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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효온 평전 : 유교문명의 성세를 꿈꾼 이상주의자의 희망과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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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정출헌
  • 출판사 : 한겨레출판
  • 발행 : 2020년 01월 13일
  • 쪽수 : 420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6040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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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시대의 어두운 그늘을 비판한 조선의 젊은 지성, 남효온
조선의 태평성대, 성종 시절의 명암을 포착하다


조선의 제9대 국왕 성종이 치세하던 시절은 유교 체제가 완비되고 왕조가 안정기에 접어든 황금기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그 빛나는 성취 뒤에는 이전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조선은 개국 이후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살육이 난무하는 극심한 정치적 갈등을 겪었다. 대표적 사례가 세조의 왕위찬탈 쿠데타인 계유정난이다. 반정이 성공하자 공을 세운 이들은 세조 이래 수십 년 동안 정치적 실권을 장악했다. 성종 재위 기간에도 원로대신으로서 자신들의 생존에 유리하도록 정국을 주도했다.
그런 상황에서 스물다섯의 젊은 유생 남효온은 세조의 왕위계승 방법의 불법성을 지적한다. 그는 세조에 의해 폐서인된 단종의 생모 현덕왕후의 신원을 복권하고 능을 복위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려 조정에 파문을 일으켰다. 은폐된 과거사를 들춰내고 집권 세력의 심기를 거스른 대가는 혹독했다. 중앙 정치 무대에 올라설 기회를 박탈당한 그는 이후 경계인의 삶을 살며 아웃사이더의 시선에서 성종 시대의 밝음과 어둠을 포착했다. 세상을 향한 울분과 울울한 자조 속에서도 기개 있는 붓끝으로 시대를 증언하는 기록을 남긴 남효온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사육신의 이름을 충절의 상징으로 기억한다. 조선 초기, 거듭된 정변으로 일그러진 사회를 유교문명 국가로 바로잡고자 했던 이상주의자, 남효온의 삶 속으로 들어가보자.

출판사 서평

어린 성종의 즉위와 새 시대를 향한 기대,
그러나 현실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었던 모순의 시절


남효온(1454~1492)은 조선 전기의 유교 지식인으로, 매월당 김시습과 더불어 ‘생육신’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가 젊은 유생으로서 정체성을 갖춰나가던 15세기 중반 무렵은 조선의 태평성대를 구가했다고 일컬어지는 제9대 국왕 성종이 치세하던 시절이었다. 그 이전까지 조선은 개국 이후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친족 간에 살육이 난무하는 극심한 정치적 갈등을 겪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세조의 왕위찬탈 쿠데타인 계유정난이다. 반정이 성공하자 공을 세운 이들은 세조 이래 수십 년 동안 정치적 실권을 장악했다. 한명회, 권람, 정인지, 정창손 등으로 대표되는 훈구공신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성종 재위 기간에도 원로대신으로서 자신들의 생존에 유리하도록 정국을 주도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이들이 성종을 왕위에 오르게 만든 배후의 인물들이자 어린 성종이 성인이 될 때까지 ‘원상제’라는 집단지도체제로 어린 임금을 에워싸고 정무를 대신 돌보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주체였기 때문이다. 1469년, 세조의 둘째 아들 예종이 왕위에 오른 지 불과 1년 2개월 만에 갑작스럽게 승하하자, 훈구공신들은 왕실 최고 어른이었던 정희왕후(세조의 비)의 승인을 얻어 일사천리로 왕위계승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당시 열세 살에 불과하던 잘산군(성종)이 반나절 만에 후계자로 지목되고 보위에 오르게 된다. 왕실 내 왕위계승 서열 3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왕위를 잇게 된 성종의 장인이 당시 최고 실세였던 한명회였던 것은 굉장히 공교롭게 여겨지는 대목이다. 이처럼 어린 성종은 세자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왕위에 급히 올랐기 때문에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수렴청정과 원상제라는 비정상적인 정치체제 아래에서 임금 노릇을 해야 했다.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는 듯했으나 아직 새로운 시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훈구공신들의 위세는 여전했다. 아니, 날로 강고해지고 있었다.

