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적립 안내

시집 〈칼레의 시민들〉, 〈황홀한 물살〉의 저자 강인한의 신작 시집. 나지막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존재의 심연을 탐구한다. 개인의 실존과 공동체의 현실, 낱낱의 일상과 거대한 역사를 시인만의 목소리로 육화했다.

나지막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존재의 심연을 향해 몸을 기울이다
열린시학 기획시선② 강인한 시집

강인한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물고기의 향방에만 집착하고, 정작 그 물고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나 스스로를 돌아보며 한없이 부끄러웠다.… 가을 하늘보다 은은하고 깊은 차의 향기가 그런 나의 부끄러움을 씻어내듯 내 시가 그런 향기를 지닐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푸른 심연』은 강인한 시인의 총 56편 시들이 은밀한 고통과 고독의 심연을 드러내며 균형을 잡고 있다. 나희덕 시인은 ‘시인의 시선은 물 위의 평화보다는 오리가 수면 아래서 발버둥치는 모습을 응시하고 있고, 그것은 물의 깊이를 아는 자의 시선’이라고 해설에서 밝히고 있다. 『푸른 심연』이라는 표제작만 보아도 시 세계의 깊이를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다.

나는 가면을 벗을 수 없네
눈부신 삶의 기쁨을 노래하는
디바의 발치에 무릎을 꿇어본들
절망에 입맞춘 내 입술로
사랑을 하소연하여 무엇하리

나의 노래는 어둠 속에 숨어 있네
층계와 벽 속에 있네
그대가 바라보는 거울 속에 있네
춤추며 노래하는
그대의 길을 희미한 꿈결로 따라갈 뿐
그림자처럼 그림자처럼. -〈푸른 심연〉 부분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는 특히 질병과 늙음에 대한 열린 시선이 새롭게 다가온다. 여기서 드러나는 죽음에 대한 예감이나 성찰은 비극성의 강렬함보다 화해와 관조의 몸짓을 드러낸다. 그리고 더 확대되어 도시적 일상에서 관찰할 수 있는 수많은 질병의 실체들이 그림자를 이룬다. 또한 우리 사회의 모습들과 정치판을 비유한 시들에서는 예리한 시선과 입담을 확인할 수 있다.
강인한 시의 미덕은 해설에서도 씌어졌듯이 ‘개인의 현실, 공동체적 현실, 일상과 역사를 자신의 목소리로 육화해왔다는 점’이다. ‘푸른 심연’과 ‘세속도시’ 사이에서 살고 있는 시인, 이런 아슬 아슬한 실존의 상황을 시로 승화시켜내고 있는 이번 시집은 맑고 고요히 흐르는 강물과도 같이 정갈하다.

깊은 물은 소리하지 않는다/ 높은 산 넘어 넘어 어라연/ 사람의 발이 닿지 않은/ 깊은 곳에/ 한이 깊어서 새파란 하늘/ 첩첩 산봉우리에 구름이 찢기듯/ 여기저기 눈보라와 높새바람에 찢기고 부러져/ 쓰러진 고사목들/ 불 속을 튀어나와 식어 간 바윗돌의 잠 위에/ 저 강물 위에/ 죽은 나무 그림자 슬며시 얹힌다 -〈어라연〉 부분

시인의 말

모든 구름에는 은빛 자락이 있다
감은사지의 겨울
봄 인사
세속 도시 1
아랫것은 불편하다
우물 속으로
세속 도시 2
이스터 섬의 바위 얼굴
재채기
사랑하는 이여 먼 훗날에
잠들기 전에 눈물이
금관의 나무
호랑가시나무에 내리는 눈
창평 국밥집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