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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들 : 박정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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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박정대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 : 2020년 11월 22일
  • 쪽수 : 152
  • ISBN : 9788954670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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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감정 공산주의자’이자 ‘내면적 리얼리스트’ 박정대의 『단편들』이 문학동네포에지를 통해 첫 이야기를, 첫 연주를 다시 시작한다. 1990년 『문학사상』을 통해 “독창적인 신선함” “천(千)의 얼굴 만(萬)의 모습”(유안진)으로 여정을 시작한 시인은 여전히 길 위에, 지금도 걸음중에 있다. 때로는 방랑이고 때로는 여행이기도 할 그 발자국의 첫머리가 이 시집 『단편들』이다.

출판사 서평

■ 문학동네포에지를 시작하며

“어떤 시집이 빠져 있는 한, 우리의 시는 충분해질 수 없다.”-문학동네 복간 시집 시리즈 문학동네포에지를 시작하며

1.
2020년 11월 문학동네 복간 시집 시리즈인 문학동네포에지를 시작합니다. 1차분 열 권을 우선으로 선보입니다. 문학동네는 일찌감치 이 작업을 시도한 바 있습니다. 1996년 11월 ‘포에지 2000’ 시리즈의 펴냄 아래 황동규, 마종기, 강은교의 청년기 시집들을 복간하며 그 명맥을 이어나가던 바 있습니다. “예민한 감성과 날카로운 직관으로 시대의 혼돈과 상처를 노래했던 젊은 영혼의 생생한 울림이 담긴 추억의 명시들을 독자 앞에 다시금 제시함으로써 빛나는 시의 정수를 확인하고자” 하려 함이라는 취지의 글이 떠오르는데, 그때로부터 근 24년이 흘렀습니다. 그 정신은 온전히 두고 그 매무새를 새로이 다지는 과정 가운데 문학동네포에지의 첫 행보를 내딛기까지 시간이 오래 좀 더디 걸린 것도 사실입니다. “옛 시집을 복간하는 일은 한국 시문학사의 역동성이 현시되는 장을 여는 일이 되기도 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 선언한 책임과 의무의 말이 실은 얼마나 큰 무게인지 모르지 않은 까닭입니다. 시라는 무한과 시집이라는 열림을 끌어안으려는 데 있어 한껏 오므라들었다 힘껏 펼칠 줄 아는 시리즈라는 줄자, 이를 가능케 하는 힘은 아무려나 사랑에 있음을 이제는 깨닫고 온전히 그 순정에 기대어 용기를 낼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2.
문학동네의 신간 시집 시리즈인 문학동네시인선이 어느덧 150번째 시집을 눈앞에 두고 있는 가운데 출범하게 된 문학동네의 구간 시집 시리즈인 문학동네포에지는 복간의 기저를 비단 문학동네에 적을 두었던 시집만을 필두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특징으로 합니다. 반드시는 아니더라도 이왕이면 읽어둬도 참 좋으련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오랜 시간 서점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시집들이 우리에게는 꽤 있었습니다. 문학동네포에지는 시간을 거슬러 찬찬히 행하는 시로의 이 뒤로 걷기를 통해 파묻혀 있을 수밖에 없었던 시집을 발굴하고, 숨어 있기 좋았던 시집을 골라내며, 책장 밖으로 떨어져 있던 시집을 집어 서가에 다시 꽂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음으로써 한국 시사를 관통함에 있어 필요충분조건이 되는 시의 독본들을 여러분들에게 친절히 제공해드릴 참입니다. 출발의 본거지는 제각각 달랐으나 도착의 안식처는 모두 한데로, 문학동네포에지 안에서 유연성 다해 섞이고 개연성 있게 엮인 가운데 한 차에 열 권씩 펼쳐질 시의 병풍은 저마다 다양한 개성으로 저마다 독특한 양식으로 저마다 특별한 사유로 시리즈라는 줄자에서 보다 큼지막한 테두리로 우리를 시라는 리듬 속에 재미 속에 미침 속에 한껏 춤추게 할 것입니다. 특히나 귀하디귀하다 싶은 것이 시인들의 첫 시집임을 알아 그 최전방에 첫 시집들을 앞서 배치한 것인데 김언희, 김사인, 이수명, 성석제, 성미정, 함민복, 진수미, 박정대, 유형진, 박상수 시인에 이어 출간될 2차분 역시 김옥영, 이문재, 염명순, 안도현, 정은숙, 조연호, 김민정, 최갑수, 이영주, 이현승 시인의 첫 시집임에, 복간에 있어 첫 시집을 앞서 염두에 둔다는 원칙 역시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3.
문학동네포에지는 문학동네시인선과 책 사이즈가 같습니다. 세상의 시계와는 완연히 다른 시의 시간 속에 이 두 시리즈가 맘껏 뒤섞이는 난장 속에 시집 시리즈의 건강함을 기대하였고, 맘껏 뒤섞이는 자연 속에 시집 시리즈의 무구함을 기약한 것도 애초의 기획 의도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표지 디자인의 중심을 컬러에 놓은 것도 둘의 공통점입니다. 문학동네시인선이 핀 꽃이거나 필 꽃이라 할 때 문학동네포에지는 꽃이 있다 떨어진 꽃자리이거나 꽃 없이 진 꽃을 기억하는 등산로 앞 의자라 할 적에 그 컬러의 생겨먹음이 필시 달라야 할 것이라는 짐작이 내내 따라붙었습니다. 힘을 빼고 또 뺐습니다. 등을 펴고 또 폈습니다. 그렇게 비우고 그렇게 꼿꼿해지는 과정 속에 문학동네포에지는 파스텔톤의 열 가지 컬러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해설이 따로 실리지 않는 시집 시리즈, 추천사도 따로 박히지 않는 시집 시리즈, 시인의 약력과 시인의 자서와 시인의 시로만 꿰는 시집 시리즈, 시인의 시 가운데 미리 보기로 어떠한가 싶어 고른 한 편의 시를 책 뒷면에 새기는 일로 시집의 단장을 마치고 시집의 장단을 맞춘 시집 시리즈, 이에는 색보다는 물의 수위가 높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한 차에 열 권씩 출간하려는 작정은 예의 과정에서 비롯한 작정이기도 합니다.

