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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조금은 헐렁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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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마음이 조금은 헐렁한 사람]은 마음을 걷는 산책자가 우리에게 내어주는 아늑한 빈방 같은 에세이다. 저자는 조금은 허술하고, 헐렁하고, 빈 듯해 보이는 것들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그의 소중한 일상을 너그러이 베푼다.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기꺼이 여유롭고 단정한 빈방을 내어주는 마음, ‘성공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헐렁한 삶을 지향하는 저자의 성장과 농담, 그리고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출판사 서평

“우리에게 진짜 소중한 것들은, 의외로 헐렁하다”
— 우리를 키워낸 수많은 헛발질과 비효율적인 것들에 대하여


[마음이 조금은 헐렁한 사람]은 마음을 걷는 산책자가 우리에게 내어주는 아늑한 빈방 같은 에세이다. 이제 막 중년의 문턱에 들어선,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초등학교 교사로 살아가는 저자는 조금은 허술하고, 헐렁하고, 빈 듯해 보이는 것들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그의 소중한 일상을 너그러이 베푼다.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기꺼이 여유롭고 단정한 빈방을 내어주는 마음, ‘성공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헐렁한 삶을 지향하는 저자의 성장과 농담, 그리고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굳이 쓸모 있지 않으면 어떤가,
낡고 쓸모없는 것들의 가치와 아름다움


우리는 살면서 계속 무언가를 채우려고만 한다. 남에게 자랑할 만한 넓은 집이나 많은 돈 같은 것들로. 시간에 한해서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하기 일쑤다.
이 책의 저자는 비어 있는 것, 결핍된 것, 그리 합리적이거나 효율적이지 못한 것의 가치를 새로 발견하고자 한다. 별스럽지 않아 보이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둘도 없이 소중한 무엇이 될 수 있음을 간파하고, 평범함의 비범함을 끄집어낸다. 그는 그런 자신을 ‘마음이 조금은 헐렁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쓸모없는 것들의 무용함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쓸모를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효율’이 미덕인 시대에 ‘더하기’보다는 ‘빼는’ 삶,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삶을 권한다.
저자는 자신의 서랍과 기억 속에 고이 넣어둔 ‘그 시절의’ 낡은 것들, 퀴퀴한 헌책방이나 DVD 감상실처럼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80~90년대의 문화를 두루 소환한다. 여기엔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 서로의 손을 붙잡았던 방식, 젊은 시절엔 마음껏 누렸던 웃음이나 침묵 같은 것들도 포함된다.

여전히 아이 같고픈 마음,
그리고 진정한 성장에 대하여


저자 송광용은 ‘내 몫만큼만 어른이 되고 싶은’ 40대 남성이다. 남성 지인과 술이 아니라 밀크티를 앞에 놓고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고, 주말이면 아기 띠를 하고 서점을 찾는 저자의 감성에서 뭔가 색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이 책에선 그런 그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문득문득 새롭게 깨닫게 된 것과 그 과정을 묵묵히 겪어내는 마음의 풍경을 그린다.
흔히 누군가 나이를 먹으면 막연히 ‘성장’한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는 지나온 세월을 반추하며 반짝임을 잃고 권태로워지는 일상, 나잇값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되기보다는 용인되지 못하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 나날들 속에서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이해의 폭은 오히려 넓어짐을 느낀다. 어쩌면 그에게 진정한 ‘성장’이란 위로 뻗어 올라가는 가지가 아니라 옆으로 넓어지는 나이테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며
작고 하찮아 보이는 것들로부터 배우는 삶