조선 유교문명의 성세를 꿈꾼 젊은 이상주의자, 남효온
시대의 모순을 지적하고, 과감한 정치개혁을 제언하다


그러나 성인이 된 성종은 이전과 점차 다른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다. 집현전의 후신인 홍문관을 개편하여 젊은 인재들을 대거 영입하는 한편, 조정의 대소신료들에게 개혁의 방안을 구언하는 등 자기 정치를 하나둘씩 펼쳐나갔다. 또한 세종 시절 찬란히 꽃피웠던 유교문명을 재현하고자 유교국가의 기틀을 확립하는 초학서로 중시되던 [소학]의 중요성을 설파하며, 자신의 정치적 방향을 [소학]의 정신으로부터 잡아보고자 했다. “유교정신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호학군주 성종의 일성에 성균관의 젊은 유생들은 소학계를 결성하여 경전을 강론하고 실천하며 열렬히 호응했다. 이들 신진사류들은 유교경전에 적힌 성현들의 가르침이 현실에서도 그대로 구현되는 세상을 꿈꿨다. ‘사림의 종장’으로 추앙받던 김종직을 필두로 한 이 일련의 젊은 유생 집단은 조선 유교문명의 성세를 꿈꿨던 당대의 이상주의자들이었다. 그리고 남효온은 이들을 대표하는 가장 문제적인 핵심 인물이었다.

남효온이 자신의 존재를 역사에 분명히 드러낸 것은 그의 나이 스물다섯에 소릉복위 상소를 올리면서부터였다. 그는 새 시대를 향한 기대와 이전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공존하던 시절, 세조의 왕위계승 과정에서 자행된 불법성을 지적하며,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과감한 주장을 던졌다. 그는 1478년(성종 9년), 세조에 의해 폐서인된 단종의 생모 현덕왕후의 신원을 복권하고 그의 능을 복위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려 조정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만일 소릉복위의 정당성이 받아들여진다면, 그 다음 수순은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킨 뒤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끔 만들고, 현덕왕후는 더 이상 왕의 모친이 아니니 폐서인해야 한다고 부추겼던 훈구공신들에게 책임을 묻는 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한 장의 상소가 불러온 파문과 훈구공신들의 반격,
그로 인해 걷게 된 외롭고도 순탄치 않던 방랑의 일생


사실 남효온이 상소를 올리기 일주일 전, 그와 동갑내기였던 또 다른 유생이자 당대의 신진사류였던 이심원이 세조 이래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훈구공신들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린 바 있었다. 자신들의 정치 생명이 걸린 일이었기에 훈구공신들은 곧바로 견제에 들어갔다. 그것이 조선 유교 체제가 완비되고, 왕조가 황금기에 접어들었다고 일컬어지던 성종 대의 실상이었다. 당시 그 누구도 함부로 발설하지 못했던 세조의 패륜적 처사를 공론의 장에 올리고, 집권 세력의 심기를 거스른 대가는 매우 혹독했다. 노회했던 훈구공신들은 남효온의 소릉복위 상소를 정면에서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올린 상소의 내용 중 학교(성균관)의 교육을 진작시키고 풍속을 바로잡자고 제안한 부분을 빌미로 삼아 남효온을 사제의 도리도 모르는 ‘미친 유생[狂生]’이라고 낙인찍어버리는 한편, 이심원과 남효온이 비슷한 내용의 상소를 올린 것으로 보아 함께 작당하여 반역을 도모하고자 한 무리로 추정되므로, 붕당죄로 엄히 처벌해야 한다는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오늘날에 비유하자면, 정책을 건의한 젊은이들을 공안사범으로 몰아간 형국이었다. 결국 훈구공신들의 대대적인 반발로 인해 신진사류의 지지를 업고 자기 정치를 펼쳐보려 했던 성종의 뜻은 이내 좌절되었고, 남효온은 자신이 올린 한 장의 상소로 말미암아 중앙 정치 무대에 올라설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하고 만다.

