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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과 일연은 왜 : 삼국사기 삼국유사 엮어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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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붓대의 주인에 따라 역사는 달라진다!
    김부식과 일연, 두 남성의 시선을 아우르며 읽어낸 우리 고전의 세계


    고전이 편찬된 당대의 상황을 살피되 현재의 문제의식을 놓지 않는 고전 읽기를 시도해온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정출헌 교수가 이번에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나란히 놓고 독자들을 초대한다. 삼국시대를 엿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인 이 두 책은, 같은 시대를 다루고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같은 사건을 다룬 경우를 찾아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같은 사건을 다룬다 하더라도 서로 묘사하는 바가 다르기 일쑤다. 이 책은 김부식과 일연이 당대의 시대적 요구에 따라, 그리고 자신들의 관점에 따라 삼국의 역사를 얼마나 다르게 그리고 있는지를 살핀다. 유화나 소서노 같은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에서부터 효녀 지은의 이야기까지 저자가 안내하는 삼국시대를 여행하다보면 어느새 고전을 읽는 새로운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왜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말하는가
    최근 우리 고전과 관련한 책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논어],[맹자],[한비자]를 비롯해 [춘향전],[열하일기] 등 충실한 주석과 함께 현대어로 번역한 전문서, 재미있는 일화만 발췌한 것, 일반 교양물로 쉽게 풀어낸 것,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만화로 그려낸 것 등 다양하기 그지없다. 그중에서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각각 무려 200종이 넘는 책들이 이미 나왔으니 이 두 고전에 대한 관심의 정도를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고전은 삼국시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큰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이들 두 고전이 그리고 있는 삼국의 역사란 참으로 딴판이다. 기술하는 방식은 물론 같은 사건을 이야기하는 경우조차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저자 정출헌은 같은 시대를 다루면서도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들 두 고전을 함께 놓고 엮어 읽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어느 쪽이 더 진실에 가까운 것인가를 살피기보다는 역사적 텍스트를 문학적으로 음미하는 독법을 제시한다.
    저자는[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오는 여러 가지 사례들 가운데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야기 혹은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를 선별하여 두 기록을 함께 읽으면서 김부식과 일연의 시각차를 살펴본다. 일례로 우리 역사상 충신 계보의 시원에 자리하고 있는 박제상에 대한 기록을 보면 김부식과 일연의 강조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 내물왕의 두 아우를 위해 나섰던 제상이 왕의 두 아우를 구출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끝내 일본에서 죽임을 당한다는 이야기인데, 가장 차이가 나는 부분은 결말이다. 김부식은 두 아우를 찾은 왕의 흥겨운 잔치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그 부인을 지아비의 죽음을 지켜보면서도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는 애절한 여인으로 그렸다. 반면 일연은 제상이 혹독한 고문을 겪으며 흘린 피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런 지아비를 기다리던 부인은 신모(神母)가 되었다는 이야기로 피날레를 묘사했다. 김부식은 제상을 충신의 전형으로 보고, 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제상의 처를 무언(無言)의 배역으로 묘사함으로써 유교적 이데올로기를 강조했다. 반면 일연은 눈에 보이는 현실에만 급급한 중생의 어리석음을 일깨우려는 발상에서 제상의 죽음과 그 이후의 신이한 행적을 강조했다.
    또 한 가지 사례로 서라벌-계림-신라로 이어지는 신라 국호의 기원에 대한 김부식과 일연의 시각차를 들 수 있다. 김부식은 계림의 기원이 신라의 국부 김알지가 닭이 우는 숲(계림)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고, 일연은 박혁거세의 아내 알영이 계정( 井)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근엄한 남성 유학자 김부식은 국호의 기원에 감히 여자를 들먹일 수 없었다. 반면 일연은 김부식에 비해 여성의 역할에 대해 다채롭게 서술했다. 이런 몇 가지 사례들을 살펴보면 김부식과 일연이 삼국의 역사를 쓰면서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에 따라 역사에 어떻게 붓질을 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김부식과 일연이 그리고 싶었던 삼국의 모습
    자신의 신념에 맞게 서술하다보니 누락되거나 왜곡된 사실도 생겼다. 일례로 평강공주와 선화공주의 이야기를 보자. 두 이야기는 미천한 사내를 당당한 장부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로맨스다. [삼국사기]의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은 국가를 위해 목숨마저 기꺼이 바친 온달의 충성,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겪게 되는 사랑하는 남녀의 애절한 삶과 죽음의 갈림길로 읽어야 할 것이다. 김부식도 그런 충절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역사서에 실었을 것이다. 그런데 온달의 실존여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삼국사기]를 보면 평강왕의 뒤를 이어 양강왕이 왕위에 오르고, 온달은 양강왕 때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평강왕은 양강왕의 아들이다. 김부식은 아비가 아들을 계승하여 왕위에 올랐다는 어처구니 없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사실에 근거해 있는 그대로를 기록한다’는 김부식의 역사 서술 원칙을 위반했다.
    일연도 [삼국유사]에서 선화공주와 서동의 이야기를 다루며 김부식과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원래 고본(古本)에는 서동이 ‘무왕’의 어릴 때 이름이 아니라 무강왕의 어릴 때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일연은 백제에 무강왕이라는 임금이 없었기 때문에 무강을 무왕의 오기(誤記)로 파악했다. 무강왕의 어린 시절을 무왕의 어린 시절로 뒤바꾸어 놓은 일연의 잘못은 너무나 크다. 이를 바로 잡다 보면 무왕의 전력과 관련한 모든 이야기를 삭제해버려야 한다. 미륵사를 창건한 설화, 무왕과 연대기를 맞춘 선화공주의 부친 진평왕의 일화, 무엇보다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의 존재가 모두 맞지 않는 것이다. 일연은 그저 용과 사통하여 낳은 백제의 미천한 사내 서동이 신라의 고귀한 선화공주를 배필로 맞이해 왕위에 오른 신이한 행적을 부각시키고 싶었을 뿐이었다. 김부식과 일연 모두 목적의식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사태의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교훈을 남겼다.
    이 밖에도 이 책에서는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유화·소서노·알영·허황옥, 여자의 몸으로 지존의 자리에 오른 신라의 여왕들, 아버지나 남자 형제들에 의해 희생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설씨녀와 호녀, 폭군의 무자비한 겁탈에 시달려야 했던 도미처와 도화녀, 부모를 위해 자식을 죽이거나 자신의 몸을 팔아야 했던 손순과 김유신의 처, 효녀 지은 등의 이야기를 통해 김부식과 일연이 덧칠한 삼국의 모습을 살펴본다.

