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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리더십 : 합의에 이르는 힘[양장]

원제 : The Chancel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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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에겐 왜 메르켈이 없을까?

안타깝지만 대한민국 정치판엔 정치가 없다. 정치를 ‘가치를 배분하는 일’이라고 정의하든,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이라고 말하든, 대한민국엔 정치가 없다. 이 와중에 다시 대통령선거 일정이 다가왔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번 대선엔 시대정신도, 미래에 대한 비전도, 전망도 없다.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다. 늘 나오는 얘기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집단은 정치인이다. 이번엔 사라져버린 대한민국의 정치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2020년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는 ‘세계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로 독일의 메르켈 총리를 선정했다. 트럼프와 함께 구렁텅이로 빠진 미국의 리더십 대신 메르켈이 세계의 리더임을 확인한 것이다. 이미 2015년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앙겔라 메르켈을 선정했다. “올해는 전 세계 지도자들이 시험에 들었지만 메르켈만큼은 아니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는데, 메르켈은 그리스 채무 위기와 시리아 난민 위기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결정적인 ‘정치의 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한때 전범 국가였던 독일이 경제적ㆍ도덕적 리더십으로 세계를 끌어안은 것이다. 무려 16년만에 퇴임을 앞둔 이 시점에서도, 메르켈은 독일 국민 75%의 지지를 받고 있다.
메르켈은 ‘동독’ ‘여성’ ‘과학자’ 출신이다. 독일 정치판에서 철저하게 아웃사이더였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 변방의 촌부는 어떻게 현대 정치의 가장 위대한 리더십을 만들어냈을까? 메르켈이 추구한 정치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정치는 어떻게 작동했을까?
“나는 과학자예요. 문제들을 가장 작은, 가장 잘 관리할 수 있는 부분들로 쪼개는 것을 좋아해요. 그 과정에 감정이 끼어들 여지는 없어요. 중요한 것은 해법을 찾아내는 거예요.” 메르켈이 블라디미르 푸틴과의 협상 과정에서 한 얘기다. 그에게 협상은 참을성을 시험하는 고된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자존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메르켈이 추구한 단 하나의 목표는 결과물이었다. 이 과정에서 메르켈이 소중한 가치로 여긴 것은 겸손, 경청, 침착함, 포용, 공감, 열린 마음, 합리성 같은 것들이다.
“나는 독일인 모두의 총리입니다.” “우리는 세계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과 출신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 편견을 조장하고 분노를 선동하는 이들에 맞서야 합니다.” 메르켈의 연설은 격정적이지도 영웅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말이 앞선 정치를 경계했다. 메르켈의 정치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우직하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혐오사회〉를 쓴 독일 작가 캐롤린 엠케(Carolin Emcke)는 말했다. “메르켈은 꿈과 비전을 얘기하지 않는다.” 메르켈은 ‘정치는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왜 우리에겐 메르켈이 없을까? 2022년 3월, 우린 기어코 대한민국의 리더십을 선택해야 한다.

출판사 서평

[언젠가 역사책이 자신을 어떻게 얘기하기를 원하는가, 질문을 받자 앙겔라 메르켈은 이렇게 답했다. “그는 노력했다(She tried).” 두드러진 선동 정치의 시대에, 앙겔라 메르켈은 자신의 묘비명으로 ‘겸손과 품위’를 선택했다. 이 두 단어가 바로 메르켈을 얘기하고 있다.] _ 본문 중에서

