다. 독서는 읽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독자마다 감상과 해석이 다르다는 의미다. 이 빛깔들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줘야 독서가 완결된다.

시작하며_이준영 / 6
행복_이미식 / 21
상앗대_이준영 / 5
꿈_이준영 / 105
자유_조외숙 / 131
욕망_도라지 / 165
기억_박경순 / 203
삶과 죽음_이남훈 / 23
우애_이상영 / 261
반성_어경순 / 291
가족_송주하 / 309
줄거리_이준영 / 323

-고전을 얘기할 때마다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다름 아닌 영화 〈오블리비언(Oblivion)〉과 주인공 잭 하퍼이다. 그가 한 건물을 수색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책은 ‘신념을 위해 선택한 죽음이 가장 고귀하다’라는 시구(詩句)를 담고 있다. 잭이 운명처럼 접한 고전은 서사시『(다리 위의)호라티우스(Horatius)』이다. 이처럼 목숨을 걸고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삶에 가치를 두는 정신의 강물은 호라티우스에서 처칠을 거쳐 잭 하퍼로 흐른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그 정신의 발원지를 짐작게 한다. (p.12~14)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은 솔론을 궁으로 초대해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을 그에게서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크로이소스는 그 자리에서 솔론에게 벌컥 화를 냈지만, 나중에는 대오각성한다. 그 누구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행복한 자가 아니라는 그 말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인간사에서 어느 것도 확실한 게 없다는 진리였다. (p.61~62)

-아마시스는 폴리크라테스의 지나친 행운에 신경이 쓰여 편지를 보낸다. 만사에 행운을 누린 사람치고 비참한 최후를 맞지 않는 사례가 없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내용이었다. 신들이 시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일에서는 행운을 누리고 다른 일에서는 불행을 누리는 성쇠가 교체하는 삶을 사는 게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p.65)

-세계를 호령하는 대제국 페르시아의 제왕이 언덕에서 유한한 삶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도 나온다. 그는 수많은 육군과 함대를 보고는 매우 기뻐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100년 넘어 살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슬픈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대왕이지만,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임을 자각했는지도 모른다. (p.71)

-배낭 제일 깊은 곳을 뒤져다. 카메라와 헤로도토스의 『역사』 그리고 스프링이 달린 노트가 한쪽 구석에 박혀 있었다. 그렇게 연필로 필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남편은 연필로 좋아하는 문구라며 써 주기도 했다. 연필로 쓴 글은 오래 두면 뭉개지니 펜으로 쓰는 건 어떠냐는 나의 물음에, 연필심과 종이가 만나 사각거리는 소리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혼나고 돌아오면 어머니가 깎아 주던 사과 소리라고 했다. (p.212)

-포장마차에서 안주를 만들던/손님을 못 쳐다보고/모자를 눌러 쓴 채 칼질만 하던/미래증권부장이었던 그가/부고장을 식권처럼 보내왔다/전에 밥 한번 먹자더니/빈말인 줄 알았는데/외롭다는 말이 밥으로도 쓰인다는 것을/그가 가고 난 뒤 알았다/장례식장에서/그와 떨어져 앉아 밥을 먹는다/살아서 못 먹은 밥을 죽어서 먹는다/냄새가 없는 약속이다(p.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