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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년째 농담 중인 고가티 할머니

원제 : Good Eg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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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입소문으로 확인된 신예 작가의 놀라운 데뷔작

팔딱거리는 문장, 실룩이는 입술
어디서 터질지 모르니 지하철에서 읽지 말 것!

“하디먼의 소설은 가족이 얼마나 소중하면서도 동시에 짜증스러운 존재인지를 영리하게 들여다본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소란스러운 아일랜드 가족 삼대가 벌이는 한바탕 소동을 다루는 하디먼의 데뷔작” _〈워싱턴포스트〉‘2021년 필 굿 북’ 선정에 부쳐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가족 삼대의 얽히고설킨 욕망과 갈등을 재치 있게 풀어낸 소설 ?83년째 농담 중인 고가티 할머니?가 출간되었다. 요양원에 가지 않는 조건으로 집안에 미국인 가정부를 들인 할머니 밀리 고가티를 중심으로 그의 아들 케빈, 케빈의 딸이자 손녀인 에이딘이 이끌어가는 담담하지만 파괴적인 에피소드들이 섬세하고 유머러스한 만연체로 잘 드러난 작품이다.
아일랜드 출신의 어머니를 둔 작가는 더블린의 한 기숙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시니컬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흥이 배어 있는 독특하고도 전형적인 ‘아일랜드 사람들’을 그려냈다. 작가가 그려낸 가족의 모습은 언제 어느 부위가 찢어질지 모르는 누더기로 만든 옷처럼 위태롭다. 고가티 할머니는 위험천만한 곡예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내고, 그의 아들 케빈은 아내를 두고 한눈을 팔고, 손녀 에이딘은 멀쩡한 집을 두고 할머니와 함께 가출을 감행한다.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사건들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나드는 고가티 가족이 밉지 않은 이유는 성장통을 겪으면서 한 걸음씩 전진해나가는 패기, 그리고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끊임없이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되묻는 순수한 용기 때문이다. 과감한 욕설과 거침없는 대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뭉근한 숯불 같은 속정은 가족이라는 단어가 지니는 색채와 스펙트럼이 얼마나 다양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출판사 서평

시든 채소처럼 요양원 구석에서 쭈그렁방탱이가 될 순 없다!
취미는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걸기, 특기는 아들 몰래 담배 피우기,
비기(?技)는 불리할 때 치매에 걸린 척하기…

조금 망가졌지만 사랑스러운 고가티 가족을 소개합니다

잊을 만하면 자동차 접촉사고를 내고 동네 상점에서 대단치도 않은 물건을 훔치며, 그마저도 제대로 훔치지도 못해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등 중심인물 밀리 고가티 할머니는 언뜻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제멋대로 늙어버린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슴 속에는 너무 일찍 떠나보낸 첫 딸에 대한 한에 가까운 슬픔과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등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있는 다층적인 인물이다.
이런 고가티 할머니를 어떻게든 진정시켜 ‘참된 어르신’으로 만들어보려는 아들 케빈은 좀 멀쩡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실직 후 가정주부로 살면서 샐러드 그릇이 굴러다니는 집안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바깥일로 바쁜 아내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채 자괴감과 권태감에 시름하면서 딸 에이딘이 다니는 기숙학교 행정직원에게 한눈을 파는 것으로 생동감을 보상받는다. 그러니 한 꺼풀만 벗기면 암흑천지와도 같은 사고뭉치 어른들의 세계에서 에이딘이 고분고분 아름다운 성장 드라마를 써 나갈 리 만무하다. 부모님이 아끼는 그림을 식칼로 찢어놓는 것으로 반항의 시작을 알린 에이딘은 기숙학교에 억지로 입학해 술, 담배, 그리고 남자에 대한 대단한 관심이 있는 친구 브리짓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기이하게 잘 읽히는 만연체
미국 문단을 사로잡은 성공적인 데뷔작!