    최고의 고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이제 제대로 읽고 해석하자!
    E. H. 카는[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역사가를 연구하라고 말했다.[삼국사기]와[삼국유사]를 엮어 읽는 이 책에서는 두 고전을 단지 역사적 텍스트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편찬자의 의도, 시대적 요구 사항 등을 고려하며 음미한다. 저자는 편찬자, 편찬된 시대적 상황에 따라 같은 이야기도 얼마든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례가 김부식과 일연이 삼국의 여성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여성들이란 김부식과 일연, 두 남성의 프리즘에 굴절되어 그려진 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독법으로 고전을 탐색해보는 것이 당대를 다양한 시각으로 그려보고, 고전을 새롭게 음미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목차

    프롤로그_ 판도라의 상자를 열며

    1부 역사를 보는 두 개의 시선
    1. 역사는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다: 근엄한 유학자 김부식의 시선
    2.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탈속의 승려 일연의 시선

    2부 진실을 엿보는 일곱 개의 창
    1. 건국신화의 숨은그림찾기: 유화, 소서노, 알영, 허황후
    2. 공주는 왜 미천한 사내를 만났을까: 평강공주와 선화공주
    3. 여자는 나라를 다스리지 못한다?: 선덕·진덕· 진성여왕
    4. 그녀의 희생은 사랑이었을까: 설씨녀와 호녀
    5. 너무나 아름다워 위태롭던 부인들: 도미처와 도화녀
    6. 차라리 지아비의 칼에 죽는 게 낫다고?: 계백, 소나, 박제상, 석우로의 처
    7. 자식을 매장한 부모는 유죄인가: 손순과 김유신의 처, 지은