4.
구석구석 모자람도 클 것입니다. 걸음마에 넘어짐은 자석 근처의 철심 같은 것, 하여 많은 분들이 넘어질 적마다 넘어졌구나 가리키시고 가르쳐주셔야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씩씩하게 걸어나갈 수 있음을 압니다. 모쪼록 새롭게 시작하는 문학동네포에지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저 사랑으로 지켜봐주시면 여한이 없을 성싶습니다. “사랑이란 죽은 이도 거의 소생시킬 수 있는 것”이란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힘입어 “사랑이란 죽은 시집도 거의 소생시킬 수 있는 것”이란 우리만의 변주로 그이가 부추긴 ‘사랑의 함대’를 비유 삼아 오늘 이렇게 문학동네포에지라는 배를 물위에 띄워보는 바입니다.

■ 편집자의 책소개

‘감정 공산주의자’이자 ‘내면적 리얼리스트’ 박정대의 『단편들』이 문학동네포에지로 첫 이야기를, 첫 연주를 다시 시작한다. 1990년 『문학사상』을 통해 “독창적인 신선함” “천(千)의 얼굴 만(萬)의 모습”(유안진)으로 여정을 시작한 시인은 여전히 길 위에, 지금도 걸음중에 있다. 때로는 방랑이고 때로는 여행이기도 할 그 발자국의 첫머리가 이 시집 『단편들』이다.

그리운 이름들
바람이 달려가며 호명하고 있었네

시집을 열고 들어선 세계는 ‘워터멜론 슈가’ ‘페루여관’을 지나 ‘태양다방’이 되었다가 “거리에서, 그 거리에서”, 목적지도 정해진 행로도 없이 스쳐간다. 이 “혼몽한 겨울밤”(「단편들」)은 때로는 꿈이고 더러는 기억의 풍경이다. 그가 읽고 보고 듣는 모든 것의 ‘단편들’, 혹은 시인이 사랑하는 모든 것의 기록이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다. 조각들은 〈동사서독〉 〈아이다호〉 〈타락천사〉와 같은 영화, 또는 『워터멜론 슈가에서』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문학, 때로는 ‘빅토르 최’ ‘너바나’에 이르는 음악까지 거리낌 없이 경계를 넘나든다.
한 시집 안에서 정지용과 백석, 이성복과 기형도, 앨런 긴즈버그와 무라카미 하루키를 한데 불러내고 있지만 시인은 이들을 ‘인용’의 방식으로 빌려 쓰지 않는다. 그가 사랑하는 이들을 자신의 자리에 끌어다놓는 대신 저 먼 쪽을 향해 ‘호명’할 뿐이다. 예컨대 이런 주석,

나는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시로 쓴다. 무지하다는 것은 때때로 무지하게 자유로운 것이다.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 중에서