이런 암울하기 짝이 없는 줄거리를 특유의 만연체로 풀어낸 이 소설의 놀라운 점은 생각보다 아주 잘 읽힌다는 것이다. 작가의 첫 소설이자 데뷔작이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이 소설을 두고 미국 내 출판사들 사이에서 “눈물 나게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돌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 소설의 흥미로운 대목은 뭐니뭐니 해도 밀리 고가티라는 할머니 캐릭터 그 자체일 것이다. 불리할 때 치매에 걸린 척하는 모습, 아들 몰래 숨어서 담배를 피우는 행위 등에서 느껴지는 고가티 할머니의 모습은 악동처럼 장난기가 넘친다. 그러나 밀리 고가티는 마냥 천진난만한 캐릭터가 아니다. 그녀는 일반적인 노인들이 죽음을 향해 전진하는 방식, 이를테면 요양원에 입소해서 또래 노인들과 잡담을 하며 TV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에 극도의 거부감을 보인다. 이제는 뒷방 노인네로 늙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기보다는 깊은 마음속에서부터 세상이 노년에 부과하는 삶의 형식들을 거부하고 있다. 사회 전체의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노인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노년의 삶에 대한 적극적이고 활발한 모색이 필요해진다는 점에서 밀리 고가티는 모든 할머니들을 대표해 스스로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 투쟁하는 귀중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 중요한 캐릭터다. 게다가 어찌나 시끌벅적하고 어수선한지 허리케인처럼처럼 사건과 사고를 몰고 다닌다. 그러면서 가족이라는 확실하고도 모호한 단어에는 여기저기 금이 가기 시작한다.
도벽이 있는 어머니 고가티 여사의 뒤치다꺼리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쌍둥이 딸들마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을 벌이는 통에 케빈은 정신적으로 상당히 피폐해진 상태다. 소설 속에서 케빈이 정신적인 바람을 피우다가 끝내 그것을 육체적으로 실현하기 직전까지 가는 과정은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넘친다. 평온한 일상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한 발만 잘못 옮겨도 그곳에 무시무시한 낭떠러지가 있음을 확인한다. 케빈이 스스로 굳건히 지키고, 다스리고, 유지해오고 있다고 생각했던 가족 간의 유대와 아내와의 신뢰를 스스로 깨버린 뒤 망연자실해 하는 모습에서 연민을 느끼고 ‘이건 나조차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을 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망쳐버린 관계가 회복되어가는 과정 역시 이 소설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다.

이보다 화끈한 가족소설은 없을 것,
이보다 당연하지만 새로운 이야기도 없을 것

이 소설의 은밀한 미덕 중 하나로 솔직함을 빼놓을 수 없다. 철자 f로 시작하면서 영어권 국가들이 앞다투어 즐겨 사용하는 전설의 욕설을 이 소설에서는 쌍시옷과 비읍이라는 자음을 가진 단어로 과감하게 뒤바꿔놓았다. 소설 여기저기서 심심찮게 보이는 다소 과감한 선택이지만, 우리가 입밖이나 머릿속으로 내뱉는 여러 위험한 말들을 가만히 되새겨보면 그리 위악적인 빈도는 아닐 것이다.
새로운 삶이란 멀리 있지 않고, 파랑새는 결국 내 집 옆에 서 있는 나무 속에 앉아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이 소설은 지긋지긋하고 짜증이 치밀어오르더라도 결국 그 속에서 사랑을 찾아내고야 마는 고가티 가족의 근성만큼이나 집요하고도 깊다. 가족이란 원래가 그렇게 지지고 볶아도 결국 가족이라는 것을 거대한 모험 끝에 발견해내기에, 모험은 괜한 헛수고가 아니라 마땅히 겪어내야 할 흐뭇한 성장통이 될 것이다.

추천사

워싱턴 포스트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83세의 할머니, 밀리 고가티. 밀리의 아들은 도벽을 끊지 못하는 어머니를 감시할 도우미를 고용한다. 하지만 이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부르는데… 소란스러운 아일랜드 가족 삼대가 벌이는 한바탕 소동을 다루는 하디먼의 데뷔작. 신나면서도 속 터지는 사건들을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면 뜻밖의 희망찬 결말이 감동을 준다.”

피플
“팔딱거리는, 재기발랄한 데뷔작.”

퍼블리셔스 위클리
“하디먼의 이 흥겨운 데뷔 소설은 선량하지만 다소 삐딱한 더블린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빠르고 포복절도할 소설에서는 모든 것이 예상을 벗어난다. 놀라움으로 가득한 하디먼의 사랑스러운 소설은 가족이 얼마나 소중하면서도 동시에 짜증스러운 존재인지를 영리하게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조나단 에비슨(?This Is Your Life?의 저자)
“독서의 순수한 즐거움을 일깨우는 맑은 시선이 돋보이는 책. 따뜻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는 태도로 가족의 모습을 새롭게 해석했다.”