이처럼 조선 전기의 정치구도는 훈구세력과 사림세력의 갈등과 대립으로 설명될 수 있는데, 이는 성종 시대에 접어들면서 본격화되었다. 남효온은 그런 시대적 격랑 속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중앙 정치 무대에서 밀려나게 되었고, 서른아홉이라는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간고한 선비의 삶을 살게 된다. 이후 남효온은 방외인이자 경계인으로서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자신과 뜻을 함께했던 신진사류 벗들 혹은 김시습과 같은 시대의 선배들과 시주(詩酒)를 나누거나, ‘경지재’라 이름 지은 자신의 은거지에 머무르며 성리학 담론을 비롯해 시대를 증언하는 기록들을 여러 권 집필하면서 자조와 시름, 울분과 분노를 달래었다. 그가 선택했던 은둔과 방랑의 삶은 자유로운 자기 의지에 따른 선택이라기보다 소릉복위 상소를 올린 이후 당대의 기성세대였던 훈구대신의 배척을 받아 강제된 삶이었다. 때문에 그가 살아생전 남긴 시문들은 유유자적함이나 여유로움과는 거리가 먼, 이른바 울울하고 착잡한 정감의 파토스로 가득했다.

“어찌 한 번 죽는 것을 두려워하여 충신의 이름을 없앨 수 있으리오.”
은폐된 역사를 바로잡고자 했던 서사적 증언, [육신전]의 집필


그렇다고 해서 남효온을 현실 정치와 절연한 채 속세를 떠나 방랑자로서의 삶만을 살다 간 비운의 인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오히려 정국이 돌아가는 세태를 예의주시하며, 권력을 틀어쥔 자들이 왜곡하거나 은폐한 역사의 진실을 사실 그대로 복원하고자 애썼다. 그리하여 새로운 미래를 그려보고자 했던 진정한 이상주의자였다. 남효온을 그리 평할 수 있는 유력한 근거가 있으니 바로 사육신의 행적을 고스란히 기록해낸 [육신전]이 그것이다. 남효온은 세조가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소릉의 복위는 물론이요, 단종복위 운동을 도모하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의 신원도 올바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역적이라는 이름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를 반역의 인물이 아닌 충절의 인물로 복권해야만 세상의 정의는 바로 설 일이었다. 하지만 세조 이래의 훈구공신들이 살아 있는 권력으로 행세하던 당시, 사육신의 신원 복권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효온에게는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이들의 이름을 후세에 남겨야만 한다는 소명의식이 있었다. [육신전]은 그러한 의도에서 태어난 시대의 증언이다.

그가 의도했던 바대로, 오늘날 우리는 세조 2년 단종복위를 도모하다 벌어진 병자사화의 진실을 전적으로 남효온의 [육신전]에 의존하고 있다. 가혹한 형벌에도 불구하고 세조를 눈앞에서 질책하던 성삼문의 절의와 유응부의 헌걸찬 태도, 이와 대비되는 배신자 김질과 정창손, 동조자 신숙주와 최항, 주모자 한명회와 권람의 비겁하고도 졸렬한 모습은 남효온의 [육신전]이 없었다면 영영 기억할 수 없었을 역사의 진실이었다. 붓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님을 남효온은 자신이 남긴 기록으로서 증명해냈다. [육신전]은 ‘은폐된 기억’을 ‘살아 있는 기억’으로 되살리고, ‘반역의 인물’을 ‘충절의 인물’로 되돌리고자 했던 도전적 글쓰기이자, 기개 넘치는 붓끝으로 끝끝내 역사를 바로잡은 성성한 시대정신의 산물이다.