유배지인 그의 자리에서 이 “호명”은 빌려 쓰기가 아니라 그저 불러보는 이름, 반송 불필요의 편지다. 때때로 주소만이 쓰인 그의 편지를 따라 시는 자유롭게 드넓은 예술과 아름다움의 대륙을 오가며 “빛나는 거미줄”(「장마」)을 잇는다. 이 시집이 빌려온 ‘파편들’의 조각 모음이 아니라 광막한 세계의 『단편들』인 이유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가습기 같은 내 영혼

시인이 기형도를 불러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말하던 고백은 금세 “쓴 것이 몸에는 좋다네” 하는 말놀이로(「아이다호」), “테라스”에서 “뒤라스”를, “저수지”에서 “개같은 인생”을, 영화 〈인생〉의 배우 공리에서 “공해” “공” “공을 차는 햇살들의 근육”과 “힘” “권력에의 의지”까지(「SADANG 가는 길」) 꼬리를 물며 달려간다. 시인 스스로 ‘자동기술법’이라 일컫기도 한 이 질주, 마침내 날개가 돋아나고 “새들처럼 재빠르게” 통과해가는 그 “물질적 황홀”은 무엇일까(「물질적 황홀 12」).
혼곤과 혼몽의 공간에서 삶은 ‘바람’에 실려 ‘담배 연기’ ‘안개’ ‘구름’으로 부유한다. 들끓는 생으로부터 피어오르며 흩어지는 “가습기 같은 내 영혼”(「단편들」). 그런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것도” “밀려난 쿠데탄지/밀란 쿤데란지 하는 체코 작가의 책”(「라라를 위하여」)이라 무심히 말할 때, 진지함을 비껴가는 듯 보이는 이 영혼의 흘러감, 과연 ‘가볍다’ 말해도 충분할까.

그대여, 유리창 속을 들여다봐, 뭐가 보이나. 그 속에 와 있는 햇살들의 입김을 들여다봐, 꿈꾸듯이. 음악을 듣듯이 상상해봐, 왜 나뭇잎 속에 호랑이가 들어갔는지. 파란 개나리 새순 속에서 몽고 대초원이 어떻게 깨어나는지. 너를 가로막고 있는 콘크리트 벽 속에서, 두 그루 미루나무가 튼튼하게 걸어갈 때, 그대여, 로클랜드에 나는 너와 함께 있어. 통곡처럼 깊어가는 어둡고 추운 이곳에서 나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이 읽혀지리라고 기대하지 않아. 희망하지도 않아, 이곳에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선 미쳐야만 해. 그러나 나는 아직 미치지 않았고, 그러고 싶지도 않고 미쳐버리고 싶은 그러나 미쳐지지 않는 그런 상태도 아냐. 그래, 나는 아직까지 불행하게도 마약이 필요 없어. 다만 나의 망막에 와 닿는 프레임을 조금 바꾸고 싶을 뿐,

─「SADANG 가는 길」 부분

졸다 그만 내려야 할 사당역을 지나쳐 “남태령역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는 굴원”, 그리하여 “나의 손아귀로 굴비처럼 굴러떨어”진 굴원이라는 시인. 자유로이 미끄러지는 이 언어 속에서 굴원이 그려진 『초사』와 지나쳐버린 지하철역을 번갈아 본다. 시인의 눈은 기어이 사당(SADANG)속에서 ‘새드앙’─슬픔을 발견하고 만다. 이 슬픔, “보여야 할 것이 보이고, 보이지 말아야 할 것도 보이고, 자꾸만 무언가가 보이는 것”. 그리하여 “나의 망막에 와 닿는 프레임을 조금 바꾸”어 보는 일. 한없이 가벼이 공중으로 피어오르는 수증기, 영혼이 눈물 되고 비 되어 떨어지는 곳에 삶이 있다.

