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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계단에서 만난 시

이번 이춘실의 시집 『바람의 손』은, 때로는 서정의 풍경을 따듯하게 보여 주기도 하고, 감정의 정화를 통해 철학으로서의 시 쓰기를 시도하기도 한다. 하여, 그녀의 시는 사물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 존재의 비밀을 훔쳐본 노래이자, 종교를 통한 자기 구원의 방식을 ‘시’의 옷을 빌려 독자들에게 걸쳐 준다.

이번 이춘실의 시집 『바람의 손』은 다양하고 깊다. 편편마다 절로 곡절과 사유를 들춰 보게 한다. 시 「쿠쿠Cuckoo」는 시적 착상이 기발하다. 밥솥의 의인화를 통해 여성들이 일상에서 얼마나 ‘쿠쿠’를 의지하는지를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신앙인으로서의 자세가 높이 돋보인 「하늘 정원」은, 사후 천국의 세계를 나름 상상한 풍경들이 주목할 만하다. 「구슬 가족」은 가족들의 소중함을 담담하게 엮은 작품이다.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이 한 줄의 사랑의 구슬로 꿰어져 있다. 세월호 참사를 주제로 쓴 「아 정말 절망 대한민국」은 시를 읽는 내내 가슴이 아렸다. 꽃 한 번 피워 보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간 청소년, 청년들의 죽음을 절통하게 형상화시켰다. 이 시대 어른들의 잘못을 질타하고, 사회 구석구석 만연한 부조리를 고발한 시이다. 「카네기 홀」은 어린 시절부터 그녀가 얼마나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뜻대로 되지 않는 고통의 현실에서도, 음악은 그녀의 희망이었다. 카네기 홀 무대 위에서 백오십 대의 크로마 하프 연주단의 일원으로 연주하며 노래한 그녀는, 평생 음악의 한恨을 푼다. 청중들의 기립 박수에 그녀는 전율한다.
마지막 「기도」 시편은 성숙한 자의 내면에서 울려 나온 성찰의 목소리가 맑고 높다. 신앙인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외경을 기도로 답한다.

시인의 말
1. 바람의 손
바람의 손 ㅣ 자꾸만 멀어진다, 아버지 ㅣ 너에게로 ㅣ 사닥다리
쿠쿠Cuckoo l 하늘의 귀 ㅣ 명의를 찾아서 ㅣ 출렁이는 달
하늘을 봤다 ㅣ 누군가는 누구를 사랑한다 ㅣ 하늘 정원 ㅣ 하늘 소리

2. 한마리 어린 양
한마리 어린 양 ㅣ 죄 ㅣ 기도 ㅣ 부활 ㅣ 리셋Reset ㅣ 십자가 그늘
그 솜씨 찬양하리 ㅣ 방황 ㅣ B와 D 사이 ㅣ 뒤돌아 예루살렘으로
선한 목자, 내 아버지여

3. 평양 곰탕
평양 곰탕 ㅣ 리모델링 ㅣ 작은 봄 ㅣ 구슬 가족 ㅣ 무지개 ㅣ 한마음 크게
갸웃 ㅣ 소망 ㅣ 아 정말 절망 대한민국 ㅣ 꿈의 사닥다리
하늘에 꽃 피우리 ㅣ 옷깃을 여미며

4. 응시
응시 ㅣ 벽 ㅣ 꿈속에서 만난 소크라테스 ㅣ 착지 ㅣ 이별과 행복 사이
하나 더하기 하나는 人 ㅣ 카르페디엠 ㅣ 축복 ㅣ 선물 ㅣ 오토하프
카네기 홀 ㅣ 차라리 그때로 ㅣ 어디로

5. 기도
기도 1 ㅣ 기도 2 ㅣ 기도 3 ㅣ 기도 4 ㅣ 기도 5 ㅣ 기도 6 ㅣ 기도 7
기도 8 ㅣ 기도 9 ㅣ 기도 10 ㅣ 기도 11 ㅣ 기도 12

해설 - 철학의 계단에서 만난 시 (김동원)

참 아픈 하늘이었다
너를 부르면, 참 아픈 구름이었다

밤마다 달은
물속에서 꽃처럼 숨 몰아쉬는데

마음 한 자락 잡을 수 없는
바람의 손, 차마 찾지 못해

언제나 돌아서던
골목의 빈 그림자

참 아픈 겨울이었다
자꾸만 너는 펄럭거리는데

가시나무 무릎 속 고개를 묻고
어둠은 바람인 양 쳐다본다

본문 11p (「바람의 손」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