올곧은 시대정신으로 불의의 시절을 견뎌낸
조선의 젊은 지성 남효온과 성종 대의 신진사류들


다행스럽게도 남효온과 그의 신진사류 사우들이 꿈꾸었던 원대한 이상은 허황된 망상에 그치지 않았다. 평생 낙척불우한 삶을 살았던 남효온과 그의 벗들이었지만, 세월은 올곧은 시대정신으로 불의의 시절을 견뎌낸 그들의 편이었다. 살아생전에는 훈구공신들의 비난과 배척을 받았을지 모르나, 그의 사후 중종이 새로운 임금으로 즉위하자 조정에도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가 그리도 꿈꾸었던 소릉의 복위가 실현되는 한편, 억울하게 죽은 그 자신의 신원도 이루어져 남효온은 좌승지에 추증된다. 또한 사후 299년이 지난 뒤에는 단종에게 충절을 바친 인물들을 모신 장릉배식단에 함께 배향되었으며, 생육신이라는 영예로운 이름을 얻어 역사의 제대로 된 인정을 받게 된다. 그가 전국을 떠돌며 지은 시문들도 속속 수습이 되어 [추강집]이라는 이름으로 엮여 세상에 전해진다. 비록 연산군 대에 갑자사화를 겪으며 후사가 끊긴 그였지만, 외손들의 정성과 그의 올곧은 삶을 기리고자 했던 후배들의 노력에 의해 남효온이라는 이름은 민멸되지 않고 역사에 그 이름을 지금까지도 남길 수 있었다.

혹자는 죽은 뒤의 영화가 무슨 소용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기록을 통해 과거를 되새김질하여 더 나은 미래로 향해 가는 것이 역사의 소명임을 기억할 때, 남효온은 온몸을 던져 자신에게 부과된 역사적 소임을 다하고 간 인물임에 분명하다. 오늘날 우리는 평생 울울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가 필생을 걸고 남긴 [육신전], [추강냉화], [사우명행록]과 같은 저작을 통해 김굉필, 정여창, 김일손, 이심원, 홍유손, 이총, 이정은, 우선언과 같은 조선 중기 신진사류들이 품었던 이상과 그들이 겪었던 집단적 좌절을 오롯이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한 인물의 일생을 면밀히 들여다봄으로써 그 인물이 살다 간 시대를 조망할 수 있는 너른 시선을 획득하는 것. 그것이 ‘평전’의 존재 의미이자 기능이라면, 남효온의 삶을 돌아보는 일은 유교문명의 성세를 꿈꿨던 한 이상주의자의 삶을 복원하는 일이자, 조선 중기의 역사를 뒤흔든 훈구와 사림의 대립 그 초입에서 벌어진 격랑을 살피는 일이기도 하다. 더불어서 세조 때의 훈구공신들이 학문과 정치권력을 완강하게 틀어쥐고 이룩한 성종 시대의 태평성대, 그 뒤안길의 어둠을 제대로 파헤쳐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목차

발간의 글 | ‘한겨레역사인물평전’을 기획하며 - 정출헌
머리말 | 새로운 시대를 열망했던 한 젊은 이상주의자와의 만남

1장 연산군 10년, 엄동설한에 휘몰아친 광풍
갑자년 동짓달, 어느 부자의 참극
양화나루에서 함께 한 젊은 벗들
신진사류와 훈구공신의 얄궂은 운명

2장 어린 성종의 즉위와 새 시대를 향한 기대
불안과 희망으로 출발한 새로운 시대
김시습의 귀환과 신진사류의 공감
남효온의 유년과 그의 젊은 벗들
김종직의 『소학』 교육과 시대정신

3장 한 장의 상소가 불러일으킨 파문
흙비와 구언, 그리고 젊은 유생의 상소
조정을 뒤집어놓은 남효온의 소릉복위 상소
사제(師弟)의 명분, 훈구공신의 노회한 반격
구언상소 이후, 뜻을 함께 했던 젊은 동지들

4장 『육신전』의 집필과 역사 바로 세우기
남효온의 꼿꼿했던 결기와 시대정신
남효온이 『육신전』을 기록하던 즈음
과거를 바로잡는 서사적 증언, 『육신전』
『육신전』에 밝혀둔 그날의 오명(汚名)들

5장 폭음으로 견뎌내던 시련의 시절
벗들과 흥겹게 어울리며 지내던 한때
함께 했던 벗들의 부재, 살아남은 자의 폭음
절주(絶酒)를 둘러싸고 벌어진 우정의 논란

6장 신진사류의 좌절과 삶의 전회(轉回)
남효온을 비롯한 신진사류들이 추구한 삶
성균관 풍자시의 파문과 흔들리는 마음
과거공부의 포기와 은거생활의 선택
경지재에서의 침잠과 성리학으로의 전회

7장 금강산 유람과 성리담론의 집필
김시습과의 재회, 그리고 영원한 이별
현실로부터의 일탈을 맛본 금강산 유람
금강산의 여정에서 만난 많은 인연들
성리담론의 본격적 집필과 논쟁의 시대