다섯 살과 세 살배기 아이를 둔 아버지이자 초등학교 교사인 저자의 글에는 유독 자신이 키우고 가르치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그가 보내는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교육’과 ‘육아’는 일이기도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한밤중에 자지 않고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와 씨름하고, 이따금 어린 학생이 교실 바닥에 별안간 게워놓은 토사물을 치우는 수고를 감수하며 좌충우돌하는 매일이지만, 아직 작고 미성숙한 존재처럼 보이는 그들에게서 그는 삶의 태도를 배운다.
그의 ‘헐렁함’엔 조금은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라는, 뜻밖이지만 분명한 목적이 깔려 있다. 일부러라도 헐렁해지기 위해 저자는 마음속 거울을 매일 닦고, 빈방을 수시로 청소한다. 그가 마련하는 여유롭고 단정한 마음의 방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초대하는 공간이다. 여기서 ‘헐렁함’은 다른 존재를 향한 ‘부드러움’과 ‘너그러움’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에 따르면 단지 ‘그 사람이기 때문에’ 계산하지 않고 아낌없이 베푸는 마음, 이런 비합리와 비효율로 점철된 수많은 헛발질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농담이 건재한 일상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삶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고,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저자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는 대신, 산책이나 고양이와 함께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는 그의 일상은 어딘가 낭비되는 듯 보이지만, 그러한 공간이 타성에 젖은 마음가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는 오히려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이러한 ‘헐렁함’을 말로도 실천한다.
그는 유독 농담을 좋아한다. 이따금 싱겁고, 허술한 우스갯소리로 미소를 띠게 하면서도 중간중간 옷깃을 여미게 하는 책 속 단상들은, 잰걸음으로 삶의 속도를 재촉하는 우리의 발걸음을 자꾸만 돌려세운다. 그는 자신과 배우 공유의 패션 간극을 철학적으로 고찰하는가 하면, 글쓰기의 대가를 막힌 혈을 뚫는 무림의 고수에 빗대기도 한다. 그가 툭툭 던지는 ‘농담(弄談)’은, 그렇게 삶에 ‘농담(濃淡)’을 부여한다.

목적과 당위가 지배하는 현실로부터
나를 지키는 읽기와 쓰기


우리의 현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을 위해서’라는 목적과 ‘~해야만 한다’는 당위를 떨쳐내게 해주는 방편으로 저자는 읽기와 쓰기를 택했다. 따뜻하고 다정하며, 순하고 정갈해서 마치 유기농 식품 같은 그의 글은 밥벌이와 육아에 치여 ‘극한 상황’이라고 표현되는 일상에서도 글쓰기라는 끈을 놓지 않은 덕분에 백지로, 빈 모니터로 차례차례 옮겨지고 있다. 그에게 글쓰기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하는 제조공의 노동’이자 한편으로는 ‘음란서생’처럼, 아무도 모르는 마음속 다락방에서 남몰래 누리는 은밀한 기쁨이기도 하다.
보통의 우리처럼 정작 시간이 주어지면 TV 예능 프로그램과 유튜브에 정신을 뺏기곤 하는 그의 읽기와 쓰기는 조금은 헐렁하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발걸음이 서점으로 향하고, 손에서 펜을 놓아본 적이 없는 그에게, 읽기와 쓰기는 분명 습관 이상의 의식(儀式)이다. 그래서 오늘도 그는 쓴다. 보험 회사 직원으로서의 임무를 마치면 글을 쓰러 황금 소로의 작은 집으로 달려갔던 프란츠 카프카처럼,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고 말한 필립 로스처럼.

목차

저자의 말_빈방 하나 갖자는 마음으로

1장 조금 헐렁한 마음

뺄셈의 부드러움에 대하여
삶의 이야기를 설계하는 일
꿈을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할까
울타리 밖의 괴물
공존을 가르쳐주는 동물
캐럴 댄버스가 일으킨 각성
차이를 만드는 사람
그저 산책을 합니다
지긋지긋한 ‘교육’이라는 말
누군가의 진짜가 드러날 때
헛일을 함께해주는 이

2장 조금 헐렁한 시간

헌책방을 운영하는 외삼촌이 있다면
변해버린 나를 발견한다는 것
그 많던 선배는 어디로 갔을까
그 시절의 낡은 무기
삶의 표준에 대하여
8월에 부는 바람 속에서
서로의 상처가 안도감으로 변하는 순간
볼펜이 뭐라고
웃는 게 쉬웠는데
호텔왕 게임이 가르쳐준 것
교실 바닥을 쓸며
내 몫만큼만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3장 조금 헐렁한 웃음

어느 시골 교사의 명과 암
나와 배우 공유의 패션 간극에 대한 철학적 고찰
나의 합리적인 소비 생활
첫인상을 믿지 마세요
그녀는 내게 맑다고 말했다
두 남자의 어느 저녁
설거지를 할 땐 준비가 필요하다
가오나시의 습격
아이들은 나의 선생님
축제가 끝난 도시