사라 헤이우드(?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The Cactus?의 저자)
“인생의 두 번째 기회를 탐색하는 즐겁고 활기찬 소설이다. 저자는 계략에 휘말려 위기에 처한 인물들의 모험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우리는 그들 각각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으며, 특히 밀리 고가티라는 캐릭터는 짜증이 치밀어오를 정도로 제멋대로지만 결국 책을 덮고 나면 코카티 가족이 마음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주디 블런델(?뉴욕타임즈? 베스트 셀러 ?The High Season?의 저자)
“경쾌하고 따뜻한 가운데 때로는 미친듯한 엉뚱함을 가진 인간의 마음을 그려냈다. 저자는 내가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주제를 매번 비틀어 본다. 소설을 읽는 동안 의자를 바짝 끌어당기고 몰입하게 될 것이다.”

아만다 에어 오드(?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The Jetsetters?의 저자)
“밀리 고가티라는 괴이하고도 멋진 캐릭터가 주는 즐거움, 얽히고설킨 가족 이야기에 몰입하는 기쁨이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그들을 사랑했다.”

클라우디아 캐롤(?The Secret of Primrose Square?의 저자)
“이 책을 너무 좋아한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빨리 사라고 말하고 싶다. 빠져들 수밖에 없는 신선하고 재밌는 유머가 곳곳에 보석처럼 숨어 있다.”

목차

83년째 농담 중인 고가티 할머니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본문중에서

아들은 한숨을 쉬고 탁자를 오른 주먹으로 부드럽게 두드린 후 정수리를 앞뒤로 문지른다. 스트레스를 나타내는 가장 명확한 지표다.
“저 사람들은 기꺼이 합의를 해 줄 의향이 있대요…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뭐든 좋아.”
“잘못한 걸 인정하시고 도넬리한테 사과를 하세요. 그리고 어머니
가 이 문제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고 성실하게 노력할 마음이 있다는 걸 보여주세요.”
“알았어, 알았어. 할 수 있어.”
“이 짓을 그만두셔야 해요. 알아들으셨죠, 엄마? 이 짓을. 그만두셔야. 해요.”
밀리는 어마어마한 안도감을 느끼며 손 안에 고개를 떨군다.
“너 없었으면 내가 어쩔 뻔했니?”
“한 가지 더 있어요.” 아들이 헛기침을 한다. “우리는 가정방문 도우미가 마르게이트를 방문하게 해야 할 거예요.”
“무슨… 미?”
“집에 들러서 봐줄 사람… 도우미요.”
“우리 집에?”
“아뇨, 마구간에요… 가 아니라, 당연히 집이죠. 맙소사. 그게 싫으시면 기소당해 법정에 서시고 뒷일은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저쪽에는 도넬리의 잡동사니들을 가방에 쑤셔넣는 어머니를 찍은 영상이 있으니 너무 큰 행운을 기대하지는 마시고요.”
“난 썩 내키지 않는구나, 케빈. 내 집에 모르는 사람을 들이라고?”
“그냥 일주일에 몇 번이 다예요2. 0시간.”
“20시간이나!”
“3개월 보호관찰 기간이에요. 당장 오늘부터요. 사람이 구해지는 대로 당장… 믹네 누나가 직업소개소 비슷한 걸 하니까 어쩌면 거기서 알아봐 줄 수 있나 물어볼게요. 어머니가 어머니 쪽 조건을 지키시면 기소는 조용히 무마될 거예요.”
“협상은 불가능한 거겠지?”
“그게 바로 협상이에요, 엄마. 범죄를 저지르셨잖아요. 여기서 어머니는 협상력이 없어요.”
“사과하는 건 괜찮아. 그건 응당하니까. 하지만 도우미 건은…”
“기소보다는 낫죠.”
밀리는 허리를 굽혀 바닥에 쏟아진 물건들을 주워 들고 탁자 위에 천천히 질서정연하게 늘어놓는다. 하나하나 차례로. 애초에 원하지도 않고 필요도 없었던 우스꽝스러운 물품들의 전시관. 굳이 말하라면 밀리는 자신이 물질숭배의 반대편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이 지구에 밀리가 쥐똥만큼이라도 관심이 있는 물품은 한 줌에 불과하다. 오래전 피터가 처음 보여준 케빈의 사진, 아기 모린의 장례식 때 쓰인 조그만 기도서, 그리고 피터의 약혼반지. 반지는 양쪽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그리고 사실 돈푼깨나 나가는 가보 에메랄드컷 에메랄드다.
“그럼 저 잠깐 나가서 오코너 경사님하고 이야기 좀 하고 와도 되죠?” 케빈이 묻는다.
“알겠다.” 밀리는 말한다. “그래, 좋아. 미국 갔다 온 후에 전부 정리하면 돼.”
“아뇨, 엄마.” 케빈이 시선을 피하며 말한다. “유감이지만 미국행은 미뤄야 할 것 같아요.”
(34~37쪽)