2021년 9월, 우리는 위대한 리더십의 퇴임을 목격했다. 대개 지도자들의 퇴임은 쓸쓸하기 마련이다. 레임덕은 그 가장 대표적인 징후다. 권력은 결국 스러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메르켈은 예외다. 그는 최근까지 아프간 난민들을 구하기 위해 분주했고, 그린피스 창립 기념 행사장을 찾아 다자간 조치 없이는 기후변화와 맞설 수 없다고 역설했다. 아프리카 지도자들과 정상회의를 가진 후에는 애초 약속한 분량의 두 배에 이르는 백신 7000만 회 분을 코백스(COVAX, WHO가 주도하는 백신 공동구매 프로젝트)에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독일 국민의 75%가 메르켈을 지지하고 있다. 독일 국민은 메르켈을 ‘무티(Mutti, 엄마)’라고 부른다. 가장 친근한 표현으로 자신들의 총리에게 신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새 총리가 선출된 후에도 여전히 메르켈을 그리워 할 것이다.
4년간 메르켈 집무실에 머물다
〈메르켈 리더십: 합의에 이르는 힘〉은 메르켈의 리더십이 어떻게 세상과의 교감을 통해 발아하고 성장하고 더 단단해졌는지를 치열하게 추적한다. ABC 뉴스 서독 특파원을 지낸 케이티 마튼(Kati Marton)은 논픽션과 소설 등 〈뉴욕타임스〉에 베스트셀러 아홉 권을 올린 헝가리 출신 작가다. 냉전 시대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저널리스트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그는 지난 4년간 총리 집무실에서 메르켈을 관찰했고, 총리의 가장 가까운 친구와 보좌관들을 인터뷰했다. 작가는 오랜 세월 메르켈의 본질에 다다르기 위해 백수십 명을 만났다. 헨리 키신저, 힐러리 클린턴, 조지프 스티글리츠, 요아힘 가우크, 로저 코언, 폴커 슐렌도르프 등 서구 정치계의 거물들과 관료, 학자들이 이 책에 풍성한 정보와 영감을 불어넣었다. 영문으로 번역되지 않은 엄청난 분량의 독일 사료들과 인터뷰 자료도 이 책의 자양분이 됐다. 작가는 우리를 세계사의 한 장면으로 데려간다.
작가는 남편인 리처드 홀브룩(Richard Holbrooke, 전 독일 주재 미국 대사)을 통해 2001년부터 메르켈과 인연을 맺었다. 독일계 미국인 사학자 프리츠 스턴(Fritz Richard Stern)도 독일에 대한 작가의 이해에 생생한 활력을 불어넣은 인물이다. 히틀러 광풍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스턴은 ‘왜, 그리고, 어떻게 인간 모두에게 잠재된 악이 독일에서 현실로 나타났는가?’(회고록 〈내가 아는 다섯 개의 독일〉 서문 가운데서)란 물음에 평생을 천착했다. 지적으로 멀쩡했던 독일이 왜 끔찍한 인종주의에 빠졌는지 물었던 그의 사유는 메르켈의 정치와도 맞닿아 있다. 아쉽게도 두 사람은 이 역작을 보지 못하고 타계했다.