4장 조금은 헐렁한 읽기와 쓰기

올드 타운 호텔에서
밤 10시의 공기 속으로
삶이 만족스럽냐는 질문에 대해
독서가 P씨의 사정
글쓰기의 절대 고수
극한 글쓰기
책과 나
아기 띠를 하고 서점에 간다는 것
글쓰기에 관한 어떤 메모

본문중에서

‘부드러움’이라는 건, 외부의 것을 더하고 쌓는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부드러움은 나무토막 안에 감추어져 있다. 거친 나무토막을 오래 대패질하면 크기는 점점 작아지지만, 더 부드러워진다. 양적 성장의 갈망, 세상이 인정해주는 성취의 추구, 타인에게 더 큰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욕구 따위만 추구하다 보면 나무토막 안에 숨겨진 나의 부드러움을 만나기 어려워진다. 부드러워지기 위해선, 마음속의 가시와 내게 붙어 있던 거스름을 밀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보다 작아 보이게 되는 건 감수해야 한다. 어떤 대패질과 사포질도 나무토막을 더 크게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 '뺄셈의 부드러움에 대하여' 중에서/ pp.18~19)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덜 수줍고, 때론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도 하며, 상황에 따라 성향을 거슬러 외향적인 척도 한다. 조심스럽고, 공손하고, 내향적인 사람들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그 시절 나와 비슷했던 많은 이가 나처럼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변했으리라고 지레짐작한다. 사람들을 볼 때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그 사람의 좋은 면을 기대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보이는 면으로 판단해 버린다. 사람들의 숨겨진 부분을 보는 일엔 시간이 걸리고, 내 안에 그 시간을 기다릴 여유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크게 기대하지 않으면 크게 실망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들을 볼 때 그들 안에 잠재된 기쁨을 기대하는 대신, 담담해져 버렸다. 사람이 원래 그렇고 그런 거지, 하면서.
( '변해버린 나를 발견한다는 것' 중에서/ pp.84~85)

집으로 오는 길에, 난 오로지 ‘나’를 위해서 헛걸음도 감수했을 수많은 발걸음을 생각했다. 누군가를 위한 헛걸음은, 그 ‘헛’의 지수가 높을수록 그 사람에 대한 더 높은 수준의 사랑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우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내게 아무런 이득이 없고, 심지어 시간 낭비일지도 모르는 일을 기꺼이 한다. 거기엔 합리성이라든지, 효용이나 효율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행동의 동기가 전혀 다르다.
내게 헛일임을 뻔히 알면서도 그 사람의 마음 하나만을 위해 기꺼이 동참하는 일. 그 바보 같은 일이 누군가를 향한 가장 순수한 마음에 가깝다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 '헛일을 함께해주는 이' 중에서/ p.71)

내게 헌책방을 운영하는 외삼촌이 있고, 그 헌책방엔 언제라도 내가 기거할 수 있는 방이 있고, 그 방엔 곰팡이 냄새가 떠돌고, 또 누워서 손만 뻗으면 책탑을 쓰다듬을 수 있었다면! 잠이 오지 않으면 상처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뽑아 읽으면서 나의 통증을 우주로 쏘아 올리며, 인간의 보편적 고뇌와 근원적인 아픔 따위를 더듬어볼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내가 지금보다는 균열이 적은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그 균열들을 보수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조금 아낄 수 있지 않았을까.
( '헌책방을 운영하는 외삼촌이 있다면' 중에서/ p.79)

예전엔 정원에게 나를 투영하곤 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내 처지가 ‘다림’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흠모하던 상대가 갑자기 죽지 않아도, 모든 사람은 다림이 겪었던 과정을 천천히 경험한다. 설레는 초록으로 가득 찬 정원을 걷다가 문득 내가 서 있는 곳의 색이 달라졌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설렘과 미숙함이 삶을 꽉 채우고 있던 날은 지나버렸고, 그런 날은 다시 오지 않으며, 이제 추억 속에만 존재한다는 걸 알아버린다. 내 젊은 날의 사랑 이야기들은 채 피지 못한 꽃봉오리로 겨울 한설에 얼어버렸다는 걸 깨닫고는, 다림이 그랬던 것처럼 한숨 쉬며 애꿎은 추억에 돌을 던지는 것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어쩌면, 황량한 겨울 풍경 속에서 여름의 풍요로웠던 기억을 반추하며 쓸쓸히 서 있는 사람, 미숙하고 설레는 연애와 사랑은 이제 삶에서 죽어버린 걸 깨닫게 되는 나 같은 사람을 빗댄 준엄한 메타포가 아닐지.
( '8월에 부는 바람 속에서' 중에서/ pp.105~106)