8장 절절하게 읊은 시편과 울울했던 송도 유람
비통하게 읊조린 한 해의 간난의 시편
가뭄, 언문투서, 그리고 김종직의 좌천
스승을 향한 제자들의 날 선 비판들
벗들과 함께 한 울울했던 송도 유람

9장 정처 없이 이어지던 방랑의 시작
연속된 가족의 죽음과 비탄 255
실의의 극점과 방랑의 시작 260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감회 267
너르디너른 지리산 자락의 위무 278

10장 인생의 길을 일깨워준 스승과의 만남
신진사류들의 스승, 김종직과의 첫 만남
오랜 남도 방랑을 마친 뒤의 귀갓길
스승 김종직에게 지어 보낸 자만시
관서유람에서 만난 또 다른 노스승

11장 죽음 앞에서 얻은 지극한 즐거움
호남으로의 마지막 여정, 또는 이별 여행
죽음의 달관, 실의한 동류와의 묵은 회포
살갑게 대해주던 두 여인에 대한 추억
죽음을 앞에 두고 얻은 마지막 깨달음

12장 소풍 길 같던 귀천(歸天), 그러나
훌훌 떠나간 남효온의 쓸쓸한 최후
남효온에 대한 기억, 그리고 남은 벗들

보론 | 『추강냉화』와 성종 대의 어두운 그늘에 대한 증언
주석
주요 저술 및 참고문헌
이미지 출처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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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중에서

남효온은 평생 간고한 선비의 삶을 보냈지만, 본디 혁혁한 명문가의 후예였다. 5대조 남재는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으로서 정1품의 영의정을 지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남효온의 가계를 자세히 보면, 가문의 영광이 순탄하게 이어지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증조부 남간은 정3품의 예문관직제학, 조부 남준은 정6품의 사헌부 감찰을 지냈고, 부친 남전은 생원에 그쳤을 따름이다. 대를 거듭할수록 그의 가문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 같은 가문의 역사는 현실에 대해 그토록 비판적이던 남효온의 태도를 짐작하게 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 남효온의 가문은 조선 건국 초기에 빈번하게 일어났던 정치적 격변의 한복판에 있었다. 이는 남효온의 가문이 기울어가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부 남준은 정6품에 그쳤으며, 부친 남전은 행적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생원시에 합격했지만 32세에 죽었다는 사실만 확인될 따름이다. 현실 정치 무대에서 점차 스러져갔던 조부와 부친의 행보가 그들 자신의 능력 부족 때문만은 아니었을 터이다. 끊이지 않던 당시의 정변은 거의 대부분 집권자의 권력을 향한 야욕으로 인해 일어났다. 피비린내가 잦아들지 않던 정쟁의 시대에 가문의 침체를 지켜보던 어린 남효온은 깊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자신이 듣고 배운 유교경전의 가르침과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 정치 사이에서 엄청난 괴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 '2장 남효온의 유년과 그의 젊은 벗들' 중에서/ pp.58~60)

이심원의 상소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잦아들 즈음, 4월 15일 다시 한 통의 상소가 올라왔다. 성균관 유생 남효온의 상소였다. 이번 상소문은 이심원의 상소보다 비판의 강도가 훨씬 높고 제시하는 내용도 매우 구체적이었다. 사실, 남효온과 이심원은 스물다섯의 동갑내기인 데다가 절친한 벗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그들이 연이어 올린 상소는 서로 공감해왔던 문제의식을 적어 올린 것이라고 보아도 좋았다. 남효온이 건의한 사안은 모두 여덟 가지였다. 첫째, 남녀의 혼인을 바르게 할 것. 둘째, 수령의 선발을 제대로 할 것. 셋째, 인재 등용에 신중을 기할 것. 넷째, 궁중의 내수사를 혁파할 것. 다섯째, 무불과 같은 미신을 배척할 것. 여섯째, 학교의 교육을 진작시킬 것. 일곱째, 풍속을 바로잡을 것. 여덟째, 소릉(昭陵)을 복위할 것. 이상의 사안들은 당시 신진사류들이 가장 핵심적으로 여기던 개혁 방안을 망라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 이들 가운데 공정한 인재 등용, 무불 행사의 근절, 학교 교육의 흥기 등은 유교 국가를 지향했던 조선 사회에서 누구라도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마지막에 거론한 소릉복위는 예사로운 문제가 아니었다. 세조가 왕위찬탈 과정에서 벌인 행위가 패륜적인 처사였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시정하라는 요구였기 때문이다.
( '3장 조정을 뒤집어놓은 남효온의 소릉복위 상소’ 중에서/ pp.83~84)