깃발도 없는 추억의 노래를 부르고

또하나 공중과 지상의 사이를 오가는 것은 음악소리다. 끝없이 부유하고 하강하며 울려퍼지는 것, 이 광대무변한 세계를 삶이라는 음악이 채워나간다. 시 속에 직접 빅토르 최의 가사를 빌려오지 않더라도(「어떤 죽음에 관한 기록」), 박정대의 시를 소리 내어 읽는 일이 ‘음악적’임을 구태여 힘주지 않더라도, 시인은 스스로 “아름다운 노래”가 되어 “내 몸이 갈 수 없는 곳”으로 “여전히 간다”. “가서는 또다른 노래가 되고, 노래가 되지 못한 것들은 별이 되거나 나뭇잎이 되어, 여전히 이 세상 풍경의 일부가 되어, 나를 흔들고 내 속의 또다른 노래를 흔”든다(「자동차 안에서」).
바람 한 점, 풀잎 하나도 저마다 음악인 세계에서 ‘나’ 또한 하나의 음악이다. “음악처럼 사랑을” 하고(「광란의 사랑 그 너머」) 때로는 슬픔, 때로는 추억이라는 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자주 서럽지만 또한 세상을 밝히도록 아름답기도 하여서, “어둠의 중심으로부터 피어오르는 빛의 흔적들, 빛의 화음들”(「누군가 떠나자 음악소리가 들렸다」)을 빚고 마침내 ‘나’ 스스로 “비어 있는 어둠 속을 불꽃의 광맥으로 채”우는 “공중에서 빛나는 음악”(「어떤 죽음에 관한 기록」)이 된다. “그 노래의 끝에서 피어나는 새들”이 “조용히 소리를 물고 어디론가 날아오”를 때(「누군가 떠나자 음악소리가 들렸다」), 빛나는 노래, 발 없는 새는 몸이 갈 수 없는 곳까지, 추억조차 닿지 않는 먼 곳으로 가닿을 것이다.

호수 깊은 곳으로 검은 돌 하나 가라앉고 있네
나비들은 허공의 물결인 양 돛단배의 길을 열고 있네

그 사이로 흐르는 지상의 음악소리,

내가 촛불을 들고 오래도록 바라보는 유일한 꿈
천 개의 촛불이 애태우며 꿈꾸는 유일한 나

나무들,

─「나무들」 전문

길은 처음부터 없었던 거야

그의 새들은 마침내 “잃어버린 고향”(「내 마음 속 만주벌판」)으로 향하지만 정작 행선지는 ‘워터멜론 슈가’ ‘페루여관’, 혹은 존재하지 않는 주소다. ‘몰운대’ ‘위시카강’에 도착한다면 이곳이 이름만 빌려온, 지도에도 지상에도 없는 곳임을 알게 된다. “길은 처음부터 없었”고(「한밤중」) 종착지는 “어디에도 없는 생”(「단편들」), 끝내 “내 오랜 그리움으로도 다다를 수 없는 곳”(「4월의 나무 한 그루」)이다.
“나는 지금 유배되어 있다, 어디에 유배되어 있는지 모르는 채”(「나 자신에 관한 조서」)라고 말할 때, 유배는 감금이 아니라 방랑의 다른 말이다. 길의 끝에 놓인 도착지가 아니라 길조차 존재하지 않는 ‘어딘가’로 부유하기. 그의 방랑이 쫓겨남이라면 “유배”이고, 도피라면 “망명”이 되겠다(「그의 유배지에서의 생활」). 그러나 “길의 감식가”(엄경희)인 시인은 스스로 길을 방목하고 유폐하며 “처음부터 없었던” 길로 간다. 끝내 길 밖으로 행군하기, ‘혁명’을 택하는 것이다. 박정대의 여정이 길 위의 노래가 아니라 길 밖의 노래인 이유다.
‘존재하지 않는 길’이란 끊임없이 이동하고 모습을 바꾸며 새로이 만들어가는 길이기도 하다. 기어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하여」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것. 한없이 길 잃고 미끄러지는 정처 없는 방황이 향하는 곳은 마침내 지극히도 시적인 자리, 바로 “고요한 혁명”(「촛불의 미학」)이다.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위하여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위하여
나는 스스로 감히 글을 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하여」 부분

시인은 자신이 써온, 앞으로 써나갈 시편들이 ‘하나의 장편소설’처럼 읽히길 바란다는 희망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박정대가 써나갈 ‘단 하나의 이야기’는 아직 연주중이다. ‘인터내셔널 포에트리 급진 오랑캐 밴드’의 멤버이기도 한 시인이니, 이 시집을 활자로 된 밴드 연주 실황, 그 초연이라 불러도 좋겠다. “사랑과 혁명을 갈구하는 낭만가객”(함기석)의 노래는 길 밖에서 언제나 새롭게 시작이다. 끝없이 변주되며 매번 새로울 즉흥연주. 이 시집 속 ‘단편들’이란 앞으로의 무수한 곡으로 변모할 모티프인 셈이다. “어떤 시집이 빠져 있는 한, 우리의 시는 충분해질 수 없다”면(「기획의 말」), 이 여정의 시작 없이 그의 악보를 완성할 수는 없으리라.