어린 날엔 ‘내 아픔 아시는 당신’을 찾아다녔던 것 같다. 그가 친구든, 연인이든 말이다. 나와 친한 친구나 사귀었던 사람 중에는 남부럽지 않을 ‘아픔’이 하나쯤 있는 사람이 많았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내 친구들은 죄다 상처투성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본능적으로 아픔이 있는 친구와 더 깊은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고나 할까. 아픔을 나눈다는 건 곧 비밀을 나누는 것이다. 비밀을 나눈 친구는 그들 둘레에 단단하고 아늑한 막 하나를 더 가지게 된다.
연약한 사람들,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서로 기대는 광경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강한 이유를 보여준다. 나 강하다고 선전하는 인간, 젠체하는 인간은 잠시 부러움을 살 순 있어도 아름답게 느껴지진 않는다.
약해빠져서 서로 기대도록 만들어진 게 인간의 본질에 가깝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장님이 앉은뱅이를 업고 가는’ 그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고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 '서로의 상처가 안도감으로 변하는 순간' 중에서/ pp.111~112)

난 아직도 실없고, 심심하고, 외롭고, 어색하고, 무안하고, 조마조마할 때 웃고 싶은데. 나도 그런 순간에 둘러싸여 있다는 걸 들키고 싶은데. 나이 먹은 나는 그런 순간들을 들키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니 철벽 수비 전술만 경기 내내 구사하는 축구팀처럼 답답하고 재미없는 일상이 이어진다. 허술하게 보이면 사람들이 쉽게 다가오리라고 의미를 부여했던 청년기는 어디로 가고, 쉽게 보이는 순간 인생이 피곤해진다, 는 근본 없는 철학이 내 삶을 잠식하고 있다.
웃는 법을 완전히 잊기 전에, 입꼬리 주변 근육들을 부지런히 문질러야겠다. 잃어버린 ‘실없음’을 다시 주워 들고, 가려왔던 허술함을 만방에 공표해야지. 아, 생각만 해도 설레고… 피곤하다.
( '웃는 게 쉬웠는데' 중에서/ pp.122~123)

중고 서점을 드나들며 행복해하는 사람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 걸까. 굳이 새것이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은 헐렁한 사람. 어쩌면 (생전 읽지 않을지도 모르는) 중고책을 사면서 돈을 아꼈다고 착각하고, 책을 책장에 꽂으면서 나의 인문학적·지적 역량에 양분을 공급했다고 착각하고, 시간이 빌 때 언제든 갈 곳이 있다고 ‘착한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래, 착한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을 쥐어짜거나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도 행복을 누릴 줄 아니까.
( '두 남자의 어느 저녁' 중에서/ p.178)

내가 사랑하는 소설,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2009)에는 우리 모두 가슴에 새겨야 할 문장이 나온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글쓰기를 사랑하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태도가 여기 있다. 난 컨베이어 벨트 옆에서 무심한 얼굴로 능숙하게 나사를 돌리는 제조공처럼 글을 쓰길 원한다. 내 기분과 상관없이, 소에 쟁기를 연결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논으로 나가는 농부처럼 쓰길 원한다. 뭔가 느낌이 오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틈만 나면 앉아서 글을 쓰는 사람. 그냥 단순노동하듯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사람은 글쓰기 행위에 어떤 기분이나 감정도 개입되지 않는다. 다만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백지를 향해 전진할 뿐이다. 백지에 한 고랑, 한 고랑 쟁기질을 하는 것이다.
( '극한 글쓰기' 중에서/ pp.23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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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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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서 나고 자랐다. 남학생들은 죄다 공대에 들어가던 시절, 따라 들어갔다가 내 길이 아니다 싶어 나왔다. ‘국어’가 붙은 학과에선 실컷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믿고 청주교대 국어교육과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글은 많이 못 쓰고 내내 가르치는 마음만 배웠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낮엔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을 갈아 글을 쓴다. 직접 쓴 동화를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걸 좋아한다. 에세이 쓰는 소설가나 동화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에세이집을 먼저 출간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이야기 쓰는 에세이스트가 되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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