행운인지 케빈의 무의식적인 의지가 우주를 움직인 것인지, 블리클랜드의 사무실 앞에 앉아 그 앞 벽에 붙어 있는 세 대의 전화기를 곰곰이 살펴보는 척하던 케빈의 눈에 로즈 버드가 들어온다. 욕망의 대상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케빈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온다. 캠퍼스 건물들 사이의 짧은 거리를 오가느라 뺨이 붉게 상기된 채, 단단히 움켜쥔 상당히 큰 파일 폴더 더미를 훑어보고 있다. 이전에는 보지 못한,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섹시한 검은 테 안경을 쓰고 몸매를 감추는 동시에 드러내는 파란 랩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 케빈은 즉각 그 드레스가 로즈의 몸에서 슬로모션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을 상상한다. 발에는 더블린의 모든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무릎까지 올라오는 검은 가죽 부츠를 신었는데, 부츠는 발목에서 장딴지 중앙까지 올라오는 지퍼와 두꺼운 은색 쇠고리들로 장식돼 있다. 저 지퍼를 내가 내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리에서 벗겨내고 그 아래에 있는 것에 손이 닿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타이츠? 멜빵? 아니면 맨다리일까?
“고가티 씨.” 로즈가 갑자기 멈춰 서며 말한다.
자신을 향한 웃음으로 벌어지는 여자의 입술을 보자 케빈의 뺨에는 색이 돌고 고환에는 피가 돈다. 열네 살 때로 돌아간다. 무심한 듯 정중한 태도를 보이려 애쓰지만, 실제로는 로즈 버드를 향해 멍청하고 얼빠진 시선을 보내고 있다. 마치 엑스터시를 한 알 삼킨 듯한 기분이다. 이 여자에게는 케빈의 혈류에 불을 지피는 뭔가가 있다. 케빈은 기분이 좋다.
“버드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케빈은 인사예절을 놓고 고민한다. 한 번 끄덕이는 것은 너무 냉정하게 느껴진다. 입맞춤? 맙소사. 아니, 입맞춤은 아니지. 작은 손짓? 이젠 상대가 바로 앞까지 와 버렸으니 너무 어색할 것이다. 케빈은 악수로 마음을 정한다.
“앗.” 로즈가 말한다. “얼음장 같아요!” 허스키한 웃음소리가 뒤를 잇는다.
그러나 로즈는 그렇지 않다. 로즈의 손은 따뜻하다. 아니, 뜨겁다. 그리고 밀번의 행정 담당 로즈 버드와의 이 첫 신체 접촉은 순수한 성적 전류, 어쩌면 기절할 것 같은 성적 전류다. 아찔한 번개가 케빈의 전신을 꿰뚫고 지나간다.
(103~105쪽)

실비아가 오기 전에 밀리는 제대로 된 식사란 무엇을 말하는가에 관해 거의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아주 추운 날 아침식사? 고집 센 개를 목줄로 끌고 다니듯 코드를 쥐고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질질 끌고 다니는 실내 난방기 옆에서 바나나 하나 까 들고 어슬렁거리기. 아니면 괜히 설거지거리 만들 필요 없이 그냥 부엌 조리대에 기대어 토스트(버터가 있으면 발라서)를 꿀떡꿀떡 베어 먹기. 그것도 아니면 (우유가 있다고 치면) 콘플레이크 한 그릇 뚝딱. 이건 저녁식사다. 피터가 밀리의 일요일 로스트와 셰퍼드 파이와 폭찹을 그토록 오랜 세월 칭송했건만, 피터가 가고 나서 밀리는 부엌을 버렸다. 요리를, 특히 어느 한 요리를 지독히 경멸하게끔 되었다. 83세가 된 지금은 거기에 어떤 자학적 경향이 있음을 느끼고 있지만, 자신의 이미 부정할 수 없는 고독을 스스로 떠올리게 하는 것들과는 선을 긋는다.
하지만 실비아가 찾아온 이후로 밀리는 다시금 요리의 부름을 느낀다. 매일, 아니 매시간 실비아에 대한 애정은 더 커져만 간다. 심지어 도우미의 유별난 버릇들조차 매혹적이다. 마치 상상의 겨울바람이 입술을 맹공격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입술에 바셀린을 끊임없이 바르는 것, 길쭉한 일회용 포장지에 든, 비소를 연상시키는 노란 스플렌다(설탕 대용품으로 쓰이는 저칼로리 감미료 브랜드-옮긴이)를 차와 커피에 뿌려 마시는 것, 버터를 그냥 접시에 담아 찬장에 두는 아일랜드식 보관법을 매번 보고도 매번 놀라는 것, 코털 족집게에서 자물쇠 수리공 그리고 아일랜드 법까지 모든 것에 관한 바닥 모를 호기심과 서슴없는 질문들, 우유를 따르기 전에 아주 수상하기 짝이 없다는 듯 킁킁 냄새를 맡는 것, 광고에서 더블린 억양만 나오면 우스워 죽으려고 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태양 아래 모든 게 다 자기 것인 듯하고 뭐든 못 할 게 없다는 듯한 그 티없이 실무적이고 자신감 넘치며, 신선하고 절대적으로 비아일랜드적인 방식.
(154~155쪽)

