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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어떤 정황을 적는 일에서는 이제 멀리 왔다. ‘상황’에 투신하거나 채색하는 일이 되었다. 그의 시 “동백꽃은 붉었다”는 언제 어디서든지 “동물원은 붉었다”로 치환될 수 있다는 생각과, 만약에 그러한 시도를 감행하려 할 때에도 여전히 살아남아야 할 “붉었다”의 주목과 각성이, 이를테면 요즈음 시들의 중요한 거래방식이 되었던 것이다.
연극 “옥주”를 보고 와서 적어내린 이경은의 시 한 편에도 바라봄을 앉아서 옮겨 놓은 정황을 극복한, 어떤 장면에의 상황이 놓여졌다. 긴장된 문장의 모서리에는 약간의 귀기마저 맴돌고 있다. “첩(妾) 가슴에 코피 쏟은/ 시신(尸身)을 철수세미로 문질러/ 백일곱 번 묶고/ 가슴에 박힌 못을 뽑아 관(棺)에 박았다” 그의 시의 남성적인 목소리의 지점과 종교적 성찰의 자세. 툭툭 치고 오르는 세간들 곁으로의 말 걸기 등등이 그가 보여주는 자신의 현재 시 세계이다. “이쯤해서 한번쯤 우당탕 내 팽개치고” 자신의 시에게로 “한 다리를 들어 올려도 좋으리”
- 정윤천 (시인)

김인숙 교수의 글들은 굽고 휘어진 산길들을 닮았다. 거기 굽은 허리의 갈참나무 숲은 자리하고, 계절이 흘러가고 이름 모를 산새들의 울음소리가 사위를 채우며 있다. 누가 ‘길 위의 생’이라는 말을 처음 꺼내어 썼던가.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문집의 원고를 받아들고, 그의 인생의 길 위에 수놓아진 무수한 세간의 살림이며 곡절을 대하는 시간 앞으로 잠시 머물러 보았다. 쉼 없이 길을 나서는 행자(行者)의 발목과 옷차림이 김인숙 교수의 무늬이자 인품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 〈추천사〉 중에서

1부 동백꽃은 붉었다
12 손의 역사
14 동백꽃은 붉었다
15 행복
16 꽃밭에서
18 약속 1
20 약속 2
22 문득, 연우카페
23 오늘
24 고요한 사람들
26 우슬재를 넘다
28 해넘이
29 그대
30 보라카이에서는 순결하지 말라
32 람브란스에서
33 깊은 가을
34 아픔은 삼킬 때 눈물 타는 소리가 난다
35 내 아이
36 이슬 속 햇빛을 피다
38 소나타에게
40 바람 맛이 들었다
41 허풍

2부 베갯속 풍경
44 쉰둥이
45 당연한 일
46 당신의 무게
48 베갯속 풍경
50 누이에게
52 누이의 연가
54 오빠 생각
55 보라의 나라
56 어머니의 밭 1
57 어머니의 밭 2
58 어머니의 참외
60 정안수
61 더 이상 두만강은 오지 않았다
62 경력 증명서
63 전화벨이 울렸다
64 아이 만드는 방
66 화순댁의 노래
67 매미의 사랑법
68 어르신

3부 억새밭
74 신부여
75 슈퍼우먼
76 그녀는 뮬란을 닮았다
78 퇴직 선언문
79 선생님의 초대
80 사서 선생님
81 영양사 선생님
82 번번이 늦은 종소리
83 못된 학교
84 빈 집의 아이들
85 평야에 닿는 길
86 파도
87 염화시중拈華示衆 의 미소
88 가지 많은 나무에 열매 많이 맺는 법
89 억새밭
90 고백
92 졸업생에게 바치는 노래

4부 둥근 초록을 쓰다
98 아라리
99 둥근 초록을 쓰다
100 선물
101 해바라기
102 깨달음
103 소망에 대하여
104 인연
105 나의 아리랑
106 조강지처
107 광주 오동꽃
108 나이
110 도장을 잘 못 찍었다
111 늦조 아재
112 숯굴댁 설화
113 그 겨울의 예배당 1
114 그 겨울의 예배당 2
116 황토빛 내 고향
118 혼인하던 날

5부 그곳에 가라
124 그곳에 가라
125 고요함을 그리다
126 너 찬란할 때 나 처절할 때
128 불일암 풍경
129 불일암에 가거든
130 참새와 나뭇잎
131 불면증
132 시 소리꽃으로 피다 1
133 시 소리꽃으로 피다 2
135 시 소리꽃으로 피다 3
136 광주 제1 수원지
137 숲의 전투
138 망둥어
139 귀향
140 피아니스트
141 바리스타

해설
142 바래고 삭아내린 형형한 속살들의 풍경/: 김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