    본문중에서

    신라의 최초 이름은 서라벌(徐羅伐)이었다. 그러다가 계림(鷄林)으로, 다시 신라로 고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계림’이라는 나라 이름의 기원에 대한 일연의 설명이 흥미롭다. 서라벌을 계림으로 고친 데는 두 가지 설이 있었다. 하나는 박혁거세의 아내 알영이 계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설. 다른 하나는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닭이 우는 숲[계림]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김알지의 탄생 설화에서 계림이라는 이름을 썼다는 두 번째 설은 김부식의 견해를 가리키는 것이다. (중략) 김알지가 누구던가? 박씨, 석씨로 번갈아 이어지던 신라의 왕위에 김알지의 6대손 미추왕이 김씨로는 첫 번째로 올랐다. 이후 신라는 김씨의 왕국이 됐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알지는 신라의 ‘진정한’ 시조라 말할 수 있다. 그러니 김부식의 판단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로서는 계림이라는 국호의 두 가지 기원 가운데 어느 것이 맞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일연은 신라의 국모 알영의 탄생에서 그 기원을 찾으려 했던 데 반해, 김부식은 신라의 국부 김알지의 탄생에서 그 기원을 찾으려 했다. 김부식은 알영에 대한 기원설은 아예 언급도 하지 않은 채, 다만 “금궤짝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김이라 했고, 시림(始林)의 이름을 계림으로 고치고 이것을 국호로 삼았다”고 밝히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런 사소한 차이에서도 삼국의 역사를 남성 중심으로 쓰고 싶었던 김부식의 서술 시각을 감지할 수 있다.
    (/ pp.83~85)

    온달과 평강공주를 통해 김부식이 말하고자 했던 진정은 “자신의 말에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임금은 실없는 농담을 해서는 안 되고, 신하는 죽어서라도 자신의 말을 지켜야 한다는 교훈 말이다. 실제로 김부식은 [삼국사기] 곳곳에서 임금이든 신하든 일반 백성이든 누구나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신의(信義)를 꼽고 있다. (중략) 그런데 신의를 강조하려는 김부식의 목적의식은 너무나도 강렬했다. 온달과 평강공주가 펼쳐 보인 한 편의 소설 같은 로맨스마저 사실 여부를 깊이 따지지 않고 역사적 사실로 간주해버린 것이다. (중략) [삼국사기]에 실려 있는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와 견줄 만한 [삼국유사]의 파트너로는 단연 ‘서동과 선화공주’ 이야기를 꼽아야 한다. (중략) "기이"에 실었다는 것은, 용과 사통하여 낳은 백제의 미천한 사내 서동이 신라의 고귀한 선화공주를 배필로 맞이해 왕위에 오르게 된 신이한 행적 때문에 거두었음을 반증한다. 특히 불가능한 만남을 가능한 만남으로 만들어준 "서동요"의 영험에 주목했던 듯하다.
    (/ pp.115~119)

    권력을 잡은 지 한 달 만에 반란을 일으킨 것을 보면, 여자가 지존의 자리에 있는 것을 얼마나 못마땅하게 여겼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선덕여왕 하나도 용납하기 어려운 판에 다시 진덕여왕이 연거푸 왕위를 이어간다는 것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국면을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야 했던 남성 유학자 김부식은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중략) 여자가 지존의 자리에 오른 것을 너무나도 불쾌하게, 아니 참으로 잘못된 처사라고 여겼던 김부식의 태도가 극명하다. 여자가 왕위에 있었는데도 망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이런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그도 어쩔 수 없는 남자임에 틀림없다. 아마도 “여자는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한다”는 명분을 내걸로 반란을 일으킨 비담의 행위를 내심 그럴 만한 일이라고 여겼을 터다. 김부식의 이런 태도는 신라의 세 번째 여왕인 진성여왕의 행적을 기록할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 pp.138~139)

    일연이 ‘김현과 호녀’의 이야기에서 주목하고 있는 점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이류(異流)와의 사랑, 각기 다른 소원과 엇갈린 운명, 그리하여 다다르게 된 하룻밤 연정의 파국이 아니다. 그 대신 오라비의 죄를 자기가 받겠다고 나선 희생. 하룻밤을 함께 보낸 낭군을 위한 기꺼운 죽음이다. 그리하여 호녀의 행위를 인간 사회에서 통용되는 인(仁)과 의(義)라는 지고지순한 윤리적 이념으로 읽고 있다. “짐승으로서도 어질기가 그와 같았다[獸有爲仁如彼者]”거나 “의리의 중함 다섯 가지에 죽음도 가벼이 여겨[義重數條輕萬死]”라는 말이 그것이다. 하지만 "김현감호"가 독자를 감동시켰던 까닭은, 그녀가 짐승이면서도 여자로서의 간절한 욕망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 아니었을까? (중략) 그럼에도 그런 사실에 눈길을 주지 않았던 일연의 태도, 그리고 그녀의 그런 행위에 무한감동하고 있는 우리들은 남성 중심적 독법에 젖어 이들의 사연을 감상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일연은 범상한 우리들과 달리 이런 감상의 차원에 그치지 않았다. 일연은 자신의 이런 독법을 발판으로 삼아 호녀를 관음보살의 현신으로 상승시키는 종교적 도움닫기를 시도했던 것이다.
    (/ p.185)