에이딘이 현장에 나타났을 때, 밀리는 놀랄 만큼 마음이 놓였다. 지원군이 있다. 하지만 확실히, 에이딘을 좀 보라. 아직 여자가 아닌 아이의 어깨(밀리는 따끔한 아픔과 함께 자신이 그 어깨에 심지어 더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가냘픈 손목에 채워진 두꺼운 고무 밴드, 티셔츠(라마 그림 밑에 라마를 위해 드라마는 참아 줘라고 적혀 있는)… 그건 나이어림과 경솔함을 말해주고 있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에이딘이 외친다. “모르셔서 그래요. 저희 할머니는…” 에이딘이 밀리를 보며 재촉한다. “무슨 말이든 하세요!”
밀리는 머릿속에 유일하게 떠오르는 행동을 한다. 그것은… 윙크다. 더없이 사소하지만 더없이 위험한 제스처. 다행히도 캐런의 시선은 여전히 밀리의 손녀딸에게 고정돼 있다.
“할머니는, 그니까….” 에이딘은 정신이 나간 표정을 지으면서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고 손가락을 관자놀이 옆에서 빙빙 돌린다. 미쳤다고 말하는 만국 공통어. “노망이에요.”
“네 말은, 이분이 알츠하이머나 뭐 그렇다는 거니?”
“네.”
대단한데. 밀리는 속으로 감탄하지만 에이딘의 거짓말은 불안하다. 눈을 거의 마주치지 못하고 뺨은 불타고 있다. 도저히 숨길 재주가 없는, 아일랜드식의 활활 타는 붉은 기운.
“헷갈려하시고, 막, 여기저기 헤매 다니시고 이런 일을 가끔 하세요. 아마도 본인이 어디 있는지 잊으셨을 거예요.” 에이딘은 밀리의 어깨에 부드럽게 양손을 얹는다. “저예요, 할머니. 저 누군지 아시죠, 네? 케빈의 딸 에이딘이에요. 할머니는 비행기에 타셨는데, 비행기에서는 담배를 못 피워요. 기억하시죠, 우리가 그 얘기 했던 거?”
밀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에이딘을 본다.
“아, 맙소사….” 캐런이 말한다.
에이딘의 연기에 밀리는 환희를 느낀다. 아니, 어쩌면 경탄한 걸까.
“네가 이분 보호자니?”
에이딘이 고개를 끄덕인다. “가끔은 제가 누군지도 까먹으세요. 제가 가장 가까운 사람인데도요.” 두 문장 다 진실을 담고 있다는 것을, 밀리는 새삼 깨닫는다.
(354~3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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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레베카 하디먼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아일랜드계 미국인으로 지금은 미국 뉴저지에서 7명의 가족들과 함께 살며 글을 쓰고 있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기숙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경험, 친구와 함께 요양원에서 일하며 노인들을 돌보고 관찰한 경험 등을 토대로 첫 소설 《83년째 농담 중인 고가티 할머니》를 썼고, 공식 출간 전부터 미국 내외 출판사들의 러브콜을 받으면서 유망한 신예 작가로 떠올랐다. 매거진 〈InStyle〉, 〈Movieline〉, 〈People en Espanol〉의 편집자로 일했던 경험이 있다.

김지선 [역]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 편집자로 근무했다. 현재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돼지의 발견', '당신의 삶을 바꿀 12가지 음식의 진실',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상 최고의 다이어트', '오만과 편견', '반대자의 초상', '엠마', '희망의 자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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