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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나의 삶, 시를 통해 삶 너머로 더 깊은 세계를 바라본다.

작은형제회의 수도자들과 평신도가 그동안 삶을 통찰하며 한 줄 한 줄 써왔던 시를 모아 출간하였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네 명의 저자가 서로 다른 시선, 서로 다른 언어로 표현하지만 네 저자 모두가 바라는 것은 결국 하나뿐이다. 각자의 삶에서 써 내려왔지만 신비롭게도 바라보고 느끼는 것은 하나이다. 이 시집의 특징이다.

추천의 글_김상욱
펴내는 글_이인복

나이먹기_이인복

신비의 소리_이경훈

가난한 순례자의 노래_오수록

아모르의 궁궐_고계영

[나이먹기 8]

1950년, 이산의 가슴 저린 병에 걸려
시린 손 혼자 녹이며 한을 견디었지.

사람도 사랑도 풀포기 꽃나무도
밥보다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무신경에 익숙하여 살아왔지.

밥술이나 먹게 되자?
월급봉투 지폐 사이로?
골수 관절 핏줄 사이로?
생살 저미듯 불어 드는 시린 바람
뼈 아픈 찬바람.

풀포기 꽃나무도 산 그림자 구름도
앓는 소리를 하네.

[나이먹기 9]

날자, 겸손하게 다시 날자.?
다시 만난 사람들처럼 처음 만난 사람들처럼
슬프던 어제 끝나고 기쁜 오늘 내일이 다가오듯
그렇게 다시 시작하자.

과욕하지 말자, 겸허의 실바람 가슴에 안고
기대도 절망도 없이 천년 세월 비구름에 침묵하는
하늘의 말씀?
바위의 침묵을 배우며 다시 날자.

기다림이 뼈가 되고 그리움이 살이 되고
서러움이 피가 되고?
오늘이 천국이고 천국이 오늘이고?
말 없는 천만년이 또 또 흐르더라도

다시 시작하자, 과욕하지 말고 겸손하게
뼈와 살과 피가 생명의 꽃들 되어 피어나는
새 아침 새날을 향하여?
다시 날자, 다시 시작하자 오늘을.


[어느 착한 가족 이야기]

장애 동생은 가끔?
“언니 다리 하루만 빌려 줘라”

그러던 동생은?
20대 초반 영원의 품으로 떠났다.

언니는?
자신의 발목에 문신을 새겼다.

‘내 동생 ○○’

영정 사진을 가슴에 품고?
바다로 산으로 인파 속을 걸었다.

동생 침대 속에서
열흘 간 꿈을 꿨다.

동생은 언니 품에서 영원히 살고 있다.

[성당 하수구]

도심 한가운데
성당 하수구에서
도롱뇽이 나타났다.

손가락 네 개
발가락 다섯 개

앞으로?
더러운 물을 어찌 버릴까
걱정이다.

[가르침을 주는 나무]

수도원 뜨락에 홀로 서 있는 단풍나무 한 그루
먼 길 떠날 차비 차리느라 사뭇 분주하다

새싹 돋는 봄날의 환희도?
꽃물 드는 가을날의 영화도 훨훨?
벗어버리고 삶의 저편으로 떠나는?
분신들을 전송하며 가난한 수도승처럼 그렇게
무소유를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구나

무언가를 꼭 쥐고 놓지 못하는 우리네
인간들의 집착을 경책이라도 하듯이
말씀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구나

[이순간]

꽃 지는 내일을 생각지 말라
다만 이 순간 피어나는?
꽃 한 송이를 눈여겨 보아라
그리고 흥이 나거든
어깨를 들썩이며
발도 함께 춤추어라

모든 것이
한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