■ 기획의 말

그리운 마음일 때 ‘I Miss You’라고 하는 것은 ‘내게서 당신이 빠져 있기(miss) 때문에 나는 충분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뜻이라는 게 소설가 쓰시마 유코의 아름다운 해석이다. 현재의 세계에는 틀림없이 결여가 있어서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그리워한다. 한때 우리를 벅차게 했으나 이제는 읽을 수 없게 된 옛날의 시집을 되살리는 작업 또한 그 그리움의 일이다. 어떤 시집이 빠져 있는 한, 우리의 시는 충분해질 수 없다.

더 나아가 옛 시집을 복간하는 일은 한국 시문학사의 역동성이 드러나는 장을 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나의 새로운 예술작품이 창조될 때 일어나는 일은 과거에 있었던 모든 예술작품에도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이 시인 엘리엇의 오래된 말이다. 과거가 이룩해놓은 질서는 현재의 성취에 영향받아 다시 배치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빛에 의지해 어떤 과거를 선택할 것인가. 그렇게 시사(詩史)는 되돌아보며 전진한다.

이 일들을 문학동네는 이미 한 적이 있다. 1996년 11월 황동규, 마종기, 강은교의 청년기 시집들을 복간하며 ‘포에지 2000’ 시리즈가 시작됐다. “생이 덧없고 힘겨울 때 이따금 가슴으로 암송했던 시들, 이미 절판되어 오래된 명성으로만 만날 수 있었던 시들, 동시대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젊은 날의 아름다운 연가(戀歌)가 여기 되살아납니다.” 당시로서는 드물고 귀했던 그 일을 우리는 이제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문학동네포에지 1차분 리스트

001 김언희 『트렁크』
002 김사인 『밤에 쓰는 편지』
003 이수명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
004 성석제 『낯선 길에 묻다』
005 성미정 『대머리와의 사랑』
006 함민복 『우울씨의 일일』
007 진수미 『달의 코르크 마개가 열릴 때까지』
008 박정대 『단편들』
009 유형진 『피터래빗 저격사건』
010 박상수 『후르츠 캔디 버스』

문학동네포에지 2차분 리스트

011 김옥영 『어둠에 갇힌 불빛은 뜨겁다』
012 이문재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013 염명순 『꿈을 불어로 꾼 날은 슬프다』
014 안도현 『서울로 가는 전봉준』
015 정은숙 『비밀을 사랑한 이유』
016 조연호 『죽음에 이르는 계절』
017 김민정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018 최갑수 『단 한 번의 사랑』
019 이영주 『108번째 사내』
020 이현승 『아이스크림과 늑대』

목차

시인의 말
개정판 시인의 말

단편들
촛불의 미학 / 단편들 / 금연 구역의 나날들 / 아이다호 / SADANG 가는 길 / 나무들 / 레이지 버드에서 / 거울 속에 빠진 양조위 / 양조위 / 〈동사서독〉에 의한 변주 / 外一篇 / 위시카강의 진흙 강둑으로부터 / 누군가 떠나자 음악소리가 들렸다 / 어떤 죽음에 관한 기록 / 물질적 황홀 2 / 물질적 황홀 4 / 광란의 사랑 그 너머 / 물질적 황홀 6 / 물질적 황홀 8 / 물질적 황홀 12 / 사막 / 자동차 안에서 / 나는 희망에 관해 말하려고 한다 / 그 무엇이 속삭이고 있었다 / 틈 사이로 엿보다 / 너희는……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 4월의 나무 한 그루 / 그의 유배지에서의 생활 / 이가흔, 내 책상 위의 타락천사

두 달 정선
나의 추억 / 두 달 정선 / 베트남 / 라라를 위하여 / 달맞이꽃 / 그것이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면 / 장마 / 잠수 / 하늘의 뿌리 /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 애인이지요 / 고요한 아침 / 우편함 속에 사랑을 / 고흐의 그림 두 편 / 생의 모퉁이 가게 / 추억도 없는 길 /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새벽 편지 / 견소에서 / 솔숲에 누워 / 내 마음속 만주 벌판 / 새들은 목포에 가서 죽다 / 눈, 눈을 감고 백야를 노래함 / 정릉에는 별이 많다 / 사북에서 / 몰운대에 눈 내릴 때 /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하여 /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 / 한밤중 / 나 자신에 관한 조서

본문중에서

촛불을 켠다
바라본다
고요한 혁명을

─「촛불의 미학」 전문

저자소개

생년월일 1965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65년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났으며 199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단편들',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아무르 기타', '사랑과 열병의 화학적 근원', '모든 가능성의 거리', '삶이라는 직업' 등이 있으며 현재 무가당 담배 클럽 동인, 인터내셔널 포에트리 급진 오랑캐 밴드 멤버로 활동 중이다. 김달전문학상과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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