경청과 포용으로 합의를 이끄는 힘
메르켈 리더십의 가장 위대한 점은 ‘합의’를 향한 열망과 그 과정을 치밀하고 담대하게 직조하는 힘에 있다. “그는 욕망하는 결과물을 얻으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자존심을 거듭 제쳐뒀다. 협상은 참을성을 시험대에 올리는 고된 과정이다. (…) 관심과 칭찬은 메르켈이 바라는 보상 중 가장 하찮은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단 하나의 목표는 결과물이다.” 연정과 협치의 전통이 강한 독일 정치계에서 메르켈의 출발은 미미했다. 하지만 메르켈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유연했고 겸손했고 영리했고 강했다. 보수 우파였던 그는 녹색당의 정책을 끌어와 원자력을 폐기했다. 사민당의 아이디어는 곧 메르켈의 정책이 됐다. 그는 당파성에 갇히지 않았다. “저는 모든 독일 국민의 총리입니다.”
메르켈은 과학자 출신의 미덕(분석, 논리, 연역적 사고방식)을 정치에 이식했다. 합리적인 목표를 설정한 후 엄청난 자료를 통해 그 가능성을 분석하고, 판단이 서면 협상 대상자를 최선을 다해 설득하는 것이다. 남유럽 재정위기, EU 금융 위기, 브렉시트로 인한 유럽연합 위기, 난민 위기,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 위기까지, 그는 ‘힘의 논리’를 배격하고 포기를 모르는 외교적 협상으로 파고를 넘어섰다. 무엇보다 돋보인 건 2015년 난민 100만 명을 끌어안은 것이다. 합의를 이끌어내는 메르켈의 힘이 포용의 차원으로 승화된 순간이다. 메르켈은 독일의 과거를 아파했다. 결코 이 과거를 반복할 수 없다는 그의 신념이 독일 국민을 움직였고 결국 세계를 끌어안은 것이다.
현대 정치사의 생생한 세밀화
메르켈 재임 16년간, 세계 정치 무대에선 수많은 지도자들이 등장하고 퇴장했다.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조 바이든, 자크 시라크, 니콜라스 사르코지, 에마뉘엘 마크롱, 시진핑, 블라디미르 푸틴, 토니 블레어, 데이비드 캐머런, 보리스 존슨…. 대다수가 남성인 정상들의 거친 외교 각축장에서도 앙겔라 메르켈은 가장 돋보였다. 특히 메르켈은 푸틴과 트럼프 등 권위주의 지도자들을 때론 어르고 한편 달래며 세계가 존중해야 할 룰과 가치를 지켜냈다.
저자는 방대한 인터뷰와 사료, 그리고 취재를 통해 오바마, 트럼프, 푸틴, 시진핑, 마크롱 등 당대 정상들과의 치열한 외교 전쟁 막전막후를 실시간으로 엿본다. 이 생생한 현장중계는 현대 정치사의 디테일한 백스테이지 스토리이자 사료이자 가십이다. 한 대목을 보자. [트럼프는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를 짜증스러워 했지만(자신에게 환심을 사려고 기를 쓴다는 이유로), 메르켈의 말은 하루 종일 들을 수도 있다고 했다. “트럼프는 실제 메르켈의 말을 경청했어요. (…) 메르켈은 차분하게 지배력을 행사했죠. (…) 그가 영어로 말할 때 내는 저음의 목소리는 상대의 심리적 무장을 해제해요.”(트럼프 국가안보위원회 위원 피오나 힐)] 메르켈은 정치의 영역에 자신의 자존심을 개입시키지 않았다. 감정을 배제한 채로 주도면밀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지나치게 흥분하지도, 화를 내는 경우도 없었다. 허세에 쩐 마초들도 메르켈 앞에선 어리광 부리는 아이들 같았다.
메르켈과 가장 가까웠던 지도자는 버락 오바마였다. 하지만 메르켈이 오바마에게 호감을 느끼는 속도는 더뎠다. 메르켈의 눈에 오바마는 겸손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변변하게 이뤄낸 것도 없으면서 카리스마를 주체하지 못하는, 안달 난 젊은이”였다. [“메르켈은 처음에 오바마를 약간 경계했습니다. 그는 알고 싶어 했죠. ‘오바마의 어젠다는 무엇인가? 그의 진짜 모습은 어떤 걸까?’”(힐러리 클린턴)] 타고난 웅변가 오바마와 차분한 과학자 메르켈의 대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메르켈을 향한 오바마의 존경심은 갈수록 커졌고 마침내 2011년 대통령 자유훈장을 수여하기에 이른다. 당시 미셸 오바마는 메르켈에게 속삭였다. “있잖아요, 버락은 당신을 끔찍이 아껴요.” 이 말을 듣고 기분이 고조된 메르켈은 기자단에게 이 말을 전하면서 물었다고 한다. “미셸의 그 말이 무슨 뜻이라고 생각해요?” 우크라이나 전쟁 등 민감한 국제 이슈를 두고 밀고당겼던 두 사람의 관계는 오바마 행정부가 메르켈의 개인 핸드폰을 도청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얼어붙기도 했다.