    남편이 있기 때문에 안 된다는 도화녀의 말은 그래서 흥미롭다. 같은 처지였던 도미처도 그런 식으로 사태를 모면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중략) 아무리 왕의 겁박을 모면하기 위한 임기응변이었다고 해도, 부녀자의 정절을 강조하고 싶었던 고려 중기의 남성/가장 김부식에게는 불온한 언사로 읽힐 수밖에 없었다. 고민하던 김부식은 마침내 문제의 발언을 통째로 삭제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 결과 문맥은 의미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 훼손된 텍스트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김부식이 도미처의 행적에 손질을 가한 까닭은 그 자신이 품었던 넘쳐나는 목적의식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었다. 김부식은 이들의 사연을 풀어내는 첫머리에 “도미는 백제인이다. 비록 민간의 백성이었지만 자못 의리(義理)를 알았고, 그 아내는 아름답고도 절행(節行)이 있어 당시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라고 전제해두고 있다. 도미처는 그런 목적에 부합하는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런 전범을 보여주기 위해 건져 올린 정절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 p.212)

    아득히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며 통곡하던 박제상의 아내가 했던 말은 “잘 다녀오세요[好歸來]”가 전부였을까? 아닐 것이다. 다만 아내를 통해 박제상의 충절을 돋보이게 만들려는 데 골몰했던 김부식에게는 그 말만 들렸을 뿐이다. 어찌 보면 김부식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아스라이 멀어져가는 배 위에서 아내에게 했다는 박제상의 말을 어찌 그리도 똑똑하게 들어 기록으로 남겼을까? (중략) 다만 박제상의 충절을 한껏 드높이고 싶었던 김부식은, 박제상이 그런 말을 남기고 떠났으리라 희망했을 따름이다. 그런데도 마치 직접 들은 것처럼 역사 기록으로 남겼다. 충절의 역사란, 으레 그렇게 만들어지는 법이다. 무장공비에 의해 비참하게 죽어간 어린 이승복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절규하다 죽었다고 부풀려서 반공소년의 화신으로 선전했던 지난날의 해프닝이 퍼뜩 스쳐 지나간다. 충절의 아내들은 지아비의 죽음을 지켜보며 침묵하든 아니면 무슨 말인가를 하든, 남성의 충절을 돋보이도록 만들어주는 조역을 마치고는 문면 뒤편으로 사라지고 만다. 박제상의 처도 그러했다.
    (/ p.244)

    효(孝)란 말 그대로 부모에게 효도를 한 이야기, 그리고 선(善)이란 불교의 가르침을 잘 실천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효와 선을 함께 잘 실천한 인물의 이야기들은 ‘효선편’에 실어둔 것이다. 그런 편명에 걸맞게 전반부가 효행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면, 후반부는 그런 효행의 결과 얻게 된 부처의 영험과 손순의 돈독한 불심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돌종을 얻어 기이하게 여긴 나머지 아이를 묻지 않게 됐다는 점, 돌종을 두드리니 그 소리가 궁궐에까지 퍼져 나라에서 큰 보상을 내렸다는 점, 깊이 감동한 손순은 옛집에서 절을 지어 지극한 불심을 갖게 됐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읽어갈 때 손순을 과거의 후신(後身)으로 여겼던 점도 흥미롭지만, 손순의 효행을 부처에 대한 독실한 신심으로 결론 맺는 점도 흥미롭다. ‘효선편’에서 부모에 대한 효도와 불교에 대한 신심은 상반되지 않고 동시에 함께 하라는 것이라 강조하고 싶었던 일연의 의도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굶주린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심이 결국 부처를 감동시켜 부모에 대한 효도와 자식에 대한 사랑을 모두 지켜낼 수 있었다는 논리다.
    (/ pp.272~273)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조선후기 우화소설의 사회적 성격」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조선 전기 유교 지식인의 시대정신, 근대 전환기 전통 지식인의 대응 양상을 비롯해 우리 고전을 당대적 시각으로 꼼꼼하게 읽고 오늘날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몇몇 동료들과 함께 ‘인문고전마을 시루’를 만들어 동양고전의 대중화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저·역서로는 『고전소설사의 구도와 시각』 『고전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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