소릉복위 상소를 올려 엄청난 곤욕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남효온의 의기(義氣)는 꺾이지 않았다. 세조의 왕위찬탈 과정에서 자행된 불의를 용납할 수 없었고, 유배지 영월에서 죽어간 단종의 죽음에 무한히 슬퍼했다. 그리하여 그날의 진실을 후세에 길이 남기기로 결심한다. 역적의 인물을 충절의 인물로 기록하고자 했던 그의 행동은 당시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주변에서 집필을 만류했지만, 남효온은 듣지 않았다. 억울하게 죽은 충절의 인물이 역적으로 내몰린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는 믿음은 죽음의 두려움마저도 넘어서게 했다. (…) 지금 우리는 세조 2년, 단종복위를 도모하다 벌어진 병자사화에 대한 사실을 전적으로 남효온의 『육신전』에 의존하고 있다. 『육신전』은 오늘날 우리가 저자 남효온을 비롯하여 처참하게 죽어간 여섯 명의 행적을 기억해낼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문헌 자료이기도 하다. 남효온이 추존되었던 조선 후기에도 그러했다. 정조 15년(1791), 단종에게 충절을 지킨 신하를 모두 복권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제사를 치러줄 만한 인물을 논의했던 자리를 기록한 실록에서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남효온은 소릉의 복위를 요청하고 육신의 전기를 집필하면서 그 내용을 완곡하게 쓰고 자기 뜻을 굳게 지켰으니, 그의 고심참담한 마음과 아름다운 절의는 사람들을 영원토록 격려할 만합니다.” 남효온이 단종과 함께 장릉의 배식단에 모셔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소릉복위의 상소를 올리고 여섯 충신의 행적을 담은 『육신전』을 남겼기 때문이다. 뒷사람들이 그를 생육신으로 추앙하고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 '4장 남효온이 『육신전』을 기록하던 즈음' 중에서/ pp.114~116)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남효온을 현실에 대한 울분으로 전국을 정처 없이 떠돌던 방외인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는 조선 성리학의 논쟁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이론적 선구자이기도 했다. 물론 남효온이 저술한 「심론」, 「성론」, 「명론」은 송나라 학자들의 언설을 얼기설기 종합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성리학을 완성했다고 평가되는 주희 또한 북송 시절의 선배 학자들의 다양한 언설을 집대성하여 자기 논리로 재구성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남효온도 『근사록』, 『성리군서』, 『성리대전』과 같은 성리서적에 실려 있는 단편적인 언설을 활용하여 자기 자신만의 성리담론으로 재구성했던 것이다. 더욱이 남효온이 다룬 주제는 성리학의 핵심적 개념으로 이른바 성리학이 본격적으로 학습되고 토론되던 16세기를 거쳐 조선시대가 끝날 때까지 논쟁적인 담론으로 이어졌다. 그런 맥락에서 성종 14년(1483) 행주에 은거한 이후 발표되기 시작한 남효온의 논설들은 조선 최초의 성리학적 담론으로 평가할 만하다. 또한 그 수준도 결코 만만하지 않다.
( '7장 성리담론의 본격적 집필과 논쟁의 시대' 중에서/ pp.217~218)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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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수 0권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조선후기 우화소설의 사회적 성격」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조선 전기 유교 지식인의 시대정신, 근대 전환기 전통 지식인의 대응 양상을 비롯해 우리 고전을 당대적 시각으로 꼼꼼하게 읽고 오늘날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몇몇 동료들과 함께 ‘인문고전마을 시루’를 만들어 동양고전의 대중화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저·역서로는 『고전소설사의 구도와 시각』 『고전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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