총리의 사생활
메르켈은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는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그가 공직 생활의 무게를 견딜 수 있었던 건 자신만의 생활과 공간 덕이다. “대중에게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이 내가 행복하거나 슬퍼할 수 있는 공간을 유지하려 애썼어요.” 메르켈과 남편 요아힘은 호수와 삼림으로 둘러싸인 호엔발데 마을에 시골집을 지었다. 총리 부부는 이곳에서 주말을 보내는데, 메르켈은 남편이 좋아하는 오페라를 들으며 요리를 한다. 그의 시그니처 메뉴는 감자수프. 메르켈의 베를린 거주지는 옛 동베를린의 중심가에 있는 4층짜리 월세 아파트다. 초인종 위엔 남편 이름이 쓰여있다. 메르켈은 예전처럼 베르톨트 브레히트 광장에 있는 베를리너 앙상블 극장으로 공연을 보러 다닌다. 베를린 사람들은 종종 그들의 엄마(Mutti, 메르켈)를 거리에서 목격하곤 했다.
메르켈은 다른 정치 지도자들처럼 대중의 애정을 갈망했던 적이 결코 없다. 자연인으로 돌아간 후에도 권력이라는 마약을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권력을 정치인의 전유물처럼 다룬 적이 결코 없기 때문이다. “잠을 푹 자고 느긋하게 아침을 먹을 겁니다. 그러고는 신선한 바람을 쐬러 외출하고 남편이나 친구들하고 수다를 떨 겁니다. 극장에 가거나 오페라를 보러 가거나 콘서트에 갈지도 모르겠네요. 시간이 있으면 좋은 책을 읽을 겁니다. 그리고 저녁을 차릴 거예요. 나는 요리하는 걸 좋아해요!” 이제 그는 그토록 꿈꿨던 안데스산맥 너머로 떠날 수도 있다. 진정한 앙겔라 메르켈의 시간이 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완의 개혁, 아름다운 퇴임
통일 독일 이후, 독일 사회는 만성적인 실업으로 시름이 깊었다. 전범 국가라는 낙인으로 의기소침했다. 이제 독일은 유럽의 경제적 리더를 넘어 전 세계를 포용하는 모범 국가로 진화했다. 기후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에 앞장서 대응하는 세계의 리더가 됐다. 2019년 하버드대 명예법학박사 수여식에서 메르켈은 말했다. “무지와 편협함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 다원적 세계를 만들기 위해 다함께 행동하자.” 그의 연설은 우리에게 분명한 좌표를 제시한다. 메르켈에 대한 독일 국민의 지지에도, 비판 여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개혁 세력들은 기후위기, 여성 문제 등에서 메르켈이 개혁의 시기를 놓쳤다고 비판한다. 더 미래지향적인 개혁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메르켈은 총리라는 자신의 처지를 “저주받은 의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지독한 의무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난 16년의 세월이 그를 냉소주의나 비관론으로 몰아가진 않았다. 메르켈은 언젠가 자신을 낙관론자라고 했다. 이제 그는 총리 재임 시절 그랬던 것처럼, 자유로운 호기심과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고 사람들과 어울릴 것이다. 16년간 단 한 차례의 스캔들도 없었던 메르켈의 퇴임 이후는 그 어떤 정치 지도자보다 더 행복할 것이다.

추천사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는 이념과 세대를 중심으로 양극화돼 있다. (…) 이 책에서 우리는 메르켈의 리더십이 안겨주는 풍부한 교훈과 통찰을 만날 수 있다.

목차

프롤로그: 목사의 딸

1. 물결을 거스르다
2. 라이프치히 - 자신의 길을 가다
3. 베를린
4. 1989
5. 수습 기간
6. 드디어 총리실로
7. 그가 맞은 첫 번째 미국 대통령
8. 독재자들
9. 총리의 사생활
10. 그리 많지 않은 파트너들
11. 유럽은 지금 독일어로 말하고 있다
12. 우크라이나 전쟁 “메르켈에게 전화 연결해”
13. 림(Reem)의 여름
14. 최악의 사건들
15. 트럼프의 등장
16. “우리나라의 뭔가가 달라졌습니다…”
17. 마침내 얻게 된 파트너?
18. 결말을 향하여

에필로그
감사의 말
추천의 글
참고 문헌

본문중에서

“학교에 처음 간 날, 선생님은 반 아이들 앞에서 부모님의 직업을 밝히라고 하더군요.” 메르켈은 무신론을 신봉하던 동독의 정권 아래서 목사의 딸로 성장하며 겪은 복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그는 친구들의 조언을 떠올렸다. “그냥 운전사라고 해.” 운전사는 목사보다 더 프롤레타리아적인 직업이었다. “목사입니다.” 그는 선생님에게 대답했는데, 독일어로 목사와 운전사의 발음은 거의 비슷하다. P29

메르켈은 자신이 세운 목표나 자신이 맡은 공적 의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권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는 권력을 결코 추잡한 단어로 보지 않는다. 그는 권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권력 자체(power per se)는 전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권력은 필요합니다. 권력은 ‘만드는 것,’ 무엇인가를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고 싶다면 적절한 도구가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집단의 지원이 필요한 거죠. … 권력의 반대말은 무력함(powerless)입니다. P57

그는 어렸을 때조차도 타고난 조심성과 통제의지를 보여줬다. 그걸 제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친구들이 들려준, 앙겔라가 다이빙보드에서 보여준 모습에 대한 이야기다. 3학년 때였다. 담임선생님은 반 아이들이 야유를 퍼붓고 깔깔거리는 와중에 9살 난 메르켈을 잘 구슬러 12계단을 올라 3미터 높이의 다이빙보드에 서게 했다. 그런데 다이빙보드에 선 메르켈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물은 한참 아래에 있는 듯 보였다. 그런데도 앙겔라는 물러서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다이빙보드 위에서 45분 동안 앞뒤로 서성거렸다. 그는 비용과 편익을 계산하고 있는 듯했다. 결국 수업종이 울리는 순간, 앙겔라는 물로 다이빙했다. P57

웃음기 없고 수수한 검정 정장 차림인 쉰 살의 앙겔라 메르켈은 오른손을 들고 선서했다. “독일 국민의 안녕을 위해 제 노력을 바치고 그들의 복지를 증진시키며 그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헌법을 옹호하고 수호하겠다고 선서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저를 도우소서.” (…) 놀랍게도, 메르켈의 남편은 이 역사적인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자우어는 평소처럼 실험실에서 양자화학을 연구하느라 바빴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부재를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그이가 중요한 시기에 나를 성원해주는 게 더 중요합니다.” 신임 총리는 말했다. 메르켈은 오래지 않아 그 성원이 필요할 터였다. P139

메르켈은 이전까지만 해도 외국 고위관리들과 만날 때는 통역을 배석시켰다. 메르켈에게 오벌 오피스(Oval Office) 방문을 위한 브리핑을 했던 이싱어 대사는 다른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거부했습니다. ‘내 영어는 그렇게 뛰어나지 않아요!’” 이싱어의 회상이다. “‘부시의 영어도 피차일반입니다.’ 메르켈에게 장담했죠.” 그는 이싱어의 조언에 따라 통역을 배석시키지 않았고, 메르켈과 부시는 만나자마자 서로에게 호감을 품게 됐다. 부시는 그의 인생사에 매료됐다. P164

푸틴은 메르켈의 자세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계속했다. 그는 회동에 지각하고는 했는데, 그건 자신이 가진 권력을 과시하려는 전형적인 시도였다. 언젠가 독일 총리가 그의 지각을 꾸짖자 푸틴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으음,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살아요.” 거기에 메르켈은 이렇게 대꾸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살지 않아요.” 시간 엄수라는 미덕은 겸손함 및 의무감과 더불어 목사의 딸에게 어렸을 때부터 주입됐다. 그는 그런 미덕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참을 수 없는 사람들로 여긴다. P184

오바마가 2011년에 메르켈에게 자유훈장을 수여한 후, 영부인 미셸 오바마는 앙겔라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있잖아요, 버락은 당신을 끔찍이 아껴요.” 메르켈은 이 얘기를 듣고 어찌나 기분이 좋았던지 순방에 동행한 기자단에게 그 얘기를 전하면서 약간은 엉큼하게 묻기까지 했다. “미셸이 한 그 말이 무슨 뜻이라고 생각해요?” P226

그들은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 그리고 메르켈이 미국이라는 동맹국 없이 직면하게 될 새로운 현실의 의미에 대해 얘기했다. “출마해야 해요.” 오바마는 그에게 강권했다. 이 만찬은 그가 대통령으로 8년을 재직하는 동안 개인적으로 가진 만찬 중에 제일 긴 만찬이었다. P317

결국 메르켈의 압박을 받은 트럼프는 뚱한 표정으로 서명했다. 몸을 크게 젖힌 그는 주머니에서 스타버스트(Starburst) 사탕 두 개를 꺼내 메르켈 쪽으로 툭 던졌다. “나한테 받은 게 하나도 없다는 말은 하지 말아요, 앙겔라!” 그가 이죽거리면서 한 말이다. 이 유치한 행동의 결과로 사탕이 떨어지면서 소리가 났지만, 메르켈은 미소를 짓지도 얼굴을 찡그리지도 않았다. P338

그런데 묘하게도, 트럼프는 가끔은 메르켈을 향해 마지못해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2018년 봄에 신임 미국 주재 독일 대사 에밀리 하버를 만나는 자리에서 물었다. “당신도 보스만큼이나 똑똑한가요?” 트럼프는 NATO 회담에 참석해서 훼방을 놓은 다음에 회담장을 떠날 때도 구경꾼인 기자단에게 비슷한 방식으로 메르켈을 지칭하며 이런 코멘트를 했다. “대단한 여자 아닌가요?” 그러고는 한 마디를 툭 던졌다. “나는 이 여성을 사랑합니다!” P339

연설 며칠 후, 베를린의 거주지 마켓에서 쇼핑 카트를 미는 메르켈의 모습이 목격됐다. 언론의 사진은 총리의 카트에 와인 두 병과 두루마리 화장지 몇 개 밖에 없는 광경을 포착했다. 그가 국민들에게 전하려는 핵심 메시지 중 하나를, 즉 “사재기하지 마세요!”라는 메시지를 완벽하게 연출해냈다고 그를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P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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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케이티 마튼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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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마튼은 헝가리 출신으로, 냉전 시대에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언론인 부모 아래서 성장했다. 전체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여성으로 성장한 작가의 경험은 동독 출신인 메르켈의 성장기와 캐릭터, 그리고 경험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
미국으로 이주해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ABC 뉴스 서독 특파원을 지냈다. 작고한 남편 리처드 홀브룩(전 독일 주재 미국 대사)을 통해 2001년 메르켈 총리와 인연을 맺었다. 최근 4년간은 메르켈 총리의 허락을 받고 총리 집무실에서 메르켈을 지켜보며 취재했다. 이 책은 독일과 미국, 프랑스, EU, 러시아, 중국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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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영화 전문지에 기사 번역과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패관 송아영의 잡기〉가 있고, 옮긴 책으로 〈L.A. 레퀴엠〉 〈마지막 탐정〉 〈콘돌의 6일〉 〈콘돌의 마지막 날들〉 〈히치콕〉 〈한나 아렌트의 말〉 〈스탠리 큐브릭〉 〈클린트 이스트우드〉 〈제임스 딘〉 〈위대한 영화 1,2〉 〈지식인의 두 얼굴〉 〈아이리시맨〉 〈꿈의 방〉 〈이안: 경계를 넘는 스토리텔러〉 〈로저 에버트〉 〈알코올의 역사〉 〈런던의 역사〉 〈에퀴아노의 흥미로운 이야기〉 〈10호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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